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st] Bashing the big guys (재벌에 대한 맹비난)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는 선거에서 일가 소유의 재벌들을 모두 주시하고 있다.

Oct 13th 2012 | SEOUL | from the print edition

박정희의 때로는 잔인했던 독재 정권 시절 이후 (그는 1961에 취임해서 1979년 암살되었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국회에서 이따금씩 발생하는 주먹다짐이 재미있는 한국의 정치는 아시아에서 가장 활기차다. 한국의 첫 번째 여성 대통령이 되기 위한 독재자의 딸 박근혜의 입후보는 과거와는 다르다. 그녀는 12월 19일 선거에서 두 명의 강력한 경쟁자(남성)를 마주쳤는데, 이 중 문재인은 그녀 아버지의 정권시절 투옥되었다. 이 둘은 결국 단일화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단계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후보자들이 각자 다름에도 불구하고, 선거 운동에서의 하나의 공통적인 주제가 나타났다. 세 후보 모두 한국의 경제 환경이 불공정하다고 보고 이를 비판해왔다. 그들은 모두 가족 경영 체재의 대기업, 국가 주도 금융과 박정희 시대의 정실인사 하에서 크게 성장한 재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록 그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도 재벌은 한국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

재벌 때리기는 한국에서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층 더 강화된 분위기처럼 보인다. 보통 사람들도 떠나는 이명박 대통령이(그 자신도 예전 현대 그룹 계열사의 수장이었다) 유죄 판결로 수감중인 재벌 총수들을 대거 사면 한 것에 대해 불평하고 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맨하탄의 타임스퀘어에 광고를 설치하거나, 첼시 풋볼 클럽이나 올림픽의 스폰서인 가장 큰 재벌 삼성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국내에서의 삼성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우려하고 있다.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재벌은 한국의 76개 사업 분야 중 2/3이 넘는 분야에 참여하고 있다. 새로운 진출 분야는 피자에서 핸드백, 모피 분야까지 걸쳐있다. 과거 10년 동안 10개의 주요 재벌과 관련된 기업 수는 거의 2배로 증가한 600개에 달한다. 1월부터 6월까지 10개의 재벌 기업들이 한국 주식 시장에 등록된 기업 모두의 이익의 70% 이상을 점유한다. 수출이 앞장서고, 이러한 성공이 한국을 변화 시켰다. 하지만 몇몇은 이러한 것이 인구의 고령화가 진행되면 불균등을 증가시키고 경제의 성장 동력을 약화 시킬 것이라고 비난한다.

이러한 식으로 선거 운동 또한 “경제 민주화”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애매한 단어로 들리지만 세 후보 모두에게 진지하게 이용되고 있다. 가장 놀랄만한 옹호자는 박근혜 후보이다. 그녀는 집권 새누리당을 확고한 친 기업 이명박 대통령과는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새누리당 구성원들은 유죄 판결을 받은 재벌 총수와 그 일가에 대한 판결을 강화 시키고 그들의 경제 활동과 투자를 제한할 수 있는 입법 예고 안들을 만들고 있다. 새누리당의 다른 재벌을 지지하는 보수층들은 이러한 모든 것들이 단지 공허한 파퓰리즘이라고 무시하고 있다.

박근혜의 두 경쟁자,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와 소프트웨어 기업가이자 무소속의 안철수 후보는 모두 소상공인들을 재벌로부터 보호하는데 힘쓰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한국을 재벌이 “불공정 특권”을 누리는 “정글 경제”라고 묘사한다. 그는 재벌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독점 금지법을 강화하고, 빵집과 같은 소상공인을 위협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에 끼어드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최대의 안티 바이러스 소프트웨어 기업을 창업한 안철수 후보는 재벌을 혁신적인 중소기업을 재빠르게 인수해서 재벌 안에서 경직시켜 버린다고 비난한다. 그의 선거 캠프에는 최근 한국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 중 하나의 학장인 장하성 교수가 합류했다. 장하성 교수는 재벌의 더 나은 기업 지배 구조를 위한 운동을 벌이는 사람이다. 2001년 그는 최초의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한 집단 소송들에서 한 건의 승리를 도왔다.

재벌은 이 소란이 사그라지길 기대하며 자중하고 있다. 재벌 옹호론자들은, 많은 이들이 재벌을 욕하지만, 그들의 자식이 커서 그 중 한 회사에서 일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들은 또한 재벌은 한국 경제의 중심으로 그들에 대한 공격은 한국 경제에 대한 공격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약한 재벌은 경제적 요구일 수도 있다. OECD에 따르면, 서비스와 같은 다른 분야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연구 개발 분야의 투자가 거의 없다. 이는 한국의 성장 전략이 제조업 중심이라, 자본, 인재 그리고 다른 자원들을 서비스에서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안주에 대한 위험도 있다. 응석받이로 자란 재벌에서 일하는 “노동 귀족” 조합은 다른 경제 분야에서 일하는 열악한 급여를 받는 이들과 비교되고 불공정에 대한 논란을 일으킨다. 재벌의 부유한 소유자들끼리의 상호 연합도 우려다. 이번 달, 공정거리위원회는 이씨 가문의 삼성과 연관되어있는 거대 유통기업 신세계와 밀접한 3개의 기업에 회장의 딸 소유의 피자와 베이커리 기업을 도와준 혐의로 4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아마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가장 큰 지표는 한화 그룹 김승연 회장의 예일 것이다. 그는 그의 아들과 실랑이를 벌인 술집 종업원을 쇠막대기로 두들겨 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즉시 그를 사면했다. 올해 김승연 회장은 다시 횡령 혐의로 구속되었고, 8월에 수감되었다. 김승연 회장은 한국 재벌 회장으로서 실제 수감된 드문 예이다. 모두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하기 전 그를 사면할 것인지를 지켜보고 있다.

[Economist] Von Karajan was right (카라얀이 옳았다)

오케스트라는 강력한 리더쉽의 조련이 유용하다.

Sep 8th 2012 | ROME | from the print edition

오케스트라 지휘자들은 정말 필요한 것인가? 제노아에 있는 이탈리아 기술원의 Alessandro D’Ausilio와 그의 동료들은 Public Library of Science에 게재된 연구에서 이 영원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휘자의 영향을 측정하는 것은 까다롭다. “좋은” 지휘자가 예술적으로 뛰어난 공연들을 연주자들로부터 뽑아내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스스로 조직된 명 연주자들의 앙상블을 주재하는 것인가? 이를 알아보기 위해, D’Ausilio 박사는 익명의 두 지휘자가 모짜르트 교향곡 40번으로부터 5구절을 발췌하여 Città di Ferrara orchestra의 여덟 바이올린 연주자들을 지휘하는 것을 관찰했다.

각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활 끝에 적외선 반사장치를 부착하고, 지휘자들은 지휘봉에 이를 장착했다. 따라서 이 작은 오케스트라를 카메라는 인식할 수 있지만 사람은 볼 수 없는 적외선 빛에 노출 시킴으로써 D’Ausilio 박사와 그의 팀은 활과 지휘봉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었다. 그들은 반사장치의 움직임을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분석하는데 이용했다.

이를 위해, D’Ausilio 박사는 Granger causality test라 불리는 하나의 데이터 점들의 흐름이 어떻게 다른 것에 영향을 미치는지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수학적 트릭을 이용했다. 바이올린 연주자의 활 움직임들 그리고 지휘봉의 움직임들이 이러한 데이터 흐름이다.

열명의 숙련된 클래식 음악가들이 각각의 연주에 대해서 멜로디, 템포, 감정 표현 등 8가지 척도로 0점부터 100점까지 점수를 매겼다. 평가자들은 두 연주는 발췌된 세 부분에 있어서는 거의 같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들은 또한 나중에 밝혀졌지만 두 지휘자의 확신에 찬 움직임 (지휘봉과 바이올린 연주자가 가진 활의 빠른 움직임으로 측정되는)과 연주자들의 다른 이들의 움직임에 맞추어가는 성향을 거의 호각지세로 평가했다.

남은 두 부분이 흥미롭다. 여기서 평가자 들은 한쪽을 더 높게 평가했다. 첫 번째 발췌 부분에서는, 한 지휘자의 적극성이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상호 의존성을, 다른 연주에서 지휘자의 적극성이 낮을 때 의존성이 높았던 것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약화 시켰다. 이 지휘자는 그의 의지를 연주자들에게 강력하게 주입한 것으로 보이고, 다른 지휘자는 그렇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평가자들은 두 부분 모두에서 독재적인 연주를 더 높게 평가했다. 다른 발췌 부분에서도, 이 전제적인 지휘자는 적극적이었지만,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 만큼 그들끼리 의지하고 있었다. 이는 연주를 연주자들에게 덜 영향을 끼치는 온순한 지휘자가 지휘했을 때보다 더 낮게 평가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발견은 지휘자들이 항상 알고 있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같은 지휘봉을 든 폭군이 앞의 거만한 연주자들의 고삐를 움켜쥐고 있을 때에만 더 좋은 연주를 만든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