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폐

밖이 어두워지면 이때다 싶어 커튼을 칩니다. 빳빳한 감촉의 커튼은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한 역할을 합니다. 차가운 공기를 나누고, 집안의 어두움을 조금은 더합니다. 화려한 흰색이지만 반짝임을 주는 빛이 없기에 베이지 벽지 속으로 잘 녹아듭니다.

부산히 돌아다니며 벽에 붙은 스위치들은 모두 끄고 몇 가지 조명만 켜둡니다. 새로 임무를 부여받은 녀석들은 자기에게 허락된 아주 조금의 공간만을 은은한 노란색으로 비춥니다. 고개를 떨구고 바닥 만을 바라보는 아주 소심한 녀석들 입니다.

창문은 모두 닫습니다. 이중창 모두 닫습니다. 쓰지 않은 방문도 닫아둡니다. 간혹, 적당한 온도의 공기 속에 은은한 냄새가 섞여 있을 때, 함께 있고 싶은 기분이 들때는 아주 살짝만 창문을 열어 바람을 초대합니다. 하지만 아주 엄격하게 초대장을 살펴봅니다.

낮 동안 존재감을 뽐내며 자리를 차지하던 가구들은 대부분 희미한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춥니다. 일부는 어둠 속 각 진 모서리가 남아 있지만 그외 많은 부분은 사라집니다. 웅크리고, 해가 뜨기를 기다립니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들은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입니다.

시계는 벽지 속에 녹아 들고, 빛을 받고 있지 못하고, 목소리를 내지 않지만 자꾸 내 눈길을 사로 잡습니다. 오직 나만이 주인공이 되는 소중한 시간이 끝났다고 알려주니까요. 이 시간을 꽉꽉 채워넣지 않으면 오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입니다.

빛과 일, 시간과 목소리, 내일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하지 않으면 안되는 많은 것들은 하루 종일 내 주변을 날아다닙니다. 내 얄팍한 껍데기를 안쪽과 바깥쪽에서 퉁퉁 두들겨댑니다. 이런 완력은 내 성대를 두들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 원치않는 걸음을 꽤나 많이 걷게 합니다. 어느 세상의 물리법칙을 따르는지 몰라도 나에 대한 동정이나 휴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보통은 하루가 끝나가는 때 내 주변에 얇은 어둠과 진공의 장막을 칩니다. 내 사고의 반경을 내 몸에서 고작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나를 움직이는 동력을 오직 내부의 목소리에서만 얻고 싶습니다. 해야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은 엄격하게 구분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80세를 살지만 10살만 사는 것과 같습니다.

From the new universe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너무도 큰 변화이다. 따라서 아이가 없는 시절의 경험이나 언어로는 묘사할 수가 없다. 차원이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행동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시기나 질투 혹은 오해와 서운함 등의 감정이 이전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면 아이가 생긴 이후 아이와 느끼는 감정은 이러한 감정을 늘리거나, 줄이거나, 섞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로 표현하려 해도, 역시 불가능하다. 언어는 아이가 없는 사람과의 의사 소통을 고려해서 만들었나보다.

우주에 가는 것과 아이를 낳는 것을 비교하면 아이를 낳는 것이 인생에 훨씬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우주에 가는 것은 먼 곳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라면, 아이를 낳는 것은 마치 블랙홀을 거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 이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조금은 아쉬울 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