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히로시마, 나고야

환풍기인지 선풍기일지 모를 소리에 잠을 설쳤다. 어느 쪽 기능도 잘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미토리 이층 침대 중 위쪽에 누웠더니 천장에 붙어 있는 팬 소리가 시끄러웠다. 헐거운 커버 때문에 나는 불규칙 소음이 여간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것이 아니다. 7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서 이른 열차를 타기로 했다. 시간도 없거니와 이 숙소에서도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았다. 모두들 잠들어 있는 깜깜한 시간에 살금살금 샤워실로 간다. 모든 게스트하우스 샤워실의 구조가 어찌나 똑같은지 놀랍다. 짧은 여행의 중간 쯤 지났을 뿐인데 샤워 루틴이 생겼다.

오늘 아침의 목적지는 이츠쿠시마 신사이다. 한국에서 “이츠쿠시마 신사”에 다녀왔다고 하면 아마 대부분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바다 위에 도리이가 떠 있는 사진을 보여주면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데,”라고 답할 것이다. 아직 실제 사진을 보여준 적은 없다. 일본에서는 유명한 여행지지만 한국 사람들은 많이 방문하지 않는 것 같다.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인은 대부분 후쿠오카, 도쿄, 오사카 그리고 삿뽀로에 몰려있다. 일본 관광청이 하는 일은 외국인 관광객을 전국 방방곡곡으로 분산 시키는 것이다.

이츠쿠시마 신사까지는 택시로 가는 사람, 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 심지어 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2023년 방문한 G7 정상들이 배를 타고 이동했다. JR패스를 이용하는 관광객에게는 히로시마 역에서 미야지마구치까지 가는 JR일반 열차를 타고 가는 것이 가장 편하고 저렴하다. 저렴한 것이 아니라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차도 무료로 이용할 뿐더러 미야지마 섬을 오가는 페리선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워낙 관광객이 많아 여기까지 종점인 사철도 있다. 또한 JR페리와 다른 기업이 운영하는 페리 왕복을 운영하고 있다. JR패스 이용자가 괜히 돈을 내고 이쪽을 이용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부지런한 샤워를 하고, 짐을 싸들고는 숙소를 나선다. 이른 출근시간이라 본격적인 러시아워는 아니다. 똘똘한 학생과 성실한 샐러리맨만 보였다. 배낭을 들쳐매고 갈 수는 없으니 코인라커를 찾아 짐을 맡긴다. 저렴하면 200엔, 비싸면 500엔 정도를 받는다. 구글 리뷰에는 더 저렴한 가격으로 나왔으나, 최근에 가격이 많이 올랐나보다. 인플레이션이 비켜갈 틈새는 없다. 나고야, 히로시마 등 커다란 역사 내에서는 대부분 500엔이었다. 짐을 맡기면 바코드가 출력된 종이 하나를 받을 수 있다. 찾을 때 이 종이를 스캐너에 스캔하면 문이 자동으로 열려서 편리하다. 다만, 이 종이를 잃어버릴 경우 전화를 해야 한다. 편리와 불편도 동전의 양면이다.

학생들의 이른 등교길과 섞여서 기차를 타고 30분 가량을 달려간다. 앉아있을 순 없어 서서 풍경을 바라본다. 몇 개의 커다란 강을 건너간다. 일본의 다른 대도시와 닮았다. 히로시마도 바다를 낀 만에 위치해 있고 도시 가운데를 커다란 강이 흐르고 있다. 어제 원폭 기념관에서 본 모두가 불타 없어져버린 너른 풍경과 대비된다. 모든 것이 그 이후 새로 세워졌으리라. 서서 다리가 슬슬 아파질 무렵 다다른 미야지마구치 기차역은 소박한 기차역이다. 서울의 1호선을 타고 신도림을 지나 한참 가면 나오는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할 역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이름 모를 역과 마찬가지로 선로를 넘어가는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역사 밖으로 나왔다.

대부분 관광객들이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 식사 할 시간이 없으므로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하나씩 샀다. 이를 손에 하나씩 들고는 페리를 타러 걸어가는 길에 먹었다. 생각해보니 편의점 빵으로 떼우는 식사는 20대 이후 해본적이 거의 없다. 젊었을 때 신촌이나 이대역을 돌아다니던 기억이 났다. 20대에는 고등학교를 다녔던 과천을 벗어나 그런 곳을 돌아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신촌역 상점들의 불이 모두 꺼졌고 나는 우유를 그 때의 절반만 마신다. 기차에서 내린 한무리의 사람들이 내가 편의점에서 빵을 사는 동안 모두 선착장으로 몰려가서 거리는 한산했다. 마치 북미에서 온 버팔로 떼가 쓸고 간 것 같다.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어 아침부터 조금 덥게 느껴졌다.

페리는 오래되어 보이지만 커다란 배였다. 히로시마 만 안쪽에서 험한 파도를 마주하지 않아도 되니 퇴역이 가까워온 노령의 선박을 투입한 것이 아닐까? 노령이지만 약 30분 간격으로 부지런히 섬과 선착장을 오가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 도착한 덕분에 줄서 기다리는 시간도 길지 않았다. 배 안에도 앉아서 구경할 자리가 넉넉했는데 아침 10시가 넘어 돌아오는 시간에 살펴보니 관광객이 두 배는 늘어나 있었다. 배를 타면 짧은 거리라 금방 섬에 닿는다. 섬 가까이 가면 그 유명한 물 위에 떠 있는 도오리 (썰물에는 땅위에 서있는) 가 보이는데, 사람들이 온통 그 쪽에 몰려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배가 기우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이츠쿠시마에는 다양한 볼거리나 관광명소가 있는 것 같다. 케이블카를 타고 섬 정상에 올라가 히로시마 만을 둘러볼 수도 있고, 산을 넘는 트래킹 코스를 지나 섬 건너편의 신사들을 방문할 수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수 백 km를 이동해야 하므로 이츠쿠시마 신사와 그 주위만 둘러보기로 했다. 이 곳은 일본의 3대 절경이라는 말도 있고, 신성한 산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 유명세에 비해서 딱히 느껴지는 감탄은 없었다. 3대 절경이라는 사실도 방금 기차를 타고 오면서 검색하며 알았고, 입구의 커다란 돌에 방금 인터넷으로 본 ‘일본삼경 미야지마’ 글자가 있었다. 나머지 2경에도 똑같은 돌이 있는지 궁금했다.

배에서 내려 해안가를 따라 조금 걸어가다보면 유명한 도리이가 다시 보이고, 본당 건물이 나타난다. 일본 신사 특유의 강렬한 주홍빛으로 칠해져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본당 건물 전체가 물 위에 떠 있는 밀물 시간이었다. 관람객은 굽이굽이 건물 내 통로를 따라 신사 내부를 살펴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건물 내 감흥을 느낄 만한 것 보다는 본당 앞 쪽에서 바라보는 도리이와 바다의 풍경이 아름다웠다. 어느 중년의 일본인 부부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해서 한 장을 찍어드렸는데, 나 보고 찍어줄까? 물어보길래 괜찮다고 사양했다. 혼자서 포즈를 잡고 누군가에게 찍히는 것이 어색했다. 옆으로 비켜나 조용히 혼자 폰을 들고 셀카를 찍었다.

여기도 곳곳에 사슴이 돌아다닌다. 나라 공원의 사슴과 다르게 센베를 주식으로 하는 것 같진 않고 관광객에게 달려들지도 않는다. 사람과 서로에 의지하지 않고 평화로운 공존의 상태로 각자 살아가는 것 같다. 번잡한 신사보다 주위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 즐거웠다. 잠시 앉아서 바다를 살펴보기도 하고, 가게를 열 준비를 하는 주인들의 바쁜 이야기를 들었다. 여행에서는 이렇게 시간의 나만의 흐름을 가지는 시간이 좋다. 세상의 시간은 어디서나 그대로 이지만 관찰자의 시선이라면 나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도록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미야지마에서 1시간 반 정도를 보낸 후 다시 히로시마 역으로 돌아왔다. 히로시마 역에서는 에키벤을 샀다. 에키벤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다. 역마다 고유의 에키벤을 만들어 판다거나, 이 것을 먹기 위해 그 지역으로 여행을 한다거나. 한가지 말해주지 않는 것이 있다.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국민성이 만든 기차 안에서 먹도록 만든 도시락이라 모두 차가운 음식 뿐이다. 냄새 없이, 오로지 식감과 혀의 맛으로 먹을 수 밖에 없다. 즉 도시락이 맛 있는지 맛 없는지는 취향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덜 맛있게 먹는 느낌이다. 아무도 데워달라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젓가락을 주지 않아서 물어보니 젓가락은 도시락 안에 들어있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신칸센을 타고 가는 가장 장거리 구간이다. 히로시마에서 나고야까지. 500km가 넘는 거리지만 두 시간 조금 넘으면 닿을 수 있다. 중간에 오카야마, 히메지, 고베, 오사카, 교토 구간을 모두 지나쳐간다. 히메지, 고베, 오사카, 교토는 모두 수 차례 방문했던 곳이다. 오카야마의 고라쿠엔이나 오츠시의 비와호 등은 꼭 방문하고 싶었는데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었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비와호 주위를 도는 렌터카 여행 등은 꼭 해보고 싶다. JR패스로는 직행을 탈 수 없어 중간에 한번 갈아타야 한다. 교토역을 지날 때는 오늘 쪽으로 동사의 오층탑이 보였다. 한달 전에 가족과 둘러보던 그 곳이다. 문득 같이 하는 여행이 그리워졌다.

나고야 역에 도착하니 두 시가 넘은 시간이다. 지하철로 갈아타고 두 정거장 가량 이동하여 사코역에 내렸다. 오늘 이렇게 바삐 움직인 이유가 있다. 오후의 목적지는 도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이다. 이번 여행 유일의 ‘신사, 정원, 공원, 박물관, 성’이 아닌 곳이다. 나고야는 공업도시로 특히 도요타 자동차의 본사가 있는 곳으로 알려져있다. 엄밀히 말하면 도요타 자동차의 본사는 근처에 있는 도요차 시에 위치해 있으나 도요타를 창업한 곳은 나고야의 이 산업기술 기념관 위치라고 한다. 도요타는 일본 기업으로는 가장 크고, 세계 자동차 기업 중에서는 테슬라 다음의 시가 총액을 자랑한다. 판매 대수 기준으로는 가장 많은 자동차를 판매하는 회사이다.

관람은 유료이지만 무료 코인라커를 쓸 수 있어 편리했다. (이 정보를 미리 알아 나고야 역에 짐을 맡기지 않고 들고 왔다) 관람은 5시까지 가능했는데, 조금이라도 여유있게 둘러보려면 최소한 두 세 시간은 필요하니 꼭 시간 여유를 두고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 섬유 기계관과 자동차관으로 나뉘어 있는데, 섬유 기계관에서 시간을 너무 쓰면 뒤 쪽의 자동차관을 관람할 시간이 없으니 적절히 시간을 배분하는 것이 좋겠다. 아이와 같이온 부모, 자동차에 관심이 있는 커플,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한국 가족 외에는 외국인은 거의 못 본 것 같다.

입장하면 압도적인 크기의 원형 방직기계가 나타난다. 도요타는 원래 자동 방직기계를 만드는 회사로 출발했다. 베틀로 천을 짜던 시기에서 벗어나 자동화된 기계를 이용하여 생산량이 크게 늘었는데 이 것을 원형으로 구성해서 같은 공간에서 훨씬 더 집약적인 생산이 가능했다고 한다. 이러한 몇 가지 핵심 특허를 개발하고 이 권리를 영국에 팔았는데 이 것이 바로 자동차 제조에 도전하게 된 자본이 되었다. 성공한 기업 어디에나 있는 창업주의 몇 가지 신화적 고난 극복의 이야기들을 홍보하고 있다.

자동차를 처음 만들 때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적극 활용한 것 같다. 쉐보레의 자동차를 몇 대 수입해 모든 부품을 분해하여 조립 과정을 기록하고, 그 중에 핵심 부품을 독자 개발하여 그 부품을 대신 끼워 넣어 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했다고 한다. 방직기를 만들 때 보유했던 금속 단조, 주조 기술에 자신이 있었는지 원래 모델보다 더 내구성이 강한 부품을 만들어 더 높은 엔진 출력에도 버티는 실험을 반복했다. 자동차 개발의 특명을 받은 그룹의 사진을 보니 지금 회사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초창기 시절이 생각났다. 새로운 일은 모방에서 시작하기 마련이다.

방직기 등은 크게 관심이 없어 눈도장 찍듯 둘러보고 자동차 전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다만 수입차 딜러 쇼룸처럼 자유롭게 탑승해보거나 조작해보는 것은 어렵고 겉에서 둘러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전기차나 그들이 자랑하는 하이브리드 차량의 엔진이나 설계 등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도요타 쪽은 진짜 쓰였으나 기술의 발달로 퇴역한 기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실제 프레스나, 도색 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현대 쪽은 자동차 생산의 과정을 더 Conceptual 하게 보여주는 느낌이다. 어린이는 현대 쪽을 좋아할 것이고, 어른은 도요타 쪽을 더 좋아할 것 같다. 짧은 시간이지만 자동차 관을 열심히 둘러봤다. 전기차나 렉서스 등 고급차의 초기 차량들도 관심이 있었다. 마감 방송이 나와서 어쩔 수 없이 나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저녁을 해결해야 했다. 검색해보니 시시마루라는 라멘집이 괜찮아 보였다. 마침 걸어오는 길이었다. 도착했더니 가게 문앞에는 줄잡아 20명이 줄을 서 있었다. 나는 보통 줄을 서서 먹지 않는다. 다시 구글맵을 열고, 길 건너편의 마이카리라는 카레 집을 방문했다. 그래, 일본와서 카레 한번 먹어야지. 그런데 메뉴를 키오스크에서 터치할 수 없게 막아 놓았다. 카레는 품절이란다. 같은 장소의 마츠야에서 규동을 주문했다. 몸의 많은 부분의 규동화 되어가는 느낌이다.

숙소로는 나고야역 근처의 와사비호스텔이라는 곳을 예약했다. 역 주위라 환경이 좋지는 않다. 그래도 실내는 어제의 숙소보다는 훨씬 낫다. 이번 여행은 아무 계획 없이 돌아다니기에 내일 어디를 방문할지 정하는 것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기회가 아니면 절대로 오지 않을 곳, 한국 사람들이라면 거의 가지 않을 곳, 네이버 검색에 절대 나오지 않는 곳이 목표다. 마음에 드는 그러한 곳을 한 곳 정하고 내일 아침의 이른 기상을 기약하며 오늘도 잠든다. 오늘도 4만보를 넘게 걸어 다녔다. 오늘 저녁 먹은 규동으로 체력유지가 될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구마모토, 히로시마

구마모토 성을 보러 가기로 한다. 일본 여행을 역사와 유물을 중심으로 다니면 성, 절, 신사, 정원, 성, 절, 신사, 정원을 반복하게 된다. 이럴 때는 색다른 볼거리를 찾게 되는데 네이버 같은 대한민국 포털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다. 대다수는 한국 관광객들을 위한 광고 글로 의심된다. 인플루언서라는 분들도 공짜로 인플루언싱을 해주진 않을 것이다. 이럴 때 나는 구글 맵에서 ‘sightseeing spot’을 검색한다. 경험상 한국인이 덜 가면서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볼거리들을 추천해주곤 한다.

구마모토 성 까지는 나가사키에서도 봤던 오래된 노면 전차를 타고 간다. 노면 전차를 아직도 생산하고 있을까? 전기차 시대에 아마 아닐 것이다. 일본의 구형 기차들은 단종되면 부품이 다시 생산되지 않아 오래된 기차에서 여분의 부품을 빼내어 돌려 막기를 한다고 한다. 이 것이 큰 사고의 원인이 된 적이 있다고도 한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보다 오래된 것을 유지하는 것이 더 비쌀 지경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노면 전차란 녀석은 승하차도 불편하고, 탑승 인원도 적고, 정해진 노선만 다닐 수 있기 때문에 불편한 대중교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이 휘어지는 저상 전기 버스 등 탈 것이 훨씬 나은 대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나 저기나 뭔가를 바꾼다는 것은 여기나 저기나 쉽지 않겠지.

노면 전차는 우리나라 지하철처럼 양쪽에 마주 앉는 곳이 있고, 가운데 두 명 정도가 설 공간이 있다. 사람이 많을 때는 가방을 앞으로 맨다던지, 내릴 곳 한 정거장 전에 앞 쪽으로 이동한다던지 하는 규칙이 있는 것 같다. 역에서 사람들이 내릴 때마다 혼란스럽지 않고 모두가 자기의 다음 위치를 알고 있는 듯 움직인다. 나는 그런 규칙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니까 적당히 자리를 띄어 앉는다. 폭이 좁아 마주 앉은 사람은 조금 과장해서 쎄쎄쎄를 할 수 있어 보인다. 시선이 자주 마주쳐서 민망하기도 하다. 다행히 일본도 한국과 다르지 않아 모두 스마트폰을 하고 있다.

구마모토 성은 2016년의 지진으로 많은 곳이 무너져내리고 현재도 보수 공사 중이다. 성벽이나 천수, 건물 등이 무너져 내렸는데 이를 모두 보수하고 개관 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성 입구 위로 거대한 공중 통로를 설치하고 관광객들은 그 위로 돌아다니게 하였다. 추가 붕괴할 수 있는 위험한 곳에 관광객의 접근을 막기 위한 궁여지책인 것 같지만 굽이굽이 걷지 않아도 되고 성벽을 위쪽에서 조망하기에는 이쪽이 더 나은 듯 했다. 무너진 곳은 임시로 콘크리트를 부어 추가 붕괴를 막아 놓았는데, 아마 하나 씩 복원해 나가지 않을까 싶고 복원 공사를 위한 기부를 받고 있었다. 위 사진은 옛 벽의 경사가 너무 완만하여, 급경사로 만들기 위한 추가 공사를 한 흔적이라고 한다.

세계의 오래된 랜드마크 건축물을 보면 그 당시 사회 전체가 어떤 것에 매진 했는지 상상이 된다. 피렌체의 두모오 성당이나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에 들어간 돈으로 적어도 수년간의 빈민을 구휼 할 수 있었을 텐데 당시 사람들은 대신 위대한 건축물을 만드는 선택을 했다. 여기 동원된 수만명의 사람들은 단순히 누가 시켜서, 혹은 돈을 받기 위해 이러한 건축물을 만든 것이 아닌 것이다. 그 들은 무엇에 두려움을 느끼고 이를 극복하여 현생 혹은 내세를 살기 위해, 더 잘 살기 위해 돌을 깎고 쌓았던 것 같다. 구마모토 성벽을 보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이 성을 쌓은 것은 무사 계급의 사무라이들이 아니라 그들이 부리고 있던 양민들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돌을 깎고 나르고 쌓았던 것은 본인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서다. 무사 계급의 유지나 그들에 대한 복속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 시대는 전쟁이 잦고, 패배의 댓가는 잔혹 했을 것이다.

구마모토 성의 내부는 옛 것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콘크리트 건물이다. 두번이나 방문했던 오사카성과 마찬가지로 겉모습은 그럴 싸 했지만 내부는 박물관 같은 모습이다. 스마트폰 앱을 다운 받으면 한국어 안내도 지원해주고 있었다. 안내 내용은 영어나 일본어에 비하면 훨씬 부실 했다. 구마모토까지 방문하는 한국인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기에 당연한 일이겠다. 내가 방문한 성 중에는 히메지 성과 마츠모토 성이 내부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오래된 성을 관리하는 일도 꽤나 힘든 일인지 기둥을 해체했다 다시 새 것으로 교체하고 복원하는 대공사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이 성을 축조했던 가토 기요마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선봉에 서서 한국을 침략했고 울산왜성 등 한국에서도 성을 쌓았다. 이때 얻었던 여러 차례의 축조 경험을 집약한 구마모토 성은 일본 성 중에서도 최고의 기술과 견고함을 자랑한다고 한다. 실제 메이지 유신 때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당시 최신의 무기로도 함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덧붙여 정유재란에서 패배 후 퇴각할 때 울산에서 많은 한국인 포로들을 끌고 갔는데, 그들이 구마모토에 정착한 울산정(울산마치)라는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도 역사적인 왜인촌이 있을까? 동부이촌동이 그것일까?

구마모토 성을 둘러보고 노면전차에 몸을 실어 다시 역으로 향했다. 밤에 잠들때 마다 욱신거리는 다리 때문에 내일은 더 편한 일정으로 다녀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아침에 다리의 통증이 없어지면 생각이 달라진다. 오늘도 히로시마로 가서 걸어다녀야 할 일정이 잔뜩이다. 시간이 없고 마음이 급하다. 구마모토 역 안에 있는 요시노야에서 간단하게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10시와 11시 사이, 식사를 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다. 명품 가방을 든 날씬하고 세련된 수트 옷차림의 중년 아주머니와 둘이 식사를 했다. 기업의 임원처럼 보이는 이런 분도 요시노야에서 토핑이 없는 규동을 먹는다.

구마모토 역 대합실에서 잠시 대기했다. 온통 할머니, 할아버지 뿐이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 어딜 간 걸까? 50세 이상 이용가능한 대합실과 50세 이하 용 대합실이 나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1분도 늦지 않게 도착한 신칸센에 올라 히로시마까지 달려간다. 남쪽으로 내려온 길을 그대로 거슬러 올라가 시모노세키 해협을 지하로 뚫고 혼슈 섬으로 진입한다. 신칸센을 타면 상상했던 물리적 거리와 이를 이동하는데 드는 시간 개념에 혼란이 생긴다. 서울-부산 간 거리는 되어 보인다. 사악한 가격이지만 약 한시간 40분이면 히로시마에 닿을 수 있다.

히로시마에 내리면 규슈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규슈는 동양인 관광객, 특히 한국과 중국인이 대다수였다면, 히로시마나 오사카, 도쿄는 서양 관광객의 수가 크게 늘어난다. 신칸센 1등석 그린샤의 요금은 일반적인 직장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다. 기본적인 신칸센 요금이 우리나라의 KTX보다 두 배 정도 비싸다고 느끼는데, 여기서 1등석은 30% 정도는 더 내야 한다. 오늘 아침 달려온 구마모토-히로시마 구간도 15만원은 족히 든다. 신칸엔은 사실상 비행기와 경쟁한다. 따라서 신칸센 1등석은 기업 고위직이나 대표, 돈에 구애 받지 않고 업무를 위해 탄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보인다. 나 같은 배낭에 반바지, 샌들 차림의 여행객은 거의 보지 못했는데 히로시마 구간 부터는 가족 동반의 서양 여행객이 급격히 늘어났다. 아마 모두들 JR패스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리라.

숙소는 Guesthouse akicafe inn라는 삼만원 남짓의 도미토리 룸을 예약했다. 신칸센은 그린샤를 타지만, 숙소는 최하급이다. 시설이 좋지 않고 비싸더라도 많이 걸을 수가 없기에 최대한 역 근처의 숙소를 잡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떠나야했기 때문에 역에서 먼 숙소를 잡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오로지 위치만 보고 선택한 숙소였다. 하지만, 이번 여행 최악의 숙소가 되고 말았다. 아직 체크인은 이른 시간이라 배낭을 숙소에 두고 서둘러 히로시마 평화기념 박물관으로 향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곳이라 역에서 가는 버스들이 잘 되어 있고 미리 만들어 놓은 파스모 패스를 편리하게 이용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난 곳이다. 특히 절반 이상은 서양 사람인데,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을 찾아오고 있다. 누구는 승리를 기념하려고, 누구는 단순 호기심으로 찾아 왔을 것 같다. 여기서 모두들 원자폭탄의 피해를 간접적으로 나마 느껴보면서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 들은 어린이 원폭 피해자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며 눈물 짓고는 한다. 폭탄은 군인만 골라서 살해하지 않는다.

나가사키보다 규모는 훨씬 크고 둘러볼 전시품도 많았지만, 나가사키 전시관보다 낫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아마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고 전시를 기획한 사람의 메시지보다는 더 직접적인 참상을 적나라하게 느끼고 싶다면 나가사키 쪽을 방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주로 한국인은 어떤 피해를 입었고 왜 피해를 입게 되었는지가 더 궁금하여 관련 전시물이 있다면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전시관에서 유명한 원폭 돔으로 가는길의 왼쪽에는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도 있으니 한번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위령비 앞에 생수를 놓고 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피폭시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게 된다는 후일담을 듣고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게 해주기 위한 기원인 것 같다.

애매한 시간에 먹은 요시노야 김치 규동 밖에 먹은 것이 없어서, 히로시마풍의 오코노미야키를 먹어보고자 했다. 멀리 걸어갈 수 없어 근처의 나가타야 라는 곳을 검색해서 들어간다. 의외로 혼자 온 사람은 없고 일본인도 별로 없어 보인다. 혼자 왔다고 말하니 카운터 석으로 안내해주었다. 철판에서 직접 만들어 주는 것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생각보다 만드는 시간이 꽤 걸리고 다 만들어 지면 이제 먹어도 된다고 말해준다. 하루종일 배고픈채 돌아다녀서 맥주 한잔과 먹는 오코노미야키는 정말 맛있었다. 흔히 한국이나 오사카에서 먹는 오코노미야키는 양배추와 밀가루 반죽? 등으로 베이스를 만드는데 여기는 우동이나 소바 중 하나를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다. 혼자 먹기에는 정말 많아서 여자 셋이 온 분이면 두 개만 시켜도 되지 않을까 싶다.

영어로 주문하면 내가 일본어를 전혀 못한다고 생각하고 직원끼리 방심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직급이 낮은 직원이 완성된 오코노미야키를 건네어 주면서 피자를 떠 먹을 수 있는 것 같은 조그만 철제 스푼?을 주는 것을 깜빡했다. 나는 그런 것을 주는 줄도 모르고, 공용 철판에서 젓가락으로 집어 먹고 있었더니, 상급자가 내가 들리도록 ‘저사람 저러고 먹고 있잖아.’ 라고 질책하니 직원이 나에게 스푼을 가져다 주었다.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

이른 저녁 혹은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원폭돔을 보러 간다. 원폭이 폭발한 곳은 원폭돔에서 수백미터 떨어진 곳 상공이라고 한다. 따라서 주면의 목조 건물들은 즉시 폭풍에 의해 다 무너졌지만 당시 유일한 석조 건물 (상공회의소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었던 이 건물의 골조는 가까스로 살아 남았다. 이후 이를 보존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보존하기로 결정한 이후로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많은 보수를 했다. 덕분에 모든 것을 쓸어버린 히로시마 원폭의 상징과도 같은 모습이 되었다. 공중에서 이놀라 게이가 유명하다면, 지상에서는 원폭돔이다.

원폭 돔에서 다시 히로시마 성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오전에 구마모토 성을 본지라 들어가 볼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다다르니 이미 관람시간이 지나 있었다. 나처럼 바삐 걸어온 다른 관광객들도 들어가지 못해 발을 돌리고 있었다. 처음부터 내부 관람은 어렵겠다고 생각하고 걸어왔지만 그래도 코 앞에서 입장 불가라고 통보 받으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히로시마 성은 전쟁 후에도 미군이 임시로 주둔 했던 흔적들이 있다. 배낭 여행자만 둘러볼 수 있는 성 구석구석을 둘러보고는 숙소로 향했다.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했고, 하교하는 고등학생과 직장인들이 많이 보였다. 숙소 까지는 이 길을 30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거리다. 걸어갈 체력이 남았으니 걸어가기로 한다.

생각보다 기진맥진해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더 이상 무엇을 먹을 수 있는 기운이 아니었으므로 오는 길에 이제는 익숙하게 생수 한 병과 빵 하나를 샀다. 영어에 능숙한 아가씨가 체크인을 해주었다. 배게와 침대 시트를 나한테 준다. 내가 직접 씌워서 쓰라고 했다. 잠시 나와서 방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굳이 왜 직접 보여주려하는지 의아했지만 곧 이해가 되었다.

도미토리 룸은 옆 건물 3층에 있다. 체크인을 할 수 있는 까페 건물을 나와 옆 건물로 아가씨를 따라 들어갔다. 3층이니 엘레베이터는 없고 좁은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집이 무겁거나 크다면 쉽지 않겠다. 올라가서 발견한 좁은 방에는 어찌나 많은 침대를 넣었는지, 두 사람이 마주보고 지날 공간이 없다. 그 정도가 아니라 왼쪽 2층 침대로 올라가는 사다리와 오른쪽 2층 침대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나란히 마주볼 공간이 없어 서로 교차하며 사다리를 설치해놨다. 내가 배정 받은 가장 안쪽 침대의 2층으로 가기 위해 온전히 바닥을 걸어 갈 수 있는 길이 없다. 사다리를 장애물 넘듯이 넘어서 건너가야 했다. 걸어가는 도중에도 퀴퀴한 땀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내 침대 옆에 이 방의 유일한 창문이 있고 조그만 선풍기를 달아서 환기를 시키고 있었다. 그래, 이 것이 내가 원한 최저 수준의 여행이다.

히로시마는 외국인 배낭여행객이 많아 이른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커튼이 처진 침대가 많았다. (사람이 쓰고 있다는 뜻) 나는 내일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미리 짐을 싸고, 씻고, 그리고 방에 더 땀 냄새가 가득차기 전에 잠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씻고, 빵을 하나 먹고 내일 출발해야 하는 기차 시간표를 확인하고, 입을 옷을 발 아래, 아니 옆에 개어 놓고 (워낙 침대가 작아 내가 누우면 발이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다) 잠들었다. 오늘은 지옥불 위에서도 잠들 수 있을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