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을 다녀온 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다시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오랫동안 개정판이 끊겨 표지는 반쪽 밖에 남아 있지 않고, 모서리는 둥글둥글 냄새가 났다. 누워서 책을 펼치면 퀴퀴한 먼지가 얼굴 위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누렇게 바랜 종이 위 활자가 빚어내는 순백의 세계가 눈부시고 따뜻했다. 글자, 종이, 활자가 완벽하게 투명해지고 그 건너편 니가타의 겨울 모습이 보인다.
매체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 완벽하게 분리된 100% 추상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책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