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한참 스타크래프트가 인기 있던 시절이었다. 다른 많은 벤처 기업들이 그랬던 것과 같이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도 야근을 할라치면 일상처럼 저녁 식사 후에 스타크래프트 한 게임을 즐겼다. 회사에는 프로게이머를 준비하다가 군 문제 때문에 회사에 입사한 친구가 한명 있었는데 연습생 신분으로도 있었고 정식으로 프로게이머 협회에 등록이 되어 있다고 했다.
그 친구가 게임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놀라운 점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놀라운 점이 나와 그 친구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생각됐다. 그것은 게임을 전지적 시점에서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다. 마치 자신의 인격을 두 개로 분리 시켜서 하나의 인격은 순간적인 반응과 빠른 손놀림을 위해 게임에 몰입하게 해 놓고, 다른 하나의 인격은 모니터 멀찍이서 게임을 보면서 마치 훈수를 두는 것처럼 게임에 참가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 것을 알 수 있냐 하면, 게임 중에 내가 다가가면 나와 마치 TV에 나오는 게임을 함께 관람하는 것처럼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몸으로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상대편은 뮤탈리스크 4기가 나왔으니까 저글링은 몇 개 이상 없을 거에요. 여기서 제가 저글링만 계속 뽑아도 흔들어줄 수 있죠.”
나는 온통 게임에 몰입하고 내 모든 정신은 순간순간 상대의 공격에 반응하기 바쁜데 어떻게 저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지. 여유라고는 하지만 물론 손놀림은 한치의 느려짐이 없지만 말이다. 그러고는 결국 게임을 자신이 예상했던 시나리오 대로 진행 시켜서 승리를 거둔다. 얼마나 많은 연습이 필요했을까? 얼마나 많은 상상이 필요했을까?
다른 실시간 커뮤니케이션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반응에만 대처하기 바쁜 사람은 결국 그 끝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대화의 처음과 끝에서 실시간으로 시나리오를 짤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손쉬운, 또 여유로운 대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그것이 어떤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이건 – 협상, 흥정, 유희, 싸움, 논쟁 등 – 나와 남의 관계 속에 빠져들지 말고 커뮤니케이션 자체를 냉정하게 살펴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결국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지난 학기 수강했던 Negotiation 과목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흔히 속된말로 “통밥을 굴린다고 하는 협상 과정”에서조차, 주어진 데이터를 얼마나 객관화, 정량화 하느냐 그리고 이 것을 바탕으로 얼마나 연습하고 상대방의 반응에 잘 대처 하느냐가 협상의 성공 여부의 거의 전부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결국 위의 게임에서와 같은 이야기 이다.
실시간(Real-time)으로 이루어지는 무엇에서의 성취는 모든 참여자들 보다 더 상황을 객관적으로, 즉 객관적이라는 것은 그들과는 다른 차원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넓게 판 전체를 조망하려는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