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와 처벌 – 미셸 푸코

독립된 사법권이란 얼마나 그 자체로 모순인가? 피지배자들은 지난 수 백년간 마치 물을 자르는 것처럼 권력과 사법권을 분리시키려 노력해왔지만 이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이기적인 한 이루어질 수 없는 망상이다. 다만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처벌의 방식을 다듬어 온 사실 자체로 이러한 투쟁은 성과가 있었다.

사법, 형벌, 복지, 범죄, 자유의 제한, 언론 등 사회학의 많은 개념과 기구의 목적들이 자신의 처한 입장에서 이해되고, 또한 권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실현되는 사회에서 집단에 의한 개인의 처벌, 또는 개인 간의 투쟁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혹은 이러한 마찰이 적은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읽는 동안 여러가지 의문이 떠오르고 일부는 정리 되었지만 이 책은 분석에 집중할 뿐 결론은 내려주지 않는다.  

미디어의 이해 – 마셜 맥루한

The Medium is the message

위의 “미디어는 메시지” 라고 번역되는 맥루한의 유명한 경구의 원문을 알게 된 후 도서관에서 빌렸다.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미디어에 대한 책이 아니다. 아마 원문이 “The Media is the message” 였다면 굳이 빌려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디어의 형식이나 경험보다 내용이 덜 중요함은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이 여기에 공감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전환”이라는 단어는 꾸준히 등장한다. 어느 분야에서든 임계치에 다다른 지점에서 전환이 일어난다. 현재가 상당히 많은 분야에서 이러한 전환이 일어나는 시기라는 것은 여러 “미디어”를 통해서 관찰되는데 이 것은 정보 이동의 속도 증가, 그리고 소프트웨어를 통한 자동화 때문이다.

자동차 중독에 걸린 사람들은 켄타우로스가 아니라 휠체어를 타는 뚱뚱이들에 더 가까운 것이다. 내 신체 능력을 임계치까지 이용하고 미디어로 확장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미디어에 의존하는 삶이란 그저 나를 미디어에 흘려보내는 것이다.

미디어의 이해가 잘 이해되고 공감될 수록 우리나라가 얼마나 미국 중심의 시각적 사고를 하고 있는지 느끼게 된다. 공감각적 경험, 절제의 미, 여백의 중요성 같은 색다른 체험은 그 균형을 위해서라도 의도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