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오타루, 삿뽀로

러브레터를 처음 봤던 것이 22살 때 였다. 그 이후로도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를 몇 편 보았는데 러브레터 만큼 완성도와 대중성을 가진 영화는 없었다. 많은 러브레터의 팬들이 영화 배경지 오타루를 찾아 소위 ‘성지 순례’를 한다고 한다. 여름의 방문을 앞둔 지금은 완연히 다른 거리의 풍경에 영화 속 장면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늘은 긴 기차를 길게 타고, 영화의 배경지 오타루로 간다. 그리고 다시 삿뽀로로 돌아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낼 것이다. 사실상 온전한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고풍스러운 은행 건물 안의 도미토리 룸에서 깬다. 조그만 플라스틱 부스에서 샤워를 하고 곤히 잠든 월드 시티즌들을 깨우지 않도록 조심조심 나왔다. 빨간색 나선 계단을 내려와 키를 반납하고 들어올때와 반대인 부두 쪽 문으로 나선다. 부둣가와 개조된 붉은색 창고 들이 보인다. 요코하마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봤는데, 이쪽이 훨씬 작고 귀엽다. 역 까지는 걸어간다. 걸어가는 길이 편하지 않다. 대부분 트램을 타고 올 수 있는 안쪽 길로 오가는 것 같다. 비교적 넓은 차로 변으로 정비되지 않은 인도가 이어진다. 오른쪽으로는 꽤 큰 규모의 호텔이 줄줄이 서있다. 이른 체크아웃 손님들이 고급차를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온다. 아마 바다와 어제 올랐던 남쪽 전망대를 조망할 수 있는데다 기차역에 가까운 부지여서 호텔로 개발 되었을 것이다.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고가도로로 올라갈 수 있는 차로를 왼쪽에 두고 좁은 인도를 한참 걸어간다. 정비가 잘 안되어 있다. 10여 분 남짓 걸으니 조금은 보행자 친화적인 인도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예상했던 대로 아침 시장이 나타났다. 시장 입구에는 러시아산 킹크랩이 수족관에서 가만히 밖을 보고 있다. 수염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다. 다리 하나가 어마어마한 길이다. 노량진에서는 이런 크기를 본적이 없는 것 같은데. 여기도 킹크랩이 비싸다. 킹크랩을 싸게 먹을 수 있는 곳은 지구상에 없는 것 일까.

아침 시장을 한바퀴 휙 둘러봤다. 해산물을 고르면 계속 쉭쉭 소리를 내는 커다란 찜통에 넣어준다. 가게 옆의 좁은 탁자에서 잠시 후 꺼내어 먹을 수 있는 식당들이 안쪽에 붙어있다. 주로 해산물 판매점이 많았는데 내가 혼자 먹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참치를 부위별로 조금씩 파는 상점이 있다. 아침으로 생참치를 먹기는 싫다. 역으로 오는 길, 세븐 일레븐에서 빵 두개와 커피를 하나 산다. 빵 하나와 커피 두개 였던가? 아니다 빵 두개와 커피 하나일 것이다. 평생 커피 두 잔을 한번에 사본 적은 단연코 없다. 이것은 기차에서 먹을 아침 식사이다. 출발 시간에 얼추 맞추어 어제 내렸던 하코다테역으로 향한다.

삿뽀로로 향하는 오늘의 두 번째 발차 ‘특급 호쿠토’ 열차를 탄다. 신칸센 같은 고속 열차는 아니다. 특급으로 달려도 삿뽀로 까지는 무려 세 시간 반, 길이로는 300km를 넘게 달린다. 선로는 대문자 S를 그리며 한번은 바다를 끼고 오른쪽으로, 또 한번은 산을 끼고 왼쪽으로 크게 돌아간다. 아마 직선으로 철로를 놓을 수 있다면 시간이 반은 줄 것이다. 편도 요금이 9000엔이 넘는다고 한다. 하코다테가 왜 여행하기 어려운 도시 인지 이해가 간다. 한국사람들은 주로 비행기를 이용해 삿뽀로로 들어가고 나올텐데, 볼거리가 많지 않은 하코다테 방문에 교통비만 16만원, 둘이오면 32만원, 가족이 오면 48만원을 써야 한다. 나는 다행스럽게 JR패스로 무료 이용.

1등석 칸은 사람도 많지 않고 쾌적하다. 부부로 보이는 노인 분만 몇 타 계셨는데 대부분 삿뽀로에 도착해서 같이 내렸다. 신칸센에도 1등석에는 대부분 나이든 노인만 보인다. 바다와 산을 끼고 달리는 기차는 쾌적하고 멋진 풍경을 자랑했지만, 이것도 한시간 후에는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여행 중에는 가급적 ‘디지털 디톡스’ 삶을 추구했다. 필요 없는 웹 서핑을 하지 않고, 유투브 동영상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지 않는 것이 디톡스 법이다. 하지만 추구한바와 달리 내 왼손에서 스마트폰이 떨어지는 일이 많지 않았는데, 지도를 보거나 맛집을 찾거나 사진을 찍는 것은 그만 둘 수가 없었다. 디지털이 톡식할지 헬프풀할 지는 어떻게 쓰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노트패드를 꺼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여기서 노트패드는 디지털 노트패드 앱이 아니라 거친 촉감의 종이로 만들어졌다. 한국에서 이 노트패드를 배낭에 챙기면서 여유가 있을 때 여행의 감상을 적어보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이때가 여행 중 유일하게 노트패드를 꺼내어 뭔가를 끄적인 순간이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앉아있을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가 떳떳하다. 따라서 지금처럼 귀국 후 일년이 넘은 시점에 그 때 느낀 감상을 적고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솔직한 그날 노트패드의 감상을 이 블로그에 적을 수는 없다. 다분히 혼자 이국에서 적는 글이란 희망에 차거나 행복에 겨울 수는 없는 것이다.

커피, 빵, 노트, 풍경 그리고 두 번의 화장실이 지나고 나서 창밖으로 나지막한 네모 반듯한 건물이 빼곡히 지나간다. 기차는 치토세 공항을 지나간다. 내일 다시 올 곳이다. 공항을 지나 점차 높은 건물이 나타나고 생각보다 한참을 달려서야 다시 거대한 도심 한가운데, 삿뽀로 역에 기차가 멈췄다. 갑자기 후쿠오카, 나고야, 도쿄에서 봤던 대도시의 풍경이다. 이 사람들은 어디서 나타난건지 어리둥절하다. 내일 오타루를 보고 올 시간은 없다. 내친김에 오늘 오타루까지 달려간다. 잠시 역 밖으로 나가 코인로커에 배낭을 넣고 다시 오타루로 향하는 JR 열차를 탄다. 생각보다 오타루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다. 학생들이 많이 보였는데, 오타루에서 삿뽀로로 통학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열차 승객 대부분은 일본인이지만, 드문드문 한국인 젊은 커플이 보인다. 오타루는 커플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눈과 러브레터가 주는 로멘틱이 있다. 오타루까지는 삼십분 이상을 다시 기차를 타고 가야한다. 앉을 자리가 없어, 문가 편한 곳에 서 있었다. 여행 중 현금을 조금 씩 인출해가며 썼다. 일본은 현금만 받는 매장들이 꽤 있고, 오늘 점심으로 염두에 두었던 오타루의 카이센동 집이 그렇다고 한다. 트래블월렛 카드는 일본 AEON ATM에서만 인출이 가능한데 오타루역 한 정거장 전 쇼핑몰에 이 ATM이 있다고 하니미리 내려서 돈을 찾고 걸어가기로 한다. 보통 역에서 내려 운하를 거쳐, 오르골당까지 간 후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데, 나는 전 정거장에서 쇼핑몰을 뚫고 걸어가 오르골당에서 시작해서 오타루역까지 왕복 없이 편도로 걸어간다. 좋은 루트다.

오타루의 관광지는 뻔하다. 역에서 출발한다면, 일단 정면으로 보이는 큰 길을 따라 내려와 바다와 운하가 만나는 곳까지 간 후, 내륙으로 향하는 운하를 따라 간다. 운하가 지겨워지면 다시 도심쪽으로 방향을 틀어 양쪽으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상점이 있는 관광 거리까지 들어온다. 여기는 카이센동이나 초콜렛, 유리 공예품을 파는 상점들이 가득하다. 이 거리를 따라 다시 조금 걸으면 길가에 서 있는 시계탑과 오르골당이 나온다. 관광은 여기까지로 아쉬우면 다시 온길을 따라 돌아가거나, 아니면 지름길로 딱히 볼 것 없는 거리를 뚫고가거나 할 수 있다. 삿뽀로 역 옆에는 해산물 시장이 있어 내가 먹고자 한 카이센동을 먹을 수도 있다.

시계탑 앞에는 사람들이 서있고, 다들 15분마다 내뿜는 증기를 기다리며 서있다. 캐나다에서 들여 왔다는데 벤쿠버의 유명한 시계탑과 똑같이 생겼다고 한다. 미국, 캐나다와 우호의 상징으로 주고 받는 물건들이 있는데, 요코하마와 샌디에고의 조각상 등 다른 관광객은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스토리를 알게 되는 재미가 있다. 언젠가 벤쿠버에 가서 시계탑을 보겠다고 다짐했다.

오르골당을 둘러보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 위에서 설명한 상점 거리를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 운하까지 살펴본다. 점점 사람이 많아지고 운하 근처에 가자 근처의 대형 버스에서 몰려든 단체 관광객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어제 하코다테에서 봤던 단체 관광객들이 다시 이 곳으로 온 것이다! 여기는 역시 겨울에 오면 좋겠다. 하얀 창고, 하얀 바닥, 하얀 다리와 난간에 쌓인 눈, 그리고 주황색 가로등이 함께 해야 좋은 셋팅이다.

역까지 올라가 카이센동을 먹으러 간다. 시장 골목에는 카이센동 가게가 여럿인데, 그 중 한 곳만 사람이 많고 나머지 가게 들은 그 정도는 아니다. 대기 목록에 이름과 몇 명인지를 적게 되어 있는데,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된다고 한다. 카이센동이 특별한 것은 없을 것이라 바로 그 옆자리로 간다. 앞 가게보다는 한가하지만 여기도 대기가 있어, “RYU”라고 이름을 적고 ‘1’ 이라고 숫자를 썼다. 여기서 “” 라고 적으면 뭐라고 불러줄지 궁금하다. 음독은 그대로 “류”고 훈독은 “야나기”라고 읽는다.

다른 재료보다 성게알(우니)와 랍스터를 넣느냐 넣지 않느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이 난다. 나는 여기까지 왔으니 우니를 넣은 4000엔 카이센동을 주문했다. 결과적으로는 실망했다. 제대로된 우니인가 싶었다. 옆 자리에 어린 한국인 커플이 앉아있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계산하려고 카드를 내밀었다. 직원이 여기는 카드 결제가 안된다고 했는데, 잘 이해를 못했는지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결국 현금만 받는다는 것을 알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점원이 ‘라인페이’도 된다고 이야기 하니까 ‘네이버페이’ 바코드를 내밀었다. 역시 안되자 결국 남자친구가 ATM을 찾아 편의점으로 먼 여행을 떠났다. 어린 친구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었다. 내가 계좌 이체를 받고 현금을 주고 싶었는데 괜한 오지랖인가 그만두었다.

나도 비행기를 23살쯤 처음 타보았다. 해외는 25살에 처음 나가보았다. 온전히 여행으로 해외는 28살로 기억한다. 요즘 세대에 비하면 많이 늦었다. 25살, 28살의 해외여행은 지금 생각해보면 미숙함, 아쉬움으로 절반은 채워져있다. 나한테 적당한 호텔을 찾는 법,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법, 리조트에서 이용 가능한 것과 불가능 한 것을 모두 알지 못했다. 그 시절의 화끈거림이 생각나면서 그립기도하다.

다시 삿뽀로로 돌아간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니 사람이 더 늘어나 있다. JR패스의 마지막 매표를 삿뽀로 역에서 한다. 규슈 패스 3일, 전국 패스 7일간 구마모토에서 삿뽀로까지 굽이굽이 달려왔다. 시간만 있다면 철도 최북단 왓카나이까지 무료로 갈 수 있는 통행권인데 아쉽다. 내 체력과 시간은 여기까지구나. 역사를 나선다.

삿뽀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지하 아케이드가 인상 깊다. 눈이 많이 오면 지상 통행이 마비되는 것에 대비하여 만들지 않았나 생각된다. 코인록커에서 꺼낸 배낭을 매고 끝없이 이어지는 아케이드를 걸어간다. 쭉 뻗어있는 대로 양 옆으로 수 많은 가지들이 나와있다. 대부분 고층 건물들의 지하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마치 개미굴 같다. 지하라 GPS 위치가 정확히 잡히지 않는다. 한참을 가도 목적지는 가까워지지 않는다. 1박에 3000엔 이하 정도로 필터를 걸어 숙소를 검색하니 나오는 숙소들은 다 이 모양이다.

한참을 걷다 오른쪽 지하 통로로 빠지니 메가 다이소가 나온다. 메가 다이소에 붙어있는 출구로 나가 다시 100미터 정도를 가서 마치 우리나라 재래시장에 지붕을 씌워 놓은 상점가가 나오고 그 상점가 한 가운데 대로에서 한 블럭 뒤쪽에 위치한 건물에 호스텔이 있었다. 입구로 들어가려면 술집과 꼬치구이집을 양쪽에 끼고 골목을 걸어들어가야 한다.

시장 한가운데 있는 호스텔이지만 깔끔하고, 생각보다 시끄럽지 않았다. 아마 창문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이미 하루 종일 기차를 타고, 오타루를 보고 온 덕분에 시간도 늦었고 지쳤다. 주위에서 식사를 때워보려고 한다. 씻고 침대에 누워 주위를 둘러보니 스스키노라는 유흥가가 남쪽으로 있고, 거기에 라멘 골목이 있다고 해서 가보기로 했다.

해질녘 호스텔로 들어왔는데, 씻고 쉬다보니 어느 사이에 밖은 깜깜해져 있었고 어둠과 함께 완전히 다른 도시가 되어 있었다. 빌딩 전면을 뒤덮은 네온사인과 수 많은 곳에서 들려오는 40대 이상을 타겟으로 한 노래소리, 접객원들 광고하는 버스들이 지나다닌다. 라멘 골목 근처에 가니 골목 입구에 ‘원조 라멘 골목’이라고 써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빌딩과 빌딩 사이의 조그만 통로 골목에 라멘집이 줄지어 있었는데, 대부분 7~8자리만 놓고 장사하는 작은 가게였다. 각자 특기로하는 라멘이 다른지 각양각색의 메뉴와 사진이 붙어 있었다.

다른 곳은 손님이 몇 없어 바로 들어가서 먹을 수 있었는데, 입구의 라멘 하루카라는 곳은 대충 세어봐도 15명은 줄지어 서 있었다. 얼마나 맛집 이길래 다른 곳은 텅텅비고 여기는 이리 사람이 많을까? 나는 줄서서 먹는 것은 거의 하지 않지만, 마지막 밤이라 맛있는 것을 먹고 싶기도 하고, 낮에 카이센동 집에서 줄 서서 먹지 않기 위해 들어간 집에서 실망하기도 했다. 또 검색해보니 구글 평점이 4.8인 가게다. 어짜피 딱히 돌아다닐 곳도 없어서 여기서 한번 먹어보기로 한다.

전례없는 구글 평점 점수에 두근거리며 줄 서 있는 동안 주문을 하고 무려 한시간을 기다렸다. 다찌 옆에 앉은 분도 혼자 오신 한국 관광객이다. 마지막 밤이라 삿뽀로 맥주도 한병 시켰다. 늘 숙소에서 조심스래 작은 한캔을 마셨는데 이제 마음을 약간 놓아도 된다. 줄 서 있느라 아픈 다리에 돈코츠 국물을 꾹꾹 채워 넣어, 남김없이 다 먹었다. 아 맛있다. 12일간 먹은 라멘이 5~6 곳은 될 텐데 그 중에는 입맛에 가장 맞는다. 한국인이 좋아할만한 매콤한 맛을 낸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터벅터벅 숙소로 돌아온다. 마지막 밤이고 잠자리에 들기에는 약간 이르지만, 푹 자고 내일 일찍 시내를 조금 더 돌아다녀 보기로 한다. 별 건 없지만 약간의 쇼핑 계획도 있다. 내일이면 집에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집이 더 그립다.

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센다이, 모리오카, 하코다테

큰일이다. 열흘 여행하는 동안 처음으로 늦잠을 잤다. 알람을 맞추지 않았다. 서둘러 일어나려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체크아웃 까지 센다이 성을 보고 오려했던 계획이 틀어졌다. 부은 발목과 다리를 좁은 캡슐이 가득 차게 뻗어본다. 부지런히 씻고, 계단을 내려온다. 숙소 계단에 꼬질꼬질한 외국인이 배낭을 베고 자고 있다. 계단에서 노숙을 한 건가. 밖은 화창하다 못해 더운 날씨다. 목표인 센다이 성터 유적으로 바삐 걸어간다. 어느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 좋을지 계산해 나아간다. 지금 생각해보면 버스를 타고 갔으면 될 껄 왜 걸어가느라 시간을 썼을까. 멀지 않을 것 같았다. 교통 수단이라고는 두 다리와 신칸센 만 생각에 있다. 걸어서 본 것만 진짜 본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목적지로 향한 곳은 센다이 성, 정확히 말하면 센다이 성터 유적이다. 예전에 성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고, 터만 남아있다. 성은 지진, 화재, 중력 등 다양한 이유로 무너지지만 가장 큰 것은 폭격, 전쟁 등 인위적인 파괴이다. 이 성도 어느 정도 보존되고 있었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폭격으로 파괴 되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아무 생산 시설이 없어 폭격의 목표가 되지 않은 도시들이 피해를 덜 받게 되었다. 전국 곳곳에서 전국시대 성을 복원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는 이 성이 세워진 시절의 역사를 중요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아직 센다이 성의 본격적인 복원 계획은 없는 모양이다. 딱히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도시도 아니고.

센다이 성까지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평평한 도심지를 벗어나자 다리를 하나 건너 오르막이 나타났다. 성터 유적은 시립 박물관 건물을 지나 꽤나 경사진 언덕, 혹은 얕은 산 위에 있는데 오르막 길이 꽤 길고 가팔랐다. 시계를 보고 돌아올 시간을 셈해보면서 부지런히 걸었지만 언덕의 중턱 어딘가에서, 부지런히 돌아가야 겨우 체크아웃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아쉽지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걸음을 멈추니 아침 시간이지만 땀이 뚝뚝 떨어졌다. 올때와 다른 차가 다니는 도로 길로 바삐 걸어 내려온다. 한참 보수 공사를 하고 있었다. 여행 내내 시간이 남거나 딱 맞은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시간이 모자라 발길을 돌려야 한 것은 처음이다. 여행에서 지극히 계획적인 나인데 왜 꼼꼼하지 못했는지, 알람을 맞추는 것을 잊었는지 화가 나기도 했다.

숙소 계단에는 내려올 때 봤던 노숙 외국인이 아직도 있다. 이제 잠에서 깨어 누워있다. 뭔가를 기다리는 건가. 여행 중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는 젊은 배낭 여행객들을 만났다. 나가사키에서 만난 여학생도 도쿄를 둘러보고 다시 서쪽 끝인 그 도시까지 왔다고 한다. 나는 신칸센을 타고 다니지만 그들은 어떻게 이동하는지 모르겠다. 야간버스 같은 것을 타면 꽤 싸게 도시와 도시를 건너 다닐 수 있다. 침대 머리 쪽에 깊숙히 숨겨둔 짐을 챙겨서 나왔다. 여권과 지갑 등 중요한 것은 작은 보조 가방에 넣었으니 배낭에는 다 옷가지 뿐이다. 여행 중 배낭을 잃어버렸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근처의 유니클로에 가서 가방과 옷을 챙겨야 할 것 같았다. 옷이 대부분이지만 다시 이 무거운 짐을 들고 역까지 걸어 가려니 한숨이 나온다. 대중교통을 타도 걷는 거리는 그렇게 줄어들지 않는다. 기나긴 아케이드를 다시 거슬러 올라온다. 햇살은 피할 수 있어 다행이다. 한낮의 아케이드, 그리고 빠칭코에는 젊은이들이 가득하다.

오늘은 신칸센을 타고 신하코다테호쿠토까지 올라간다. 역 이름이 길다. ‘신’은 새로운 역이라는 뜻이다. 일본은 신칸센 선로를 놓으면서 전용역을 건설할 때 이미 있던 재래선의 역과 혼동되지 않으려고 새로울 ‘신’을 붙였다. 신고베, 신오사카 역 등이 그러한 예이다. 신경주, 신해운대 등 한국에도 이런 명명이 있다. 하코다테호쿠토라는 역명은 하토다테시와 호쿠토시가 서로 자기 시의 이름을 붙여야 된다고 주장하다가 결국 둘 다 붙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한다. 참고로 호쿠토는 한자로 북두칠성할 때의 북두를 쓴다. 북두 자체가 북두칠성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북두칠성은 국자모양의 7개의 별이 만드는 별자리를 뜻하는데, ‘두’자가 국자라는 뜻이므로 ‘북쪽의 국자모양의 7개의 별’로 풀어 쓸 수 있다. 더 나아가면 국자나 혹은 비슷한 모양의 옛 다리미를 무덤 내 북두칠성을 뜻하는 부장물로 많이 넣었다고 한다.

홋카이도까지 올라가는 길 중간에 모리오카에 들러서 냉면을 한 그릇 먹고 간다. 냉면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한 시간, 정차 시간 5분 후에 역 바로 앞의 뿅뿅샤라는 식당이 점심 영업을 시작한다. (정말 이런 이름인지 의심스러웠지만 정말 이런 이름이다) 런치 메뉴를 먹고 다시 부리나케 모리오카역으로 돌아와 한 시간 후의 신칸센 열차를 타고 올라간다. 이미 하코다테 일정이 많아 점심을 먹느라 시간을 오래 낭비할 수는 없다. 그래도 모리오카를 지나는데 유명한 냉면은 한 그릇 먹고 가야겠다. 모리오카 냉면은 한국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냉면과는 맛이 다르다. 오히려 면은 밀면의 식감과 같은데 국물도 얼음을 넣어서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한국과는 다른 새콤한 맛을 낸다. 비슷한 음식이 없으므로, 말로 묘사하긴 어렵고 직접 가서 먹어보아야 알 수 있는 맛이다.

이 냉면도 원래 북한에서 일본으로 이주해온 조선인들이 원조라고 한다. 북한에서 먹던 재료를 그대로 구하기는 어려워 비슷한 맛을 냈는데, 몇몇 가게가 생겼다가 현재는 이 뿅뿅샤와 다른 한 곳이 원조로 인정받고 있는 듯하다. 뿅뿅샤는 한국에도 분점을 냈었는데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먹어보면 그 이유가 납득이 간다. 한국은 쫄깃한 함흥냉면과 삼삼한 평양냉면, 그리고 중간의 밀면이 이미 냉면 시장을 꽉 잡고 있다.

신하코다테호쿠토역은 하코다테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 신칸센의 최북단 종착역이다. 삿뽀로까지 이어서 건설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요원한 일인 듯 하다. 지도를 봐도 이 산간 지역을 어떻게 뚫고 철로를 놓겠다는 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선로 중 80%는 터널로 뚫어야 할 듯하다. 남쪽으로는 도쿄역에서 신하코다테호쿠토역까지 가장 빠른 열차가 4시간 안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노력을 하고 있다. 결국 홋카이도와 혼슈의 연결 해저터널인 세이칸 터널에서 신칸센이 얼마나 속도를 내느냐가 관건이다. 사방으로 팽창하는 공기의 압력과 후폭풍을 처리해야 하고, 마주 오는 열차의 안전성도 보장해야 해서 터널 내에서는 속도를 내기 쉽지 않다. 신칸센의 앞 부리 모양이 우리나라 KTX나 다른 초고속 열차보다 특히 긴 이유가 이런 터널 진입에 대응하기 위해서란다.

신하코다테호쿠토역에서 하코다테까지는 셔틀 역할을 하는 열차가 운행 중이다. 신칸센 도착 시간에 맞춰 대기하고 있다가 하차객들을 태우고 출발하니 오랜시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신칸센의 종점에서 내리면 대다수는 이 셔틀 열차를 타기 위해 이동한다. 셔틀 열차는 흔히 보는 한국의 지하철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고 2~30분 정도 지나면 최종 목적지인 하코다테에 닿는다. 센다이에서 하코다테는, 강원도에서 블라디보스톡에 닿을 만큼 북으로 올라온 거리이지만 역시 신칸센 덕분에 두 시간 조금 더 걸려서 도착할 수 있다.

하코다테역은 모든 열차의 종점으로 꽤 많은 플랫폼을 가지고 있었다. 플랫폼 수에 비하면 그리 붐비지는 않는다. 대부분이 관광객으로 보였다. 출구로 나올 때 왼쪽으로 가면 관광안내소에서 1일 트램 이용권을 구매할 수 있다. 트램을 세 번 이상 타면 이것을 사는 쪽이 유리하니 왠만하면 사서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세 번 타면 본전이지만 매번 돈을 지불하는 시간의 절약과 잔돈 관리를 안해도 되는 이득이 있다. 하코다테는 반나절 일정으로 내일 새벽까지 고료가쿠, 하코다테 야경, 하치만자카, 럭키삐에로이다. 기차역에서는 내일 아침 기차편으로 삿뽀로로 올라가는 특급열차를 예약했다. 이 열차도 그린샤권으로 1등석을 예약할 수 있다. 숙소에 가서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기로 한다. 나가사키에서 보았던 노면전차를 타고 남쪽으로 몇 정거장을 내려간다.

숙소는 Share Hotels Hakoba Hakodate 라는 곳이다. 옛날에는 은행으로 사용되었던 오피스 빌딩인데, 이제 필요가 없어 폐업 후 호텔로 리모델링해서 이용하고 있다. 단단해 보이는 석조 건물이다. 침대 하나에 3만원을 받는 사업으로는 애초에 올라갈 수 없는 건물이었다. 일반적인 호텔 룸도 있지만 나는 도미토리 룸으로 예약했다. 가운데의 원형 계단을 양 옆으로 다양한 Wing 들이 연결되는 신기한 구조를 하고 있었다. 카운터는 깔끔하고 여유로운 공간이 있었고, 능숙한 영어로 응대 받을 수 있었다. 왠만한 관광지는 걸어갈 수 있어 위치도 좋은, 추천하고 싶은 이색적인 숙소다. 다만 처음부터 도미토리를 생각하고 만든 방이 아니라 침대의 배열이 이상하고, 배정 받은 침대에 따라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

침대에 누워서 쉬고 있었다. 커튼 밖에서 같은 방에 있던 나이든 할머니와 아줌마 백팩커 두 분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분 모두 일본 여기저기를 장기간 돌아다니면서 여행 중이라고 한다. 그 중 남미에서 오신 아주머니 한 분은 일 년에 수 개월은 혼자 지구 반대편 배낭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참을 떠들더니 문득 도미토리 룸에서 시끄럽게 떠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나는 평생에 몇 번 못할 이런 여행을 저분은 매년 그리고 훨씬 더 긴 기간 동안 하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 직장인들이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일이다. 문득 나도 은퇴 전에 이런 기회를 다시 가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리나케 일어났다.

건물 앞으로 나와 전차를 탄다. 길거리 표지판에 러시아어가 적혀 있는 것이 특이하다. 홋카이도는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 붙어있다. 인적 교류도 많아 보인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있지만 햇살을 받으면 따뜻한 날씨다. 하코다테의 남쪽 변방에서 북쪽으로 가로질러 꽤 오랜 시간 전차를 타고 간다. 앉아 가는 동안 하교하는 중고등학생들이 가득 들어와 만원이 되었고, 전차 안을 가득 메우던 젊은 목소리가 모두 빠져나가 한참 식혀진 이후에야 내가 내릴 정류장이 나타났다. 첫 번째 목적지인 고료가쿠는 정류장에서도 10분 이상을 걸어 들어가야 한다. 고료가쿠 앞에는 높다란 전망대가 있다. 그 모습을 보려면 전망대에 올라가 내려다봐야 한다. 하지만 나는 더 많은 시간을 고료가쿠 안에서 보내기로 한다.

이곳은 에도시대 말에 건축된 요새로 별 모양의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왜 별 모양일지는 모르겠다. 호쿠토라는 이름과 관련이 있을까? 평야 한 가운데 그다지 높지 않은 성벽을 품고 있어 방어용 성이라기보다 행정 기관들을 보호하는 장벽 같은 느낌이다. 본래 축조의 목적으로는 얼마 이용되지 못했다고 한다. 봄이 되면 벚꽃의 명소로 유명하다. 성벽을 따라 한 바퀴를 둘러본다. 늦은 오후, 이른 저녁 시간이라 사람이 없다. 내부 건물에 위치한 전시관은 마침 직원이 나와 문을 닫았다고 알린다. 처음부터 들어가 볼 생각은 없었다. 한 바퀴를 돌 동안 십여 명의 사람들을 마주쳤고, 대부분 이 근처에 사는 산책 나온 사람들 같아 보였다. 앉아서 쉴 자리가 있다면 앉아서 노을을 보면 삼십 분이라도 시간을 죽이고 싶었는데, 성벽 위쪽에는 앉아서 쉴 자리가 없다.

성벽 따라 걷기가 지겨워졌다. 올 때 내린 정류장 보다 조금 더 먼 정류장까지 슬슬 걸어 올라가 보도록 한다. 반듯한 사각형 거리 양쪽으로 단층 건물이 듬성듬성 들어서 있다. 새로 지은 건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길을 지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지하철이 있지도 않고, 차가 없으면 돌아다니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코다테도 인구가 많이 줄어서 예전 만큼의 야경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통계를 살펴보니 인구가 많이 줄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개 짖는 소리가 가끔 시끄럽게 났고 지저분하고 오래된 경차들이 몇 대 지나쳐갔다. 일본이 아닌 느낌이 들었다. 노면전차 정류장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기다렸다. 조금 이르지만, 야경을 보러 간다.

하코다테에 오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야경을 보러 간다. 야경으로는 나가사키와 고베도 유명하지만 그 곳의 관광객 중 절반, 아니 그보다 더 적게 야경을 보러 간다면, 하코다테에 오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야경을 보러온다. 하코다테의 야경이 대단히 뛰어나서가 아니라 여기는 저녁에 놀러갈 만한 특별한 관광지가 없어서이다. 다시 전차를 타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간다. 전차는 두 종류 노선이 있지만 서로 갈라지기 전에 내리므로 아무거나 타도 된다.

다시 한참을 타고 쥬지가이역에서 내려 걸어간다. 케이블카 정류장이 위치한 곳이 야트막한 언덕인 줄 알았더니 가까워 질수록 경사가 가파르다. 같이 전차에서 내린 외국인 커플도 나와 같은 방향으로 앞서 걸어간다. 러시아에서 온 것 같다. 사람이 많아지더니, 거대한 버스 전용 주차장도 나타나고 주차된 버스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린다. 버스 중에는 ‘모두투어’라고 적힌 것도 있다. 한국의 단체여행 상품을 통해 오신 분들이 내린다. 하코다테는 개인 여행객으로 오기 어려운 곳이다. 후쿠오카에서 렌트카나 기차를 통해 와야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케이블카 앞에 대기 줄이 있다. 케이블카는 대형으로 알프스에 위치한 몽블랑 같은 유명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는 크기이다. 한 번에 50명 가까이 태울 수 있을 것 같다. 여행 중 처음으로 심한 외로움을 느꼈다. 다들 커플로, 가족끼리, 단체로 와서 케이블카를 타고 기대감에 부풀어서 각자의 언어로 떠드는 와중에 나는 혼자이며 누구와 이 기대와 경험을 나눌 수도 없을 것이다. 열흘 동안 한국어로 누구와 떠들어본 적이 없다. 문에 붙어서 점차 드러나는 하코다테의 시내 전경을 보면서 올라가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20여 년 전 혼자 도쿄의 오다이바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모노레일을 타며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다. 그때도 하루 종일 구경을 하고 돌아가는 커플과 가족이 가득한 모노레일에서 혼자 앉아 도쿄만의 야경을 보면서 같은 생각을 했다. ‘아, 절대 혼자 여행하기 싫다.’ 이런 감정이 혼자 여행 떠나는 것을 망설이게 만든다.

전망대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야경을 안에서도 볼 수 있고, 밖에서도 볼 수 있으며, 밖도 최소한 3층으로 나뉘어 있다. 여기를 방문하는 관광객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전망대 뒤쪽에는 버스로 올라온 사람들이 연이어 내린다. 건물 내에는 식당과 기념품 가게가 큰 규모로 들어서 있다. 가장 높은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아직 어둑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있다. 가장 높은 곳에는 하코다테 시내 방향 뿐 아니라 반대편의 혼슈 본토 방향도 전망이 가능하다. 광활한 바다, 남북으로 나뉜 섬들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어서 야경이 아니더라도 무한한 공간 감을 느끼기에 좋다. 이곳은 위도가 서울보다 한참 북쪽으로 거의 백두산과 같다고 한다. 여름철에는 한참을 기다려도 해가 잘 떨어지지 않는다.

둘러보는 사이 관광객들이 점점 늘어나서 이미 좋은 자리는 사람으로 빼곡한 이쑤시게 통처럼 되어 버렸다. 높은 자리에는 계단이나 바닥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조용하게 감상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돌아다니다 실내에 커다란 통 유리창으로 전경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전망대 위쪽보다 위치 상 약간 낮기도 하고, 서서 봐야 하기에 사람이 없었다.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졌지만 그 속도는 생각보다 더뎠다. 야경은 모조리 깜깜해져야 밝게, 반짝반짝 빛난다.

깜깜한 하늘에 빛나는 야경을 보고 싶었지만, 이미 내려가는 케이블카를 타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저 줄을 서서 차라리 내려가는 케이블카에서 야경을 감상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느긋하게 깜깜해지긴 기다렸다가는 완전한 야경을 볼 수 있겠지만 왁자지껄 떠드는 가족 여행객들 사이에서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유일하게 혼자 올라온 사람처럼 보이는 와중에 그 무리 속에 줄을 서 있기 싫었다. 서둘러 내려왔다. 완전한 야경을 못 본 것은 다시 여기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케이블카 정류장에 내려와서 서쪽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가면 유명한 관광지 거리가 나온다. 다만, 밤에 혼자 걷자니 무서운 느낌도 들었다. 시장통 같은 전망대에서 순식간에 사람들이 없는 어두컴컴한 길거리로 풍경이 바뀌기도 했고 나타나는 건물이 오래된 교회 등 종교 건물이라 왠지 모를 음산함을 주기도 했다. 어두운 거리를 오래 걷지 않고 유명한 비탈길 하치만자차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나처럼 야경을 빨리 보고 내려와 하치만자카로 향하는 사람이 한 두 명 있었다. 너무 떨어지지 않게 따라가기로 한다. 하치만자카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항구의 풍경이 아름답다. 낮에는 사람이 많아 사진 찍기 어렵다는데, 늦은 시간이라 사람이나 지나다니는 차도 거의 없다. 카메라 노출 시간을 최대로 해서 마음 껏 찍을 수 있다. 저 멀리 빛나는 항구의 야경이 ‘인공물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천천히 고개를 걸어 내려온다. 조금 더 체력이 있거나 같이 기운을 내게 해줄 일행이 있으면 더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저녁을 먹지 않았기에 배가 고팠다. 저녁은 럭키 삐에로에 가기로 했다. 문을 연 식당도 많지 않을 것 같았다. 해산물을 먹을까 고민도 되었는데 식당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어려웠다. 럭키삐에로는 하코다테에만 있는 패스트푸드 체인으로 햄버거 외에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다. 곳곳에 체인점이 많았고 숙소 옆에도 커다란 점포가 있었다. 신기하게 매장 옆에 바로 옆에 또 다른 럭키삐에로가 있었다. 프렌차이즈 입점 거리 제한 같은 것 없이 매장을 내나 싶었다.

대표적인 메뉴 치킨버거와 치즈듬뿍 후렌치프라이를 시켰다. 그렇게 색다를 것 없는 맛인데, 패스트푸드의 저렴한 가격에 나쁘지 않은 음식, 그리고 편하게 앉을 수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 풍의 테이블이 있어서 좋았다. 하코다테에 오면 한번은 가볼 만 하다. 물론 두 번은 오지 않을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앞에 멋지게 생긴 스타벅스 건물이 보였다. 아마 옛날 창고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것 같았다. 몇 명 있지만, 딱히 들어가보진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누웠다. 아까 이야기를 주고 받던 지구 반대편에서 온 분들은 보이지 않는다. 도미토리룸은 조용하다. 저녁 시간에는 모두 커튼을 처 놓았다. 밖에 놓인 신발 수로 방에 몇 명이나 방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사람이 많지 않다. 백 년이 넘은 오래된 건물, 높은 위도, 지구에서 제일 빠르게 달릴 수 있는 해저 터널 그리고 북두칠성과 외로움을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다. 내일은 더더 북쪽으로, 북두(호쿠토) 특급 열차를 타고 이 여행의 종착점을 향해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