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도쿄, 센다이

호텔 토에이 유자와의 오래된 객실 창문으로 햇살이 강하게 들어온다. 언덕배기에 위치한 호텔은 산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을 마을에서 처음 맞이한다. 아무리 기억해도 조식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먹었더라면 어제와 같은 것이 나왔을 것이다. 석식은 주지만 조식을 안주는 패키지라니 아무래도 이상하다.

일년이 지나 흐려진 내 기억은 체크아웃 후 호텔에서 역으로 향하는 내리막 길부터 시작된다. 길 양쪽에서 뿜어져나오는 열기가 올라와 한증막 터널을 이루고 있다. 놀랍도록 덥다. 아침부터 이리 더운 것은 후끈 달아오르는 하룻밤 사이에 여름이 빨리 찾아와서가 아니라 호텔에서 흘러내리는 뜨거운 온천물 탓이다. 일년 내내 이렇게 따뜻한 온천물이 흐르니 겨울에는 스키와 온천이라는 훌륭한 관광 상품이 완성될 수 있다.

이 마을에서는 더 할일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스키장이 위치한 고원을 보고 왔어야 된다는 아쉬움이 조금 남지만, 아마 그랬다가는 무언가를 포기했어야 했다. 500엔의 사케 시음회를 한번 더 가져볼까 하다가 허리의 건강을 염려한다. 탈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의 기차를 타고 도쿄로 향한다. 에치고 유자와 역에서 우에노 역까지 가는 열차다. 어제 신칸센에서 신칸센으로 갈아탔던 다카하시를 지나 사이타마를 뚫고 간다. 대전에서 부산 정도의 거리로 중간에 정차하는 역이 많지 않아 우에노까지는 금방 닿을 수 있다. 도쿄 와이드 에어리어 패스라는 철도 패스를 사면 올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에치고 유자와 역 까지이다. 도쿄에 단기 방문하는 관광객이 올 수 있는 가장 먼 거리라는 의미이다.

도쿄 근교, 근교지만 우리나라의 경기도보다 훨씬 넓다, 에 들어서자 끝없이 펼쳐진 나트막한 건물의 바다가 창밖으로 보인다. 도쿄 북쪽의 이타바시 구 옆을 지나갈 때 괜히 15년 전에 잠시 살았던 위클리 맨션의 위치를 찾기도 한다. 중년의 나이가 되니 청춘의 기억과 그 기억이 때를 묻힌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립고 애틋하다. 그리고 그 것을 15년만에 볼 때는 더욱 그렇다. 찾아가 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러려면 도쿄 일정 전체를 그 곳에 써야 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으로 미뤄둔다. 7개월의 휴직 기간에는 하고 싶은 것을 많이 하며 지냈다. 일년이 지나 다시 해야할 것으로만 빡빡한 인생이 되었다. 다시 공수교대 되어버린 나의 인생은 이대로 괜찮은가.

도쿄에서는 숙박을 하지 못한다. 도쿄 이후 이어지는 북쪽의 일정은 지금까지의 일정보다 한층 빡빡하다. 오늘은 센다이까지 올라가 숙박을 한 후 이후 홋카이도까지 쾌속 직진이다. 따라서 도쿄의 관광 명소를 가지 못하고 신칸센이 정차하는 우에노와 도쿄 역만 잠시 들른다. 국립 서양 미술관을 보고 싶었지만, 마침 월요일이라 휴관일이다. 대신 도쿄 국립 박물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다섯 주 동안 도쿄 살이를 할때는 박물관, 미술관 같은 곳을 방문하지 않았다. 귀국 직전 들른 나라 국립 박물관을 살펴보고 크게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 여행 중 들를 수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은 모두 가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다.

우에노역을 처음 와본적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지하철인 야마노테센을 타고 오고 갔었다. 신칸센 정류장에서 지하철 정류장으로, 또 지하철 정류장에서 실제 우에노 공원 입구와 복합 쇼핑몰로 이어지는 길은 한참을 걸어도 끝이 없다. 다만 우에노 역으로 나가는 길은 고속도로 톨게이트 처럼 좁은 계단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있어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 신칸센 정류장을 빠져나오자마자 등장하는 코인 락커에 짐을 맡긴다. 조금이라도 짐을 매고 걷는 걸음 수를 줄여야 한다. 박물관을 관람하는 일은 허리디스크 환자에겐 다소 모험이다.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에치고 유자와에서 두 시간을 달려 좁은 계단을 올라와 마주친 우에노 공원은 다른 우주 같다. 산책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 도쿄 관광에 나선 외국(특히 서양) 관광객, 시끌 벅적한 학생들 무리로 난리법석이다. 동쪽 입구는 역과 붙어있어서 단체 관광의 집합 장소로 많이 이용되는 것 같다. 입구로 들어서 중앙 광장까지 간 후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면 가운데 커다란 분수를 지나 2차선 도로를 건너 미술관이다. 해가 나진 않았지만 높은 습도와 기온이 축 젖은 옷처럼 체력을 갉아 먹는다. 길을 건너기 전 벤치에 앉아 아침 겸 점심으로 가방에 든 빵을 먹었다. 앉을 벤치가 넉넉하지 않아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다. 물도 숙소에서 한 병 챙겨왔다.

국립 도쿄 박물관은 여러 개의 관으로 나뉘어 있는데, 커다란 중앙 건물 오른쪽으로 보이는 것이 동양관이고 동양관의 높은 층에 중국관, 한국관이 포함되어 있다. 사실 다른 곳 보다는 한국관을 보기 위해 방문했다. 한국보다 한국의 국보급 유물이 더 많다는 일본. 내 생각이지만 소장한 것은 어머 더 많을 테지만 유물 반환 문제 등 복잡한 이슈가 되는 것이 싫어 한국관에 많은 것을 전시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관부터 시작해서 높은 층부터 하나하나 내려오면서 전시를 관람한다. 한국, 중국, 그리고 중동, 페르시아 등 점점 서쪽의 유물들이 나타난다. 기증 받은 실제 미라도 전시하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났을 많은 유물들이 대한 해협을 건너 이곳에서 전시되고 있다. 어떤 유물은 임진왜란때 약탈되거나, 어떤 유물은 1800년대 도굴꾼에 의해 도굴되거나 (안타깝게 한국 지리와 전설에 밝은 한국인 도굴꾼이 많았다고 한다), 어떤 유물은 일제시대 한성에서 번화한 외국인 대상의 골동품상에서 은밀하게 팔려 이 곳에 왔을 것이다.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 사람과 유물 모두 많이 건너갔지만 유물은 먹먹하게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본식 이름을 달고, 그 유래와 발굴 부분의 설명이 생략된채 놓여 있다.

동양관에서 본관으로 이동하니 사람이 한층 더 많아졌다. 일본의 유물을 중심으로 근대 일본 미술 전시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아마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 하나하나 꼼꼼하게 둘러봤다.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어느 사이에 점심 시간을 넘었다. 내 허리 디스크 시계 (세 시간을 넘으면 서 있을 수 없다)는 이제 그만 둘러보라고 신호를 준다. 앉아서 쉴 공간이 실내에는 마땅치 않다. 덥고 습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가 정원의 벤치에 잠시 앉아 사람들을 둘러보며 쉬었다. 놀라운 다양성이 보였다. 인종, 연령과 같은 것은 물론이고 헤어스타일, 패션, 소지품, 신발까지 다르다. 아마 하고 있는 이야기도 다르고, 방금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까지 다를 것이다.

얼마전 청와대 관람을 다녀왔다. 멀리 비행기를 타고 오신 서양인도 몇 명 있었지만 대부분은 한국인이고, 아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긴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다양성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문화, 인종적 다양성이 크게 확대 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일본이나 혹은 미국이 겪는 문제와 잠재력을 동시에 가지게 될 것이다. 나에게 문제와 잠재력은 기회와 폭발적 사회 변화와 동의어로 들린다. 정확히 150년 전 한국과 일본이 당면한 변화, 그리고 다른 선택을 다시 떠올린다.

식사는 멀리 갈 수 없어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우에노 역으로 가는 길에 있는 식당을 검색했다. 우에노 역에 있는 유명한 오므라이스 전문점에서 먹기로 한다. 타이메이켄이라는 집이다. 평소에는 대기가 많기로 유명하지만 이미 2시가 넘은 시간인지라 별다른 대기 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대로다. 한국의 중국집에서 먹는 노른자를 터뜨린 계란 후라이 오무라이스와는 다른 정성을 다한 보기 좋은 요리가 나오는데, 문제는 너무 양이 적어서 하나를 다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심지어 같이 먹을 반찬도 전혀 없다.

주어진 시간이 한 시간 밖에 없다. 일단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우에노 역에서 한 시간 동안 둘러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JR패스를 이용해 방문 가능한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둘 중 하나다. 야마노테센을 타고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내려가거나. 센소지, 도쿄타워, 롯폰기, 긴자, 토라노몬(예전에 다녔던 회사가 있다), 스카이트리, 오다이바의 대강 위치를 머리 속에 넣고 가늠해보았다. 다 어렵고 까딱 잘못하다가는 신칸센 열차를 놓칠 수 있다. 그럴 경우 규정 상 내가 예약한 열차가 센다이역에 도착한 시간 이후 열차를 다시 예약해야 한다. 얼마나 걸을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험을 하지 않기도 했다. 야마노테센을 타고 유라쿠초역까지 내려와서 도쿄역까지 걸어오기로 한다.

유라쿠초 역까지 야마노테센을 탔다. 그렇게 붐비진 않았다. 드문드문 솎아낸 빈자리가 있어 체면이고 뭐고 얼른 앉았다. 한국에서는 어지간해서 자리에 잘 앉지 않는다. 18년 전 놀랍도록 똑같은 풍경의 야마노테센 열차를 탓던 일이 떠올랐다. 여성 전용칸에 타지 않도록 조심했던 일, 할머니들이 뽀글이 파마를 안한다고 신기해했던 일 들이 생각난다. 야스쿠니 신사를 보고 무도관을 거쳐 황거 공원을 지나 도쿄역까지, 그리고 조금만 더 힘내보고자 긴자까지 걸어왔던 기억이 있다. 지하철 기본 요금이 2천원에 가깝다며 말도 안되는 물가라고 생각했다. 지하철 요금을 아끼기 위해 정말 말도 안되는 거리를 걸어다녔다. 도쿄역에서 롯뽄기까지, 롯뽄기에서 신주쿠까지. 지금은 일본의 지하철 요금이 비싸보이지 않는다. 그 때 걸어왔던 그 길을 지나간다. 도쿄역에서 황거까지의 마루노우치, 그리고 철로를 건너 긴자는 현대 일본의 심장이다. 비싼 부띠끄 샵, 명품 상점가, 고급 외제차들과 세련된 옷차림의 사람들로 가득하다. 일본에서 가장 비싼 땅이다.

나는 많이 변했다. 직장과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던 젊은이에서 어느 덧 15년 동안 근속한 중역?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아이와 같이 일본 여행을 하고,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때는 전재산이 3천만원이었지만, 지금은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대신 걱정거리는 3배 쯤 늘었고, 온전한 내 시간은 5배 쯤 줄었다. 체력은 10배쯤 줄었다. 앞으로 무엇이 늘어나고 무엇이 줄어들지를 생각해보면 약간의 우울감에 빠진다.

옛날 서울역과 똑같이 생긴 도쿄역에서 다시 야마노테센을 타고 우에노 역으로 간다. 기차를 놓칠까봐 서둘렀다. 야마노테센이 왜 이리 늦게 오나 배차 간격에 불평 했다. 다시 올때와 똑같은 풍경의 기차를 타고 올라간다. 같은 사람들이 타고 뱅뱅도는 순환선인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다. 다행히 시간에 맞춰 우에노 역에 도착했다. 우에노 역에 맡겨 놓았던 배낭을 찾는다. 오무라이스로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달래려 편의점에서 빵을 한 개 샀다. 딱 편의점에서 빵을 한 개 살 시간이 남았다. 플랫폼에 도착하자 마자 정시에 들어오는 신칸센을 타고 다시 센다이로 달려간다. 짧은 도쿄 나들이의 마무리다.

센다이는 중간 기착지이다. 동북권에서 가장 큰 도시이므로 고를 수 있는 숙소가 많고 쌀 것이라 생각했다. 근처의 관광지로 야마데라 릿샤쿠지, 히라이즈미 주손지 등을 살펴봤는데, 신칸센 라인에서 한참들어가야 한다. 1박을 빼서 이런 것들을 둘러보기보다는 하코다테까지 올라가서 홋카이도 내에서 2박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아오모리, 아키타, 이와테, 센다이는 시간이 나면 렌터카 여행을 해봐도 좋겠다. 젊어서는 지구를 반바퀴 쯤 돌아 먼 곳을 가보고, 이곳은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올 생각이다. 체력 빼고 여행에 불편함은 전혀 없는 나라니까.

센다이까지는 한시간 반 정도 걸린다. 300km 가 넘는 거리를 한시간 반이라니, 비싼 기차 가격이 아니라면 통근을 해도 될 것 같다. 도쿄에서 4시 넘어 기차를 탔고, 센다이에 도착하니 해가 저물어 간다. 후쿠오카에 첫 날 묵었던 숙소였던 캡슐호텔 체인이 마음에 들어 동일 체인의 센다이점을 예약했다. 역에서 먼 거리에 위치했다. 걸어서 금방 가리라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먼 거리다. 역에서 나와 넓은 육교를 건너고 출구가 보이지 않도록 펼쳐진 아케이드 거리 한참을 걸어간 후에 다시 횡단보도를 여러번 건넌 후에 도착했다. 중간에 고쿠분쵸라는 유흥가를 지난다. 밤에 걷기 좋은 거리가 아니다. 이렇게 멀리 있을 줄 알았으면 역 근처의 숙소를 예약할 걸.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체크인을 위해 카운터로 갔다. 후쿠오카점은 체크인부터 무인이었는데 여긴 카운터를 운영한다. 오늘의 입실 손님들의 목록을 출력해 놓은 종이가 놓여 있다. 내가 누군지 알려준다. 생각보다 한국인들이 많았다. 관광객이라고는 잘 찾아오지 않는 이 곳에 무엇을 위해 온 것일까? 그래, 일년에 2500만명이 찾는 일본인데, 누군가는 이 곳까지 와서 우설을 먹고 가지 않겠나.

사전 조사에 따르면 센다이는 우설과 다테 마사무네, 라쿠텐의 도시이다. 우설은 소의 혓바닥으로 규동 처럼 밥 위에 올려 먹거나 그 자체로 구워서 먹는 것 같았다. 센다이 역 내 식당에서도 우설 덮밥?을 잔뜩 팔고 있었다. 다테 마사무네는 센다이 번의 영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심복이자 임진왜란에 참여했다. 두 달 전 코레일의 내일로 티켓을 이용해 방문한 진주성 전투에 그도 참전했다. 라쿠텐 이글스에서는 김병현이 잠시 뛰었다. 걸어오는 아케이드에는 라쿠텐 이글스의 선수들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깃발에 인쇄되어 걸려있었다.

간단히 씻고 침대에 누웠다. 박물관 투어, 그리고 숙소까지 걸어온 탓에 나갈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었다. 원래는 우설을 먹고 싶었으나 근처에 우설을 파는 적당한 곳을 찾기 어려웠다. 특히 혼자 먹을 수 있는 곳이 어딘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소 혓바닥과 내 혓바닥이 닿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늘 안전한 선택을 하는 나는 걸어오는 길에 입구 옆에서 본 스키야를 가기로 했다. 들어가서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하고 앉아 있었더니, 직원이 오더니 여기서 앉아서 먹는지 물어봤다. 그렇다고 했더니 음식을 가져다 주겠다고 했다. 알고보니 키오스크는 테이크아웃 전용이고 앉아서 먹는 사람을 위해서는 자리마다 주문 테블릿이 부착되어 있었다. 테이크아웃으로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있으니 의아해서 물어봤나보다.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오른쪽으로 대형 환락가 고쿠분초 입구가 있었다. 유흥가에 적절한 옷차림을 한 여성들이 건물 입구마다 서 있다. 신기한 것은 우리나라처럼 돌아다니거나 걸어다니는 사람에게 접근하여 호객 행위를 하지는 않는다. 나름대로 규칙이 있는 것 같다. 일본 답게 절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 것. 그 것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차라리 이런 대형 환락가에 유흥 업소를 밀집시켜 놓고, 다른 곳에 허가를 내주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풍경을 원하지 않으면 이곳에 오지 않으면 된다. 나처럼 싼 숙소를 찾아다니는 여행객은 항상 이런 풍경을 지나게 된다. 후쿠오카에서도, 센다이에서도, 삿뽀로에서도.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누워서 넷플릭스를 뒤적뒤적하며 영화를 보다 잠들었다. 오늘은 에치고 유자와에서 센다이까지 이동하고, 도쿄 국립 박물관과 도쿄역 일대를 돌아본 것이 관광의 전부였다. 박물관과 신칸센이 하루를 다 빨아들였다. 내일은 센다이 성 유적을 둘러볼 계획이다. 그리고 홋카이도로 건너간다. 여행의 끝이 보인다.

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마츠야마, 에치고 유자와

오랜만에 쾌적하게 잘 잤다. 캡슐호텔의 시설도 좋았을 뿐더러 사람이 많지 않아 잠을 깨우는 부산한 움직임이 덜했다. 걸어서 마츠야마 성을 보러가기로 한다. 나는 아침을 먹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굳이 조식을 찾아 먹지 않아도 된다. 마츠야마는 어제 묵었던 나고야에 비해 훨씬 고지대이고, 주위가 모두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신선한 공기가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준다. 멀리 보이는 산이 아름답다. 제네바에서 보이던 알프스의 고봉들이 생각났다. 여기서 보이는 산들도 일본 알프스라고 불린다.

역 근처의 숙소에서 성 까지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8시 30분에 관람이 시작된다고 하여 8시 쯤 출발하기로 한다. 걸어가는 길은 대부분의 일본 시가지가 그런 것 처럼 깨끗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출근하는 사람, 등교하는 사람이 없다. 여행 내내 늘 시간에 쫓겨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했는데, 8시 30분 도착을 목표로 느긋하게 걸어가본다. 여행의 한가로움을 뽑내며 걸어가는 길에 꽤 커다란 하천을 마주친다. 물이 맑고 수량이 많다. 꽤나 깊은 산에서 내려온 물인 것 같다. 어제 굽이굽이 기차를 타고 지나온 높디 높은 산에서 흘러 내려온 물 인 것 같다. 물을 만져보려 내려가 본다. 햇살과 청량한 물, 이 물이 시작한 산과의 거리감, 그리고 일요일 아침의 여유로움이 합쳐서 행복감을 준다.

다리를 건너가니 개구리일지, 두꺼비일지 모르는 사무라이 동상이 보인다. 이 도시의 마스코트라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코로나 시절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진이 나온다. 자그마한 신사를 마주쳤다. 10대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붉은 빛 치마를 입은 무녀 둘이 청소를 하고 있다. 아침 산책을 나온 나이 많은 부부가 합장을 하고 소원을 빌고 있다. 무슨 소원을 빌고 있을까. 신사 앞에서 시작하여 하천과 나란히 이어지는 좁은 골목과 상점가가 관광 명소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문을 열지 않았다. 이 길을 이용해 다시 숙소로 돌아와야 하니 오는 길에 들러보기로 한다.

마츠야마 성은 일본에 몇 개 없는 천수가 온전히 보존된 성이다. 구마모토, 나고야, 오사카 성이 겉만 그럴듯한 현대 콘크리트 건축물인데 비해 이 곳은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처마와 각 층의 대들보가 온전히 보존된 드문 성이다. 물론 수십년에 한 번 씩 나무를 교체하고 기와를 교체하는 대규모 보수 공사가 지속되고 있는 모양이다. 천천히 걷는다고 했는데 1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입구를 막아 놓았길래 왼쪽으로 조금 이동해서 성 전체를 조망하는 벤치에 잠시 앉아 있었다. 해자 건너편의 성채가 단정하고 반듯하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입장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겉으로 보면 5층 건물인데, 실제로는 6층이다. 이는 틀림없이 침입자와 수비자 간 수비자가 유리하도록 정보의 비대칭을 만들기 위한 설계일 것이다.

시간에 맞춰 입장이 시작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서양 관광객들이 많았다. 연령대가 다양한 그룹이라 학회 같은 행사에 참석하고 주말 관광차 들린 것 같기도 하다. 히메지 성처럼 성 외곽이나 성문 등을 겹겹이 통과해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문 하나를 지난 후 바로 성 내로 입장할 수 있다. 좁고 좁은 복도와 실내를 통과해서 최상층을 통해 올라간다. ‘총’, ‘대포’ 같은 화기 위주의 전시가 많았다. 기차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천천히 둘러봐도 되겠다 싶었다. 성의 유래나 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나무 조각까지 꼼꼼하게 둘러본다. 일본어로는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는데, 영어로는 중요한 한두 문장만 번역해 놓았다. 어느 사이에 바글바글하던 서양인들은 흥미가 사라졌는지 먼저 올라가버렸다.

일본의 총은 포르투갈을 통해 전해졌다. 1500년대 우연히 표류하던 포르투갈 무역선에서 총의 위력을 발견했다. 일본인들은 이를 구입하여 국산화 함과 동시에 화약을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된다. 1년 안에 자체 개발 할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마침 서로 치열하게 대립하던 지역의 영주 군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앞 다투어 이를 도입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인이 쉽게 소지할 수 있는 짧은 길이의 총에서 부터 두 명 이상이 운용하는 거대한 총신의 총까지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성에서 외부를 향해 발사하는 사구 들도 처음에는 위 아래가 긴 형태로 활을 쏘도록 만들어졌다가, 이후에는 총을 쏠 수 있는 작은 구멍의 형태로 바뀌었다. 이렇게 발달한 개인 화기들은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무자비한 인명 살상에 이용된다.

천수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니 사방 풍경이 모두 내려다보였다. 산 속에 있는 마을이지만 분지 지형 안쪽은 꽤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분화구 속에 있는 것 같은 모습은 아소산에서도 봤던 풍경이고 내 기억에 우리나라에는 쉽게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사방에 하천을 이루고 있다. 마츠야마는 일본 최고의 고추냉이 산지로 유명한데, 사시사철 흐르는 깨끗한 물이 있어 좋은 품질의 고추냉이를 기를 수 있다고 한다. 이 천수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내려오는 길에 달맞이 별관?을 볼 수 있다. 한국어로 정확히 어떻게 지칭하는지 모르겠으나, 영어로는 Moon-viewing Wing으로 번역해 놓았다. 하늘에 떠 있는 달, 해자에 비친 달, 삼면의 열린 창에서 들어오는 바람, 좋은 술이라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되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일부러 오면서 들렀던 상점가 거리를 지난다. 여기서는 타이야키, 한국의 붕어빵이 유명하다고 하여 먹어본다. 일요일 이른 시간이라 사람도 별로 없고 이제 막 가게 문을 열고 계셨다. 슈크림과 팥 두 종류를 팔고 있다. 한국보다 훨씬 비싼 값을 받았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이 걸려 막상 받아 든 붕어빵에 오히려 한국 가격이 비싸게 느껴졌다.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양재천을 연상시키는 천변에 앉아 맛있게 다 먹었다. 여전히 관광객은 몇 없었고 물이 흘러가는 소리만 청량하게 들렸다.

11시 퇴실 시간에 맞춰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딱히 마주치는 사람도 없다. 일요일이라 출장 차 방문한 사람도 없어 보인다. 혹시 다음에 오게되면 다시 숙박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비넷에 넣어 둔 가방을 꺼내어 매고 역으로 걸어간다. 숙소는 고층에 위치하고 저층은 상가로 쓰고 있는 흔히 볼 수 있는 건물인데, 1층에는 서점과 문구점이 절반 정도를 쓰고 그 외에는 생활 잡화나 전자기기를 파는 상점이 입점해 있다. 어제 늦은 시간, 그리고 오늘 아침의 이른 시간에는 모두 닫혀 있어 들어가보진 못했다. 바로 밖으로 나가는 출구가 있음에도 호기심에 상가들을 뚫고 반대편으로 나가본다.

서점은 마치 내가 사는 동네의 아주 오래된 상가 건물 1층에 입점 해 있는 것 같은 진열과 광고, 그리고 고객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번 여행을 다니면서 종종 느끼는 순간이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른 풍경 속에 문득 익숙함을 느끼는 미국이나 유럽 여행과 달리 (예를 들면 프랑스 시골에서 기아 자동차를 만난다거나) 일본의 풍경은 대부분 우리나라와 같은데 한 두 부분만 다른 (서점의 신간 서적 안내가 일본어로 되어 있다거나) 점을 포착하게 될 때이다. 서로 상반된 매력이 있다. 전체와 부분, 모든 것과 하나의 차이이다.

점심은 여전히 역전의 마츠야를 먹기로 했다. 간단하게 혼자 먹을 수 있는 식당은 여기 뿐이다. 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먹을 만한 곳을 검색해보았지만 어제의 맥도널드와 마츠야 두 가지 뿐이다. 역사 내의 아케이드에도 식당이 있는 것 같았지만 적당한 먹을 거리가 있을지, 기차시간에 맞춰 빠르게 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마츠야에서의 식사 시간은 20분을 넘지 않으니까. 키오스크를 이용해 익숙하게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메뉴는 1분 안에 나왔다. 촘촘하게 움직이는 배낭여행자에게는 시간의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

점심을 먹고 다시 기차에 올라탄다. 어제에 이어 특급 시나노를 타고 나가노까지 간다. 오늘은 운이 좋게 가장 앞 자리를 예약할 수 있었다. 아침이라 선명하게 보이는 계곡이 아름답다. 철길이 대부분 단선 구간이고 중간중간 지나가는 기차역에서 복선 구간이 있다. 따라서 완행 열차들은 잠시 이곳에 멈춰서서 반대편이나 혹은 추월해가는 특급 열차가 지나갈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 내가 탄 기차는 거의 멈춰서는 일 없이 모두의 양보를 받으며 질주한다. 왜냐하면 나는 ‘특급’이고 비싼 값을 지불했다. 워낙 산이 깊어 복선으로 철로를 놓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일본은 협궤, 우리나라는 표준궤를 쓴다. 협궤는 표준궤보다 40cm가량 폭이 좁다. 우리나라 철도의 시작도 일본이 부설한 것이므로 자국과는 다르게 표준궤를 선택했다. 이는 당연히 향후 중국과 러시아와의 철도 연결을 고려했을 것이다. 반면 일본은 외부와 철도 연결이 필요 없고 싼 부설 비용으로 산악 지형을 넘나들어야 했으므로 협궤가 적당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대신 객차를 크게 만들지 못해 운송량에 제약이 있고, 곡선 구간에서 일정 속도 이상을 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고 한다. 계곡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는 시나노 특급을 보면서 협궤 말고는 산택지가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칸센은 모두 표준궤로 새로 놓은 철로이다.

나가노에서 다시 다카사키까지 간 후 다시 열차를 갈아타고 에치고 유자와 역까지 달린다. 나가노에서 갈아타는 기차가 도착하기까지 15분의 시간이 있길래 역사 밖 육교까지 나가 사진만 찍고 왔다. 동계 올림픽이 열린 도시이고 여름을 앞둔 한 낮의 시간인데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멀리 있는 산들이 깨끗하게 잘 보인다. 호핑 투어는 이럴 때 쓰는 말 같다. 복잡해보이지만 특급 시나노 이후 나가노부터는 모두 신칸센 1등석을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빠르고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다. 지겨울 정도로 신칸센을 탔다. 어제, 오늘, 내일의 이동으로 이미 JR패스 구매 비용 이상의 탑승료에 맞먹는다.

에치고 유자와를 방문하기로 한 이유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 때문이다. 일본인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사람이 두 명 있고,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먼저 수상했다. 나는 그의 소설은 설국만 읽어보았지만 그 하얀 풍경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가 참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 그 곳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내가 기록하는 ‘방문 희망 리스트’에 추가 해 놓았었다. 신칸센 자유 이용권이 없다면 꽤나 돈을 들여 와야하는 곳이기에 이 기회에 방문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다만 설국이 아니라 파릇파릇한 푸른 나라 였다는 점은 아쉽다. 다른 한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오에 겐자부로이고 그의 책을 초등학생 때 샀다가 100 페이지도 못 읽고 포기했다.

에치고 유자와를 향해 달려가는 신칸센 내에서 숙소를 예약했다. 여름은 비수기라 숙소가 저렴했다. 또 니가타현에서는 방문 외국인을 대상으로 숙소 쿠폰을 뿌리고 있었는데 이 캠페인으로 예약하니 조식/석식이 포함된 다다미방을 5만원 안되는 가격에 예약할 수 있었다. 가장 원했던 것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장기간 머무르며 설국을 구상했다는 다카한 여관이었지만 이 곳은 그 유명세 때문인지 이 비수기에도 비싼 가격을 받고 있고 별다른 캠페인도 없었다.

에치고 유자와 역에 내리니 6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공기가 서늘했다. 숙소로 가다가 설국 기념관을 관광하고 체크인 하기로 한다. 구글 맵에서는 가까워 보였는데, 숙소까지는 꽤 먼 거리를 걸어가야 했다. 길을 걸어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니 오히려 ‘없다’고 표현하는 쪽이 더 정확하겠다. 이 곳에 신칸센이 처음 놓이고 경제가 부흥할 1980년 초반에는 스키리조트가 개발되고 숙소가 우후죽순 생긴 것 같다. 지금은 우리나라처럼 스키의 인기도 많이 줄어들고, 그 때 지어졌던 리조트들이 많이 낙후되고 다른 지역의 경쟁자들도 많이 생겨서 그 때만큼의 호황은 다시 찾아오지 않는 것 같다.

아뿔싸, 설국 기념관이 보수 공사로 문을 닫았다. 비수기인 여름에 맞춰 내부 공사를 진행하고 겨울에 다시 문을 여는 것 같았다. 걸어오느라 발이 화끈거려 건물 앞 족욕 탕에 잠시 짐을 내려놓고 족욕을 했다. 족욕을 하는 사람도 물론 없다. 물에 떠있는 하얀 각질로 사람들의 흔적을 느꼈다. 가끔 일본 특유의 박스형 경차가 몇 번 지나쳐 갈 뿐이다. 산지 지형이라 숙소로 올라가는 길도 꽤나 오르막이다. 알고보니 내가 예약한 숙소 (유자와 토에이 호텔) 바로 옆에 스키 리프트가 있었다. 겨울에 스키를 타러 온 관광객들은 숙소에서 바로 스키를 들고 나와 탈 수 있게 편리해보였다. 호텔 주차장에는 차가 별로 없었다. 단체 관광객을 태우고 역을 오가는 대형 버스들이 몇 대 서있었다.

로비는 꽤 넓었지만 오랫동안 리모델링 하지 않은 색바랜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의 가야산이나 거제 등 예전에 인기가 있을 법한 관광지에, 마이카 붐을 타고 지어진 건물 내부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중년의 아주머니 직원과 그 보다는 약간 젊어 보이는 남자 직원이 있었다. 역시 다른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영어로 체크인을 하겠고 아고다에서 할인 캠페인을 통해 예약했다고 이야기했다. 알겠다고 하고 여권을 달라고 한다. 잠시 뒤 직원이 조식과 석식은 포함되지 않는 숙박 플랜이라고 이야기 했다. 내가 아고다에서 확인한 것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예약한 아고다 예약 기록에는 니가타현에서 진행하는 특별 캠페인으로 조식과 석식을 포함한 플랜이라고 나와있었다. 스마트폰을 들이 밀었고, 영어 대신 일본어를 썼다. 아마 이 호텔에 이 플랜으로 숙박한 사람이 나 뿐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한참을 서류를 뒤적뒤적하더니 알겠다며 조식과 석식을 포함한 숙박이라고 이야기했다. 정말 그들의 실수 인지, 아니면 내가 이야기하고 증거를 들이미니 마지못해 해준 것인지는 모르겠다.

숙소로 올라가 다다미 방에 잠깐 누워있었다. TV를 틀었더니 일본 아이돌이 한국 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이 하고 있었다. 아침에 김포공항으로 입국해서 그날 저녁에 김포공항으로 출국하는 당일 치기 여행이라고 한다. 나도 힘든 여행을 하고 있지만, 그 여자 아이돌은 하루 종일 저 텐션을 유지하는 것이 나보다 더 힘들 것 같았다. 오늘이 여행 중 유일하게 나만의 TV와 화장실이 있는 숙소였다. 사실 저녁 먹을 시간까지 별로 할 것이 없기에 동네를 한바퀴 둘러보고 오기로 했다. 방금 역에서 관광객이 걸을 만한 ‘설국’ 길이 있다는 것을 지도에서 찾았었다.

설국 길은 여관 다카한으로 가는 길부터 시작한다. 여관 로비에는 설국 관련 전시가 있는 듯 하나, 왠지 투숙객이 아닌데 들어가기 뻘쭘하여 건물만 한바퀴를 돌아보았다. 여관을 지나 신칸센 철로를 거쳐 굽이굽이 동네를 살펴보다보면 여주인공이 일하던 여관이나 설국의 유명한 첫 문장,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가 새겨진 기념비도 찾아볼 수 있다. 마을 한바퀴를 돌아 다시 기차역으로 왔다.

기차역으로 온 이유는 이 지방의 사케를 시음할 수 있는 폰슈칸이라는 상점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5백엔을 내면 코인 5개를 주는데 수십개의 사케 자판기 중 원하는 것을 코인 넣어 시음해볼 수 있다. 사케 가격에 따라 코인 한개 부터 세개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마음에 드는 사케는 병으로 구입할 수도 있는데 한 병 사고 싶었지만 이를 남은 여행 기간 내내 배낭에 짊어지고 다닐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모든 기념품은 삿뽀로에서 사기로 한다. 네 종류의 사케를 나름대로 다른 것들로 골라 먹어보았는데 정말 맛이 달라서 모두 쌀을 기본으로 한 것이라고 믿겨지지 않았다. 어떤 사케는 상큼한 귤 향이 진하게 느껴지는데, 귤을 진짜 넣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향을 귤로 착각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 곳 니가타는 쌀이 유명하고 따라서 쌀로 만드는 사케가 유명해졌다고 한다. 이름있는 양조장만 수십 곳이라는 듯.

사케를 병으로 하는 것은 포기하고, 편의점에서 맥주와 몇 가지 간식거리를 사서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로 돌아오니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저녁은 아래 층에 있는 연회장에서 준다고 해서 내려갔다. 간단하게 숙박 호수를 말하고 들어갔는데, 대부분 단체 관광으로 버스를 타고 오신 정말 나이드신 할아버지, 할머니 뿐이었다. 아, 이 숙소는 비수기에 이런 영업을 하는 구나 싶었다. 거기 앉아있는 유일한 혼자, 젊은이(?)로 일본식 코스요리를 준다고 하여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접객하시는 분들도 할아버지, 할머니다. 식사는 철저히 와쇼쿠 스타일로 생선, 조림, 된장국, 나베, 흰 쌀밥이 꽤 길게 이어져서 나왔다. 사실 건강식이긴 하겠으나 별로 자극적이지 않은 요리의 끊임 없는 행렬에 금방 질려서 그만 먹고 나갈 수 있는 시간을 노리고 있었다. 결국 후식은 패스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사 후 올라와서 조금 쉬었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호텔이 조금 높은 지대에 위치해있어 마을 전경이 잘 보였다. 기대했던 설국의 풍경은 아니었다. 빌려주는 유카타를 입고 대욕장에 온천을 하러 갔다. 호텔의 다른 곳은 낡고 오래된 느낌이었지만 탈의실부터 잘 관리되고 있었다. 노천탕으로 나가보았다. 한 명이 있었지만 이윽고 나가버렸다. 배트민턴 코드 정도 넓이의 노천탕에 나 혼자 누워 있었다. 산에서 이름모를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린다. 밤 하늘의 별이 선명하게 보였다. 초 여름이지만 밤에 산에서 내려오는 쌀쌀한 바람이 느껴졌다. 일주일 넘게 진행된 오랜 여행의 피로가 풀린다. 나름 일본 대중 목욕탕을 다녀봐서 그런지 제법 익숙하게 씻을 수 있었다.

숙소로 올라와 다다미 방에서 TV를 보며 맥주를 마셨다. 일본의 새우깡 에비센을 먹으면서 내일의 계획을 조금 생각했다. 문득 깜깜한 밤, 사람이 안보이는 호텔, 4인용 객실에 혼자 잠을 청하는 나. 약간 으시시한 느낌이 들어서 TV를 오랫동안 켜놓고 잠을 청했다. 캡슐 속에서 잠을 자는게 익숙해져서 일까.

내일은 정말 오랜만에 도쿄로 향한다. 정확히 15년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