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함에 대하여

새로 이사온집, 그리고 내 방을 꾸미면서 침대를 어떻게 놓을 지 생각해봤다. 창문 옆이 좋았다. 지금까지는 천정만을 보고 잠들었는데, 이제 하늘을 보면서 잠들 수 있게 되었다. 하늘도 별이 촘촘히 박혀있는, 그런 하늘은 아니다. 아파트에서 나온 불빛들로 희뿌연 연기 같은 것이 잔뜩 낀 늘 흐린 하늘이었지만 그래도 그 하늘의 넘어에 있는 무한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바다나 하늘을 볼때 무한을 느낀다. 마주보고 있는 엘리베이터 안 거울 같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무한. 이것을 볼때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은 틀림없이 우리 안에는 그와 닮은 어떤 무한함이 존재하고, 평소에는 이를 잊고 살다가 자연에서 이를 일깨워주는 어떤 것을 느끼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바로 그런 하늘과 닮은 무한함을 내 안에서 찾고 싶다. 나 자신이라는 존재가 유한하다는 절대 불변의 명제를 참이라고 생각하고 무한을 찾기 위한 용기 같은 것을 다 잃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무엇이 “영원히” 가능할지를 곰곰히 생각해보는 그런 흥미를 가지고 싶다.

거품 경제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거품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의 부를 가지고 싶어하는 욕망은 결국 사회 전체의 인플레이션을 증가시키고 모두가 가진 돈이 수치적으로나마 증가할때 만족된다. 따라서 제화가 생산되는데 드는 순수 가치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거품이 우리 생활에는 덧붙여져 있고 이러한 거품은 결국 원가는 몇 안되는 물건을 비싼 가격을 주고 사도록 만든다.

이러한 거품이 잔뜩 낀, 3차 4차 생산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지식인 층 화이트컬러 계급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실질적으로 사회에 필요한 생활필수품과 소비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1차산업에 종사하며 자신이 생산한 정직한 대가만을 받을 수 있다.

가끔 내가 회사에서 일해서 사회에 생산한 부가가치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내가 받는 월급이 타당한가에 대한 부끄러운자각이 들때가 있다. 나는 그저 대학 나온값, 대학원 나온값, 대기업을 다니는 값으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속해 있는 이 계층은 그저 비누거품위에 집을 짓고 있는 것 일지도 모른다.

정말 가치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보상받는 사회는 더 이상 이 자본주의로는 힘들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