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왼손잡이다. 밥을 먹을 때 가능하면 가장 왼쪽에 앉는 것이 편하고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면 상대편과 같은 방향의 손에 젓가락을 들고 있는 일이 대부분이다.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은 뭔가 이상하거나 어색하다는 것을 쉽게 눈치 채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다. 어떤 대학교 친구는 몇 년간 총 수강 학점 보다 월등히 많은 수의 밥을 함께 먹었음에도 내가 왼손잡이 인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밥을 코로 먹었으면 알았을 라나?
일반적으로 다시 표현하면 ‘마주 앉은 사람’에게 신경을 기울여 세심하게 관찰하고 듣고 이해하고 대화를 한땀 한땀 엮어 나가는 사람과 스마트폰에 더 집중하고 몸은 비틀어 앉고 주위의 다른 멋진 이성을 쳐다보는 일이 잦은 사람. 내 앞에 앉은 사람은 이 둘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하게 마련이다.
우선의 조금의 반성부터 해야겠다. 나 또한 생각이 복잡할 때 (요즘?) 그렇게 적극적인 리스너가 되지 못한다. 그래도 문득문득 똑바로 정면을 보려는 노력을 다잡고 상대에게 집중하려 하는 편? 몇 가지 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노력이라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시선은 상대를 향하고,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고 핸드폰 같은 것은 처음부터 주머니나 가방 속에 넣어두는 사소한 것들은 지키려고 한다.
이렇게 정신을 집중하면 당연히 같은 순간 같은 시간을 더 밀도 있게 공유할 수 있다고 할까? 말에서 생각을 읽고 외모에서 의도를 읽고 행동에서 버릇을 찾는 그런 세세하게 알아가는 무엇 인가들이 조금씩 쌓여나가는 것이 관계를 발전시키는 바탕이 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이러한 ‘노력’이 필수적으로 그 역할을 하는 것임을 느낀다. 아직 습관이 되지 않아서 아차 하는 때도 종종 있지만 말이다.
나에게도 상대가 세세한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의도적으로 말하거나 가볍게 남긴 표식들을 잘 발견하고 따라와 준다면 ‘아 이사람 나와 맞는구나’라는 느낌을 더욱 받을 지 모르겠다. 새로 산 신발이나, 계산할 때 꺼내든 신용카드에서부터 같이 이야기를 풀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니까.
사람이 사람에게 가질 수 있는 감정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면 이성과 노력의 끈을 떠나 하늘로 날아가 버려 더 이상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다. 그 전까지 상대를 알고 관계의 초석을 놓고 출발선 상에 서있는 단계에서는 이러한 이성적 조절이 관계가 발전될 방향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최선을 다해 매듭을 묶고 하늘을 향해 바람이 부는 곳으로 걸어나는 노력이라면 기꺼이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