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센다이, 모리오카, 하코다테

큰일이다. 열흘 여행하는 동안 처음으로 늦잠을 잤다. 알람을 맞추지 않았다. 서둘러 일어나려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체크아웃 까지 센다이 성을 보고 오려했던 계획이 틀어졌다. 부은 발목과 다리를 좁은 캡슐이 가득 차게 뻗어본다. 부지런히 씻고, 계단을 내려온다. 숙소 계단에 꼬질꼬질한 외국인이 배낭을 베고 자고 있다. 계단에서 노숙을 한 건가. 밖은 화창하다 못해 더운 날씨다. 목표인 센다이 성터 유적으로 바삐 걸어간다. 어느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 좋을지 계산해 나아간다. 지금 생각해보면 버스를 타고 갔으면 될 껄 왜 걸어가느라 시간을 썼을까. 멀지 않을 것 같았다. 교통 수단이라고는 두 다리와 신칸센 만 생각에 있다. 걸어서 본 것만 진짜 본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목적지로 향한 곳은 센다이 성, 정확히 말하면 센다이 성터 유적이다. 예전에 성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고, 터만 남아있다. 성은 지진, 화재, 중력 등 다양한 이유로 무너지지만 가장 큰 것은 폭격, 전쟁 등 인위적인 파괴이다. 이 성도 어느 정도 보존되고 있었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폭격으로 파괴 되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아무 생산 시설이 없어 폭격의 목표가 되지 않은 도시들이 피해를 덜 받게 되었다. 전국 곳곳에서 전국시대 성을 복원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는 이 성이 세워진 시절의 역사를 중요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아직 센다이 성의 본격적인 복원 계획은 없는 모양이다. 딱히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도시도 아니고.

센다이 성까지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평평한 도심지를 벗어나자 다리를 하나 건너 오르막이 나타났다. 성터 유적은 시립 박물관 건물을 지나 꽤나 경사진 언덕, 혹은 얕은 산 위에 있는데 오르막 길이 꽤 길고 가팔랐다. 시계를 보고 돌아올 시간을 셈해보면서 부지런히 걸었지만 언덕의 중턱 어딘가에서, 부지런히 돌아가야 겨우 체크아웃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아쉽지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걸음을 멈추니 아침 시간이지만 땀이 뚝뚝 떨어졌다. 올때와 다른 차가 다니는 도로 길로 바삐 걸어 내려온다. 한참 보수 공사를 하고 있었다. 여행 내내 시간이 남거나 딱 맞은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시간이 모자라 발길을 돌려야 한 것은 처음이다. 여행에서 지극히 계획적인 나인데 왜 꼼꼼하지 못했는지, 알람을 맞추는 것을 잊었는지 화가 나기도 했다.

숙소 계단에는 내려올 때 봤던 노숙 외국인이 아직도 있다. 이제 잠에서 깨어 누워있다. 뭔가를 기다리는 건가. 여행 중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는 젊은 배낭 여행객들을 만났다. 나가사키에서 만난 여학생도 도쿄를 둘러보고 다시 서쪽 끝인 그 도시까지 왔다고 한다. 나는 신칸센을 타고 다니지만 그들은 어떻게 이동하는지 모르겠다. 야간버스 같은 것을 타면 꽤 싸게 도시와 도시를 건너 다닐 수 있다. 침대 머리 쪽에 깊숙히 숨겨둔 짐을 챙겨서 나왔다. 여권과 지갑 등 중요한 것은 작은 보조 가방에 넣었으니 배낭에는 다 옷가지 뿐이다. 여행 중 배낭을 잃어버렸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근처의 유니클로에 가서 가방과 옷을 챙겨야 할 것 같았다. 옷이 대부분이지만 다시 이 무거운 짐을 들고 역까지 걸어 가려니 한숨이 나온다. 대중교통을 타도 걷는 거리는 그렇게 줄어들지 않는다. 기나긴 아케이드를 다시 거슬러 올라온다. 햇살은 피할 수 있어 다행이다. 한낮의 아케이드, 그리고 빠칭코에는 젊은이들이 가득하다.

오늘은 신칸센을 타고 신하코다테호쿠토까지 올라간다. 역 이름이 길다. ‘신’은 새로운 역이라는 뜻이다. 일본은 신칸센 선로를 놓으면서 전용역을 건설할 때 이미 있던 재래선의 역과 혼동되지 않으려고 새로울 ‘신’을 붙였다. 신고베, 신오사카 역 등이 그러한 예이다. 신경주, 신해운대 등 한국에도 이런 명명이 있다. 하코다테호쿠토라는 역명은 하토다테시와 호쿠토시가 서로 자기 시의 이름을 붙여야 된다고 주장하다가 결국 둘 다 붙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한다. 참고로 호쿠토는 한자로 북두칠성할 때의 북두를 쓴다. 북두 자체가 북두칠성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북두칠성은 국자모양의 7개의 별이 만드는 별자리를 뜻하는데, ‘두’자가 국자라는 뜻이므로 ‘북쪽의 국자모양의 7개의 별’로 풀어 쓸 수 있다. 더 나아가면 국자나 혹은 비슷한 모양의 옛 다리미를 무덤 내 북두칠성을 뜻하는 부장물로 많이 넣었다고 한다.

홋카이도까지 올라가는 길 중간에 모리오카에 들러서 냉면을 한 그릇 먹고 간다. 냉면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한 시간, 정차 시간 5분 후에 역 바로 앞의 뿅뿅샤라는 식당이 점심 영업을 시작한다. (정말 이런 이름인지 의심스러웠지만 정말 이런 이름이다) 런치 메뉴를 먹고 다시 부리나케 모리오카역으로 돌아와 한 시간 후의 신칸센 열차를 타고 올라간다. 이미 하코다테 일정이 많아 점심을 먹느라 시간을 오래 낭비할 수는 없다. 그래도 모리오카를 지나는데 유명한 냉면은 한 그릇 먹고 가야겠다. 모리오카 냉면은 한국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냉면과는 맛이 다르다. 오히려 면은 밀면의 식감과 같은데 국물도 얼음을 넣어서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한국과는 다른 새콤한 맛을 낸다. 비슷한 음식이 없으므로, 말로 묘사하긴 어렵고 직접 가서 먹어보아야 알 수 있는 맛이다.

이 냉면도 원래 북한에서 일본으로 이주해온 조선인들이 원조라고 한다. 북한에서 먹던 재료를 그대로 구하기는 어려워 비슷한 맛을 냈는데, 몇몇 가게가 생겼다가 현재는 이 뿅뿅샤와 다른 한 곳이 원조로 인정받고 있는 듯하다. 뿅뿅샤는 한국에도 분점을 냈었는데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먹어보면 그 이유가 납득이 간다. 한국은 쫄깃한 함흥냉면과 삼삼한 평양냉면, 그리고 중간의 밀면이 이미 냉면 시장을 꽉 잡고 있다.

신하코다테호쿠토역은 하코다테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 신칸센의 최북단 종착역이다. 삿뽀로까지 이어서 건설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요원한 일인 듯 하다. 지도를 봐도 이 산간 지역을 어떻게 뚫고 철로를 놓겠다는 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선로 중 80%는 터널로 뚫어야 할 듯하다. 남쪽으로는 도쿄역에서 신하코다테호쿠토역까지 가장 빠른 열차가 4시간 안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노력을 하고 있다. 결국 홋카이도와 혼슈의 연결 해저터널인 세이칸 터널에서 신칸센이 얼마나 속도를 내느냐가 관건이다. 사방으로 팽창하는 공기의 압력과 후폭풍을 처리해야 하고, 마주 오는 열차의 안전성도 보장해야 해서 터널 내에서는 속도를 내기 쉽지 않다. 신칸센의 앞 부리 모양이 우리나라 KTX나 다른 초고속 열차보다 특히 긴 이유가 이런 터널 진입에 대응하기 위해서란다.

신하코다테호쿠토역에서 하코다테까지는 셔틀 역할을 하는 열차가 운행 중이다. 신칸센 도착 시간에 맞춰 대기하고 있다가 하차객들을 태우고 출발하니 오랜시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신칸센의 종점에서 내리면 대다수는 이 셔틀 열차를 타기 위해 이동한다. 셔틀 열차는 흔히 보는 한국의 지하철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고 2~30분 정도 지나면 최종 목적지인 하코다테에 닿는다. 센다이에서 하코다테는, 강원도에서 블라디보스톡에 닿을 만큼 북으로 올라온 거리이지만 역시 신칸센 덕분에 두 시간 조금 더 걸려서 도착할 수 있다.

하코다테역은 모든 열차의 종점으로 꽤 많은 플랫폼을 가지고 있었다. 플랫폼 수에 비하면 그리 붐비지는 않는다. 대부분이 관광객으로 보였다. 출구로 나올 때 왼쪽으로 가면 관광안내소에서 1일 트램 이용권을 구매할 수 있다. 트램을 세 번 이상 타면 이것을 사는 쪽이 유리하니 왠만하면 사서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세 번 타면 본전이지만 매번 돈을 지불하는 시간의 절약과 잔돈 관리를 안해도 되는 이득이 있다. 하코다테는 반나절 일정으로 내일 새벽까지 고료가쿠, 하코다테 야경, 하치만자카, 럭키삐에로이다. 기차역에서는 내일 아침 기차편으로 삿뽀로로 올라가는 특급열차를 예약했다. 이 열차도 그린샤권으로 1등석을 예약할 수 있다. 숙소에 가서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기로 한다. 나가사키에서 보았던 노면전차를 타고 남쪽으로 몇 정거장을 내려간다.

숙소는 Share Hotels Hakoba Hakodate 라는 곳이다. 옛날에는 은행으로 사용되었던 오피스 빌딩인데, 이제 필요가 없어 폐업 후 호텔로 리모델링해서 이용하고 있다. 단단해 보이는 석조 건물이다. 침대 하나에 3만원을 받는 사업으로는 애초에 올라갈 수 없는 건물이었다. 일반적인 호텔 룸도 있지만 나는 도미토리 룸으로 예약했다. 가운데의 원형 계단을 양 옆으로 다양한 Wing 들이 연결되는 신기한 구조를 하고 있었다. 카운터는 깔끔하고 여유로운 공간이 있었고, 능숙한 영어로 응대 받을 수 있었다. 왠만한 관광지는 걸어갈 수 있어 위치도 좋은, 추천하고 싶은 이색적인 숙소다. 다만 처음부터 도미토리를 생각하고 만든 방이 아니라 침대의 배열이 이상하고, 배정 받은 침대에 따라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

침대에 누워서 쉬고 있었다. 커튼 밖에서 같은 방에 있던 나이든 할머니와 아줌마 백팩커 두 분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분 모두 일본 여기저기를 장기간 돌아다니면서 여행 중이라고 한다. 그 중 남미에서 오신 아주머니 한 분은 일 년에 수 개월은 혼자 지구 반대편 배낭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참을 떠들더니 문득 도미토리 룸에서 시끄럽게 떠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나는 평생에 몇 번 못할 이런 여행을 저분은 매년 그리고 훨씬 더 긴 기간 동안 하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 직장인들이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일이다. 문득 나도 은퇴 전에 이런 기회를 다시 가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리나케 일어났다.

건물 앞으로 나와 전차를 탄다. 길거리 표지판에 러시아어가 적혀 있는 것이 특이하다. 홋카이도는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 붙어있다. 인적 교류도 많아 보인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있지만 햇살을 받으면 따뜻한 날씨다. 하코다테의 남쪽 변방에서 북쪽으로 가로질러 꽤 오랜 시간 전차를 타고 간다. 앉아 가는 동안 하교하는 중고등학생들이 가득 들어와 만원이 되었고, 전차 안을 가득 메우던 젊은 목소리가 모두 빠져나가 한참 식혀진 이후에야 내가 내릴 정류장이 나타났다. 첫 번째 목적지인 고료가쿠는 정류장에서도 10분 이상을 걸어 들어가야 한다. 고료가쿠 앞에는 높다란 전망대가 있다. 그 모습을 보려면 전망대에 올라가 내려다봐야 한다. 하지만 나는 더 많은 시간을 고료가쿠 안에서 보내기로 한다.

이곳은 에도시대 말에 건축된 요새로 별 모양의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왜 별 모양일지는 모르겠다. 호쿠토라는 이름과 관련이 있을까? 평야 한 가운데 그다지 높지 않은 성벽을 품고 있어 방어용 성이라기보다 행정 기관들을 보호하는 장벽 같은 느낌이다. 본래 축조의 목적으로는 얼마 이용되지 못했다고 한다. 봄이 되면 벚꽃의 명소로 유명하다. 성벽을 따라 한 바퀴를 둘러본다. 늦은 오후, 이른 저녁 시간이라 사람이 없다. 내부 건물에 위치한 전시관은 마침 직원이 나와 문을 닫았다고 알린다. 처음부터 들어가 볼 생각은 없었다. 한 바퀴를 돌 동안 십여 명의 사람들을 마주쳤고, 대부분 이 근처에 사는 산책 나온 사람들 같아 보였다. 앉아서 쉴 자리가 있다면 앉아서 노을을 보면 삼십 분이라도 시간을 죽이고 싶었는데, 성벽 위쪽에는 앉아서 쉴 자리가 없다.

성벽 따라 걷기가 지겨워졌다. 올 때 내린 정류장 보다 조금 더 먼 정류장까지 슬슬 걸어 올라가 보도록 한다. 반듯한 사각형 거리 양쪽으로 단층 건물이 듬성듬성 들어서 있다. 새로 지은 건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길을 지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지하철이 있지도 않고, 차가 없으면 돌아다니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코다테도 인구가 많이 줄어서 예전 만큼의 야경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통계를 살펴보니 인구가 많이 줄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개 짖는 소리가 가끔 시끄럽게 났고 지저분하고 오래된 경차들이 몇 대 지나쳐갔다. 일본이 아닌 느낌이 들었다. 노면전차 정류장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기다렸다. 조금 이르지만, 야경을 보러 간다.

하코다테에 오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야경을 보러 간다. 야경으로는 나가사키와 고베도 유명하지만 그 곳의 관광객 중 절반, 아니 그보다 더 적게 야경을 보러 간다면, 하코다테에 오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야경을 보러온다. 하코다테의 야경이 대단히 뛰어나서가 아니라 여기는 저녁에 놀러갈 만한 특별한 관광지가 없어서이다. 다시 전차를 타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간다. 전차는 두 종류 노선이 있지만 서로 갈라지기 전에 내리므로 아무거나 타도 된다.

다시 한참을 타고 쥬지가이역에서 내려 걸어간다. 케이블카 정류장이 위치한 곳이 야트막한 언덕인 줄 알았더니 가까워 질수록 경사가 가파르다. 같이 전차에서 내린 외국인 커플도 나와 같은 방향으로 앞서 걸어간다. 러시아에서 온 것 같다. 사람이 많아지더니, 거대한 버스 전용 주차장도 나타나고 주차된 버스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린다. 버스 중에는 ‘모두투어’라고 적힌 것도 있다. 한국의 단체여행 상품을 통해 오신 분들이 내린다. 하코다테는 개인 여행객으로 오기 어려운 곳이다. 후쿠오카에서 렌트카나 기차를 통해 와야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케이블카 앞에 대기 줄이 있다. 케이블카는 대형으로 알프스에 위치한 몽블랑 같은 유명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는 크기이다. 한 번에 50명 가까이 태울 수 있을 것 같다. 여행 중 처음으로 심한 외로움을 느꼈다. 다들 커플로, 가족끼리, 단체로 와서 케이블카를 타고 기대감에 부풀어서 각자의 언어로 떠드는 와중에 나는 혼자이며 누구와 이 기대와 경험을 나눌 수도 없을 것이다. 열흘 동안 한국어로 누구와 떠들어본 적이 없다. 문에 붙어서 점차 드러나는 하코다테의 시내 전경을 보면서 올라가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20여 년 전 혼자 도쿄의 오다이바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모노레일을 타며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다. 그때도 하루 종일 구경을 하고 돌아가는 커플과 가족이 가득한 모노레일에서 혼자 앉아 도쿄만의 야경을 보면서 같은 생각을 했다. ‘아, 절대 혼자 여행하기 싫다.’ 이런 감정이 혼자 여행 떠나는 것을 망설이게 만든다.

전망대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야경을 안에서도 볼 수 있고, 밖에서도 볼 수 있으며, 밖도 최소한 3층으로 나뉘어 있다. 여기를 방문하는 관광객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전망대 뒤쪽에는 버스로 올라온 사람들이 연이어 내린다. 건물 내에는 식당과 기념품 가게가 큰 규모로 들어서 있다. 가장 높은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아직 어둑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있다. 가장 높은 곳에는 하코다테 시내 방향 뿐 아니라 반대편의 혼슈 본토 방향도 전망이 가능하다. 광활한 바다, 남북으로 나뉜 섬들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어서 야경이 아니더라도 무한한 공간 감을 느끼기에 좋다. 이곳은 위도가 서울보다 한참 북쪽으로 거의 백두산과 같다고 한다. 여름철에는 한참을 기다려도 해가 잘 떨어지지 않는다.

둘러보는 사이 관광객들이 점점 늘어나서 이미 좋은 자리는 사람으로 빼곡한 이쑤시게 통처럼 되어 버렸다. 높은 자리에는 계단이나 바닥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조용하게 감상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돌아다니다 실내에 커다란 통 유리창으로 전경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전망대 위쪽보다 위치 상 약간 낮기도 하고, 서서 봐야 하기에 사람이 없었다.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졌지만 그 속도는 생각보다 더뎠다. 야경은 모조리 깜깜해져야 밝게, 반짝반짝 빛난다.

깜깜한 하늘에 빛나는 야경을 보고 싶었지만, 이미 내려가는 케이블카를 타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저 줄을 서서 차라리 내려가는 케이블카에서 야경을 감상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느긋하게 깜깜해지긴 기다렸다가는 완전한 야경을 볼 수 있겠지만 왁자지껄 떠드는 가족 여행객들 사이에서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유일하게 혼자 올라온 사람처럼 보이는 와중에 그 무리 속에 줄을 서 있기 싫었다. 서둘러 내려왔다. 완전한 야경을 못 본 것은 다시 여기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케이블카 정류장에 내려와서 서쪽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가면 유명한 관광지 거리가 나온다. 다만, 밤에 혼자 걷자니 무서운 느낌도 들었다. 시장통 같은 전망대에서 순식간에 사람들이 없는 어두컴컴한 길거리로 풍경이 바뀌기도 했고 나타나는 건물이 오래된 교회 등 종교 건물이라 왠지 모를 음산함을 주기도 했다. 어두운 거리를 오래 걷지 않고 유명한 비탈길 하치만자차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나처럼 야경을 빨리 보고 내려와 하치만자카로 향하는 사람이 한 두 명 있었다. 너무 떨어지지 않게 따라가기로 한다. 하치만자카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항구의 풍경이 아름답다. 낮에는 사람이 많아 사진 찍기 어렵다는데, 늦은 시간이라 사람이나 지나다니는 차도 거의 없다. 카메라 노출 시간을 최대로 해서 마음 껏 찍을 수 있다. 저 멀리 빛나는 항구의 야경이 ‘인공물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천천히 고개를 걸어 내려온다. 조금 더 체력이 있거나 같이 기운을 내게 해줄 일행이 있으면 더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저녁을 먹지 않았기에 배가 고팠다. 저녁은 럭키 삐에로에 가기로 했다. 문을 연 식당도 많지 않을 것 같았다. 해산물을 먹을까 고민도 되었는데 식당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어려웠다. 럭키삐에로는 하코다테에만 있는 패스트푸드 체인으로 햄버거 외에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다. 곳곳에 체인점이 많았고 숙소 옆에도 커다란 점포가 있었다. 신기하게 매장 옆에 바로 옆에 또 다른 럭키삐에로가 있었다. 프렌차이즈 입점 거리 제한 같은 것 없이 매장을 내나 싶었다.

대표적인 메뉴 치킨버거와 치즈듬뿍 후렌치프라이를 시켰다. 그렇게 색다를 것 없는 맛인데, 패스트푸드의 저렴한 가격에 나쁘지 않은 음식, 그리고 편하게 앉을 수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 풍의 테이블이 있어서 좋았다. 하코다테에 오면 한번은 가볼 만 하다. 물론 두 번은 오지 않을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앞에 멋지게 생긴 스타벅스 건물이 보였다. 아마 옛날 창고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것 같았다. 몇 명 있지만, 딱히 들어가보진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누웠다. 아까 이야기를 주고 받던 지구 반대편에서 온 분들은 보이지 않는다. 도미토리룸은 조용하다. 저녁 시간에는 모두 커튼을 처 놓았다. 밖에 놓인 신발 수로 방에 몇 명이나 방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사람이 많지 않다. 백 년이 넘은 오래된 건물, 높은 위도, 지구에서 제일 빠르게 달릴 수 있는 해저 터널 그리고 북두칠성과 외로움을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다. 내일은 더더 북쪽으로, 북두(호쿠토) 특급 열차를 타고 이 여행의 종착점을 향해 올라간다.

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도쿄, 센다이

호텔 토에이 유자와의 오래된 객실 창문으로 햇살이 강하게 들어온다. 언덕배기에 위치한 호텔은 산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을 마을에서 처음 맞이한다. 아무리 기억해도 조식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먹었더라면 어제와 같은 것이 나왔을 것이다. 석식은 주지만 조식을 안주는 패키지라니 아무래도 이상하다.

일년이 지나 흐려진 내 기억은 체크아웃 후 호텔에서 역으로 향하는 내리막 길부터 시작된다. 길 양쪽에서 뿜어져나오는 열기가 올라와 한증막 터널을 이루고 있다. 놀랍도록 덥다. 아침부터 이리 더운 것은 후끈 달아오르는 하룻밤 사이에 여름이 빨리 찾아와서가 아니라 호텔에서 흘러내리는 뜨거운 온천물 탓이다. 일년 내내 이렇게 따뜻한 온천물이 흐르니 겨울에는 스키와 온천이라는 훌륭한 관광 상품이 완성될 수 있다.

이 마을에서는 더 할일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스키장이 위치한 고원을 보고 왔어야 된다는 아쉬움이 조금 남지만, 아마 그랬다가는 무언가를 포기했어야 했다. 500엔의 사케 시음회를 한번 더 가져볼까 하다가 허리의 건강을 염려한다. 탈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의 기차를 타고 도쿄로 향한다. 에치고 유자와 역에서 우에노 역까지 가는 열차다. 어제 신칸센에서 신칸센으로 갈아탔던 다카하시를 지나 사이타마를 뚫고 간다. 대전에서 부산 정도의 거리로 중간에 정차하는 역이 많지 않아 우에노까지는 금방 닿을 수 있다. 도쿄 와이드 에어리어 패스라는 철도 패스를 사면 올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에치고 유자와 역 까지이다. 도쿄에 단기 방문하는 관광객이 올 수 있는 가장 먼 거리라는 의미이다.

도쿄 근교, 근교지만 우리나라의 경기도보다 훨씬 넓다, 에 들어서자 끝없이 펼쳐진 나트막한 건물의 바다가 창밖으로 보인다. 도쿄 북쪽의 이타바시 구 옆을 지나갈 때 괜히 15년 전에 잠시 살았던 위클리 맨션의 위치를 찾기도 한다. 중년의 나이가 되니 청춘의 기억과 그 기억이 때를 묻힌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립고 애틋하다. 그리고 그 것을 15년만에 볼 때는 더욱 그렇다. 찾아가 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러려면 도쿄 일정 전체를 그 곳에 써야 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으로 미뤄둔다. 7개월의 휴직 기간에는 하고 싶은 것을 많이 하며 지냈다. 일년이 지나 다시 해야할 것으로만 빡빡한 인생이 되었다. 다시 공수교대 되어버린 나의 인생은 이대로 괜찮은가.

도쿄에서는 숙박을 하지 못한다. 도쿄 이후 이어지는 북쪽의 일정은 지금까지의 일정보다 한층 빡빡하다. 오늘은 센다이까지 올라가 숙박을 한 후 이후 홋카이도까지 쾌속 직진이다. 따라서 도쿄의 관광 명소를 가지 못하고 신칸센이 정차하는 우에노와 도쿄 역만 잠시 들른다. 국립 서양 미술관을 보고 싶었지만, 마침 월요일이라 휴관일이다. 대신 도쿄 국립 박물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다섯 주 동안 도쿄 살이를 할때는 박물관, 미술관 같은 곳을 방문하지 않았다. 귀국 직전 들른 나라 국립 박물관을 살펴보고 크게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 여행 중 들를 수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은 모두 가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다.

우에노역을 처음 와본적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지하철인 야마노테센을 타고 오고 갔었다. 신칸센 정류장에서 지하철 정류장으로, 또 지하철 정류장에서 실제 우에노 공원 입구와 복합 쇼핑몰로 이어지는 길은 한참을 걸어도 끝이 없다. 다만 우에노 역으로 나가는 길은 고속도로 톨게이트 처럼 좁은 계단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있어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 신칸센 정류장을 빠져나오자마자 등장하는 코인 락커에 짐을 맡긴다. 조금이라도 짐을 매고 걷는 걸음 수를 줄여야 한다. 박물관을 관람하는 일은 허리디스크 환자에겐 다소 모험이다.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에치고 유자와에서 두 시간을 달려 좁은 계단을 올라와 마주친 우에노 공원은 다른 우주 같다. 산책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 도쿄 관광에 나선 외국(특히 서양) 관광객, 시끌 벅적한 학생들 무리로 난리법석이다. 동쪽 입구는 역과 붙어있어서 단체 관광의 집합 장소로 많이 이용되는 것 같다. 입구로 들어서 중앙 광장까지 간 후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면 가운데 커다란 분수를 지나 2차선 도로를 건너 미술관이다. 해가 나진 않았지만 높은 습도와 기온이 축 젖은 옷처럼 체력을 갉아 먹는다. 길을 건너기 전 벤치에 앉아 아침 겸 점심으로 가방에 든 빵을 먹었다. 앉을 벤치가 넉넉하지 않아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다. 물도 숙소에서 한 병 챙겨왔다.

국립 도쿄 박물관은 여러 개의 관으로 나뉘어 있는데, 커다란 중앙 건물 오른쪽으로 보이는 것이 동양관이고 동양관의 높은 층에 중국관, 한국관이 포함되어 있다. 사실 다른 곳 보다는 한국관을 보기 위해 방문했다. 한국보다 한국의 국보급 유물이 더 많다는 일본. 내 생각이지만 소장한 것은 어머 더 많을 테지만 유물 반환 문제 등 복잡한 이슈가 되는 것이 싫어 한국관에 많은 것을 전시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관부터 시작해서 높은 층부터 하나하나 내려오면서 전시를 관람한다. 한국, 중국, 그리고 중동, 페르시아 등 점점 서쪽의 유물들이 나타난다. 기증 받은 실제 미라도 전시하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났을 많은 유물들이 대한 해협을 건너 이곳에서 전시되고 있다. 어떤 유물은 임진왜란때 약탈되거나, 어떤 유물은 1800년대 도굴꾼에 의해 도굴되거나 (안타깝게 한국 지리와 전설에 밝은 한국인 도굴꾼이 많았다고 한다), 어떤 유물은 일제시대 한성에서 번화한 외국인 대상의 골동품상에서 은밀하게 팔려 이 곳에 왔을 것이다.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 사람과 유물 모두 많이 건너갔지만 유물은 먹먹하게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본식 이름을 달고, 그 유래와 발굴 부분의 설명이 생략된채 놓여 있다.

동양관에서 본관으로 이동하니 사람이 한층 더 많아졌다. 일본의 유물을 중심으로 근대 일본 미술 전시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아마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 하나하나 꼼꼼하게 둘러봤다.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어느 사이에 점심 시간을 넘었다. 내 허리 디스크 시계 (세 시간을 넘으면 서 있을 수 없다)는 이제 그만 둘러보라고 신호를 준다. 앉아서 쉴 공간이 실내에는 마땅치 않다. 덥고 습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가 정원의 벤치에 잠시 앉아 사람들을 둘러보며 쉬었다. 놀라운 다양성이 보였다. 인종, 연령과 같은 것은 물론이고 헤어스타일, 패션, 소지품, 신발까지 다르다. 아마 하고 있는 이야기도 다르고, 방금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까지 다를 것이다.

얼마전 청와대 관람을 다녀왔다. 멀리 비행기를 타고 오신 서양인도 몇 명 있었지만 대부분은 한국인이고, 아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긴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다양성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문화, 인종적 다양성이 크게 확대 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일본이나 혹은 미국이 겪는 문제와 잠재력을 동시에 가지게 될 것이다. 나에게 문제와 잠재력은 기회와 폭발적 사회 변화와 동의어로 들린다. 정확히 150년 전 한국과 일본이 당면한 변화, 그리고 다른 선택을 다시 떠올린다.

식사는 멀리 갈 수 없어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우에노 역으로 가는 길에 있는 식당을 검색했다. 우에노 역에 있는 유명한 오므라이스 전문점에서 먹기로 한다. 타이메이켄이라는 집이다. 평소에는 대기가 많기로 유명하지만 이미 2시가 넘은 시간인지라 별다른 대기 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대로다. 한국의 중국집에서 먹는 노른자를 터뜨린 계란 후라이 오무라이스와는 다른 정성을 다한 보기 좋은 요리가 나오는데, 문제는 너무 양이 적어서 하나를 다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심지어 같이 먹을 반찬도 전혀 없다.

주어진 시간이 한 시간 밖에 없다. 일단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우에노 역에서 한 시간 동안 둘러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JR패스를 이용해 방문 가능한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둘 중 하나다. 야마노테센을 타고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내려가거나. 센소지, 도쿄타워, 롯폰기, 긴자, 토라노몬(예전에 다녔던 회사가 있다), 스카이트리, 오다이바의 대강 위치를 머리 속에 넣고 가늠해보았다. 다 어렵고 까딱 잘못하다가는 신칸센 열차를 놓칠 수 있다. 그럴 경우 규정 상 내가 예약한 열차가 센다이역에 도착한 시간 이후 열차를 다시 예약해야 한다. 얼마나 걸을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험을 하지 않기도 했다. 야마노테센을 타고 유라쿠초역까지 내려와서 도쿄역까지 걸어오기로 한다.

유라쿠초 역까지 야마노테센을 탔다. 그렇게 붐비진 않았다. 드문드문 솎아낸 빈자리가 있어 체면이고 뭐고 얼른 앉았다. 한국에서는 어지간해서 자리에 잘 앉지 않는다. 18년 전 놀랍도록 똑같은 풍경의 야마노테센 열차를 탓던 일이 떠올랐다. 여성 전용칸에 타지 않도록 조심했던 일, 할머니들이 뽀글이 파마를 안한다고 신기해했던 일 들이 생각난다. 야스쿠니 신사를 보고 무도관을 거쳐 황거 공원을 지나 도쿄역까지, 그리고 조금만 더 힘내보고자 긴자까지 걸어왔던 기억이 있다. 지하철 기본 요금이 2천원에 가깝다며 말도 안되는 물가라고 생각했다. 지하철 요금을 아끼기 위해 정말 말도 안되는 거리를 걸어다녔다. 도쿄역에서 롯뽄기까지, 롯뽄기에서 신주쿠까지. 지금은 일본의 지하철 요금이 비싸보이지 않는다. 그 때 걸어왔던 그 길을 지나간다. 도쿄역에서 황거까지의 마루노우치, 그리고 철로를 건너 긴자는 현대 일본의 심장이다. 비싼 부띠끄 샵, 명품 상점가, 고급 외제차들과 세련된 옷차림의 사람들로 가득하다. 일본에서 가장 비싼 땅이다.

나는 많이 변했다. 직장과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던 젊은이에서 어느 덧 15년 동안 근속한 중역?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아이와 같이 일본 여행을 하고,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때는 전재산이 3천만원이었지만, 지금은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대신 걱정거리는 3배 쯤 늘었고, 온전한 내 시간은 5배 쯤 줄었다. 체력은 10배쯤 줄었다. 앞으로 무엇이 늘어나고 무엇이 줄어들지를 생각해보면 약간의 우울감에 빠진다.

옛날 서울역과 똑같이 생긴 도쿄역에서 다시 야마노테센을 타고 우에노 역으로 간다. 기차를 놓칠까봐 서둘렀다. 야마노테센이 왜 이리 늦게 오나 배차 간격에 불평 했다. 다시 올때와 똑같은 풍경의 기차를 타고 올라간다. 같은 사람들이 타고 뱅뱅도는 순환선인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다. 다행히 시간에 맞춰 우에노 역에 도착했다. 우에노 역에 맡겨 놓았던 배낭을 찾는다. 오무라이스로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달래려 편의점에서 빵을 한 개 샀다. 딱 편의점에서 빵을 한 개 살 시간이 남았다. 플랫폼에 도착하자 마자 정시에 들어오는 신칸센을 타고 다시 센다이로 달려간다. 짧은 도쿄 나들이의 마무리다.

센다이는 중간 기착지이다. 동북권에서 가장 큰 도시이므로 고를 수 있는 숙소가 많고 쌀 것이라 생각했다. 근처의 관광지로 야마데라 릿샤쿠지, 히라이즈미 주손지 등을 살펴봤는데, 신칸센 라인에서 한참들어가야 한다. 1박을 빼서 이런 것들을 둘러보기보다는 하코다테까지 올라가서 홋카이도 내에서 2박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아오모리, 아키타, 이와테, 센다이는 시간이 나면 렌터카 여행을 해봐도 좋겠다. 젊어서는 지구를 반바퀴 쯤 돌아 먼 곳을 가보고, 이곳은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올 생각이다. 체력 빼고 여행에 불편함은 전혀 없는 나라니까.

센다이까지는 한시간 반 정도 걸린다. 300km 가 넘는 거리를 한시간 반이라니, 비싼 기차 가격이 아니라면 통근을 해도 될 것 같다. 도쿄에서 4시 넘어 기차를 탔고, 센다이에 도착하니 해가 저물어 간다. 후쿠오카에 첫 날 묵었던 숙소였던 캡슐호텔 체인이 마음에 들어 동일 체인의 센다이점을 예약했다. 역에서 먼 거리에 위치했다. 걸어서 금방 가리라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먼 거리다. 역에서 나와 넓은 육교를 건너고 출구가 보이지 않도록 펼쳐진 아케이드 거리 한참을 걸어간 후에 다시 횡단보도를 여러번 건넌 후에 도착했다. 중간에 고쿠분쵸라는 유흥가를 지난다. 밤에 걷기 좋은 거리가 아니다. 이렇게 멀리 있을 줄 알았으면 역 근처의 숙소를 예약할 걸.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체크인을 위해 카운터로 갔다. 후쿠오카점은 체크인부터 무인이었는데 여긴 카운터를 운영한다. 오늘의 입실 손님들의 목록을 출력해 놓은 종이가 놓여 있다. 내가 누군지 알려준다. 생각보다 한국인들이 많았다. 관광객이라고는 잘 찾아오지 않는 이 곳에 무엇을 위해 온 것일까? 그래, 일년에 2500만명이 찾는 일본인데, 누군가는 이 곳까지 와서 우설을 먹고 가지 않겠나.

사전 조사에 따르면 센다이는 우설과 다테 마사무네, 라쿠텐의 도시이다. 우설은 소의 혓바닥으로 규동 처럼 밥 위에 올려 먹거나 그 자체로 구워서 먹는 것 같았다. 센다이 역 내 식당에서도 우설 덮밥?을 잔뜩 팔고 있었다. 다테 마사무네는 센다이 번의 영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심복이자 임진왜란에 참여했다. 두 달 전 코레일의 내일로 티켓을 이용해 방문한 진주성 전투에 그도 참전했다. 라쿠텐 이글스에서는 김병현이 잠시 뛰었다. 걸어오는 아케이드에는 라쿠텐 이글스의 선수들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깃발에 인쇄되어 걸려있었다.

간단히 씻고 침대에 누웠다. 박물관 투어, 그리고 숙소까지 걸어온 탓에 나갈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었다. 원래는 우설을 먹고 싶었으나 근처에 우설을 파는 적당한 곳을 찾기 어려웠다. 특히 혼자 먹을 수 있는 곳이 어딘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소 혓바닥과 내 혓바닥이 닿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늘 안전한 선택을 하는 나는 걸어오는 길에 입구 옆에서 본 스키야를 가기로 했다. 들어가서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하고 앉아 있었더니, 직원이 오더니 여기서 앉아서 먹는지 물어봤다. 그렇다고 했더니 음식을 가져다 주겠다고 했다. 알고보니 키오스크는 테이크아웃 전용이고 앉아서 먹는 사람을 위해서는 자리마다 주문 테블릿이 부착되어 있었다. 테이크아웃으로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있으니 의아해서 물어봤나보다.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오른쪽으로 대형 환락가 고쿠분초 입구가 있었다. 유흥가에 적절한 옷차림을 한 여성들이 건물 입구마다 서 있다. 신기한 것은 우리나라처럼 돌아다니거나 걸어다니는 사람에게 접근하여 호객 행위를 하지는 않는다. 나름대로 규칙이 있는 것 같다. 일본 답게 절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 것. 그 것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차라리 이런 대형 환락가에 유흥 업소를 밀집시켜 놓고, 다른 곳에 허가를 내주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풍경을 원하지 않으면 이곳에 오지 않으면 된다. 나처럼 싼 숙소를 찾아다니는 여행객은 항상 이런 풍경을 지나게 된다. 후쿠오카에서도, 센다이에서도, 삿뽀로에서도.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누워서 넷플릭스를 뒤적뒤적하며 영화를 보다 잠들었다. 오늘은 에치고 유자와에서 센다이까지 이동하고, 도쿄 국립 박물관과 도쿄역 일대를 돌아본 것이 관광의 전부였다. 박물관과 신칸센이 하루를 다 빨아들였다. 내일은 센다이 성 유적을 둘러볼 계획이다. 그리고 홋카이도로 건너간다. 여행의 끝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