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의 캡슐호텔은 효율적이다. 필요한 것은 모두 있고, 필요치 않은 것은 모두 없다. 나처럼 아침식사를 먹지 않는 사람은 그렇게 느낀다. 아침 식사를 해야 하는 사람은 호텔 밖을 나가야 한다. 푹 잔 탓에 기차 시간까지 여유가 없어 서둘러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겨 호텔을 나섰다. 구글 맵으로 검색해서 하카타 역 근처에 있는 요시노야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시간 안에 먹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 곳의 효율성도 만만치 않았다. 15분도 안걸렸다. 역에서 유명하다는 크루아상과 물을 하나 샀다.
12일의 일정이라 짐을 많이 쌀 필요는 없었다. 옷은 티셔츠 세 장, 반바지 두 개, 바람막이 하나, 그리고 속옷들, 운동화 하나, 샌들 하나. 이게 전부다. 하나라도 더 가져왔으면 필요 없을 뻔 했고, 하나라도 없었으면 곤란할 뻔 했다. 최소 삼일에 한번은 빨래를 했다. 일본은 동전 빨래방 시설이 잘 되어 있어 불편한 것은 없었다. 옷은 필요하면 사면 된다. 대부분 한국과 같은 가격이다.
나가사키로 이동한다.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는 신칸센이 완전히 연결되지 않았다. 중간에 다케오온센 역까지는 고속 열차(Limited Express)를 타고 이동하고, 다케오온센부터 나가사키까지는 신칸센을 타고 간다. 이 구간이 뚫리면 홋카이도의 하코다테까지는 신칸센이 연결된다. 시간표가 잘 짜여 있어 정차역에서 대기하는 시간은 없다. 내려서 반대편 승강장 대기하고 있는 열차를 타면 곧 출발한다. 나가사키까지 가는 신칸센도 개통한지 몇 년 안되었다고 한다. 이 신칸센의 이름은 카모메로 갈매기라는 의미이다. 듣고보니 머리 쪽이 갈매기를 닮았다. 중간에 환승하는 노선을 하나로 묶어 릴레이 카모메라는 이름으로 발권해주고 있었다.
나가사키는 한국 사람에게 몇 가지로 유명하다. 첫 번째로 짬뽕, 그리고 카스테라가 익숙하다. 두 번째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도시 중 하나이다. 최근 군함도라는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동명의 군함도(하시마)라는 섬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검색하면 나올 법한 이야기다. 조금의 지식을 덧붙이자면 일본 내에서 최초로 서양에 개항된 도시라는 특징도 있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무대가 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나라에 억류되었던 하멜 표류기의 하멜이 (참고로 네덜란드 사람이다) 13년간의 억류 생활을 마치고 기적적으로 탈출해 도망쳤던 곳이 나가사키이다. 한국과 가깝고 조선소가 많은 탓에 많은 조선인들이 억류되어 강제 노동을 해야 했던 곳이기도 하다.
소도시 임에도 불구하고 볼거리가 많으며 도시 자체도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야경이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다. 1박의 일정이 너무 짧아 아쉬웠던 터라 꼭 가족들과 다시 가보고 싶다.
역 앞의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여행 중 예약한 숙소 중 가장 작은 규모의 게스트하우스로 고작 다섯개의 침대가 놓여 있었다. 1층에서는 까페를 운영하고, 2층을 게스트하우스로 꾸며놓았는데 장기 투숙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주 작은 화장실과 샤워룸이 하나씩 있었다. 같이 숙박하는 젊은 일본인 아가씨와 홍콩에서 온 아가씨가 괜히 나 때문에 불편하지 않았을까 걱정스러웠다. 오늘은 많은 곳을 돌아봐야 하므로 서둘러 짐만 맡긴 채 정오쯤 원폭 기념관으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진 노면 전차가 아직도 활발히 운행 중이었다.
전차를 타고 도착한 원폭 기념관은 원폭 폭발 중심에서 가파른 경사지를 올라간 남서쪽 사면에 위치해있었다. 1945년 8월 9일 11시 2분 나가사키에서 인류 역사상 2번째 핵폭탄이 폭발했다. 원자 폭탄은 지면 위 500m 상공에서 폭발했다. 그해 말까지 15만명에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그 중 10~15%는 이름도 알려지지 못한 조선인이었다. 폭발 중심 가까운 곳의 학교 건물에서는 단 한명의 생존자도 발견되지 않았다. 나가사키 쪽에 히로시마보다 훨씬 더 큰 폭탄이 떨어졌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라 그나마 피해가 적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양쪽 도시의 원폭 기념관을 모두 방문했다. 규모와 상징성은 히로시마의 원폭 기념관이 훨씬 컸지만, 관람하기에는 나가사키 쪽이 나았다. 히로시마 쪽은 감상적인 설명이 많았던 반면, 나가사키에서는 담담한 설명이 이어져서 나름대로의 생각, 사건, 증거들을 차분히 조합해 나갈 수 있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기억이 난다. 방문 전 두세권의 관련 책을 읽었다. 나 나름대로는 40년 후 취재를 온 기자처럼 머리 속에 몇 가지 의문을 가지고 방문했다. 하지만 올바른 인식을 방해하는 감정이 올라와, 사실을 쌓아 올려 나름대로의 생각과 결론을 완성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 것이 옳은 것인지, 다른 주장이 옳은 것인지, 나의 생각과 인식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히로시마에서 느꼈던 감정이 이쪽이었다.
주위의 폭심지, 평화공원 등을 둘러보았다. 개인적으로 방문한 관광객, 수학여행을 온 것으로 보이는 고등학생, 견학온 유치원생들이 많이 보였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해설을 해주고 계셨다. 80년 전 일이라 수 세대 전의 일이긴 하지만, 장수 국가인 일본에는 실제 원폭을 어릴때 경험한 사람들이 아직 많이 살고 있을 것 같았다. 그들에게 80여년 전에 봤던 하늘의 빛나는 섬광은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그들의 인생을 얼마나 바꾸어 놓았을까. 폭탄이 일으킬 참상이 충분히 예측 가능함에도 미국은 어떻게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었을까. 등등을 생각하며 흐린 공원 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원폭 기념관을 워낙 꼼꼼하게 본 탓에 시간이 많이 지났다. 다시 노면 전차를 타고 구라바엔(Glover Garden)으로 향한다.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이라 도시 마다 방문할 곳을 미리 정하지 못했다. 원폭기념관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라기에 가보기로 했다. 우리나라보다 일찍 개항을 했던 일본, 특히 나가사키는 많은 서양인들의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그 중 글로버 상회라는 스코틀랜드 출신 글로버가 세운 회사는 규슈 지방 세력인 사쓰마와 조슈번에 불법적으로 무기를 공급하면서 성장했다고 한다.
글로버 가든, 구라바엔은 창립자 글로버와 그의 일가 친척들이 거주하던, 나가사키의 한적한 언덕 위에 세워진 주택과 정원을 관광지로 개발한 곳이다. 입장 시에는 요금이 다소 비싼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잘 꾸민 정원을 충분히 둘러보고 나니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우리나라 개화기의 유적은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은데, 이 곳은 보존도 잘 했을 뿐더러 끊임 없이 보수하고 새로운 것을 덧붙이면서 좋은 관광 자원으로 개발하였다. 바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조선소와 나가사키 역, 시내 경관이 볼 만했다.
나가사키 짬뽕을 먹으러 슬슬 언덕을 내려간다. 나가사키 짬뽕의 원조라는 시카이로에 가기로 했다. 대부분의 음식점처럼 이 곳도 브레이크 타임이 있어서 저녁 시간이 시작되는 4시 반 정도에 맞춰 방문했다. 다행히 기다림은 없었다. 혼자 온 사람들도 차별하지 않고 온 순서대로 바다 경관이 보이는 멋진 테이블을 줘서 좋았다. 맥주를 한 잔 시킬까 고민했지만, 술을 마시면 허리가 말썽일까봐 꾹 눌러 참았다. 장기 여행에서는 몸을 사리게 된다. 아무튼 신선한 재료와 불 맛의 풍미가 뛰어난 음식이었다. 한국에서 이 가격과 맛이면 반드시 성공한다.
가는 길에 저녁 출출할 때 먹을 카스테라와 우유를 사기로 했다. 귀국길이라면 카스테라를 넉넉히 사서 선물하면 좋으련만 아직 일정이 많이 남은 여행인지라 나만 맛볼 양 만큼을 샀다. 나가사키 카스테라는 여러 체인점이 있고 체인점마다 수 많은 분점이 있다. 잠깐 인터넷 검색으로 살펴봤지만 어느 곳이 원조인지 명확하지 않은 듯 했다. 가까운 곳을 방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방문한 곳은 분메이도라는 곳이었다. 매장은 고급스러웠지만 판매 점원은 20대 초반의 젊은이로 아직 일이 몸에 익지 않은 풋풋한 상태로 보였다. 같은 질문을 여러번 물어보고, 카드 결제도 서툴러 보였다. 일본은 의무 군복무가 없고, 대학진학률도 낮기 때문에 접객업에 취직한다면 사회인으로써 진출하는 연령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 아마 그런 젊은이가 아닌가 싶었다. 이럴 경우 견습중이라는 명패를 달고 있는 경우도 많다.
데지마를 지나, 메가네바시로 걸어간다. 여행하는 12일 동안 하루에 적으면 2만보 많으면 3.5만보 정도를 걸어 다녔다. 이 날도 아침 8시가 안된 시간에 숙소를 나서 6시까지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쉬는 시간 없이 걸어 다녔다. 데지마 내부를 꼭 살펴보고 싶었지만 더 이상 걸을 수 없고, 또 다음 여행을 위해 남겨두기로 한다. 근세 극동 아시아 역사책이나 해양 문화사책을 몇 권 읽다보니 데지마는 익숙했다. 메가네바시까지 간신히 걸어가서 사진만을 찍고 노면 전차를 타고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 자려고 누웠는데, 작은 소동이 있었다. 옆 침대에 누워있던 아가씨가 갑자기 후다닥 일어나더니 바삐 오가며 난리법석이길래 왠일인가 나가봤더니 처음 보는 벌레가 날아들어와 온 방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창문을 모두 틀어막고 오늘의 숙박인원 세명이서 삼십분 동안 벌레를 잡았는데 모두 소탕을 못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 아저씨가 잠자리채를 들고 나타나서는 도저히 안되겠는지 매우 미안한 표정으로 원하면 1층 까페에 침대를 만들어 줄테니 그 곳에 가서 자라고 했다. 여름 직전의 비오는 날이라 바로 옆의 공원에서 날아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 아가씨는 내려가버렸고 나는 그냥 자기로 했다. 힘도 없고, 불을 끄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느낄 수 없으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유와 카스테라를 먹고 다소 불편한 침대에 게의치 않은채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카스테라는 너무 달아 이를 꼼꼼하게 닦게 만드는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