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결혼이라는 단어에는 묶는다는 결(結)자가 있다. 결혼은 분명히 결합이기도 하다. 하지만 새로운 분리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과의 결합이자 익숙한 것과의 분리이다.

내 것과 아내의 책들을 하나의 커다란 책장에 정리할 때 결합이라는 관념이 실체화 되는  느낌이 들었다. 각자 일생을 읽었던 책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정렬된다. 집들이 때 누군가 이 책장을 본다면 우리 가정의 표상으로서 받아들일 것이다.

새로 산 손톱깎이를 보며 결혼은 분리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생 손톱깎이를 사본 적이 없다. 하나의 가정에는 하나의 손톱깎이. 그리고 새로운 손톱깎이는 새로운 가정.

내가 결혼할 때를 생각해보면 새로운 결합을 중시 여겨 익숙한 것과의 분리를 가벼이 여겼던 것 같다. 분리에 따르는 아픔을 느끼는 사람이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책이 좋은 이유

일본 여행을 다녀온 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다시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오랫동안 개정판이 끊겨 표지는 반쪽 밖에 남아 있지 않고, 모서리는 둥글둥글 냄새가 났다. 누워서 책을 펼치면 퀴퀴한 먼지가 얼굴 위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누렇게 바랜 종이 위 활자가 빚어내는 순백의 세계가 눈부시고 따뜻했다. 글자, 종이, 활자가 완벽하게 투명해지고 그 건너편 니가타의 겨울 모습이 보인다.

매체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 완벽하게 분리된 100% 추상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책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