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여러가지 방법

1차원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에게 세상은 다양한 이분법의 조합이다. 모든 사람들을 무엇을 가졌나 아닌가를 가지고 판단한다. 자가와 전세, 국산차와 수입차, 남자와 여자, 강자와 약자, 필요한 것과 불필요 한 것. 우리편과 남의편을 가르고 우리편만 남아 있는 세상을 꿈꾼다.

2차원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의 특기는 줄 세우기다. 산수만 할 수 있으면 이렇게 세상을 볼 수 있다. 우리 회사의 매출은 몇 % 증가 했는지, 한국은 OECD 국가 중 몇 위 인지, 올림픽에서 몇 등을 했는지, 상위 몇 % 연봉을 받고 있는지. 세상은 줄세우기의 결과물이다.

3차원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 그리고 또 다른 사람과의 거리를 측정하고 입체적으로 세상 사람들의 위치와 입장을 살펴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가진 따뜻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4차원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회적 현상, 다른 사람의 주장을 시대적 패턴에 의해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다. 사람의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상상하고 미래를 그려 본다. 현재의 시대정신을 지랫대 삼아 미래의 이상향을 그린다. 이를 위한 키는 역사와 철학이다. 아마 다독가일 것이다.

사람들 중 8할이 첫 번째 유형의 사람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한다. 우리 시대가 원하는 것이 이런 분포인지, 인류의 본성이 이렇게 만드는 것인지 작게나마 걱정된다. 단 하나의 세대 만큼 짧은 시간이 흘러도 더 입체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

 

자격

끊임없이 ‘나는 자격이 있는가?’ 묻는다.

나는 이 돈을 벌 자격이 있는가? 나는 이만큼의 석유를 탄소로 바꿀 자격이 있는가? 나는 휴식 시간을 가질 자격이 있는가? 나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나는 이렇게 안락한 집에 살 자격이 있는가? 나는 이렇게 고된 노동 없이 많을 것들을 누리고 살 자격이 있는가? 나는 나에게 주어진 권리를 가질 자격이 있는가? 나는 칭찬을 들을 자격이 있는가?

세상을 살면서 남들이 가진 것을 보고 나는 손해본다는 느낌이 종종 든다. 남들처럼 더 적극적으로 했으면 얻었을 기회와 이익을 지레 포기해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후회가 들때가 많다. 하지만 이 후회가 진짜 후회가 아닌 잠깐의 아쉬움에 머무르는 것은 ‘내가 자격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질문에 당당하고, 주저없이 ‘나는 자격이 된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러한 끊임없는 물음은 내가 과도한 욕심에 사로잡혀 내 능력과 자격을 벗어나는 것을 추구하고 급기야 탈이나는 것을 막아준다. 내가 자격이 있을때 무엇을 누리면 그것은 있다 없다 하다가도 결국 나에게 돌아오게 된다.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을 목표로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내가 자격과 능력이 없을때 무엇을 누리면 그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라진 대상을 그리워하며 불행해지거나 다시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다른 것들을 희생하게 된다. 그런 어리석음 보다는 늘 손해본다는 우둔함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