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배낭여행 2009 [6]

07.19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

따뜻한 쿠셋 칸의 꼭대기에서 잠이 든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사이엔가 날이 밝아 햇살이 커튼을 뚫고 벽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6인용 쿠셋이라 사람이 가득 차면 복잡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데, 다행히 나랑 동행 둘이서 전체를 독차지 할 수 있어서 여유 있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불행히 이후에는 항상 복닥복닥 거리는 쿠셋 칸에서 잤다.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확인한 사항이긴 했지만 동유럽 유레일 패스로도 쿠셋을 이용하려면 항상 추가금을 내야 했다. 계산을 해본 결과 나처럼 오스트리아에서도 열차를 이용할 것이라면 동유럽 유레일을 사는 것이 낫고, 헝가리, 폴란드, 체코 같은 국가들에서만 열차를 이용할 것이라면 그냥 그때그때 돈을 내고 티켓을 구입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이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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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에서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이윽고 차장이 안에 초코렛이 든 빵과 커피, 그리고 어제 맡겨두었던 여권을 들고 잠을 깨우기 위해서 찾아왔다. 열차는 곧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한다. 오스트리아의 화려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도시와 전원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풍족함과는 다르게 헝가리에 들어서자 조금 다른 창 밖의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나지막하고 획일적인 건물들, 잘 관리 되지 않은 외벽과 정원 등으로 여름인데도 황량함을 느끼게 했다. 여기부터는 구 동유럽으로 분류되던 국가들이다. 코카콜라는 여기서도 마실 수 있겠지만 그 맛은 서쪽의 그것과는 다를 것이다.

열차가 잠시 서다가다를 반복하더니, 이것이 슬슬 지겨워질 무렵 둔중한 움직임으로 부다페스트 역에 도착했다. 열차를 통한 교통이 일찍이부터 발달한 유럽에서는 이러한 느낌을 사람들이 모두 일상적으로 느끼고 있으리라. 나처럼 열차를 평생에 손꼽아 볼만큼 타본 사람은 옛날 흑백 영화 속에 반복되던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의 공간 기차역이 연상되어서 다소 신기했다. 아주 오래된 역사와 아주 오래된 플랫폼이었다.

가득 짐을 채워 넣은 배낭을 둘러매고 내리자, 열차 안이 오히려 조용했다 싶을 정도로 번잡하고 시끌시끌했다. 아침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외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다가가서 숙박이 필요하냐고 물어보는 소위 삐끼들이 넘쳐난다. 빈 방을 놀리느니 여행객들을 재워주고 얼마간의 돈을 받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일반인들까지 이러한 숙박업에 종사하고 있는 듯 하나, 역시 허가를 받지 않는 것은 다 불법으로 간주된다 한다. 안전과 가격을 위해서라면 정식으로 운영되는 유스호스텔을 찾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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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충한 날씨에 비까지 내린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유로화를 헝가리 화폐로 바꿀 수 있는 환전소를 찾는 것이다. 역에서 운영하는 환전소는 항상 비싸다. 아침 일찍이지만 근처의 괜찮은 환전소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서쪽 중심가를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 이른 시각, 게다가 일요일이라 문을 연 환전소는 몇 없었지만, 그나마 있는 것 중에 괜찮은 것들을 추렸다. 우리나라 주유소들처럼 입구에 어떤 비율로 교환이 가능한지가 적혀있었다. 한 시간 쯤 돌아다니면서 살펴보고 가장 나은 곳에서 일단 내일까지 쓰이게 빠듯할 것 같은 양을 교환했다. “이렇게 환전소가 많은데, 나중에 다시 바꾸면 되지 머.”라는 생각이 이었는데, 이 때문에 내일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된다 – _-

그 다음으로는 하루 숙박할만한 곳을 찾아야 했다. 내일 저녁에 부다페스트를 떠나 크라코프로 다시 야간 열차를 타고 이동하게 되기 때문에 하루 숙박이면 충분했다. 무작정 떠난 여행이기에 별로 숙소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지 못했다. 게다가 탄력적으로 일정을 조절할 수 있게 처음과 끝 여행지에서만 숙소를 예약했고 나머지는 다 직접 현지에서 구해야 하기 때문에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일단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여행 책자에서 괜찮을 것 같은 민박 (가장 저렴한)에 전화를 걸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민박이라고 하고, 위치도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을 것 같아서 연락을 해봤더니, 운이 좋게 오늘 남는 방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워낙 한국인이 많이 찾는지 한국어로 인사도 하고, 가격도 한국어로 말해주신다.

3정거장 정도를 지하철로 이동해 숙소가 위치한 곳으로 향했다. 지하철이 너무너무 오래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영국을 제외하고는 전 유럽에서 가장 오래 전에 건설된 지하철이라고 한다. 한 100년은 되었을 것 같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숙소에서 마중을 나와계셨다. 역에서부터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해서 이러한 픽업 서비스가 없으면 찾지 못할 것 같았다. 환전을 위해 배낭을 매고 돌아다니느라 너무 진을 뺐는지, 막상 숙소가 정해지고 나자 다시 나오는 일이 쉽지 않았다. 잠도 5시간을 채 자지 못했고, 자리도 불편 했던 지라 편한 침대 위에 누우니 잠과의 싸움에 이겨낼 수가 없었다. 일단 몇 시간이라도 자고 그리고 다시 나서기로 했다. 이때가 오전 11시 남짓일 것이다.

헝가리, 중심가를 누비다

한참을 눈을 붙인 후 일어나, 오후의 한 중간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다페스트에서의 일정이 고작 1박에 불과해서 한정된 볼거리로 제한을 두어야 했다. 근교의 관광지는 찾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시내에 위치한 중심 시설들만 모아서 보아야 했다. 이래서야 패키지 관광과 뭐가 다른가? 싶기도 했지만, 애초에 탓할 것은 짧은 일정으로 기획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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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보면 훨씬 웅장할 것 같다 

나름대로 눈에 익은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이다. 영국 국회 의사당에 이어 두 번째로 거대한 국회 의사당 건물이라고 한다. 헝가리도 한때 부강한 나라였던가? 이쪽에서 강을 건너면 이 국회 의사당 건물과 호텔들이 밀집 되어있는 중심가가 나온다. 일단은 중심가 쪽은 내일 오후에 둘러보기로 하고 오늘은 이쪽의 다소 오래되어 보이는 유적지들을 살펴보기로 결정했다. 다소 늦은 오후였지만, 이때가 일요일이어서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웅성웅성 대는 소리와 함께 우리에게는 소매치기 주의보가 내려졌다. 워낙 치안이 좋지 않기로 소문 난 나라인데다가,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특히 그런데, 우리는 먼 이국에서 온 꼬꼬마 동양인들로 좋은 사냥감 이었다 – ㅅ-.

오래되어 보이는, 옛날 아마데우스 시절에 나무 바퀴로 된 마차가 다녔을 것 같은 길을 한참 올라가보니 다리와 강 건너편의 현대식 건물이 차츰 멀리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도쿄나 뉴욕의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현대식 도심이 아니면 세련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그런 곳은 전 세계에 도쿄나 뉴욕 밖에 없다. 도심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러한 한적한 도심? 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서울도 꽤나 도심이고, 꽤나 세련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커다란 강이 도시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모습이 닮아서 문득 서울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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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강, 넓은 평야

저 멀리까지 지평선이 보이는 모습이고, 건물들은 이를 방해하지 않는다. 강을 건너는 다리들은 꼭 필요한 곳에만 있어서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 차 보다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더 편리한 도심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모여 살기를 좋아하지만, 또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사는 것도 좋지 않아 보인다. 유럽의 도시 같은 한적함이 서울에는 없는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 느끼는 활기찬 도시라는 인식이 거기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결국 사람이 도시를 설계하고, 사람이 분위기를 만든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쉽게 올라올 수 있는 언덕을 힘겹게 걸어서 위쪽 부분에 다다르자, 어부의 요새가 나타나고 또 그 조각 상이 나타났다. 어부가 물고기를 잡는 어부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다른 어부는 없지만, 조각상은 어부랑은 또 전혀 상관없이 생겼다. 외세의 침입에 맞서 여기서 싸워 지켜냈다고 하는데 언덕을 올라오는 곳곳에 성벽과 외부로 공격할 수 있게 뚫어놓은 구멍들을 봤는데, 여기가 요새의 역할을 하는구나. 이렇게 넓은 지평선이 보이는 평야에 그나마 언덕 같은 곳이라고는 여기 하나 뿐.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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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게임에 나오는 레벨 좀 높은 캐릭터 같다

일단 언덕을 올라오느라 힘들었으니까 여기서 콜라 하나를 사 먹으면서 휴식. 또 엽서도 하나 사서 기념품으로 삼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오늘 저녁은 뭘 해먹을까를 고민했다. 오스트리아의 우리나라보다 훨씬 비싼 물가 때문에 잘 먹지도 못하고 지내왔는데, 이제 물가가 저렴한 헝가리에 왔으니 뭔가 영양 보충을 해야 할 듯 싶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까 숙소에서 나올 때 지하철 역 근처에 테스코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곳에서 장을 봐서 숙소에서 무엇인가 먹는 것이 좋은 생각 같아 보였다.  여행 내내 테스코는 이곳 저곳에 있었다. 일단은 해가 서서히 저물기 시작했고, 더 이상을 돌아다니기 너무 피곤한 관계로 아까 올라오면서 봤던 다리를 건너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식욕, 그리고 수면욕

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해서 움직이기도 힘들었고, 노점상이나 공연 등이 있었지만 부지런히 걸어 지난 후, 보이는 상점에서 맥주를 하나 사서 마셨다. 일정 내내 맥주의 가격은 서울보다 훨씬 저렴했다. 심지어 물가가 우리나라보다 비싼 오스트리아에서도 그랬는데 덕분에 생수보다 맥주를 훨씬 더 마시게 됐다. 날씨가 더울 때 사서 마시는 맥주의 시원한 맛은 그나마 오래 걸어 다닐 수 있는 에너지가 됐다. 취기가 오른 얼굴로 대낮에 돌아다니는 것은 또 색다른 경험이었지만, 여기 사람들은 그게 일상인 듯 했다.

기분 나쁜 경험 하나가 문득 기억이 난다. 이윽고 지하철 역에 들어섰는데, 어느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년이 나가와서는 내가 지하철 표를 잘 못 샀는데, 원래 가격의 30%를 할인해서 주겠다는 것이었다. 표를 보니, 한눈에 봐도 스캐너와 컬러프린터를 이용해 만든 조잡한 위조였다. 더욱이 잘 못 샀으면 역무원한테 환불 받으면 되지 왜 나한테 와서 이걸 싼값에 팔아 넘긴담. 아무튼 이런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사기가 여기저기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속지 않도록 조심할 것. 괜히 몇 백 원 아끼려다가 벌금만 몇 만원 내는 수가 있다.

자판기에서 파는 ‘정품’ 티켓을 구입한 후 우리가 도착했던 기차역으로 다시 돌아갔다. 여기서 숙소까지 걸어가면서 중간에 위치한 테스코에서 장을 보기로 했다. 우리나라에도 삼성-테스코에서 합작해서 만든 홈플러스가 있다. 지금은 물론 삼성이랑은 아무 관계도 없지만. 이곳 테스코에서 파는 물건 중 우리나라보다 저렴한 것들은, 육류, 치즈, 빵 같은 서양식의 기본 재료가 되는 것들은 우리나라의 반값, 1/3 정도에 불과한 것들도 있었다. 덕분에 돈이 모자라게 될 걱정 없이 환전했던 이곳 화폐를 마음껏 쓰면서 저녁식사를 푸짐하게 만들 수 있었다. 뭐, 그래 봐야 햄이랑 샌드위치 정도지만.

어제 거의 수면을 취하지 못해서인지, 산 물건들을 가득 들고 돌아가는 길이 꽤나 멀고 힘들었다. 앞에도 썼지만, 단기 여행이 아닌 이상해야 충분히 먹고, 충분히 자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여행 동안 최초의 우리만 쓰는 숙소에서 충분히 쉬고 잘 것을 다짐하면서 숙소로 들어와 하루를 마무리 했다. 내일은 짧았던 이곳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크라코프로 이동한다.

동유럽 배낭여행 2009 [5]

07.18

짤쯔부르크에서 혹한을 만나다.

설마 여름에 이정도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배낭 속에 든 옷 중 가장 두꺼운 것이라고는 얇은 홑겹의 아디다스 윈드브레이커뿐. 그나마 이마저도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추위에 충분히 대비한다고 터질듯한 배낭안에 우겨넣고는 나의 철저한 준비성에 혼자 감탄했었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하게 이 마저도 부족한 날씨였던 것이다. 전날 할슈타트에서 짤쯔부르크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짤쯔부르크를 향해서 몰려오는 거대한 먹구름을 봤어도 이는 여름에 지나가는 소나기 정도 일 것이라 생각했다. 한국과는 다르니까 조금 더 심해봐야 강풍을 동반한다는 것 정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쌀쌀한 한기에 몸이 뻣뻣해졌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한참하고서도 멍한 정신을 수습할 수 없었는데, 당장 하루 숙박 예정으로 체크인했기 때문에 부랴부랴 아침식사를 하고 또 짐을 싸서 나가야했다. 하지만 문 밖은 밤사이에 급속도로 온도가 떨어져 최소한 5도에서 10도 정도의 날씨인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비까지 부슬부슬 오는 상황이어서 선듯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기가 힘이 들었다. 일단 식비를 아끼기 위해서 최대한 배불리 먹은 후 체크 아웃 시간에 간당간당해서 숙소를 나섰다. 오늘 밤 2시에나 도착하는 야간 열차를 타기까지는 아직도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고, 또 너무 추웠다.

짤쯔부르크?

짤쯔부르크 최고의 관광상품은 무엇일까? 아마 여러가지 들수 있겠지만, 최고는 “모짜르트”라는데 많이 공감할 것이다. 모짜르트는 짤쯔부르크에서 태어났다. 향후에 활동 무대를 빈으로 옮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기서는 아직도 그의 생가 등 많은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하루동안 돌아보고 나서야 알게된 이야기 이고, 아침 나절에는 짤쯔부르크에 뭐가 있는지 뭐가 유명한지도 모른채 무작정 실내에서 둘러볼 수 있는 게 없을까 찾아 헤매면서 걸었다. 아니, 24시간 버스 이용권을 전날 구입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그래, 성당안은 따뜻하겠지.

뭔지도 모를 건축물이, 그것도 오래되어 보이는 건축물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광장에서 내려 아무곳이나 돈을 안내도 되는 성당을 찾아 들어갔다. 흐린 날씨에도 사람들은 어디서 이렇게 쏟아져 나왔는지 바글바글 했는데, 물론 난방같은 것은 있을 턱이 없고 바람만 막아 주는 것 만으로도 주님에게 감사하면서 웅웅대는 소리를 들으며 의자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사람이 몸이 녹인다, 추위에 몸이 언다. 2가지 상태만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제 3의 상태, 몸의 에너지를 필사적으로 쓰면서 더 추워지지도 더 더워지지도 않은채로 유지만 하는 상태가 있다는 것을 여기서 알았다. 이 성당의 차가운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 바로 그 상태였다. 이왕 얼어죽을거 용기를 내보기로 하고 성당을 나섰다. 기부금을 받고 있는 할머니의 시선이 꽃혔지만, 무시하고 그냥 걸어나왔다.

이 건축물 군집소 뒤쪽으로는 높다란 언덕 위에 성이 한채 서 있었다. 어제 숙소에서도 사진을 찍으러 나갔지만 실패하고 돌아온 이 성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야 하는데 돈!을 내야했다. 아직 젊은 우리들은 걸어 올라가서 걸어 내려올수 있는 방법이 없나 찾아봤지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옛날 일본에서 에노시마를 방문했을때, 걸어올라가는 길 옆에 유료 에스컬레이터를 운영하는 걸 본 적이 있었지만,  그 때는 양쪽 옵션이 다 가능했었다. 이런 악랄한 오스트리안들!

일단 언덕배기가 너무 추웠기에 얼른 내려왔다. 이 이후의 일정은 사실 기억이 잘 안나는데, 너무 추워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뭔가 내려오는 길에 엽서를 하나 샀던 것 같고, No Kangaroo in Austria 라고 써진 티셔츠가 가지고 싶었다. 이왕 24시간 무료인거 버스를 타고 아무곳이나 갈데까지 가보자해서 종점을 돌아오기도 했다. 그래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이 많이 남았다.

동행은 아까 그 성에 미련이 남았나보다. 나는 그냥 안올라가보기를 원했고, 동행은 걸어서라도 올라갈 수 있는데까지 올라가보기를 원했기에 여기서 찢어지기로 했다. 이따 다시 역, 짐을 맡겨놓은 코인라커 앞에서 보기로 했다. 사실 너무 추워서 산을 올라가는 것은 무리라고 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허리도 심상치 않게 아팠다.

방금 우리가 피신했던 성당이 보인다

최악의 자연사 박물관

나는 너무 추워서 일단 가이드 북에 추천되어있는 자연사 박물관을 들어가기로 했다. 자연사 박물관이 뭐 별거 있겠어 라면서 가이드 북을 의심했지만, 꼭 보라는 추천이 있어서 비싼 돈을 주고, 게다가 줄까지 서가면서 입장을 했다. 줄 서 있는 외국인이 하나도 없을 때부터 뭔가 의심을 하고 나왔어야 했다. 온통 꼬마와 꼬마를 데리고 온 부모들 뿐이고 나처럼 배낭여행객이 이런 곳에 오는 것은 정말정말 드물었다. 전시되어 있는 내용도 전 세계에서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괜찮았을텐데, 그래보이는 것도 영. 어설프게 고개를 좌우로 휘젓는 선사시대 맷돼지 같은 것은 Made in China 일 것 같았다. 사실 여기서 한 2~3시간은 때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시간도 안되서 마지막 전시실까지 돌았음을 알고는 도대체 이제 더 무얼 봐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광장

낮이 되어 그나마 온도가 좀 올라가는 것 같았으므로 자연사 박물관 주위에 있는 무엇인가를 좀 둘러보기로 하고 관광지도를 펼쳐들었다. 일단 가장 가까이 있는 가보고 싶은 것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광장이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오케스트라 지휘자, 마에스트로의 이름을 딴 광장으로 “뭐 사실 별거 볼거 있겠어?” 했지만 그래도 가봤다, 안가봤다 차이는 있으니까. 게다가 남는게 시간이므로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 이름에 지명이 나와있다

예상대로 분수대가 하나 위치한 조그만 광장이었지만, 음악의 도시 짤쯔부르크에서 20세기의 위대한 지휘자의 이름을 딴 광장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이 도시 사람들이 음악을 좋아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하긴, 그 정도면 세계에 자랑해도 된다. 내 똑딱이 카메라로 찍어서 시야가 좁게 나왔지만 저 뒤쪽의 단층 지형이 뭔가 케잌을 정교하게 썰어놓은 것 처럼 신기하게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를 깎아서 터널을 만들어 놓기도 했는데,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자동차가 다니기에는 너무 좁게 깎았다 싶은데다가 입구의 고풍스러운 조각 양식이 오래되어 보이기는 한다.

이런건 도대체 어떻게 깎아 만들었을까?

광장에서 다시 버스를 잡아 타고 넘실넘실 범람할 것 같은 강을 지나 미라벨 정원에 내렸다. 예전 초등학생때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본적은 있지만, 그때 배경이 되었던 곳들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을리는 없고, 그냥 이 곳이 사운드 오브 뮤직을 촬영했던 곳이구나. 하는 명성만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햇살이 화창하고 꽃들도 만개하고 이슬이 초롱초롱하고, 뭔가 새들도 지저귀고 동상의 대리석이 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한다면 영화의 모습이 떠오를 수도 있겠으나. 내가 도착했을 때 광장의 모습은 질척질척대는 바닥에 들어가기도 꺼려지는 나름 처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진도 뭔가 구도가 나와야 찍을 만 할텐데, 마치 모짜르트 장례식이 그려지는 아마데우스의 한 장면 같은 날씨여서.

  몇 십 년 전에는 줄리 앤드류스가 뛰어 다녔다

원래 활짝 개인날 정원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 찾아보았는데, 역시 이렇게 우중충하지 않다. 사진에 실망해서 방문을 안하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운이 없었던 거지. 하지만 17일간의 여행 내내 이렇게 날씨 때문에 애먹었던 것은 이때가 유일했다. 대부분 날씨는 화창하고 좋았으며 돌아다니기 괜찮은 화창한, 조금은 더운 날씨였다. 짐도 가볍게 꾸릴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여름이 여행다니기는 좋은 것 같다. 물론 선 블락을 엄청나게 사용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말이다.

음악의 성지

미라벨 공원에서 기차역쪽으로 조금 걸어가다보면, 모짜르트 생가가 있다. 21세기가 되었지만 그가 인류 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작곡가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위대한이나, 혹은 아름다운 곡을 작곡한이나, 존경할만한 작곡가라면 다른 사람의 이름이 거론 될 수 있겠지만, 천재적인 작곡가라는 것에 보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인물은 아직 이 사람이 유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가는 잘 보존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왜냐하면 나는 안들어가봤다) 세계 각국에서 모짜르트의 팬들이 기부금을 보내 이 생가를 유지 발전시키고 각종 사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입구에는 기부금을 보내준 사람들의 명단이 쭉 적혀있는데, 일본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역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일본 다웠다.

모짜르트가 태어났다. 2층에서.

모짜르트 생가를 휙 둘러보고는 다시 그 추위를 견디지 못해 버스를 타고 역으로 향했다. 역이라면 바람은 피할 수 있겠지. 아직 1시간이 남은 약속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역에서 가만히 의자에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보고 역무원들을 보고 기차 시간표를 보고 코인라커에 짐을 맡기는 사람들을 보고 동양인이라면 더 유심히 보고 우리가 탈 열차는 언제쯤 도착할지 보고 나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일행이 합류하고 근처에 있는 대형 마트에 가서 저녁 요기 거리를 할 먹을 것 그리고 열차에서 간단히 먹을 것등을 샀다. 역시 유럽은 유제품, 맥주, 육류가 너무 저렴했다. 고기를 좋아하는, 우리는 이 나라만큼 육류가 싸다면 한국에 돌아가서 얼마나 행복할지에 대해서 상상했다. 우리나라는 먹을 거에 있어서는 정말 비싼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기초 생활 용품은 저렴하고, 고급 소비재는 비싼 형태가 되어야 복지 국가에 걸맞을 텐데.

노숙자 체험

이제 오늘의 하이라이트 역에서의 6시간 노숙이 남았다. 바람을 간신히 피할 수 있는 벤치에 앉아서 2시에 들어오는 기차를 무작정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딱히 둘러 볼 수 있는 공간도 없었고 아는 곳도 없었기 때문에, 사실은 벤치에 앉아서, 혹은 운이 좋다면 누워서 6시간 정도야 금방 갈 줄 알았다. 하지만, 몸이 덜덜 떨리는 추위와 불편한 의자, 그리고 짐을 분실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한잠도 이룰수가 없었다. 더욱이 주위의 노숙자들은 어슬렁 어슬렁 다가와 담배를 달라고 청하고 따뜻한 대합실의 칸막이 공간은 그들이 점거해서 그 냄새 덕분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한번 담배를 주니 보이기만 하면 담배를 달라고 졸라대는 통에 멀찍이 도망가 있어야했다.

오스트리아면 깔끔하고 청결할 줄 알았는데, 역의 노숙자들이 많은 것은 어기다 거기나 같았다. 기차가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현명했다면 주중에 어디 머물 공간을 마련해놓았을텐데, 후회는 소용없었다. 아마 이번 여행동안 가장 힘들고 고생했던 시간이 이 짧은 6시간이 아니었나 싶었다. 군에서 비박할때보다 2배는 더 힘들었다. 그만큼 도착한 열차의 6인용 쿠셋이 그렇게 달콤하고 따뜻한 공간이었다. 몸을 누이자 마자 잠에 빠져들어 헝가리로 향하는 덜컹거리는 열차 안에서 죽은듯이 잠들었다. 그렇게 노곤한 몸을 실은 열차는 국경을 넘어 여행의 2번째 나라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