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나로만 살았기에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새롭게 발견한다. 아마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으면 절대로 발견하지 못했을 관계의 빈틈, 시간의 풍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많은 순간들이 다시 선명히 떠오른다. 아들아, 너의 존재 자체가 나를 두 번 살게 만드는구나.
어머니는 당신의 어떤 노력으로 나를 키웠구나. 수십년의 세월동안 아쉬운 소리 할때마다 나를 어떻게 키웠는지, 살짝살짝 한탄하던 어머니의 말씀이 나에게는 너무나 가벼웠다. 그건 대단한 무게의 표현을 가볍게 하셨던 탓이다. 그 노력의 밀도, 무게를 새롭게 마주하고 고개가 숙여진다.
아버지는 나를 어떻게 대했구나. 이미 많이 희미해진 아버지의 기억이 내 행동을 통해서 재현된다. 내가 무심코하는 아이에게 하는 말투, 행동이 데자뷰 처럼 느껴진 순간, 이는 데자뷰가 아닌 진짜 과거의 재현임을 깨닫는다. 그 때 느낀 어릴 때의 내 감정을 쫓아가보지만 이미 내게는 아들은 희미하고 아버지만 남았구나.
나는 그때 어떤 생각을 했구나. 나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현재를 미래에서 보고, 과거에서 본다. 너로 인해 인생을 경주마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걷는 철학자처럼 살게 된다. 두 번은 돌아보게 만들어 주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