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아파트 APT.

아파트의 생애가 있다면, 우리집은 임종 임박의 노인이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의 수명이란 사람보다 짧은 편이라 우리집은 고작 40살 남짓을 살았을 뿐이지만 노인 소리를 듣게 되었다. 주위의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또래들은 새 아파트로 다시 태어났고, 몇몇 아파트만 노쇄한 상태로 함께 마지막을 기다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그렇게 아파트의 종말, ‘멸실’로 향해간다. 

내가 이 집을 가진 것은 5년이 넘었고, 거주 한 것은 4년이 안되었으니 나는 고작 우리집의 삶 전체의 1/10 정도의 인연만 있는 것이다. 이 인연의 깊이란, 사람의 수명이 80년이라고 보면 70살이 넘어 주민센터의 고전음악 교육 특강이나 노인 대상의 수영 체조반에서 만난 정도일 것이다. 우리집의 탄생부터 젊은 날들, 그리고 탄탄한 중년의 세월은 나는 알지 못한다. 가끔 우리 동네 인스타그램에 사람들이 올려주는 40년 전의 아파트와 초등학교 사진, 그리고 동네 도서관에 걸려있는 ‘우리도시의 역사’ 사진을 보고 그 시절을 상상해 볼 뿐이다.

내가 살기 이전 우리 집이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도 알지 못한다. 이 집을 우리한테 판 개포에 집을 하나 더 가지고 있던 부부, 그리고 전세로 사시다 옆 아파트에 청약이 당첨되어 이사가신 다른 가족을 계약할때 만났을 뿐이다. 예전에 우리집의 등기부 등본을 살펴본 일이 있는데 20년이 넘는 꽤나 오랜 기간 평촌 신도시에 사시는 누군가의 소유였던 기간이 있었다. 그 분이 아마 우리집과 가장 큰 인연을 가진, 사람으로 치면 반평생을 함께한 부부 같은 분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 집은 그런 혈기 왕성한 시절을 모두 겹겹 접힌 계절 속에 넣어두었다. 현재는 뒷방 노인인지라 여기저기 하자로 가득하다. 처음 우리 집에 와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처제가 다 뜯어진 벽의 페인트와 녹이슬어 바스러질 것 같은 현관문의 경첩을 보고 놀란 일이 있다. 나도 수리 전의 집을 보고 다소 용기를 내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아파트에 사는 모두와 관리사무소 분들은 무엇이 보기 싫다고 하여 더 이상 새 것으로 칠하거나 바꾸지 않는다. 최대한 망가지지 않도록 유지하면서 멸실 시점까지 버텨내는 것이 공통의 목표다.

내가 4년 전 입주 할때 우려되는 삶의 질 하락에 나름대로 인테리어를 한다고 벽지도 새로 발랐다. 몇 년이 지나니 콘크리트에서 올라오는 냉기와 단열이 잘 되지 않는 집안 탓에 스믈스믈 벽지 안쪽에서 곰팡이가 피어 오른다. 아이 방처럼 북향에 위치한 방의  면과 면이 맞닿은 모서리가 특히 심하다. 주기적으로 닦아 내지만 이내 곰팡이가 생겨버리고 보기 싫은 얼룩덜룩 자국을 남긴다. 아파트 건물 전체가 냉정하게 보면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6개월 정도의 시한부 인생이다. 심지어 같은 동 다른 라인에서 큰 화재가 난 적이 있는데 수리하지 않고, 이제 빈 집으로 내버려두는 모양이다. 

아파트는 모르겠지만 우리집은 아직 잘 돌봐주는 사람이 있다. 요즘 와이프는 집꾸미기에 한창이다. 조명을 새로 달고, 액자를 옮겨 걸고, 가구를 다시 배치한다. 청소도 열심히 한다. 고작해야 6개월 정도의 시한부 치장이다. 하지만 하루라도 정돈되고 깨끗한 집에서 살고 싶다는 평소의 지론대로 반짝반짝한 집을 만들어놨다. 값비싼 (우리집 가구들은 내 기준으로는 다 비싸다) 가구와 미드 센추리 스타일의 간접 조명, 모던한 액자가 어우러지는, 그야말로 40년 된 아파트 생애 최대의 변신을 하고 있다.

우리 집이 태어나고  젊은 시절인 1980년대와 1990년대, 우리아파트 주민들에게는 인테리어라는 개념조차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들에게 집은 밥해먹고 자고 일을 나가기 위한 공간이다. 어머니들에게 집은 아침, 점심, 저녁을 마련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공간이다. 우리 집도 얼룩이 잘 눈에 띄지 않는 누런색 벽지, 몇 년 마다 바꿔도 부담없는 적당한 장판, 고장이 없다면 절대로 버리지 않는 가전과 오래된 가구들로 가득했을 것이다. 반면 지금은 점차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휴식 뿐 아니라 각종 엔터테인먼트와 가족간의 유대 공간으로 바뀐다. 그 과정에서 소유자의 개성을 마음껏 뽐내는 공간이 되었다. 지금 우리집은 인스타그램에 나오는 집 같다. 

품고 살던 사람들의 땀과 휴식, 청결을 책임지는 것이 집의 용도라면, 그것에 충실해서 40여년 세월을 우리 집도 살아왔던 것이다. 이제는 집의 용도가 아닌, 아름다움이나 정갈함을 목표로 대변신 하고 있다. 처음의 가정처럼 아파트도 생애가 있다면, 우리집도 지금 생 마지막 순간을 치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잠재된 가능성을 찾지 못하거나 누군가 알려주지 않고 평생을 살아온 주인공이, 마지막에 도움을 받아 새로 태어나는 모습처럼 보인다. 헐리우드 영화나 19세기 영문 소설들의 진부한 주제지만 그만큼 확실하고 감동적인 느낌마저 든다.

덧붙여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집과 비슷한 나이의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한 번 왔으면 좋겠다. 삶이 다 할때까지 서서히 쇠락하는 것이 아닌 마지막 순간의 섬광이, 그리고 상승이 번뜩했으면 한다. 내가 나의 쓰임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이상향으로 보여지는 순간, 정점이 한번 쯤 찾아왔으면 좋겠다. 내 에너지가 쇠락하여 스스로 그런 에너지를 내뿜지 못한다면 축적한 돈, 쌓아온 인연, 조금씩의 시간을 써서 연마한 기술을 이용한 그런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 마지막까지 반전이 없는 영화도 재미없지만, 인생이라면 더 쓸쓸하다.

내년 우리집을 떠나는 순간을 가끔 상상하곤 한다. 나의 이사는 곧 이 집의 끝을 의미하기에 내가 경험한 다른 이사의 순간들 보다 조금은 발걸음이 무거울 것 같다. 그래서 우리집의 마지막을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치장하는 지금은 어찌보면 미래의 나의 무거움을 가볍게 하는 행위이다. 연민 속에 함께 정점의 끝을 다듬는 것이다. 우리집이 아닌 내 정점의 순간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집 아래에 사는 거동이 어려우신 노파는 이 아파트가 지어진 41년 전부터 사셨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 분이 이 집을 떠날 때 뒤돌아본 집의 텅빈 모습은 어떨까?  그 것이 찰나의 순간이 아닌 감정을 충분히 느낄 만큼의 길이를 가진 시간이라는 것을 나는 상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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