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Geneva and Paris

유럽의 추운 겨울은 아쉬웠지만, 마음은 어느 여행보다 따뜻했던 일주일. 즐거운 여행 뒤에는 항상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할 때 상사병이 도지는데, 이번 여행은 어느 때보다 그것이 심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엄청난 것들을 보고, 거기에 더해서 어떠한 의미를 찾기 위한 나들이가 인생에서 그리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닌 것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소중함을 미리 알았기에 많은 계획을 세우고, 무엇보다 소중한 여행이 되도록 준비하는 과정도 즐거움에 가득 차서 할 수 있었다. 항공도 숙박도 이래저래 가장 좋은 것으로 예약했고 일정 속에 일과 여행을 녹여 넣는 일, 그리고 일정 후에 여행을 붙여 넣는 일도 평소에 원하던 것들을 하나 하나 상기 시키며 후보들을 골라나갔다.

제네바, 늘 아침에 피어 오르는 안개 속으로 파묻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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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에서는 다행히 준비해갔던 출장 일정이 예상보다 빨리 마무리되고, 이전의 출장에서 못 보았던 곳을 돌아다닐 여유가 남았다. 게다가 벼르고 별렀던, 드골 공항에서의 파리로의 탈출도 이번에 좋은 기회로, 휴일과 휴가를 겹쳐 쓰면서 비록 짧게나마 파리도 둘러볼 수 있었다. 시기, 예산, 일과 같은 모든 외부의 요소들이 이번에야 말로 신기할 정도로 딱 맞아 떨어졌다.

아름다운 고원의 도시, 프랑스의 Annecy는 소문으로 들었던 것처럼 깨끗하지만 부산했다. 호숫가는 사람들을 저절로 심호흡하게 만들었고, 커다란 개들은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2월과 3월의 경계에서는 아직도 곳곳에 눈이 남아 걷기 힘들었는데, 그래도 사람들은 2월의 아쉬운 햇빛이라도 즐기고 싶었는지 레스토랑의 테라스 석에 앉아서 따뜻한 차나, 식사를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보고도 남을 시간으로 날씨가 조금만 더 따뜻했었더라면 더 먼 곳으로의 산책을 즐길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 다만 아기자기하고 깨끗함이 전부라 휴가가 많은 프랑스 사람들이라면 며칠이고 보내면서 모든 것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겠지만, 머나먼 극동에서 온 한국인에게 두 번을 방문한다거나 할 우연치 않은 기회나 의지는 없어 보였다. 다만, 제네바에서 비교적 오랜 일정으로 머무를 사람에게는 방문하고자 하는 하나의 후보로 꼭 고려해보기를 권장하겠다.

파리, 많은 것들의 결과물

루브르 박물관으로 대표되는 파리의 볼거리는 어지러운 관광지도 만큼이나 많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으로는 이러한 것들이 삼분지 일을 보는 것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20살의 배낭 여행객처럼 조식은 서서 먹고, 중식은 거르고, 석식은 침대 위에서 먹는 일정을 소화할 수도 없는 것이고. 처음부터 파리는 언젠가 다시 올 기회가 있겠지 하면서 내가 꼭 보고 싶은 것만을 여유 있게 간추려 넣었다.

오랜 기간의,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애쓴 치열한 결과물들의 집대성 같은 이 도시는 모든 것들에 의미가 숨어 있다. 만약 보는 사람이 그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공부를 많이 했다면 창작자와 관람자간의 공명이 일어나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나 같은 초보 여행자들에게 도시의 절반은 감탄사가 나오게 잘 조각된 돌덩어리 일 뿐이었던 것이 아쉬운 일이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배위에서 만났던 수 많은 사람들의 노력들을 온전히 받아 들이지 못한 것은 쉽지 않은 파리 여행에서 남는 유일한 후회 중 하나지만, 단계적으로 무엇인가를 알아가고, 또 여행 중 만났던 무엇인가를 한국에서 복기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라 생각하며 위안을 삼고 있다.

DSC_0589마치, 이집트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수 백 년 전에 존재 했던 절대적인 권력은 이런저런 유산으로 남아 아직도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들, 그 힘에 매료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매력이 많은 도시 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관광객들을 잘 배려하지 않는 모습이나, 불편하고 지저분한 현대 문명의 부산물들이 공존하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화려하고 콧대 높은 여인의 모습은 백화점이나 명품거리나, 화려한 무도회장에서도 여지없이 느껴졌다. 여성에게는 그것이 동경의 대상이고, 남성에게는 그것이 매력을 느끼는 대상이 될 수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또 다시 파리를 밟게 되면 그 때는 이러한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소박한 바게뜨 빵과 같은 매력을 발견하려고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교감과 공감이 가능하도록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나마 열심히 준비해야 함을 물론이다. 조만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Paris.

 

부산 & 홍콩 여행 2010

일년 동안 휴가를 2일밖에 쓰지 못했다. 주말을 비우고, 평일을 비우고 휴식을 취했지만 두 밤, 세 밤이 지나도록 회사 일을 잊어 본 적이 없는 지난 일년을 뒤로 하고 일주일 간의 휴가를 즐기기로 했다.

지난 일년 내내 있었던 서울을 떠나 어딘가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또 욕심 가득히 다양한 도시를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부산홍콩을 선택했다. 더위와 태풍, 끈적한 습도가 함께한 여행이었지만 잠시나마 머리를 끈적한 회사의 마수에서 떨어뜨려 놓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참을 수 있었다. 더위 따위, 태풍 따위. 아무것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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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도쿄에 한참을 머물다, 야간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오사카에 내린 그 시점을 떠오르게 했다. 서울에서 한참을 기차를 타고 달려 내린 곳은 바다 냄새가 물씬 나고, 더운, 그리고 세련된 도쿄에 비해서 한적해 보이는 풍경이 가득한 오사카와 같은 부 산이었다.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골목들을 누비고 다니고, 위생 상태 불량해 보이는 음식들을 먹었지만 그것이 부산이라면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다름을 경험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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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날씨는 여행 온 신출내기에게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태풍은 그로 인한 바람에 우산이 뒤집히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스타벅스에 뛰어들어 샌드위치를 두 개나 주문하게 만들고는 오후 늦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동해로 사라졌다. 다행히 마지막 자비로 햇빛이 나지는 않게 만들어 나처럼 발발 거리고 돌아다니는 여행자에게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기는 했다. 쭉 늘어선 해운대의 파라솔은 나로써는 처음 실제 보는 것이라 즐거웠다. 날씨가 쨍쨍하고, 사람들도 쨍쨍했다. 돼지 국밥은 만족스러웠지만, 밀면은 불만족스러웠다. 뭐든, 대체제로 만들어진 물건은 별로다. 항상 The Original.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와서 피곤에 지친 몸을 하루 쉬게 하고는 바로 다음날 새벽부터 홍콩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홍콩은 영화에서 (사실 그렇게 많이 보지도 않았다) 본 모습 뿐, 어떤 먹거리가 있고, 어떤 가볼 곳이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떠나게 됐다. 사실 부산도 그렇고 홍콩도 그렇고 이번 여름의 여행지들은 준비 없이 떠났다. 나름 매력이 있다. 소개팅도 다 알고 나가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있다.

홍콩은 무더위와 습기가 지배하는 나라 같았다. 적어도 여름의 홍콩은 그런 것 같았다. 인간이 무엇을 어마어마 하게 소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여기에 와서 구경하면 될 것 같다. 에너지를 소비하고, 욕망을 소비하고, 시간을 소비한다. 그러한 끝없는 인간의 배출을 영양분으로 하여 이 거대한 도시는 살아간다. 그래서 육식동물의 냄새가 나고,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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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머리 속에 복잡한 생각들을 넣고 걸어 다니다 보면 마치 오마쥬처럼 그러한 생각들이 실 세계의 상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손에 들고 있는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신중하게 누르게 된다. 영상을 눈과 머리 속, 양쪽에서 잡아 낸다. 사진을 찍는 것은 주로 세상이 나에게 하는 말을 받아 들이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발견하기도 한다. 일 예로, 위의 사진은 세상이 나에게 하는 말 같았고, 아래 사진은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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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도 잠깐 시간을 내어 들러보았다. 배를 타고 가는 것은 신났지만, 또 다른 입국 심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 일은 귀찮았다. 입국 심사관은 불친절했지만, 호텔 카지노까지 태워다 주는 직원은 친절했다. 사람은 비록 표면적이기는 하겠지만, 돈이 보이면 친절해진다. 작은 유럽이라는 가이드 책의 소개가 조금 잘못되었다. 엄청, 작은 유럽이다. 미니어처 수준도 안 되는 것 같다. 유럽의 냄새가 살짝 난다고 표현 하는 게 좋겠다. 그래 봐야 길거리의 음식 냄새가 더 진동한다. 사람 냄새도 많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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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백만 불짜리 야경이라고 한다. 물론 홍콩의 백만 불짜리 야경을 만들기 위해서 수억 불을 썼겠지. 기라성 같은 타워들이 바벨탑을 올리듯 서있고, 밤 8시만 되면 휘황찬란하게 빛난다. 그 속에서 충분히 즐기지 못하면 왠지 나약함을 느끼고 만다. 바다 바람은 시원하지만 거대한 빛의 발산 속에서 오롯이 혼자 설 수 없는 허세가 심한 인간 군상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야경은 일주일 간의 여행을 매듭짓는 클라이맥스로는 최적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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