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무력

목을 가눌줄도 모르는 아기들을 ‘완벽한 무력(無力)’ 상태라고 표현한다. 아마 무엇인가 영어의 번역일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걷거나 뛰는 동물들과 비교해보면 인간 아기의 무력함이란 잘난체 심한 고등 생물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왜 이러한 무력 상태가 필요한가는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의문이었다. 마침 기회가 되어 육아 서적 몇 권을 읽어보다 그 답을 찾았다. 이 무력은 생물 진화 과정 중 본능에 의존한 개체와 학습에 의존한 개체가 나뉜 결과물이다.

사람은 아프리카에서 나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바닷가 부터 해발 수천미터의 고지까지, 또 열대 우림부터 시베리아 툰드라까지 지구 대부분의 면적에서 살아간다. 사람이 이렇게 무력한 시기 없이 태어나자마자 내제된 본능대로 행동했다면 이 것이 가능했을까?

이 무력한 시기란, 최소화된 본능에 더해 환경에 무한히 적응해 가는 법을 배우는 시기이다.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던지 하나부터 열까지 학습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으며 이는 인간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의 원천이다.

다소 극단적으로 말하면 어른들은 단지 현실의 먹고 살 문제를 해결하는 일꾼이요, 어린 아기들이 발휘한 창의성이 종족과 인류의 미래를 결정 짓는 것이다.

확률적 사고

북반구에 육지의 70% 쏠려있다. 신기한 일이다.

모든 육지가 무수히 많은 조각들로 잘게 쪼개어져서 각각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외부의 힘이 개입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최초에 거대한 하나의 판에서 출발하여 수십억년이 흐른다면 북반구에 70%가 존재할 확률, 이러한 쏠림이 존재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육지를 몇개로 쪼개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매우 낮은 확률일 것은 틀림 없다. 따라서 육지는 비교적 적은 몇 개의 판으로 쪼개어 움직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와 같이 독립적이고 수많은 개체(object)들이 균등한 확률 분포, 자연 분포를 보이지 않을 때에는 독립적이라는 가정이 잘못되었거나 강력한 외부의 힘이 개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현상의 역학 관계를 꿰뚫어보는 간단하고도 강력한 도구로 합리적 사고를 하는 모든 이에게 익히기를 권장할만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확률과 통계 과목을 본의 아니게 3번이나 수강했지만 이러한 의심을 품게하는 예제를 본적이 없다. 수치 계산 뿐 아니라 해석, 더 나아가 현상에 대한 의심을 보다 빨리 숙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