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마츠야마, 에치고 유자와

오랜만에 쾌적하게 잘 잤다. 캡슐호텔의 시설도 좋았을 뿐더러 사람이 많지 않아 잠을 깨우는 부산한 움직임이 덜했다. 걸어서 마츠야마 성을 보러가기로 한다. 나는 아침을 먹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굳이 조식을 찾아 먹지 않아도 된다. 마츠야마는 어제 묵었던 나고야에 비해 훨씬 고지대이고, 주위가 모두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신선한 공기가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준다. 멀리 보이는 산이 아름답다. 제네바에서 보이던 알프스의 고봉들이 생각났다. 여기서 보이는 산들도 일본 알프스라고 불린다.

역 근처의 숙소에서 성 까지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8시 30분에 관람이 시작된다고 하여 8시 쯤 출발하기로 한다. 걸어가는 길은 대부분의 일본 시가지가 그런 것 처럼 깨끗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출근하는 사람, 등교하는 사람이 없다. 여행 내내 늘 시간에 쫓겨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했는데, 8시 30분 도착을 목표로 느긋하게 걸어가본다. 여행의 한가로움을 뽑내며 걸어가는 길에 꽤 커다란 하천을 마주친다. 물이 맑고 수량이 많다. 꽤나 깊은 산에서 내려온 물인 것 같다. 어제 굽이굽이 기차를 타고 지나온 높디 높은 산에서 흘러 내려온 물 인 것 같다. 물을 만져보려 내려가 본다. 햇살과 청량한 물, 이 물이 시작한 산과의 거리감, 그리고 일요일 아침의 여유로움이 합쳐서 행복감을 준다.

다리를 건너가니 개구리일지, 두꺼비일지 모르는 사무라이 동상이 보인다. 이 도시의 마스코트라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코로나 시절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진이 나온다. 자그마한 신사를 마주쳤다. 10대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붉은 빛 치마를 입은 무녀 둘이 청소를 하고 있다. 아침 산책을 나온 나이 많은 부부가 합장을 하고 소원을 빌고 있다. 무슨 소원을 빌고 있을까. 신사 앞에서 시작하여 하천과 나란히 이어지는 좁은 골목과 상점가가 관광 명소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문을 열지 않았다. 이 길을 이용해 다시 숙소로 돌아와야 하니 오는 길에 들러보기로 한다.

마츠야마 성은 일본에 몇 개 없는 천수가 온전히 보존된 성이다. 구마모토, 나고야, 오사카 성이 겉만 그럴듯한 현대 콘크리트 건축물인데 비해 이 곳은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처마와 각 층의 대들보가 온전히 보존된 드문 성이다. 물론 수십년에 한 번 씩 나무를 교체하고 기와를 교체하는 대규모 보수 공사가 지속되고 있는 모양이다. 천천히 걷는다고 했는데 1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입구를 막아 놓았길래 왼쪽으로 조금 이동해서 성 전체를 조망하는 벤치에 잠시 앉아 있었다. 해자 건너편의 성채가 단정하고 반듯하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입장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겉으로 보면 5층 건물인데, 실제로는 6층이다. 이는 틀림없이 침입자와 수비자 간 수비자가 유리하도록 정보의 비대칭을 만들기 위한 설계일 것이다.

시간에 맞춰 입장이 시작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서양 관광객들이 많았다. 연령대가 다양한 그룹이라 학회 같은 행사에 참석하고 주말 관광차 들린 것 같기도 하다. 히메지 성처럼 성 외곽이나 성문 등을 겹겹이 통과해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문 하나를 지난 후 바로 성 내로 입장할 수 있다. 좁고 좁은 복도와 실내를 통과해서 최상층을 통해 올라간다. ‘총’, ‘대포’ 같은 화기 위주의 전시가 많았다. 기차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천천히 둘러봐도 되겠다 싶었다. 성의 유래나 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나무 조각까지 꼼꼼하게 둘러본다. 일본어로는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는데, 영어로는 중요한 한두 문장만 번역해 놓았다. 어느 사이에 바글바글하던 서양인들은 흥미가 사라졌는지 먼저 올라가버렸다.

일본의 총은 포르투갈을 통해 전해졌다. 1500년대 우연히 표류하던 포르투갈 무역선에서 총의 위력을 발견했다. 일본인들은 이를 구입하여 국산화 함과 동시에 화약을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된다. 1년 안에 자체 개발 할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마침 서로 치열하게 대립하던 지역의 영주 군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앞 다투어 이를 도입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인이 쉽게 소지할 수 있는 짧은 길이의 총에서 부터 두 명 이상이 운용하는 거대한 총신의 총까지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성에서 외부를 향해 발사하는 사구 들도 처음에는 위 아래가 긴 형태로 활을 쏘도록 만들어졌다가, 이후에는 총을 쏠 수 있는 작은 구멍의 형태로 바뀌었다. 이렇게 발달한 개인 화기들은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무자비한 인명 살상에 이용된다.

천수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니 사방 풍경이 모두 내려다보였다. 산 속에 있는 마을이지만 분지 지형 안쪽은 꽤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분화구 속에 있는 것 같은 모습은 아소산에서도 봤던 풍경이고 내 기억에 우리나라에는 쉽게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사방에 하천을 이루고 있다. 마츠야마는 일본 최고의 고추냉이 산지로 유명한데, 사시사철 흐르는 깨끗한 물이 있어 좋은 품질의 고추냉이를 기를 수 있다고 한다. 이 천수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내려오는 길에 달맞이 별관?을 볼 수 있다. 한국어로 정확히 어떻게 지칭하는지 모르겠으나, 영어로는 Moon-viewing Wing으로 번역해 놓았다. 하늘에 떠 있는 달, 해자에 비친 달, 삼면의 열린 창에서 들어오는 바람, 좋은 술이라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되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일부러 오면서 들렀던 상점가 거리를 지난다. 여기서는 타이야키, 한국의 붕어빵이 유명하다고 하여 먹어본다. 일요일 이른 시간이라 사람도 별로 없고 이제 막 가게 문을 열고 계셨다. 슈크림과 팥 두 종류를 팔고 있다. 한국보다 훨씬 비싼 값을 받았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이 걸려 막상 받아 든 붕어빵에 오히려 한국 가격이 비싸게 느껴졌다.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양재천을 연상시키는 천변에 앉아 맛있게 다 먹었다. 여전히 관광객은 몇 없었고 물이 흘러가는 소리만 청량하게 들렸다.

11시 퇴실 시간에 맞춰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딱히 마주치는 사람도 없다. 일요일이라 출장 차 방문한 사람도 없어 보인다. 혹시 다음에 오게되면 다시 숙박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비넷에 넣어 둔 가방을 꺼내어 매고 역으로 걸어간다. 숙소는 고층에 위치하고 저층은 상가로 쓰고 있는 흔히 볼 수 있는 건물인데, 1층에는 서점과 문구점이 절반 정도를 쓰고 그 외에는 생활 잡화나 전자기기를 파는 상점이 입점해 있다. 어제 늦은 시간, 그리고 오늘 아침의 이른 시간에는 모두 닫혀 있어 들어가보진 못했다. 바로 밖으로 나가는 출구가 있음에도 호기심에 상가들을 뚫고 반대편으로 나가본다.

서점은 마치 내가 사는 동네의 아주 오래된 상가 건물 1층에 입점 해 있는 것 같은 진열과 광고, 그리고 고객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번 여행을 다니면서 종종 느끼는 순간이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른 풍경 속에 문득 익숙함을 느끼는 미국이나 유럽 여행과 달리 (예를 들면 프랑스 시골에서 기아 자동차를 만난다거나) 일본의 풍경은 대부분 우리나라와 같은데 한 두 부분만 다른 (서점의 신간 서적 안내가 일본어로 되어 있다거나) 점을 포착하게 될 때이다. 서로 상반된 매력이 있다. 전체와 부분, 모든 것과 하나의 차이이다.

점심은 여전히 역전의 마츠야를 먹기로 했다. 간단하게 혼자 먹을 수 있는 식당은 여기 뿐이다. 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먹을 만한 곳을 검색해보았지만 어제의 맥도널드와 마츠야 두 가지 뿐이다. 역사 내의 아케이드에도 식당이 있는 것 같았지만 적당한 먹을 거리가 있을지, 기차시간에 맞춰 빠르게 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마츠야에서의 식사 시간은 20분을 넘지 않으니까. 키오스크를 이용해 익숙하게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메뉴는 1분 안에 나왔다. 촘촘하게 움직이는 배낭여행자에게는 시간의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

점심을 먹고 다시 기차에 올라탄다. 어제에 이어 특급 시나노를 타고 나가노까지 간다. 오늘은 운이 좋게 가장 앞 자리를 예약할 수 있었다. 아침이라 선명하게 보이는 계곡이 아름답다. 철길이 대부분 단선 구간이고 중간중간 지나가는 기차역에서 복선 구간이 있다. 따라서 완행 열차들은 잠시 이곳에 멈춰서서 반대편이나 혹은 추월해가는 특급 열차가 지나갈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 내가 탄 기차는 거의 멈춰서는 일 없이 모두의 양보를 받으며 질주한다. 왜냐하면 나는 ‘특급’이고 비싼 값을 지불했다. 워낙 산이 깊어 복선으로 철로를 놓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일본은 협궤, 우리나라는 표준궤를 쓴다. 협궤는 표준궤보다 40cm가량 폭이 좁다. 우리나라 철도의 시작도 일본이 부설한 것이므로 자국과는 다르게 표준궤를 선택했다. 이는 당연히 향후 중국과 러시아와의 철도 연결을 고려했을 것이다. 반면 일본은 외부와 철도 연결이 필요 없고 싼 부설 비용으로 산악 지형을 넘나들어야 했으므로 협궤가 적당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대신 객차를 크게 만들지 못해 운송량에 제약이 있고, 곡선 구간에서 일정 속도 이상을 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고 한다. 계곡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는 시나노 특급을 보면서 협궤 말고는 산택지가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칸센은 모두 표준궤로 새로 놓은 철로이다.

나가노에서 다시 다카사키까지 간 후 다시 열차를 갈아타고 에치고 유자와 역까지 달린다. 나가노에서 갈아타는 기차가 도착하기까지 15분의 시간이 있길래 역사 밖 육교까지 나가 사진만 찍고 왔다. 동계 올림픽이 열린 도시이고 여름을 앞둔 한 낮의 시간인데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멀리 있는 산들이 깨끗하게 잘 보인다. 호핑 투어는 이럴 때 쓰는 말 같다. 복잡해보이지만 특급 시나노 이후 나가노부터는 모두 신칸센 1등석을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빠르고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다. 지겨울 정도로 신칸센을 탔다. 어제, 오늘, 내일의 이동으로 이미 JR패스 구매 비용 이상의 탑승료에 맞먹는다.

에치고 유자와를 방문하기로 한 이유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 때문이다. 일본인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사람이 두 명 있고,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먼저 수상했다. 나는 그의 소설은 설국만 읽어보았지만 그 하얀 풍경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가 참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 그 곳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내가 기록하는 ‘방문 희망 리스트’에 추가 해 놓았었다. 신칸센 자유 이용권이 없다면 꽤나 돈을 들여 와야하는 곳이기에 이 기회에 방문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다만 설국이 아니라 파릇파릇한 푸른 나라 였다는 점은 아쉽다. 다른 한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오에 겐자부로이고 그의 책을 초등학생 때 샀다가 100 페이지도 못 읽고 포기했다.

에치고 유자와를 향해 달려가는 신칸센 내에서 숙소를 예약했다. 여름은 비수기라 숙소가 저렴했다. 또 니가타현에서는 방문 외국인을 대상으로 숙소 쿠폰을 뿌리고 있었는데 이 캠페인으로 예약하니 조식/석식이 포함된 다다미방을 5만원 안되는 가격에 예약할 수 있었다. 가장 원했던 것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장기간 머무르며 설국을 구상했다는 다카한 여관이었지만 이 곳은 그 유명세 때문인지 이 비수기에도 비싼 가격을 받고 있고 별다른 캠페인도 없었다.

에치고 유자와 역에 내리니 6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공기가 서늘했다. 숙소로 가다가 설국 기념관을 관광하고 체크인 하기로 한다. 구글 맵에서는 가까워 보였는데, 숙소까지는 꽤 먼 거리를 걸어가야 했다. 길을 걸어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니 오히려 ‘없다’고 표현하는 쪽이 더 정확하겠다. 이 곳에 신칸센이 처음 놓이고 경제가 부흥할 1980년 초반에는 스키리조트가 개발되고 숙소가 우후죽순 생긴 것 같다. 지금은 우리나라처럼 스키의 인기도 많이 줄어들고, 그 때 지어졌던 리조트들이 많이 낙후되고 다른 지역의 경쟁자들도 많이 생겨서 그 때만큼의 호황은 다시 찾아오지 않는 것 같다.

아뿔싸, 설국 기념관이 보수 공사로 문을 닫았다. 비수기인 여름에 맞춰 내부 공사를 진행하고 겨울에 다시 문을 여는 것 같았다. 걸어오느라 발이 화끈거려 건물 앞 족욕 탕에 잠시 짐을 내려놓고 족욕을 했다. 족욕을 하는 사람도 물론 없다. 물에 떠있는 하얀 각질로 사람들의 흔적을 느꼈다. 가끔 일본 특유의 박스형 경차가 몇 번 지나쳐 갈 뿐이다. 산지 지형이라 숙소로 올라가는 길도 꽤나 오르막이다. 알고보니 내가 예약한 숙소 (유자와 토에이 호텔) 바로 옆에 스키 리프트가 있었다. 겨울에 스키를 타러 온 관광객들은 숙소에서 바로 스키를 들고 나와 탈 수 있게 편리해보였다. 호텔 주차장에는 차가 별로 없었다. 단체 관광객을 태우고 역을 오가는 대형 버스들이 몇 대 서있었다.

로비는 꽤 넓었지만 오랫동안 리모델링 하지 않은 색바랜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의 가야산이나 거제 등 예전에 인기가 있을 법한 관광지에, 마이카 붐을 타고 지어진 건물 내부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중년의 아주머니 직원과 그 보다는 약간 젊어 보이는 남자 직원이 있었다. 역시 다른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영어로 체크인을 하겠고 아고다에서 할인 캠페인을 통해 예약했다고 이야기했다. 알겠다고 하고 여권을 달라고 한다. 잠시 뒤 직원이 조식과 석식은 포함되지 않는 숙박 플랜이라고 이야기 했다. 내가 아고다에서 확인한 것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예약한 아고다 예약 기록에는 니가타현에서 진행하는 특별 캠페인으로 조식과 석식을 포함한 플랜이라고 나와있었다. 스마트폰을 들이 밀었고, 영어 대신 일본어를 썼다. 아마 이 호텔에 이 플랜으로 숙박한 사람이 나 뿐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한참을 서류를 뒤적뒤적하더니 알겠다며 조식과 석식을 포함한 숙박이라고 이야기했다. 정말 그들의 실수 인지, 아니면 내가 이야기하고 증거를 들이미니 마지못해 해준 것인지는 모르겠다.

숙소로 올라가 다다미 방에 잠깐 누워있었다. TV를 틀었더니 일본 아이돌이 한국 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이 하고 있었다. 아침에 김포공항으로 입국해서 그날 저녁에 김포공항으로 출국하는 당일 치기 여행이라고 한다. 나도 힘든 여행을 하고 있지만, 그 여자 아이돌은 하루 종일 저 텐션을 유지하는 것이 나보다 더 힘들 것 같았다. 오늘이 여행 중 유일하게 나만의 TV와 화장실이 있는 숙소였다. 사실 저녁 먹을 시간까지 별로 할 것이 없기에 동네를 한바퀴 둘러보고 오기로 했다. 방금 역에서 관광객이 걸을 만한 ‘설국’ 길이 있다는 것을 지도에서 찾았었다.

설국 길은 여관 다카한으로 가는 길부터 시작한다. 여관 로비에는 설국 관련 전시가 있는 듯 하나, 왠지 투숙객이 아닌데 들어가기 뻘쭘하여 건물만 한바퀴를 돌아보았다. 여관을 지나 신칸센 철로를 거쳐 굽이굽이 동네를 살펴보다보면 여주인공이 일하던 여관이나 설국의 유명한 첫 문장,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가 새겨진 기념비도 찾아볼 수 있다. 마을 한바퀴를 돌아 다시 기차역으로 왔다.

기차역으로 온 이유는 이 지방의 사케를 시음할 수 있는 폰슈칸이라는 상점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5백엔을 내면 코인 5개를 주는데 수십개의 사케 자판기 중 원하는 것을 코인 넣어 시음해볼 수 있다. 사케 가격에 따라 코인 한개 부터 세개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마음에 드는 사케는 병으로 구입할 수도 있는데 한 병 사고 싶었지만 이를 남은 여행 기간 내내 배낭에 짊어지고 다닐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모든 기념품은 삿뽀로에서 사기로 한다. 네 종류의 사케를 나름대로 다른 것들로 골라 먹어보았는데 정말 맛이 달라서 모두 쌀을 기본으로 한 것이라고 믿겨지지 않았다. 어떤 사케는 상큼한 귤 향이 진하게 느껴지는데, 귤을 진짜 넣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향을 귤로 착각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 곳 니가타는 쌀이 유명하고 따라서 쌀로 만드는 사케가 유명해졌다고 한다. 이름있는 양조장만 수십 곳이라는 듯.

사케를 병으로 하는 것은 포기하고, 편의점에서 맥주와 몇 가지 간식거리를 사서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로 돌아오니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저녁은 아래 층에 있는 연회장에서 준다고 해서 내려갔다. 간단하게 숙박 호수를 말하고 들어갔는데, 대부분 단체 관광으로 버스를 타고 오신 정말 나이드신 할아버지, 할머니 뿐이었다. 아, 이 숙소는 비수기에 이런 영업을 하는 구나 싶었다. 거기 앉아있는 유일한 혼자, 젊은이(?)로 일본식 코스요리를 준다고 하여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접객하시는 분들도 할아버지, 할머니다. 식사는 철저히 와쇼쿠 스타일로 생선, 조림, 된장국, 나베, 흰 쌀밥이 꽤 길게 이어져서 나왔다. 사실 건강식이긴 하겠으나 별로 자극적이지 않은 요리의 끊임 없는 행렬에 금방 질려서 그만 먹고 나갈 수 있는 시간을 노리고 있었다. 결국 후식은 패스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사 후 올라와서 조금 쉬었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호텔이 조금 높은 지대에 위치해있어 마을 전경이 잘 보였다. 기대했던 설국의 풍경은 아니었다. 빌려주는 유카타를 입고 대욕장에 온천을 하러 갔다. 호텔의 다른 곳은 낡고 오래된 느낌이었지만 탈의실부터 잘 관리되고 있었다. 노천탕으로 나가보았다. 한 명이 있었지만 이윽고 나가버렸다. 배트민턴 코드 정도 넓이의 노천탕에 나 혼자 누워 있었다. 산에서 이름모를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린다. 밤 하늘의 별이 선명하게 보였다. 초 여름이지만 밤에 산에서 내려오는 쌀쌀한 바람이 느껴졌다. 일주일 넘게 진행된 오랜 여행의 피로가 풀린다. 나름 일본 대중 목욕탕을 다녀봐서 그런지 제법 익숙하게 씻을 수 있었다.

숙소로 올라와 다다미 방에서 TV를 보며 맥주를 마셨다. 일본의 새우깡 에비센을 먹으면서 내일의 계획을 조금 생각했다. 문득 깜깜한 밤, 사람이 안보이는 호텔, 4인용 객실에 혼자 잠을 청하는 나. 약간 으시시한 느낌이 들어서 TV를 오랫동안 켜놓고 잠을 청했다. 캡슐 속에서 잠을 자는게 익숙해져서 일까.

내일은 정말 오랜만에 도쿄로 향한다. 정확히 15년 만이다.

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이세, 나고야, 마츠야마

‘성지’는 어느 곳일까? 종교라면 명동성당과 같은 각자의 ‘성지’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성지는 어디인가? 고조선과 단군 신화를 믿는 분들은 마니산 참성단일 수 있다. 현대사를 중요하게 보는 사람들은 경복궁이나 서울시청, 광화문 광장 등을 꼽을 수도 있겠다. 또 서울시 동작구 현충원도 근처에서는 경적도 울리지 말라는 안내가 있을 정도로 중요한 곳이다. 조선시대의 왕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종묘도 중요 사적이다. 내가 가본 곳 중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지 답다’ 느낀 곳은 아산 현충사이다.

그러면 일본의 성지는 어디일까? 일본은 왕이 있는 나라고 이것도 하나의 종교라고 간주하면, 그 최고의 성지는 아마 이세신궁이 될 것이다. 이 곳에는 일본 천황가의 시조라고 여겨지는 아마테라스를 모시는 신사이자, 전국 신사들의 최고 정점에 있는 황대신궁이 위치해있다. 바로 그 위치에, 나고야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 남짓 가야하는 이 곳 이세시에 최고신 아마테라스가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따라서 이 곳은 천황가를 신성시하는 일본 보수의 심장이자 총 본산이다. 이 곳은 천황 만이 공물을 바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일본 왕가에 내려오는 청동검, 거울, 옥 구슬인 삼종신기를 아마테라스가 천황가문에 수여했다는 전설도 있다. 그리고 이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거울이 이세신궁에 있다.

아침 일찍 다시 짐을 싸들고 숙소에서 나왔다. 이세신궁에 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나마 가까운 오사카, 교토, 나고야에서 모두 상당히 거리가 있다. 나고야에서는 JR 미에 특급을 타면 1시간 40분이 걸린다. JR패스로는 대부분 무료이지만 중간에 사철을 이용하는 일부 구간이 있어 400엔 정도를 징수한다. 사철 구간이 시작되면 JR 승무원이 돌아다니면서 검표하는데 JR패스를 보여주면 돈을 더 내라고 한다. 가기 어려운 만큼 이 곳이야 말로 내가 생각한 방문 원칙에 부합한다. 이번 여행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며, 한국인이 거의 방문하지 않는 곳이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방문기가 몇 올라오긴 하지만, 에베레스트를 트래킹하는 한국사람보다 훨씬 적은 것 같다.

나고야역에서 7시 40분 출발하는 ‘미에’라는 특급열차를 타기로 한다. 나고야 역사 안에 있는 까페에서 빵을 사서 하나 먹고, 혹시 배가 고플까봐 다른 빵집에서 빵을 두 개 샀다. 물도 하나 샀다. 짐은 나고야역 코인라커에 하루 종일 맡기기로 했다. 특급 미에 열차에는 나이가 지긋한 관광객들이 대부분이다. 하긴 젊은이가 두 시간씩 기차를 타고 할 것이라고는 신사 구경 밖에 없는 곳에 왜 가겠는가. 대부분 신사 참배를 가는 분들이다. 긴 시간 타고 가야 하는데 혹시 사람이 많아 자리에 앉지 못할 까봐 지정 좌석권을 따로 구입했다. 물론 JR패스가 있어도 이 좌석권은 돈을 더 내야 한다. 열차 안에는 일부 구간이 나뉘어 있고 앞 쪽은 지정석이다. 뒤쪽에 구역에 자리가 없어 서 있어도 앞쪽으로는 넘어오지 않는다. 미니 설국열차 같다.

나는 이세시에 두 시간 밖에 머물 수 없다. 오후에 나고야성을 보고 오후 늦게는 마츠야마까지 이동해서 숙박을 해야 한다. 하루에 장거리 특급 열차를 세번 타야 한다. 일정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은 왜 그런 것일까? 이세신궁은 보통 내궁과 외궁으로 나뉘는데, 외궁은 이세시 역에서 걸어갈 정도로 가깝지만 내궁은 버스를 타고 꽤나 가야한다. 일반적인 경건한 마음의 참배객들은 외궁을 먼저 보고 다시 버스를 타고 내궁으로 가는 것 같지만 나는 내궁을 먼저 이동해서 살펴보고 시간이 남으면 역 근처의 외궁을 보기로 한다. 만약 시간이 모자라면 외궁은 패스하고 나고야로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세시에 도착해서 버스를 기다린다. 쉬운 한자로 ‘내궁’이라고 써 있어서 다행이다. 혼란스러운 것은 따로 있다. 버스를 앞에서 타고 뒤로 내리는 것일까, 아니면 뒤로 타고 앞으로 내리는 것일까. 일본도 지역마다 다른지 지역 별로 정리해 놓은 문서가 검색된다. 에스컬레이터도 오사카 사람과 도쿄 사람은 서로 다른 편에 서서 탄다. 기다란, 다른 민족이 서로 섞여 사는 나라라 관습도 지역별로 상당히 차이가 난다.

버스를 타고 생각보다 오랜시간 달려간다. 사람이 많아 보이는 마을은 없어 보인다. 이세시의 교외를 달려 넓고 깨끗한 버스 정류장에 내린다. 내궁으로 가려면 상징과도 같은 우지바시라는 커다란 목조 다리를 지나 들어가게 되는데, 다리 앞에는 커다란 주차장이 또 별도로 있다. 얼마나 많은 방문객들이 오는지 짐작이 간다. 품이 넉넉한 까만색 정장과 노타이 차림의 할아버지들과, 가죽 자켓의 큰 소리나는 오토바이를 탄 마초들이 뒤섞여 있다.

다리를 건너 내궁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침 일찍 비가 와서 더욱 진해진 신선한 녹색의 내음과 바둑알 크기의 자갈이 깔린 길에서 나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진다. 하나 같이 깨끗한 옷차림에 정중한 몸가짐이다. 누구도 서두르거나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정원이 만명 쯤 되는 초등학교의 학부모 참관 수업에 가는 느낌이다. 일찍 참배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은 도리이를 지날 때마다 돌아서서 목례를 한다. 아마 어떤 신에게 무엇인가 빌고 있겠지. 나는 종교는 없지만 성당이나 사찰에서 기도를 하거나 절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 없겠다. 나 뿐 아니라 드문드문 보이는 목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마 외국인 관광객 일 것이다.

깨끗한 물이 진입로 옆으로 흐른다. 놀라울 정도로 깨끗하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여 물고기가 산다면 숨을 곳이 없을 것 같다. 이 정도 깨끗한 물과 수량을 가지고 있는 곳은 한국에서 보기 어려웠다. 확실히 한국보다 젊은 땅이다. 참배 전에 이곳에서 손을 씻거나 하는 것 같다. 일본의 신사 앞의 물은 마시는 것이 아니라 손을 씻거나 입을 헹구는 용도다. 더 걸어 들어가 내궁에 다다른다. 크게 건물 몇 동이 있는데, 각자 다른 신을 모신다고 한다. 그 중 가장 깊숙하고 사람이 많은 곳이 아마테라스를 모시는 신사이다. 이곳만은 가까이 접근이 불가능하고 사진 촬영도 금지된다. 특별히 예약한 소수 인원만 내부자의 인도하에 직접 참배가 가능한 것 같다. 특별히 더 잘 차려입은 중년의 남성들이 신관 복장을 한 남자의 인도를 받아 건물의 더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다. 초등학교 동창생 보다는 중견 기업 임원처럼 보였다.

그 유래와 상징성과 다르게 건물 자체는 초라해 보인다. 건물 자체에 덧붙여진 화려한 장식 등은 전혀 없으며 딱히 역사나 고풍이 깃들어있지도 않다. 심지어 나무도 새것 같다. 이는 ‘식년천궁’이라는 독특한 관습 때문이다. 20년마다 새로 건물을 짓고, 기존 건물은 허물어버린다. 즉, 지금 건물도 최대 20년 이내 지어진 것 이라는 의미다. 한국에서는 허가되지 않는 재건축 방식이다. 이런 20년 주기의 재건축과 이주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아 보이는데, 나는 이러한 반복 행위 자체가 그 영원성과 관련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돌아다니다 보면 오랜 역사 때문인지 전설이 깃들어 있는 곳 들이 많다. 그 중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세 개의 작은 돌을 모아 놓은 곳인데, 신령한 힘이 있다고 믿어진다고 한다. 건물을 이전하여 지을 위치를 표시해 놓는 곳이라는 설명을 나중에 읽었다. 따뜻한 기운이 나온다고 해서 사람들이 손을 올려보고 있었다. 나도 손을 올려 보았는데 듣고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해서 조금 신기했다. 현대에 와서 미신이나 전설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눈으로 보는 사물과 엮어내어 만든 이야기들이 없다면 여행을 다니는 재미는 많이 떨어질 것 같다. 수 천년을 믿어온 전설, 전승, 미신, 옛 이야기 들이 최근 몇 백년 사이에 모두 것이으로 부정 당하고 있다. 그 몇 백 년 사이의 지식이 영원할 것인지 알 수 없지 않은가?

다시 버스를 타고 외궁으로 향한다. 정확하게는 역으로 돌아와서 역에서 다시 시작한다. 외궁은 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데, 내궁보다는 그 번잡함이 훨씬 덜했다. 아침 이른시간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여기도 관광 침체기를 겪고 있는지 문을 연 상점 들이 많이 없어 보였다. 깨끗하고 꼼꼼하게 빈틈없이 커다란 돌로 메꾸어진 길이 걷기 편했다. 하지만 만약 시간이 없다면 내궁만 보고 외궁은 꼭 보지 않아도 좋겠다. 관리 상태나 사람들, 볼거리, 숲의 울창함 등 모든 것이 외궁은 내궁만 못했다. 모든 것이 내궁의 복제로 보여 휙 둘러보고 다시 역으로 향했다.

다시 역으로 걸어간다. 시간이 남았길래 최단거리로 가지 않고 빙 둘러 가기로 한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파스모 카드를 충전하고, 삼각김밥 하나를 사서 역전 벤치에 앉아 먹었다. 역에서는 끊임없이 참배객들이 나오고 버스는 이들을 가득채워 내궁으로 달려간다. 서둘러 본 탓에 다행히 두 시간안에 모두 둘러보고 열차 출발 까지는 십분 정도가 남아있다. 아침에 사온 빵이 남아있지만, 더 이상 빵으로 배를 채우기 싫었다. 또 빵은 열차 안에서 먹어도 괜찮은 것 같지만 삼각김밥은 부스럭거리는 것이 왠지 민폐 같았다. 여행 시작할 때 후쿠오카의 오호리 공원에 앉아서 한가함을 즐긴 후 이런 여유를 가져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다시 특급 미에 기차에 올라탔다. 가는 길보다 오는 길이 더 길게 느껴진다. 한참을 달려 나타난 나고야 역과 그 근처의 고층빌딩 군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다. 그곳까지 이어진 철도를 따라가는 길 위에서 나는 우주 정거장에 도킹하는 우주선에 타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고야 역에 도착하기 조금 전에 이치란 라멘을 먹어보기로 결심했다. 정작 본고장인 규슈와 후쿠오카에서는 먹지 않고 나고야에 와서 처음 접해본다. 후쿠오카에서는 그 끔찍하게 긴 웨이팅 후기를 보고는 도저히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2시가 넘은 애매한 시간이고, 사람이 없으리라 예상했다. 나고야 역을 나와 동쪽으로 조금 걸어가야 했다. 지하 아케이드를 통해 갈 수 있는 것 같지만 그러면 길을 잃어버릴 것 같아 지상으로 걸어가기로 한다.

어제는 서쪽 출구 쪽만 살펴봤는데 동쪽 출구로 나오니 번잡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도 이 정도의 번화가는 찾기 쉽지 않다. 금요일 밤의 강남역과 사람 수는 비슷하지만, 그 규모는 이쪽이 더 크다. 물론 나고야보다는 도쿄가 훨씬 더 번잡하다. 신주쿠 역의 횡단보도와 지하철 개찰구 규모를 처음 봤을 때 놀란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신도림 역을 4개 쯤 이어 붙인 모습 같았다. 일본의 인구는 2010년 즈음 부터 감소 중이라고 한다. 한국도 4년 전부터는 감소 중이니 딱 10년 차이를 두고 인구 감소가 시작되었다. 인구 수와 번화한 모습으로만 따지자면 절대 이 모습을 따라잡을 수 없겠다. 아무튼 아침에는 이세 시의 청정 자연에서 깨끗한 물에 손을 씻다가 갑자기 나고야에서 주말을 즐기러 나온 수 많은 젊은이들 사이를 걸어가고 있었다.

나고야에서도 이치란 라멘 그릇을 내 앞에 놓기까지 30분이 걸렸다. 라멘을 후루룩 마시고, 사전에 주문을 받고 주문도 극히 빨리 서빙되는, 식사를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하는 시스템임에도 30분이나 걸렸다. 줄의 앞쪽에는 한국에서 온 젊은 청년들이 한국 여성과 일본 여성을 비교하며 떠들고 있었다. 도쿄나 오사카 같은 곳이 아닌 나고야나 소도시들은 항공료도 비교적 싸서 친구들과 여행오기는 좋을 것 같다. 도미토리와 이치란으로 점철된 여행이라면 젊은이들도 경제적 부담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나도 똑같은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맛을 가진 이치란 라멘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나고야 성으로 간다. 아이폰에 파스모 카드를 심고 이걸 이용하니 전국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남은 돈은 삿뽀로에서 귀국하기 전에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몇 개 사서 해결 할 수 있었다. 나고야 성 근처에도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 사람들은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나 했더니 오늘이 주말인 것 같았다. 한가로이 나무 밑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부러워보인다. 커피를 마시는 여유보다는 가족과 함께하는 주말이 부러워보였다. 오랜 기간 여행을 하니 이제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관람을 마치고 나올 때 쯤 입장한 나고야 성은 오사카 성과 마찬가지로 근대에 와서 새롭게 만든 콘크리트 건축물로 천수는 보수 공사 중이라 입장할 수 없었다. 대신 다이묘가 거주하고 외부의 방문 인사를 접견하는 기능으로 쓰인 혼마루 어전은 대대적으로 새롭게 건축하여 관람할 수 있었다. 지속적으로 복원을 하며 마침 최근에 작업이 완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일본 성을 가면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 같은 말을 쓰는데, 중심부인 천수부터 가장 가까운 내부, 한겹 성 밖으로 나간 곳, 거기서 한겹 더 나간 곳 등을 단계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어전이니 만큼 권력자를 접견하려면 복잡한 복도를 겹겹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바닥의 높낮이, 그리고 섬뜩하게 묘사된 맹수 그림들은 권력의 상하 관계를 현실로 소환한다. 돌아나오는 길에 보이는 부엌 등도 흥미로웠다. 아마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어전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명나라 사신을 접견 했을 것이며, 여기서 화친은 없으며 정유재란을 일으켜야겠다 결심했을 것이다. 그 결심 때문에 한국인은 최대 백만명이 죽었다. 또 한국에서 ‘에비’라는 말이 어린아이들을 겁주는 표현으로 만들어졌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막 문을 닫고 있었다. 입구에서 안내해주던 아저씨가 5시까지 마지막 입장이라고 천천히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빨리 뛰어오라고 소리친다. 5시가 살짝 넘었는데 그래도 이런 융통성은 있나보다.

성을 둘러 나오다보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있는 가토 기요마사의 동상과 돌을 볼 수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른팔로 나고야 성 건축시에도 그 수완을 발휘했다고 하는데 이 성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울산왜성, 며칠 전에 둘러보았던 구마모토 성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사진의 돌은 이 나고야 성 건축에 쓰인 돌 중 가장 큰 것이라고 하고, 어디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 원래 이 자리에 있던 돌을 다듬어 이용했다고 한다. 그의 동상도 실제 그가 건축을 감독했다고 여겨지는 돌 위에 세워 놓았다.

다시 나고야 역으로 지하철을 타고 돌아간다. 지하철 나고야 성역에 도착해서 건너편을 살펴보니 일본과 서양 양식이 섞인 오래된, 커다란 건물이 눈에 띈다. 구글 맵이 이 건물은 시청이라고 말해주었다. 조금 더 남쪽으로는 나고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추부 타워도 있었지만 가보지는 못했다. 이세신궁을 보느라 오늘 하루를 다 쓴 탓에 사실 가보고 싶은 곳을 못 둘러봤다. 나고야 과학관이나 아츠타 신궁도 가보고 싶었지만 언젠가 나고야에 올 기회가 있다면 쉽게 둘러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미뤄두었다.

나고야역으로 서둘러 돌아온 이유는 특급열차 시나노를 타고 마츠모토시로 가기 위해서이다. 오늘 하루 종일 역사 코인라커에 맡겨 놓았던 짐을 찾았다. 열차에서는 특별히 가장 앞 자리를 예약하려고 했으나 인기가 있는지 누군가 한 자리를 예매했다고 했다. 텅텅 빈 1등석 칸의 가장 앞 두 자리에 나란히 앉아가는 것은 민망한 일이라 그냥 앞에서 두 번째 자리를 달라고 했다. 시나노 특급열차는 나고야와 나가노를 잇는 열차로 특별히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어 유명하다. 가장 앞 자리에 앉으면 조종석 앞까지 유리로 훤하게 들여다보인다. 계곡와 협곡을 따라 산속을 달리는데, 특히 우측에는 일본 알프스라고 불리는 3000m 이상 급 고산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날씨 좋은 낮이면 경치를 즐길 수 있겠으나 나는 나고야 역을 떠나자 금새 날이 어둑해져서 약간의 노을 풍경 밖에는 살펴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도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준령고봉들임은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 일본 알프스를 찾는 많은 여행객, 여행 상품이 있다.

열차에 앉아있는 사이 파란색과 붉은색이 서로 다투던 하늘은 어느 사이에 깜깜해졌다. 깊은 계곡 속, 빛이 없는 공간을 홀로 달리는 열차는 마치 은하철도999를 연상케 했다. 열차 기관사와 그 보조, 그리고 나보다 빨리 첫 번째 줄을 선점한 ‘중국인’이 아닐까 생각되는 관광객 두 명, 그리고 나. 모두 네 명이 깜깜한 우주 공간을 날아간다. 두 시간 정도를 달려간 열차는 마츠모토 역에 도착했다. 역사 밖으로 나오니 두 시간 전의 나고야와 완전히 다른 공기의 질과 온도가 느껴졌다. 마츠모토 시는 고봉사이에 둘러싸인 분지 지형의 도시다.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바다를 접하지 않은 도시이다. 또 이번 여행 전에는 이름도 알지 못했던 곳이다.

오늘 하루는 신칸센을 타지 않고도 이세시를 왕복하고 나고야를 거쳐 마츠모토까지 달려왔다. 어서 숙소도 들어가서 쉬고 싶은 마음에 식사는 역 앞에 바로 보이는 맥도널드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의외로 맥도널드에는 서양인 관광객들이 눈에 보인다. 여기에는 무엇을 보러 왔을까? 이 고장이 최고의 와사비 산지로 유명하니 그걸 맛보러 오진 않았을 텐데. 곧 연인이 될 것 같은 고등학생 커플들 사이에서 빅맥 라지 세트를 먹었다. 다들 들키지 않으려는 은밀한 연애를 하는 듯 조용조용 소근거린다. 나는 주말 저녁 이 동네에 있을 것 같지 않은 행색의 사람 같았다. 후쿠오카, 나가사키, 히로시마, 나고야를 거쳐 마츠모토까지 나는 점점 한국인이 희박한 곳으로 들어간다.

숙소는 호텔 M 마츠모토라는 곳으로 정했다. 들어가는 입구를 찾는데 조금 오래 걸렸지만 역에서 가깝고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만족한 숙소였다. 캡슐 호텔에 몇 박을 해보니 이 캡슐이라는 것에도 급이 보였다. 이를 테면, 올라가는 사다리가 튼튼하고 밟기 좋게 되어 있는지, 너무 위아래 넓은 간격으로 되어 있지 않은지, 손잡이도 양쪽에 붙어 있는지, 캡슐 내부는 넉넉한 공간인지, 원통형이라 실제 공간이 좁은 경우가 있지 않은지, 직육면체 형태로 파여 있어 충분히 넓게 쓸 수 있는지, 내부의 조명, 콘센트는 넉넉하거나 누워서 컨트롤 할 수 있는지, 심지어 어떤 곳은 이어폰을 꼽아 라디오도 들을 수 있다. 입구를 가리는 커튼은 두꺼운지, 빈틈 없이 들어오는 빛을 가릴 수 있는지, 안쪽에서 커튼을 걸어 잠글 수 있는 고리 같은 것은 있는지, 만약 맞은 편에도 침대가 있다면 비스듬하게 교차로 배치하여 내부가 너무 훤히 보이지 않도록 했는지 등등 신경 쓰면 숙박하는 사람에게 조그만 편의를 줄 수 있는 것들이 꽤 많이 보였다. 숙박업을 하려면 일단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자봐야 할 것 같다.

보통 젊은이들이나 해외여행객이 많이 이용하는 도미토리형 숙박들은 이러한 편의 사항들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짜피 한번 오고, 하루 이틀 잘 사람들인데 뭐. 그냥 나무로 된 삐걱거리는 가장 싼 침대, 자고 일어나면 허리가 뻐근해지는 매트리스로 숙박업을 시작한다. 반면 일본 내 출장객이나 단기 여행객들이 숙박하는 내국인 대상 업소, 혹은 체인 캡슐 호텔들은 깜짝 놀랄 만큼 섬세하게 이런 것들을 배려하고 있다. 이곳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늘 하던 루틴대로, 씻고 옷을 갈아입고, 세탁을 하고, 건조기를 돌리고, 내일의 일정과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 정확히는 캡슐 안으로 쏙 누웠다. 로비에는 엄청난 수의 만화책이 있어서 자유롭게 볼 수 있는데 슬램덩크니 드래곤볼이니 하는 유명 만화들이 있었다. 특이하게 정수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얼음물을 상시 비치해 따라 마실 수 있었다.

참고로 마츠모토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특히 점을 찍어 놓은 호박으로 유명한 쿠사마 야요이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우리 동네 과천 현대 미술관 앞마당에 이 할머니의 호박이 놓여있는데, 내가 재미있어하는 가느다란 인연을 찾는 재미를 느꼈다. 나중에 아는 척 할 거리가 하나 늘었다. 근처에 쿠사마 야요이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이 있다고는 하지만, 역시 방문할 시간은 없었다. 아침 일찍 나와 마츠모토 성을 보기로 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어느 덧 여행도 절반을 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