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글씨를 못썼다. 왼손이라 못쓰나, 작게써서 못쓰나, 펜이 이상해서 못쓰나, 이래저래 수년을 연습해도 늘지않아 그냥 나는 전형적인 글씨 못쓰는 남자애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얼마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글씨를 잘 쓴다는 소리를 들었다. 32년만에. 그 변화는 어디서 온걸까? 어렴풋하게 알 것 같기도 하다. 정답은? 글씨를 쓰면 된다.
사람들은 글씨를 쓰지는 않는다. 보고서를 쓰거나, 일기를 쓰거나, 편지를 쓰거나, 공부를 하지만 글씨를 쓰지는 않는다. 글씨는 보고서를 완성시키기 위한 수단이고 목적이 아니다. 이러면 내 머리와 손의 미묘한 움직임은 보고서를 쓰기 위해 집중하지 글씨가 어떻게 아름다워 보일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글씨쓰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잠시 이뻐보였던 글씨는 다시 삐뚤삐뚤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고 만다.
글씨를 쓰기 위해 글씨를 쓰면 하나하나의 획, 종이와 펜이 어떻게 미끄러지는지, 손가락의 모양 등 글씨를 쓰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에 집중하게 된다. 하나의 글자를 완성하고 잠시 쉬고 또 그렇게 다음 글자를 완성하고, 글의 의미나 발음, 문법 등 모든 것에서 떨어져 그저 장인처럼 하나하나의 글씨를 완성한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나의 미묘하게 다른 많은 글자들 중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고른다. 마음에 새긴다.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글씨는 이런 모양이야, 하고 깊게 새긴다. 그러면 다시 글씨를 쓸때 나도 모르게 그러한 글씨가 나온다. 글씨를 쓸때 마음속에 있는 그 글씨가 내 손을 통해 새겨진다. 내 마음으로부터 내 손으로 나온 글씨들이 그렇게 수백자 수천자가되면 더이상 마음에서 글씨가 나올필요가 없다.
이제는 손에서 글씨가 나오고, 더 이상 마음은 글씨를 쓰지 않아도 된다. 내용을 생각하고, 목적을 생각해도 악필이란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게 된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무엇을 잘하려면 그것을 하면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잘하고 싶으면서도 그것을 연마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