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것

생각해야 할 것이 참 많은 요즘이다. 많은 사람과의 관계, 많은 일의 미래를 가늠해보고 행동하고 하는데 정신없이 에너지를 쓴다. 문득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가?”, “내 인생 동안 어디에 도달해야 하는가?”와 같은 결론 없는 문제가 머리 속에 떠오른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발걸음의 방향을 잃게 만든다.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무엇이 나에게 가치 있는가? 내가 평생을 걸쳐 바라봐야할 북극성은 무엇인가? 생각 끝에 지금은 세 가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아름다운 것.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름다움이 퇴색되거나, 나만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영원하고, 보편적인 아름다움이 더 가치 있다.

사랑하는 사람. 내가 하는 행동이 누군가를 힘들게 하지 않는가? 이 행동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과 일치하는가? 결국 나와 함께 뜻을 같이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중요하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것. 현재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사람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나만 독식하는 아름다움이나, 내가 빠진 순간은 의미가 없어 진다. 같이 하는 순간이 가치 있다.

일요일 밤

달리고 오르내리던 아들은 기운이 다 빠진듯 숨소리도 조용히 잠들었다. 고른 날숨 소리가 방 밖으로 들려오는 듯 하지만 나지막히 잘 들리지 않는다. 꿈 속에서는 비행기를 타고 놀러 가거나 괴물에 쫓겨 달리고 있을지 몰라도 현실은 고요한 또 정적인 모습 자체다.

아내는 거실에 누워서 TV소리에 묻혀있다. 주말의 절반을 일로 보내고, 나머지의 절반은 아이와 그리고 나머지는 기어코 TV와 보내겠다고 한다. 나와 나누어 먹던 과자가 하나씩 줄어든다. 언제 잠들지 모르겠지만 주말 중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이 지금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누워서 거쉰을 듣다가 지금 시간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브람스로 바꿨다. 내일은 늦잠을 자도 된다. 굳이 지금 잠들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누워있는 내 모습이 나름대로의 사치를 누리는 듯 하다. 평상 시 같으면 책을 읽을 시간이지만 주위의 모든 도서관이 문을 닫은 까닭에 읽고 싶은 책이 7~8권은 밀려있다. 쉽게 다시 열 것 같지 않다. 이제 사서 봐야하나?

우리 세 명은 아픈 사람도 없고 배가 고프지도 않으며 내일 일찍 일어날 일도 없다. 탐험에 나서야 할일도 없으며 치열해야 할 이유도 딱히 없다. 평화롭고 자유로운 삶이다. 그래 이정도면 훌륭하고 잘 지내왔으며 자랑스럽다. 각자가 지금 덮고 있는 이불의 따스함 정도만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