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극장 류의 프로그램을 잘 못 본다.
그러한 TV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것이 나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극장이라면 무엇인가 사회적으로 ‘약함’으로 인식되는 요소를 가진 분들이 그 약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또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남들에게 행복으로 인식되는 무엇인가를 오히려 주위에 표출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내 어머니도 그렇고 나이 지긋하게 드신 분들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그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를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눈물 짓고 ARS 성금에도 참여하시고 그런 것이다.
근데 나는 선천적으로 피곤한 성격으로 태어나서 그런건지, 아니면 어릴 때 무슨 트라우마가 있는지. 이 ‘약함’이라는 것을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며 볼 때 매우 불편해진다. 왜냐하면 내가 정상과는 다른(정상/비정상은 아마 오랜시간에 걸쳐서 내 마음속에서 형성되었을 것이다) 것을 마주친다 해도 이 것을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개선 불능의 상황을 맞닥뜨리는 것이 싫다. 그래서 TV에서 장애인 분들(죄송합니다ㅠ-ㅠ)이 살아가시는 모습이나, 엉망인 내 시험 성적표나, 다른 사람이 내 옷을 입고 더럽히고 있는 것이나, 우리 집 차고 앞에 주차선을 어겨서 주차해 있는 차 같은 것을 보면 도대체 불편해서 참을 수가 없다. 특히 그러한 시각적인 자극에 말이다.
이러한 모든 개선하려는 습관이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 안에 들어오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간단하게 내 책상 위의 포스트 잇을 아래부터 크기 별로 쌓아서 정리한다던지, 스쿠터에 왁스로 광을 반짝반짝 낸다던지, 혹은 예상되는 시험 범위 부분을 공부한다던지 하는 것들은 나의 이 모든 개선하려는 활활 타오르는 의지의 동력이 될 수 있어서 하나의 장점으로 빛을 발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이다. 보고 있는 것이 너무 불편해서 외면해버리니까 자기 것만 아는 이기적이라는 소리도 듣고, 공감능력 0의 냉혈한(-_-)이라는 소리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올해의 목표는 나의 이러한 습관을 거대하게 감싸서 두리뭉실하게 만들 수 있는 ‘포용’이라는 키워드로 정했다. 이 포용이라는 단어는 ‘수용’이라는 단어와 좀 의미가 다른데, 수용은 나와 타인이 있고 타인의 어떤 것을 가져와서 나의 내면에 간직한 후 이를 통해서 남과 나의 Connection을 만든다는 의미라면 포용이라는 단어는 나를 확대해서 타인의 어떤 것을 감싸안는다는 뜻이겠다. 나 자체가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의미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 바로 포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1.타인을 나의 기준으로 정상/비정상을 나누지 않아야 하고, 2.새로운 그 타인의 가치관을 내 가치관에 수용하며, 3.서로의 타협점을 찾아서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으로 그 부분에 대한 내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을 때까지 진전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겠다.
내 이야기만 했나? – _- 아무튼 열심히 하는 것은 올해나 작년이나 변함 없고, 또 이 블로그에 가벼운 이야기도 좀 써보려고 하고 있다. 아무튼 그건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