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뉴스 비판

TV를 보다보니,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라면서도 그 해결책으로 우울증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 즉 자살 시도자를 일찍 발견해서 병원에 보내는 것을 이야기 한다.

사회 구조적으로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고,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이 안되는 점, 교육의 문제점, 지나친 경쟁 사회와 목표 지향적인 사고의 폐해 등 보다 근본적인 처방 없이는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저 부끄러운 1위는 계속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1위를 유지하는 한 우리나라가 아무리 수출을 많이하고, 돈을 많이 벌어 들인다 해도 절대로 선진국이라고 일컬어 질 수는 없을 것이다.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하여 한국 영화 100년사에 쾌거를 이루었다고 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 한국 영화”라는 드러나지 않는 가정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 동안 철저하게 한국 영화의 주류에서 배척되며 서로 갈등을 만들어 왔는데, 그 영화가 예술적으로 인정받았다고 슬쩍 묻어서 한국 영화 전체의 격을 올리려는, 또 그렇게 대중을 설득시키려는 시도가 나를 불편하게 한다. 과연 그가 홀로 쌓아온 독립 예술 영화의 업적을 한국 영화에 내제화된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모든일에 그렇게 끝이 있음을

회사에서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분이 퇴사하셨다. 팀을 이루는데 있어서 누구도 할 수 없는 역할을 하시던 분이기에 아쉬움이 참 많다.  또 앞으로도 같이 할 수 있는 일, 내가 배워갈 일이 참 많을텐데,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속상하기도 하다. 

그렇게 모든 관계에 그렇게 끝이 있음을 알고 나서부터는 항상 그 끝을 생각하게 된다. 이게 끝난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두려울까, 외로울까. 때문에 조심스러워지고, 신중해지고, 소극적이 된다. 상처 받기 싫은 본능적인 행동이다. 

이러한 이별을 극복하기 힘들때면 항상 나는 내 인생의 끝을 생각해본다. 수 많은 헤어짐과 만남이 내 인생 속에서 반복될터이지만, 내 인생을 끝, 진정한 의미의 모든 것과의 이별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반복은 아무것도 아닌 그저 각자의 물컵에 나누어 담긴 물처럼 동질의 원형 속에서 나뉨과 합쳐짐의 반복일 뿐이다. 결국 차원이 다른 곳에서, 형태가 다른 모습으로 돌아가 하나가 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영원한 이별이 있기에 잠시의 이별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