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st] 빛을 기막히게 다루기 (Tripping the light fantastic)

Tripping the light fantastic

빠르고 저렴한 빛을 이용한 Wifi가 등장하고 있다.

Jan 28th 2012 | from the print edition

최근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CES에 소개된 새로운 많은 전자제품 중 하나는 빛을 이용해 서로 데이터를 교환하는 스마트폰이다. 일본 기업인 카지오에서 나온 프로토타입 휴대전화 제품들은 화면에서 방출되는 빛의 세기를 다양하게 조절하여 디지털 신호를 전달한다. 이 반짝임은 너무 미세해서 사람의 눈으로는 관찰이 불가능하지만 다른 휴대전화의 카메라에서는 최대 10미터 거리에서도 이를 감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Wi-Fi와 블루투스의 시대에서는 빛을 깜빡이는 것이 마치 모스 신호용 올디스 램프를 깜빡이는 시대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것은 Li-Fi라고 이름 붙여진 빠르고 저렴한 무선 통신 시스템의 시작이다.

카시오의 휴대전화를 통해 교환되는 데이터는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의 그림에 달려있는 메시지 풍선 같은 하찮은 것들이다. 하지만 카시오는 조명이 들어온 상점의 전광판에 스마트폰을 대면 개점 시간이나, 최근의 세일 같은 정보들이 빛을 통해 교환되는 더 규모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기대하고 있다.

아직 이러한 것은 무엇이 가능하다는 수준의 미미한 것들이다. 작년 10월 많은 기업이나 산업 단체들이 고속 광무선 시스템을 발전시키기 위한 Li-Fi 컨소시움을 구성했다. 아이디어는 빛을 통해 대두되는 용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전파를 기반한 무선 통신이 어디에서나 가능해지면서, 휴대전화 네트워크나 Wi-Fi를 통해 더욱 더 많은 데이터를 전송하는 더욱 더 많은 기기들이 인터넷에 연결되고 있다. 하지만 무선 주파수 대역은 한정되어 있다. 전자기의 완전히 다른 스펙트럼인 빛을 이용한다면 이 난관을 극복할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빛은 벌써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조명을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둠을 밝히다

전구를 Li-Fi 라우터로 바꾸는 것은 방출하는 메시지를 전송하기 위한 빛의 세기 조절 기능과, Wi-Fi 라우터 처럼 그것을 전화나 광대역 케이블 서비스에 연결된 모뎀과 네트워크 케이블로 연결하는 것을 포함한다. 백열전구나 형광등은 밝기 조절이 용이하지 못하다. 하지만 이것들은 구식의 조명 기술이다. 미래의 기술은 발광 다이오드(LED)이다. LED는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에 벌써 형광등과 전구를 급속도로 대체하고 있다. 또한 영국 Edinburgh 대학의 Harand Haas와 그의 동료들과 광통신을 연구 중인 Gorden Povey에 따르면, 이것은 반도체 기기이기 때문에, 전류를 조절하여 데이터 전송에 필요한 반짝이는 신호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꽤나 직관적이다.

데이터 전송률도 좋은 편이다. Povey 박사의 그룹은 벌써 일반적인 LED를 이용해 2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초당 130메가비트의 전송 속도를 기록했다. (기존 Wi-Fi 라우터에 비해 빠르다) 이 기술을 상용화 하기 위해 설립된 VLC의 사장이기도 한 Povey 박사는 이 기기가 훨씬 더 먼 거리에서도 초당 1기가비트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특별히 제작된 LED는 훨씬 빠를 수 있다. Li-Fi 컨소시움은 10Gbps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론상으로 이는 고화질의 영화를 30초 만에 다운로드 가능하게 해준다.

Povey 박사는 기존의 LED를 스마트폰이나 유사한 기기에서 이미 찾아볼 수 있는 센서나 광원 – 카메라, 주위 밝기 센서, 화면, 플래시, 손전등 등 – 과 연동시키는 것이 Li-Fi 기술을 시장에 소개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 믿는다. VLC는 한 쌍의 iPhone 간에 빛을 이용해 저속의 데이터를 교환하는 스마트폰 앱을 개발했다. 그들은 또한 빛 신호를 보내고 받을 수 있고 랩탑에 꼽아 사용하는 실험적인 광학 트랜스시버를 만들었다. 올해 말, 그들은 LED 조명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업을 위한 Li-Fi 제품들을 내놓을 예정이다.

물론 빛을 이용하는 것에도 제약이 따른다. 전파와 달리 빛은 벽을 뚫을 수 없다. 하지만 보안 어플리케이션에서 이것은 이점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140억 개나 되는 전구가 어디에나 있고, 흔히 이용된다. 이들이 점차 LED에 대체됨에 따라 모든 가정, 사무실, 공공 빌딩, 길의 조명도 Li-Fi 핫스팟이 될 수 있다. 문제의 LED와 일직선 시야에서 연결되는 것이 의심할 여지 없이 신호를 가장 잘 받을 수 있지만, 벽이나 천정에 반사된 빛도 충분할 것이다. 어찌됐든, Wi-Fi에서도 직선으로 신호를 받는 것이 좋다. 또한 Wi-Fi 라우터의 위치를 찾는 것보다는 좋은 신호를 받기 위해 근처의 빛을 찾아 가는 것이 확실히 쉽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은 양 방향의 길이다. 이것은 Li-Fi 라우터에 포함된 LED가 데이터를 수신하기 위한 광 검출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몇 LED 시스템은 이러한 센서를 벌써 가지고 있다. (밤에 언제 불을 꺼야 할지 알기 위해) 하지만 LED를 개조되지 않아도 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가능해 질 것이라고 Povey 박사는 예측한다. 데이터는 빛을 통해 다운로드 되고 전파를 통해 업로드(일반적으로 적은 데이터가 전송되는 과정) 된다. 예를 들면 사무실에서 LED가 장착된 책상 램프가 Li-Fi 라우터로 동작하면 책상 위의 어떤 기기와도 연결이 가능해진다.

빛의 큰 장점은 비행기나 수술실처럼 전파 신호가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민감한 장소에서도 이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비싸고 무거운 케이블 대신에 여객기 천정의 LED가 인터넷 접속 뿐 아니라, 각 좌석에 요청대로 영화를 전송하는 것을 가능케 해 연료를 절약할 수 있게 한다. 이 것 하나 만으로도 이를 테면 이 아이디어를 하늘을 날게 할 수 있다.

철학을 가지는 것에 대하여

스티브 잡스가 죽었을 때, 그를 뛰어난 비즈니스 맨이자, 창업자이자, 리더이자, 디자이너로 소개한 많은 매채들을 봤다. 하지만 어디도 그를 철학자로 소개한 곳은 없었다. 내가 봤을 때, 그는 현대의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였다. 그가 만든 소프트웨어나 Gaget들은 철두철미하게 그가 가지고 있는 철학의 현시이며, 그는 독불장군 처럼 군림하면서 수만명이나 되는 조직을 그의 머리 속에 있는 것을 현실화 시켜 사람들이 만지고 열광하고 돈을 내게 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영악했다.

그의 성공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 시대의 대중이 요구하는, 혹은 선호하는 근본적인 철학적인 가치가 있다. 그가 특출나게 잘했던 디자인이던, User Interface던, 대중의 욕망을 움켜쥐는 기술이던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여러가지 형태가 될 수 있겠지만 사실 그 기저에는 어떤 철학적인 가치가 자리잡고 있음을 본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것들에 딱 부합하는 무엇을 만들어 내었건, 혹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사람들이 이에 열광하게 했건 말이다.

따라서 한 시대에 인간이 창조한 모든 것에서 놀라울 만큼의 유사성을 발견한다. 전혀 다른 학문과 산업의 영역에서 발생했던 속성을 전혀 연관성 없을 것 같은 분야에서 차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앞 단락의 근거로써, 이는 위에 쌓아 올려져 있는 것이 아닌 저 아래의 무엇인가가 일맥 상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철학이라고 이름 붙인다. 이는 사람들이 아주 미세한 부분의 가치 판단을 할때에 까지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

철학적으로 기본이 되는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의 어떤 현상을 재단하고 판단하고, 그에 따른 나의 행동을 결정함에 있어서 자신이 이용할 철학을 가지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세상은 수학 교과서가 아니므로 옭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수없이 연속되는 가치 판단의 문제들로 이루어져있다. 따라서 모두가 공유하는 어떤 Ground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철학(Ground)로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이 철학이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닌 자신의 판단과 경험에 의해 다져진 것이고, 이를 모든 경우에 엄격하게 적용할 용기가 있으면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은 이런 사람은 Maverick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명목적인 신념을 가지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인생에 있어서 놀라울만큼의 정렬성을 가진다. 믿어지지 않지만, 100%의 효율성을 내는 내연기관 처럼 말이다.

다만 몇가지 이러한 관점과 철학의 문제에 있어서도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첫 째로는 이 관점이 시시각각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두려워해서도 안된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처럼 내가 가지고 있던 이 철학도 경험이 쌓이고 몰랐던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서 당연히 변하게 된다. 정치적 색이 바뀌고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호감이 가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되고, 저항해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전력을 다해 악셀레이터를 밟고, 개솔린을 완전 연소 시키는 것이지, Steering Wheel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둘 째로 이 관점은 철저하게 현재에 세워야 한다. 미래를 걱정하거나, 과거에 미련이 남아서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 내가 제어할 수 없거나, 또는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일이 아닌 것은 배제하고 현재 나의 모습에 100% 충실한 철학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세 번째로 모든 매체를 볼때 그것을 이 철학과 연결 시키고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 받으며 발전시켜나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책을 읽더라도 이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지, 내가 보고 배울 만한 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꺠어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이는 동물적인 감각이 아니라 진지한 사색으로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로 현대의 인스턴트식 정보 습득에서 가장 이루기 어려운 부분이다.

인생을 어디로 이끄는 근본적인 힘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철학에서 나온다. 따라서 조바심을 느끼거나 서두를 필요도 없다. 무엇을 굳게 믿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범위 안에서 이 원하는 것과 정렬성을 가지도록 만들어 지게 되어있다. 그러한 철학이 배척받거나, 빛을 못본들 또 어떠하랴. 각자의 인생은 대하소설을 쓰던, 간결한 산문을 써내려가던, 나름대로의 역할로 완결 짓는 것에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