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st] 차분기관 : 더 이상의 주소는 없다 (The Difference Engine: No more addresses)

The Difference Engine: No more addresses

Jan 28th 2011, 10:54 by N.V. | LOS ANGE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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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버그” 때의 혼란을 기억해보자, 모든 곳의 컴퓨터들에서 많은 오래된 소프트웨어가 연도 표기를 4자리 숫자가 아닌 2자리 숫자만으로 하는 문제 덕분에 2000년 1월 1일이 되면 뒤죽박죽이 될 것이라고 예상되었었다. 시계가 99에서 00으로 넘어갈때 계산에 있어서 많은 다양한 문제 들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이 경우, 2000년은 별 사고 없이 밝았다. 이것은 엄격한 준비가 이루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혹시, 많은 사람이 의심하는 것처럼, 우선 문제 자체가 매우 과장되었을 수도 있다. 확실히, 이 당시 컴퓨터 산업은 새로운 천년을 앞둔 몇 달간 새로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사재기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유사한 일이 앞으로 몇달 동안 일어나려 하고 있다. 이번의 문제는 인터넷 주소 – 0부터 255까지 점으로 나뉘어진 4개의 숫자로 인터넷에 연결된 기기를 고유하게 식별한다 – 의 고갈이다. 캘리포니아의 Fremont에 위치한 인터넷 백본과 서비스 제공자인 Hurricane Electric에 따르면 현재의 인터넷 주소가 소비되는 속도라면 벌크 IP 주소는 다음주 언젠가 고갈 될 것이다.

인터넷 주소 할당 위원회(IANA)는 “슬래쉬-8″이라 불리는 주소 블럭들을 전 세계 다섯개의 인터넷 주소 등록 기관에 나누어 줄 것이다. 또, 그 등록기관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남은 주소들을 지역 네트워크 사업자들에게  늦어도 10월까지는 모두 나누어 줄 것이다. 그 이후에는 새로운 주소를 요구하는 어떤 조직도 남은 것이 없다고 미안하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이 문제는 현실이고,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문제에 대해 10년 전에 경고했다. ( “인터넷 업그레이드”, 2001년 3월 22일자) 이 문제는 오직 32비트만을 사용하는 현재의 인터넷 프로토콜(IPv4)의 주소 공간에 대해서 걱정한다. 이를 통해 가능한 이진 주소 공간의 총 수는 따라서 2의 32제곱- 또는 10진수로는 대략 43억이다. 1980년대, 인터넷이 단지 미국의 몇몇 기관들 사이만을 연결하고 있었던 당시에는, 이것이 충분히 큰 수처럼 보였다. 또한, 당시 인터넷은 어쨋든 임시 네트워크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웹의 발명과 함께 대중적 요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인터넷 상의 남은 주소가 고갈되기 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은 곧 분명해졌다. IPv4를 대체하기 위한 작업이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되었고, 그 결과 IPv6가 1998년에 발표되었다. (IPv5는 스트리밍 오디오와 비디오를 위한 실험적인 프로토콜로 이용이 중지되었다) 128비트의 새로운 버전의 인터넷 주소 공간을 통해 디자이너들은 다가오는 수십년, 어쩌면 수백년동안 고유한 식별자의 고갈이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잘 보장할 수 있었다.

2의 128제곱은 천문학적인 숫자이다. 10진수로는, 약 3400억이 10억개에 또 10억개, 다시 10억개 있는 정도이며, Hurricane Electric 의 Martin Levy가 말하길 “관측 가능한 모든 별에 1000조개의 주소를 할당할 수 있는 것 이상” 이라고 한다.

“사물들의 인터넷”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곧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물들의 대화” 2010년 8월 13일자) 벌써, 20억명의 사람들이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다. 추가적으로 모든 텔레비젼, 전화기, 자동차 그리고 가전기기들에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해지고 있다. – 게다가 결국에는, 모든 책, 약 상자와 창고의 아이템들 또한 그럴 것이다. 실제 세계 혹은 두개의 주소는 쉽게 소재 파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지구상의 혹은 그 이상의 모든 사람과 사물에 위치 탐지 기능을 제공하는 것과 별개로, IPv6의 커다란 주소 공간은 인터넷 상의 라우팅 트래픽을 더 손쉽게 처리할 수 있게 해준다. 무엇보다도, 이를 통해 IPv4의 수명을 늘려보고자 했던 조작이었던 네트워크 주소 변환(NAT) 기능이 필요없게 된다. NAT은 외부와 연결된 어떤 조직의 게이트웨이 컴퓨터에 단 하나의 네트워크 주소만을 할당하는 기능이다. 차례대로, 이 공개적으로 접근 가능한 컴퓨터는 조직 내부 네트워크 상의 다른 기기들에게 네트워크 주소를 할당하여, 이 내부 장치들 모두가 하나의 IPv4 주소를 가지게 한다.

NAT이 없어지면 네트워크의 성능도 향상되며 이론적으로는 네트워크 설정도 훨씬 간편해진다. 이를 통해 또한 인터넷의 창시자들에 의해 주창되는 “end-to-end 연결”의 매우 중요한 철학도 재정립할 수 있는 길로 나가가게 된다. 인터넷이 미래 어플리케이션들의 알려지지 않은 요구를 만족시키고 더욱 진화해 나가게 하기 위해, 설계자들은 인터넷 위를 지나다니는 모든 데이터의 패킷들이 평등하게 다루어지고, 한 컴퓨터에서 다른 쪽 끝의 컴퓨터까지 전달되어 짐에 있어서 편견이나 방해가 없도록 현명하게 결정했다. 지난 몇년간, NAT이나 방화벽으로, 또한 음성이나 비디오를 위한 “서비스의 퀄리티” 선호를 만족시키기 위해 제공해왔던 것들이 인터넷의 end-to-end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시켜왔었다.

엄청난 발전에도 불구하고, IPv6도 문제점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IPv4와의 하위호환성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우팅 컴퓨터들이 인터넷 상의 데이터 패킷의 경로를 감독하면서 해야할 일의 양을 경감시키기 위해서, IPv6는 훨씬 더 단순한 패킷 포맷을 채용했다. 이는 엄청난 속도 향상을 가져온다. 불행히도, 이 두가지 버젼의 인터넷이 하나의 기기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한, 두 개의 분리된 네트워크에서 동작하는 것처럼 독립적으로 기능해야 한다. 한 쪽의 디바이스가 다른 쪽의 디바이스와 통신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릴레이 서비스나 IPv6패킷을 IPvt패킷 내부에 감싸 넣거나 그 반대의 터널링 기술이 구현되어야 한다.

다른이들의 말에 따르면, 이 두개의 분리된 인터넷은 근 미래에는 병행하여 존재하여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최소한 미국에서는 상호운용성이 전혀 없는 불편함을 수십년동안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이유는 미국의 네트워크 운용사들이 NAT 박스와 다른 주소를 절약하는 기술에 많은 돈을 투자해왔다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의 발명자와 최초의 사용자로서, 미국은 현재의 규칙이 적용되기 전까지 가장 많은 몫의 주소를 할당받았다. 결과적으로, 많은 미국의 거대 기업, 대학, 그리고 정부 기관들은 여전히 사용되지 않은 많은 수의 IPv4주소를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업그레이드를 위한 압력이 축소되었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이와 다르다. 현재까지 IPv6가 이용된 가장 큰 데모 행사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들 수 있다. 이때 라이브 텔레비젼과 데이터 입력부터 보안과 교통 정보가 거대한 IPv6 네트워크를 통해 전송되었다. 인터넷을 수용한 가장 마지막 국가로서, 중국은 4명당 한개의 인터넷 주소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IPv6을 가능하면 빨리 수용해야 하는 긴박함이 있다. 러시아와 한국, 그리고 일본은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일본의 가장 큰 통신사 NTT는 IPv6 서비스를 2000년부터 대중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 새로운 인터넷 기술의 다음 쇼케이스는 6월 8일에 있을 “세계 IPv6의 날”이다. 그가 도울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고 있지만, 인터넷의 아버지 중 한명이자 현재 구글의 최고 인터넷 에반겔리스트로 재직 중인 Vint Cert는 그 날의 행사가 네트워크 설정의 많은 어려움들 때문에 망가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그 이벤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러한 어려움을 정확히 알리고 해결책을 서로 공유하는데에 있다.

그리고 또한 늦게나마, 북미의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나 다른 네트워크 운영자에게 IP 주소 블럭들을 할당해주는 미국 인터넷 주소 등록원은 2012년 1월 1일까지 북미 지역의 공개된 모든 웹 사이트들에게 IPv6의 지원을 준비하라고 권고했다. 이의 목적은 이코노미스트가 앞서 적은바와 같이, 현재 IPv6의 바다에 떠있는 몇몇 IPv6의 섬들을 IPv6의 거대한 바다에 떠있는 몇몇 남아있는 IPv4 기기들로 바꾸는 것에 있다.

 

[Economist] Apple vs. Google

Apple V Google

한 회사는 가젯-메이커, 다른 회사는 검색 엔진 – 하지만 지금 그들이 격돌한다. 문화 간의 충돌에서 Robert Lane Greene

From INTELLIGENT LIFE Magazine, Winter 2010

2006년 맨하탄의 5번가에 애플이 새로운 매장을 열었을 때, 조금 색다른 불평을 들었다. 많은 돈을 들여 얻은 경치를 가로막는다던지, 아니면 내가 방금 발견한 곳의 주위를 고급화 한다던지 하는 뉴욕의 일반적인 불평들은 아니었다. 그렇다, 이 새롭고 고급스러운 매장은 이슬람 웹사이트들에게 비판받고 있었다. 그 금속과 유리로 된 큐브가 Mecca 의 Kaaba에 있는 흑요석 큐브를 상상시키며, 이슬람을 모욕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슬람 신자들은 불평했다.

이 이야기는 말도 안되는 것이었다. – 가장 극단적 웹사이트 중 하나에 의한 것이었고 (하지만 꽤 규모가 있었다), 또한 이를 주도한 영리한 광신도 들은 매장이 공사중일 당시 검은색 방수포가 덮여있을 때 보았던 것이 전부였다. 많은 뉴욕의 무슬림들은 그들은 이 새로운 매장을 좋아한다고 소리높여 말했다. 하지만 애플의 매장들을 매카라고 부르는 것이 광적인 것은 아니다. 매장들은 멋진 내장과 외부 장식을 가진, 애플의 환상적인 제품들을 위한 사원이었다. 많은 가젯-메이커와는 다르게, 애플은 멋지게 디자인된 장난감 그 이상의 것을 팔고 있다. 그들은 생활의 방식과 존재의 방식을 팔고 있다. 이는 Appleism이라 불린다.

Appleism은 종교 같은 것은 아니지만, 거의 신과 같은 지도자인 스티브 잡스를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그는 죽음에서 살아돌아왔다. – 1985년에 이사회에서 해고 통보를 받고, 1997년 슬럼프 끝에 다시 고용되어, 애플을 부활시켰다. 많은 팬들은 애플을 경외의 눈길로 바라본다: 10월에 사망한 Tony Curtis는 저승에서도 그의 페이스북 상태를 업데이트 하기 위한 파라오의 열망 처럼 그의 iPhone과 함께 묻혔다.

어떤 믿음일지라도, 광적인 사람들에게만 집중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지만 이해를 돕지는 못한다. 5번가 상점의 최근 방문에서, 최신 기술에 빠삭하고, 부유하며, 서부의 젊은이들이라는 애플의 광신도들에 대한 편견에 맞는 얼굴들을 많이 발견하지는 못했다. UAE의 깃발을 옷긴에 새겨 넣은 외교관처럼 보이는 한 남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브라질에서 온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포르투갈 사람들 사이를 휘젓고 있었다. 붉은 머리의 젊은이가 그의  Good News Bible을 내려놓고 “Combat Arms”라는 온라인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었다. 중년의 부부는 “Bed, Bath & Beyond” 웹사이트를 이용하고 있었다. 애플의 성공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청바지와 검은테의 안경, 그 양쪽 시장을 초월해왔다. 이제 그것은 대중을 위한 운동이 되었다.

매장 안에서는, 대부분의 기기를 즉시 만지고 가지고 놀 수 있었다. 이것은 애플에 의한 하나의 뛰어난 발상이었다. 틀림없이 많은 재고를 축나게 할테지만, 잠재 고객을 확 끌어당길 수 있었다. 마치 옛날의 레코드 가게 처럼 모든 가게에 쉽게 들락거릴 수 있었다. 오직 한 곳의 장소만 가까이 갈 수 없었는데, 두겹의 사람들로 둘러쌓여 있었던 아이패드 테이블이었다.

애플이 4월에 선보인 태블릿 컴퓨터 아이패드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초기 비판들과, $500의 가격표가 붙은 3G 연결이 지원되지 않는 버젼, 다른 기기들 (e-book 리더, 게임기, 애플의iPhone)에 비해 특별히 색다른 기능이 지원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6개월 동안 750만대가 팔려나갔다. 아이패드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기기를 만들고 사람들은 그것이 애플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매료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 그들의 전형적인, 대담한 배팅이었다. 2007년에 “애플 컴퓨터”에서 애플로 이름을 변경한 그들은 현재 Mac이 아닌 3 종류의 특징적인 기기를 만들고 있는데, 아이팟, 아이패드, 아이폰이 그들이다. 그들은 당신이 모든 곳이 이들을 가지고 다니기를 원한다.

이는 모바일 기기 제조를 시작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행보를 따라가고 싶은 다른 회사들과의 마찰을 가져왔다. 구글은 인터넷에서 무엇을 찾기 위한 편리한 방법으로 시작하여, 현재는 우리 생활의 모든 면에 퍼져 있는 서비스들의 구름이 되었다. 우리는 괜찮은 레스토랑을 검색하고, 다른 웹사이트에 있는 이에 대한 평가를 찾으며, 구글 맵에서 위치를 알아내고, 기차가 정시에 도착하는 지 여부를 검색하고 친구들에게 15분 정도 늦을 것이라고 Gmail을 통해 알린다.

점점 더, 우리는 이러한 모든 것들을 구글의 OS 안드로이드가 장착된 스마트폰에서 하게 될지 모른다. 구글은 직접 전화기를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단말 제조사들에게 안드로이드를 라이센스 형태로 발급해 줌으로써 어떤 기기도 실제로 제조 하지 않는 회사로써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가젯-제조사 (애플을 뜻함)의 가장 큰 경쟁자가 되었다. 구글은 Googleism을 형성하는 데 큰 힘을 쏟고 있으며 우리는 이 또한 함께 살펴볼 것이다.

예전에는 이러한 상황이 아니었다. 단지 일이년 전만해도, 애플과 구글은 구글의 최고 경영자인 에릭 슈미츠가 애플 이사회의 일원일 정도로 서로 다른 평온한 관계 였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스티브와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친합니다.” Schmidt 는 올해 여름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가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의 CEO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회사는 천생연분이 될 수 있었다: 애플의 멋진 기기들 위해서 구글의 환상적인 서비스들이 돌아간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다른 회사들에게 그 시장을 넘겨주기에는 구글에게 너무 매력적이었다. 안드로이드는 2010년 하반기 아이폰의 판매량을 넘어서서 현재 가장 많이 팔리는 스마트폰 시스템이다. 잡스는 6월 한 컨퍼런스에서 “우리는 검색 시장에 뛰어들지 않았다.” 또 “우리는 뛰어들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구글이 각자의 영역에 대한 암묵적인 구분을 침범했다는 생각을 밝혔다. 평소처럼 자신감을 드러내며, 그는 같은 청중에게 “현재, 우리는 더 나은 제품을 가지고 있다”며 구글의 검색창을 애플의 기기에서 없애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두 회사는 모바일 전쟁에 대해서 전혀 다른 접근 방법을 취해왔다. 애플이 만든 기기들에서는 오직 애플이 인증한 어플리케이션(Apps)들 만이 구동된다. 반면, 휴대 전화 사업으로 진출해온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소니, 모토로라, 삼성, LG, HTC 등이 제조하는 다양한 휴대전화 모델에 장착되도록 판매가 아니라 무료 배포하고 있다. 안드로이드의 코드는 공개되어있어서, 단말 제조사들은 그들의 필요에 맞게 이를 수정할 수 있다. (비록 구글은 한 안드로이드 단말에서 구동되는 앱이 다른 곳에서도 구동될 수 있도록 표준의 기본 셋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또한 누구나 안드로이드 앱을 개발하고 이를 앱스토어와 같은 구글의 안드로이드 마켓에 올릴 수 있다. 애플은 멋지지만 더 감추어져 있고 제어되고 있다. 에릭 슈미츠가 7월에 런던의 이코노미스트를 방문했을때 이 차이점에 대해서 말했다. “구글은 완전이 다른 모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말했다. “애플의 관점은 일관성있게 폐쇄적입니다. 우리는 정 반대의 모델입니다: 웹, 개방성, 모든 선택들, 모든 목소리들. 그리고 이러한 실험이 진행 중 입니다.”

회사의 사장을 그들의 문화의 한 심볼로 만드는 것은 오래된 전략이다. 하지만 이 두 회사는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논란의 여지가 없이 애플을 이끄는 빛인 잡스는 그의 공적인 행사를 담당하는 팀에게 정보를 흘리라거나 장대한 언론 컨퍼런스를 열라고 지시할 때를 제외하고는 언론을 무시하는, 까다롭지만 우수한 편집광이다. 그는 마치 애플의 장난감들이 호환성있는 작고 신중하게 고려된 다양성만을 가지는 것처럼 매일매일 같은 옷만을 입는다. (검은색 터틀넥과 리바이스 501 청바지) 잡스 휘하의 애플은 바보같은 물건을 거의 내놓지 않았다.

반면에 구글은 잡스 같은 인물이 없다. 하지만 최고 경영자 슈미츠와 레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의 변덕스러운 삼두정치가 있다. 페이지와 브린은 캘리포니아 출신의 전형적인 괴짜 스탠포드 대학생들이고 아직 구글에 혁신을 불어넣기 위해서 일상적인 회사 운영은 슈트와 타이를 입은 CEO 슈미츠에게 맞기고 직원으로 남아있다. 구글은 당신의 이메일, 인터넷 검색, 휴대전화로부터 당신에 대한 정보를 배우고 이러한 정보를 광고주들에게 팜으로써 돈을 번다. 그들의 창업 모토는 직원들이 아직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악마가 되지 말자.” 이다. 하지만 슈미츠는 새로운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짜증나는게 하지 말자.” 그는 “당신이 다른 사람이 알지 않기를 바라는 사실이 있다면, 아마 그것을 첫번째로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라고 2009년 말해 해설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보기에는 구글이 모든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는 공포를 완화시키기 위해, 그는 2010년 하반기에 “구글의 정책은 Creepy Line(역: 대중의 통상적인 인식에 있어서 거부감 없이 받아 들일 수 있는 가상의 경계)까지만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는데, 이것이 현존하는 최고의 기술 기업의 수장이 할 말로서는 가장 짜증나는 것이라는 것은 알지 못한 것 같았다.

애플에 비해서 돌연스러운 구글은 무엇인가를 내놓고 무슨일이 일어날지 지켜보는 경향이 있다. 엄청난 성공을 거둔 G-mail 베타(테스팅) 상태에서 출시되었고 그 상태로 몇년이고 유지 되었다. 복잡한 이메일, 메시징, 협업 도구인 구글 웨이브는 소수의 몇몇만 사용했다.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인 구글 버즈은 개인 정보 보호에 있어서 재앙과도 같았는데 왜냐하면 사용자가 자주 연락하는 상대를 공개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품 주기는 일주일에 하루는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위해 사용하기를 권장하고 컴퓨터 괴짜들의 일반 만들고 지켜보기 방법을 디자이너의 멋진 작품보다 더 찬양하는 곳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달라진 만큼, 구글과 애플은 같은 곳에서 자랐다: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벨리. 양쪽 기업에서의  이야기들은 한 쪽에서의 많은 기술자나 프로그래머들이  다른쪽 기업에서도 일할 수 있었을 것임을 시사한다. 1980년대 초반 사무실에서 Nerf-ball 게임을 즐기던 애플의 맥 개발자들은 1990년대 후반 레고로부터의 서버 랙을 조립하던 구글의 창업자들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장소에서 “시도해보지 않았다면 아무말 하지 마라”라는 태도가 권장되고 이는 애플과 구글을 이끌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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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번역하던거 저장을 안해서 날려먹고 더 이상 의욕이 없어서 하던거만 업로드 –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