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

끊임없이 ‘나는 자격이 있는가?’ 묻는다.

나는 이 돈을 벌 자격이 있는가? 나는 이만큼의 석유를 탄소로 바꿀 자격이 있는가? 나는 휴식 시간을 가질 자격이 있는가? 나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나는 이렇게 안락한 집에 살 자격이 있는가? 나는 이렇게 고된 노동 없이 많을 것들을 누리고 살 자격이 있는가? 나는 나에게 주어진 권리를 가질 자격이 있는가? 나는 칭찬을 들을 자격이 있는가?

세상을 살면서 남들이 가진 것을 보고 나는 손해본다는 느낌이 종종 든다. 남들처럼 더 적극적으로 했으면 얻었을 기회와 이익을 지레 포기해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후회가 들때가 많다. 하지만 이 후회가 진짜 후회가 아닌 잠깐의 아쉬움에 머무르는 것은 ‘내가 자격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질문에 당당하고, 주저없이 ‘나는 자격이 된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러한 끊임없는 물음은 내가 과도한 욕심에 사로잡혀 내 능력과 자격을 벗어나는 것을 추구하고 급기야 탈이나는 것을 막아준다. 내가 자격이 있을때 무엇을 누리면 그것은 있다 없다 하다가도 결국 나에게 돌아오게 된다.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을 목표로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내가 자격과 능력이 없을때 무엇을 누리면 그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라진 대상을 그리워하며 불행해지거나 다시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다른 것들을 희생하게 된다. 그런 어리석음 보다는 늘 손해본다는 우둔함이 낫다.

결혼

결혼이라는 단어에는 묶는다는 결(結)자가 있다. 결혼은 분명히 결합이기도 하다. 하지만 새로운 분리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과의 결합이자 익숙한 것과의 분리이다.

내 것과 아내의 책들을 하나의 커다란 책장에 정리할 때 결합이라는 관념이 실체화 되는  느낌이 들었다. 각자 일생을 읽었던 책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정렬된다. 집들이 때 누군가 이 책장을 본다면 우리 가정의 표상으로서 받아들일 것이다.

새로 산 손톱깎이를 보며 결혼은 분리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생 손톱깎이를 사본 적이 없다. 하나의 가정에는 하나의 손톱깎이. 그리고 새로운 손톱깎이는 새로운 가정.

내가 결혼할 때를 생각해보면 새로운 결합을 중시 여겨 익숙한 것과의 분리를 가벼이 여겼던 것 같다. 분리에 따르는 아픔을 느끼는 사람이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