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삶의 방식을 이분한다.
- 나를 내가 소유하는 것으로 정의 하는 사람
- 나를 나의 속성(Characteristic)으로 정의하는 사람
저자는 후자를 모범적인 삶의 방향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개인 차원의 삶의 방식이 사회와 국가 차원으로 확대되고 미래 사회의 모습도 정의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존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가의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하며 이를 위한 선결 조건들을 제시한다.
나는 사회나 국가 차원에서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던 도중 얻은 일련의 결론과 이 책의 내용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나의 생각은 이렇다.
인간 고통의 많은 부분은 ‘상실’에서 온다. 사랑, 계급, 부, 희망 등 모든 것을 잃을 때 가장 심한 고통을 느낀다. 무엇을 잃었다는 것은 그것을 소유했다는 것이다.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잃는 것도 마찬가지로 ‘상실’이다. 고통을 줄이려면, 즉 행복하려면 상실의 발생을 최대한 억제 해야 한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면서 사회적으로 주어진 일을 하고, 배고픔과 추위라는 일차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나면 사람은 무엇을 축적하거나, 또는 무엇을 발전 시킨다. 어떤 시각에서 보면 이 둘 모두 무엇을 얻는(have) 것이지만 나는 이 것을 둘로 나누어 생각한다. 하나는 내가 죽기 전에 상실의 위험이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가 죽을 때 까지 상실의 위험이 없는 것이다.
당연히 행복의 관점에서 볼 때 상실의 위험이 없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이 맞다. 경험, 가족, 끈끈한 우정, 외국어, 운동실력, 건강, 추억 등은 내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나와 함께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외국어 점수를 얻는 것과 외국어 실력을 얻는 것의 차이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무엇을 소유해야 한다는 유혹과 협박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광고, 주위의 시선, 관습 등은 항상 나의 자아를 내 소유의 물건으로 판단하게 만든다. 하지만 계속 더 큰 욕망을 추구하며 아무것도 나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는 삶을 사느니 이 굴레를 벗어나 껍데기 없는 진정한 나로서 내가 이러한 존재임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태어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