쓰고 있던 아이패드 미니 키보드가 고장났다.
전 세계 최저가 검색으로 아마존에서 한국까지 배송시켜 이용하던 것이라 고장나자 수리도 불가능하고, 고작 3~4 만원 짜리 제품에 또 돈을 쓰기가 싫어서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참 아깝다. 키보드는 수십개의 키 중에 단 하나만 고장나도 쓸모가 없어진다. 글을 쓰기 위해 한가지 철자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물론 “씨프트키까 꼬짱났어요” 이런식으로야 쓸수 있지만) 그야말로 하나의 흠결이 전체를 좌우하는 그런 제품이다.
이것은 키보드라는 기계가 하는 일의 속성 때문에 그렇다. 단순히 키를 누르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라면 하나가 고장나던, 여러개가 고장나던 하나의 키만 정상 동작한다면 그 목적은 달성된다. 하지만 키보드는 키를 누르는 일련의 행위를 통해 전혀 다른 차원의 무엇인가를 생산해 낸다. 키를 누르는 행위들과 그 결과로 만들어진 글은 서로 완벽히 분리된 것처럼 보인다. 그 사이의 연관성을 알아내는 일은 아직 인간에게만 허락된 영역이다. 이러한 속성의 일은 그 베이스가 되는 차원의 입력 요소들이 중요해진다. 키보드에서 하나하나의 키 입력이 글을 작성하는 데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 요소인 것처럼 말이다.
글자를 누르는 행위로부터 하나의 자음, 모음이 입력되고, 글자를 만들어내고, 다시 단어를 만들어내고, 이를 조합해 문장을 만든다. 또 문장을 이리 저리 배열하여 글을 작성하고 이것은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에 무엇인가의 화학적 변화를 이끌어 낸다. 단순한 한 차원이 아닌 여러겹의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이 사이의 연관 관계를 알아내고 해석하고 최초의 자음, 모음 입력이 최종적인 화학적 변화를 나타내도록 의도하고 이를 위한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수 단계를 거친 추상화 과정의 백미이다. 하지만 이는 가장 단순한 예시이기도 하다.
우리가 기업에서 팀을 이루어서 하는 일련의 일들은 이러한 글을 작성하는 행위조차 하나의 단위 업무로 만들어버리는 더 고도화된 과정이다. 우리는 글을 쓰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글을 써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일을 하고 연구를 하고, 비행기나 기차를 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출장을 통해 다른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새로운 비즈니스 Circumstance 로의 변화를 꾀한다. 다소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기업에서 하는 일이란 것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행위들이므로 아주 단순한 단위 업무에서 시작해서 최대한의 이윤을 남기기 위한 고차원적인 행위들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단계들로 겹쳐겹쳐 존재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이윤 추구의 행위들이 매끄럽게 돌아가기 위해서 단위 업무 역량을 보유하고 잘 해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팀 단위로 묶인 조직에서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단위 업무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에게 그 업무를 맡기고 이러한 단위 업무 중에 빠진 것이 없고, 딜레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역할을 하는 것이 관리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이다. 하나의 키에 두 가지 철자를 맵핑할 수 없는 것처럼 가능하면 단순하고 명료한 업무를 할당하되 이와 같은 업무의 연속과 배열이 매끄러운 하나의 결과물을 내도록 그 차원 간 연결 고리를 맺어두는 것이 이 관리자가 해야할 고도의 지능적인 컨트롤인 것이다.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것을 그는 보아야 한다.
하지만 꽤나 많은 관리자들이 하나의 차원에서만 문제를 다루는 것을 많이 본다. 무엇인가를 달성하기 위해서 사람이 많으면 빨리되고, 능력자가 위에 있으면 잘되는 일로 모든 것을 본다. 내가 버린 키보드의 예처럼, 필수요소 하나가 없으면 전체가 의미 없는 팀이 되고, 키보드에 키가 두 개씩 달렸다고 더 좋은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