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너를 통해서 인생을 두번 산다

그 동안 나로만 살았기에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새롭게 발견한다. 아마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으면 절대로 발견하지 못했을 관계의 빈틈, 시간의 풍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많은 순간들이 다시 선명히 떠오른다. 아들아, 너의 존재 자체가 나를 두 번 살게 만드는구나.

어머니는 당신의 어떤 노력으로 나를 키웠구나. 수십년의 세월동안 아쉬운 소리 할때마다 나를 어떻게 키웠는지, 살짝살짝 한탄하던 어머니의 말씀이 나에게는 너무나 가벼웠다. 그건 대단한 무게의 표현을 가볍게 하셨던 탓이다. 그 노력의 밀도, 무게를 새롭게 마주하고 고개가 숙여진다.

아버지는 나를 어떻게 대했구나. 이미 많이 희미해진 아버지의 기억이 내 행동을 통해서 재현된다. 내가 무심코하는 아이에게 하는 말투, 행동이 데자뷰 처럼 느껴진 순간, 이는 데자뷰가 아닌 진짜 과거의 재현임을 깨닫는다. 그 때 느낀 어릴 때의 내 감정을 쫓아가보지만 이미 내게는 아들은 희미하고 아버지만 남았구나.

나는 그때 어떤 생각을 했구나. 나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현재를 미래에서 보고, 과거에서 본다. 너로 인해 인생을 경주마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걷는 철학자처럼 살게 된다. 두 번은 돌아보게 만들어 주는구나.

이사

2013년의 매미소리도 잦아들던 늦여름에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매섭게 바람이 불고 추운 2021년의 겨울에 짐을 싸고 있다. 7년 5개월의 세월.

여기서 투닥 거리며 짐을 끌고 신혼여행을 떠났고, 처음 둘만의 생활을 시작하고, 가까운 학교에 다니며 팔자 좋은 세월을 보냈고, 보일러를 잠궈놓고 한달 가까운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배가 부른 아내를 회사에 데려다 주었고,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 병원으로 달려가 새로운 식구를 만났으며(심지어 그날 일생 유일한 타이어 펑크가..), 아침마다 갓난 아기를 데리고 동분서주하고, 그 아이는 어린이집, 유치원, 미술 학원, 태권도 학원을 넘나들며 이제 혼자 넷플릭스를 보며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사이에 나는 젊은 새신랑이 아니게 되었다.

곧 새로운 보금자리로 떠나지만, 남들이 그러더라, 그 뒤에 살던 집은 모르겠지만 신혼집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고. 즐거웠던, 때로는 그렇지 못했던 이 공간 속에 다시 있을 수 없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 셋이 추억을 남기고, 또 오랫동안 원하던 곳으로 떠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래도 오늘 밤에는 기념사진을 잔뜩 찍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