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 감상

설 연휴를 이용해 어머니를 모시고 일본 간사이 지방을 다녀왔다.

10년 전 같은 곳을 여행한 적이 있다. 세부(細部)를 보지 못하는 여행객의 시선 탓이겠지만 오가는 풍경, 수 층을 자랑하는 도다이지(東大寺) 본당의 기둥, 기요미즈데라(靑水寺)를 올라가는 계단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런 수 백년 동안도 변하지 않은 유적 사이에서 오직 나 만, 십년의 세월만큼, 그 인생의 십분지 일 이상을 늙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십년의 세월이건만 그 십년의 세월이 마치 진공같다. 십년 전 지겹게 먹은 야키소바 빵의 맛이 마치 몇 주 전의 기억처럼 생생하다.

아직 젊다는 말로, 건강하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이러한 현실도 저런 십년 전으로 사라져버린 소소한 기억마냥 쉽게 사라져버리는 것이구나. 소년이로(少年易老)라면 청년은 얼마나 더 늙기 쉬운가. 부단하지도 않은 인생은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가.

내가 이루어 낸 것이 별로 없음을

내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어떤 것일까? 주어지지 않아 이것은 내 노력의 결과라고 마음 껏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단 하나도 찾기 힘들다. 내가 가지는 작은 자유 시간 조차 나에게 이러한 여유를 허락한 부모님의 노력, 가족의 희생 때문이다.

말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은 누구나 1만 시간을 노력하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1만 시간의 많은 부분은 아내와 부모님, 또 넓게는 다른 사회 구성원의 1만 시간이 아닐까? 희생 위에 쌓아올려진 내가 자랑할 수 없는 금자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