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st] 전화 끊기 (Hanging up)

작년 11월 13일 IT 분야의 웹 진으로 유명한 TechCrunch에 도발적인 제목의 “The Phone Call Is Dead”라는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말 그대로 이제 아무도 음성 통화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주장이었는데요. 이를 영국의 경제 주간지 “The Economist”에서 반박하여 그 해 12월 29일 판에 “Hanging up”이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웹 진과 전통의 주간지 사이의 흥미로운 논쟁으로 생각되어져 양쪽의 기사를 번역해봅니다. (잘 해석이 안 되는 구절이 많네요)

음성 통화는 죽었다

Alexia Tsotsis Nov 13, 2010 from TechCrunch

기술 산업 분야에서 무엇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 “그것은 쇠퇴기를 걷고 있다.” 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렇다, 음성 통화는 멈출 수 없는 내리막 길을 가고 있다.

이 포스트를 위한 처음의 제목은 “음성 통화는 ___  년 이내에 죽을 것이다.” 이었다. 하지만 소비자 관성이 우리의 모기업 Aol을 유선 통화 시작에 붙들어 놓고 있어, 통화의 죽음 예정 시간을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신중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손으로 쓰는 편지보다 덜 구식이지만 더 짜증나는 음성 통화는 한동안 향수로 칭송 받을지 몰라도 커뮤니케이션의 한 방법 정도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 2008년 텍스트 메세지가 휴대전화 사용량을 추월했을 때 그 분기점에 도달했고, 그 이후 어느 때보다도 텍스트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시대를 살아왔다. (트위터 덕택에)

만약 오래된 미디어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다면, 그것은 모든 산업 분야가 완전히 쇠퇴하기 까지는 최소 한 세대가 걸린다는 것 이었다. 특히 거대 통신 기업처럼 막강하다면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그 길을 가고 있다. Nielsen 데이터에 따르면, 음성 사용량은 54세 이후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매 연령 그룹에서 점차 더 낮아지고 있었다. 텍스트 메시지는 순조롭다.

“현재, 78퍼센트의 청소년들은 SMS의 기능과 편리함을 인식하고 있고, 이것이 음성 통화(아직 재미있긴 하지만)보다 더 쉽고(22 퍼센트), 빠르(20 퍼센트)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음성 활용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14퍼센트가 감소하여 한달 평균 646분의 전화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음성 통화에 있어서 재미있는 점은 현재 연령 층에 따라 급격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고, 22살의 흥미 끌기가 실패하는 와중에 살아 남은 기술적 발전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마이크는 MG가 AT&T의 문제 있는 수신율 때문에 실제 전화를 걸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그를 그렇게 본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아이폰 사용자들은 전화를 통화 용도로 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스마트폰 이용자의 상당수에게 일반적이다) 우리는 “전화기”라는 것을 들고 다니지만 우리에게 그들은 단지 주머니에 들어가는 컴퓨터 같은 것이다.

MG의 마이크에 대한 응답은, “그게 필요하지는 않아요. 나는 대부분 앱이나 웹 서핑을 위해 폰을 이용하지 전화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거든요” 보충설명: MG는 20대이고 Mike는 40살 남짓이다. 우리가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할 것 같고, MobileCrunch의 편집자 Greg Kumparak의 AT&T 이용량 데이터는 모든 세대의 음성 이용 습관을 보여준다.

통신 산업에 미안하게도, 우리에게는 음성 서비스들을 이용하지 않은 점점 더 많은 이유들이 생기고 있다. 현재까지 완벽히 주류는 아니지만, 우리는 구글보이스처럼 무료이고 인터넷에 기반한 풍부한 전화 서비스들을 이용할 수 있다. 내가 인터넷 벤쳐 기업을 인터뷰할 때 전화번호를 물어보면 그들은 그들의 스카이프 유저이름을 가르쳐 준다.

내가 사전 언급 없이 정보를 요청하는 전화를 하면 (자동 응답 전화로 응대되지 않는 것 이상으로 자주) 그들은 그들의 반응을 이메일로 보내준다. 그리고 특별히 오전 9시 전에 불쑥 전화하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홍보실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나 왔다.

짜증나는 것은 업무상 전화 뿐만이 아니다. 어느 날 내가 이용하는 은행의 누군가가 내 401K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전화했다. 좋다. 문제는 내가 한 주에 3~4번의 전화밖에 받지 않는 상황에서 그 전화를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것이다. 중대 뉴스에 대한 포스트를 작성하려는 중 전화를 정상적으로 받았다. (전화는 굉장히 긴급한 상황을 의미한다) 몇 가지 무례한 이야기를 주절거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비록 결국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될 것을 확신하지만 나는 아직도 401K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가장 슬픈 것은 내가 TechCrunch/Aol의 매각에서 백만장자가 된 이후로도 (물론 사실이 아니다) 내일 당장 급료가 들어오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닌 내 돈을 가지고 무엇인가 일을 시작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음성 통화는 내게 유용한 정보를 주게 될 것이고 무례한 훼방도 혐오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상적으로, 어떻게 상호 소통이 이루어졌어야 하는지 적어본다. Chase 은행은 내 계좌에 더 많은 돈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포함하여 내 401K 옵션 계획을 설명해주는 링크와 함께 내게 이메일을 보냈어야 했다. 거기서 나는 무엇이 나한테 더 적합한 계획이라는 고객 서비스 상담원의 미리 쓰여진 쓸데없는 말을 듣는 것 대신 내용을 읽어서 결정할 수 있다. 현재, 그 상태 그대로, 절대 다시 전화하지 않을 알 수 없는 전화번호가 적인 포스트잇이 생겼다.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인터넷을 서핑하다 401K가 5년 후부터 중요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이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것이다.

401K 에피소드보다 더 슬픈 것은 음성 통화에 대한
세대간 단절이 당신보다 나이든 사람에게는 심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Mike가 그의 어머니가 연락을 위해 연속되는 이메일을 사용하는데 서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게, 나는 피할 수 없는 친척들로부터의 일요일 전화를 두려워 하고 그들이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게 답신도 해야 된다. 나는 그들이 단지 트위터나 다른 것들에서 @reply만 했으면 좋겠다. 내가 가진 들어보고 싶지도 않은 18개 이상의 음성 메시지들 대신에 말이다.

아마 내가 사람들이 내게 손으로 쓴 편지를 쓰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전화 끊기

음성 통화의 죽음에 대한 보고들이 매우 과장되어있다.

Dec 29th 2010 | from the print edition

클라우드 컴퓨팅이 어느 때보다 확산되면서, 텍스트 메시지와 모바일 인터넷 덕택에 초라한 단말에서의 음성 통화는 쇠퇴하고 있다. 최소한 실리콘 벨리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여겨진다. 몇몇은 벌써 부고장까지 작성해놓았다. “음성 통화는 죽었다.” 블로그이자 최근 첨단 기술의 중심 기관이 된 TechCrunch의 최근 헤드라인이다. 하지만 정말 지금이 전화를 끊을 때인가?

유선 전화의 전성기가 지났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ITU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최근 몇 년간 사람들이 유선 전화로 통화하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영국의 통신사 규제 기관인 Ofcom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이 하락은 모바일 통화의 증가 분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차트 참고)

Ofcom은 또한 다른 어떤 것보다 요금이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전화를 이용하고, 유선 전화와 무선 전화 어떤 것을 이용할지를 결정짓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현재는 유선 전화의 두 배 수준인 독일에서의 무선 통화 요금이 내려가면, 사람들은 확실히 휴대전화로 한 달에 112분 이상을 통화할 것이다.

음성 통화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대한 가장 강력한 근거는 미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사 기관 닐슨은 2010년 휴대 전화 가입자의 총 통화량이 한 달에 700분까지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이 수치는 수신 전화까지 포함된 것이다. 무역 기관인 CTIA의 조사는 2007년 중반 부터 무선 통화의 평균 길이가 3분을 갓 넘는 수준에서 1분 40초까지 떨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적은 통화 시간이 반드시 적은 휴대전화 사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닐슨에 따르면 같은 기간 동안 휴대전화 가입자 당 유료 문자 메시지 이용 수는 가파르게 증가하여 최근 한달 700건을 넘어섰다. 이는 대부분 청소년들의 쉼 없는 손가락 때문이고 이들은 또한 더 많은 본질적으로 손안의 컴퓨터이자 그들로 하여금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하는 스마트폰을 구입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이와 같은 네트워크인 페이스북은 최근 그들의 6억에 이르는 가입자 중 1/3 정도가 휴대전화를 통해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발표했다.

청소년이 문자메시지를 오랜 기간 이용해왔던 영국에서는 아직 스마트폰의 확산이 유사한 영향을 끼치지는 않고 있다고 O2 브랜드의 운영사인 Telefonica Europe의 단말 총 관리자 Steve Alder는 말한다. 영국의 스마트폰 이용자는 일반 전화 이용자보다 11% 더 길게 말한다고 Alder는 밝혔다. 젊은이들은 더 수다스럽고 더 많은 문자를 쓴다.

새로운 기술은 종종 오래된 것을 대체하는 데 실패한다. Kaiser Familly 재단의 연구는 미국의 젊은이들은 과거 보다 더 많은 시간 TV를 보면서도 더 많은 시간을 컴퓨터를 이용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오래된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다른 형태로 되돌아 올 수도 있다. 인터넷 전화 서비스인 스카이프는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2010년 상반기 이용자는 총 950억 분의 음성과 영상전화를 사용했다.

이상한 점은 전통적인 음성 통화는 단지 많은 형식의 통신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기업가들은 그들의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실리콘 벨리 밖에서는 근 미래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는 대화의 “gentle art”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환영 받을 것이고, 전화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부모에게는 두려운 일이 될 것이다.

욕망을 가만히 들여다 보기

불현듯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고 느낄때, 한밤에 맥주 한잔을 하고 싶다고 느끼는 소소한 욕망도 누군가와 사귀고 싶다는 본능적인 사랑도, 먼 미래에 누군가가 되고 싶다는 아련한 꿈 같은 것이 느껴질때는 가만히 삶의 속도를 늦추고 그 욕망을 가만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이 욕망을 빠르게 달성할 수 있을 것에 대한 생각, 이를 달성하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온몸으로 부딪히는 노력 등은 날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러한 느리게 흘러가는 사색의 시간을 가지지 않아도 인생은 자연스래 소망하는 것을 향해 전력투구하게 되어있다. 그 반대로 이 욕망이 어디서 왔는지 무엇이 나에게 이러한 강렬한 욕망을 불러일으켰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고 느낄때, 그 순간의 느낌은 정말로 소중하다. 음악가가 악상이 떠올랐을 때를 대비해서 녹음기를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이러한 욕구가 생겼을 때 이를 기록하고 다녀야 할 필요가 있을 정도라고 생각된다. 어떤 욕구를 느끼는 순간, 그 명령의 주체가 동물적인 본능 수준의 것이나, 혹은 더 고차원의 사회적 욕구의 발현인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모든 욕구을 사라지지 않게 호흡을 조절하며 가만히 붙잡아 놓고 꼼꼼한 이성의 자와 측량법으로 재단할 필요가 있다.

첫 째로는 이러한 시간을 가짐으로써 문득문득 드는 욕망의 본질까지 분해하고 파고 들어가서 보다 근본적이고 큰 만족과 쾌락을 얻기 위한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이러한 욕망이 왜 분출되었는지 알면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인간에게 나타나는 모든 욕구란 근본적으로 상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다.

단순한 일차원적인 욕망들은 강력하기는 하지만 휘발성인 측면이 강하다. 주기적으로 반복되기는 하지만 나에 대한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여기에만 충실하다면 사회에서는 이들을 방탕아로 낙인 찍어버리기 일쑤이다. 욕구에 대한 가치 판단은 전적으로 개인의 문제이긴 하지만 다른 욕구, 특히 사회적인 것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일차원 적인 욕구를 어느 정도 절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어떤 욕구의 조합이 정말 일차원 적인 것만으로 이루어진 나름의 순결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이를 자신이 판단하는 사회화와 도덕적인 기준에 맞추어 제어할 필요가 있다.

반면 사회적인 욕구나, 자아 실현의 욕구 (교과서에서 많이 들었다)는 쉽게 달성하기 어렵지만 그 달성의 쾌락은 더 크고 또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또 일차원 적인 욕구가 달성되고 난 다음에야 이러한 욕구가 표출된다. 이의 달성은 반드시 일차원적인 수시로 나타나는 욕구에 대한 희생을 요구한다. 타인과의 지적인 유희를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학습과 이해의 시간을 거칠 필요가 있다.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굴욕의 순간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

문득 내가 하고 싶은 어떤 일이 무엇 때문인지, 어떤 심리의 조합인지 알아내고 또 다른 욕구는 어떤 것을 느껴왔고 그것과 상충되는 것이 있지는 않은지 판단할 수 있다면 이러한 욕구 충족의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올바로 사회화된 인간으로써 최대한 많은 욕구를 만족시켜 나가는 것이 삶의 과정이라면 이러한 삶의 과정을 가장 적합하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으로서의 전략적인 면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이러한 욕망은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 대다수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므로 남이 행동하는 양식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사람의 욕망은 자신에게만 나타나는 특별한 경우는 없다. 불현듯 얼토당토 않은 일을 해보고 싶다는 황당한 욕구조차 그 기저에는 누구나, 늘 보편적으로 꿈꾸는 근본적인 몇가지 작은 소망들의 조합이 존재하며 이것이 실제 생활에 투명되어 나타난 결과이다. 이는 마치 프로이트가 말하는 꿈의 체현과 같은 것이다.

깊이 있게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고 싶을 때, 그러한 행동의 바닥에는 나와 다르지 않은, 내가 겪었던 욕구와 동일한 동인이 자리잡고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면 타인의 감정과 행동에 대한 더 깊이있고 올바른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수 없이 넘처나는 연애 지침서나, 직장에서의 처세술, 매니지먼트 기술을 가르쳐준다는 책들은 바로 다른 사람의 욕구를 어떻게 만족시켜 주느냐에 관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기술의 첫번째는 상대의 행동이나 언어로부터 그가 가지고 있는, 자존심이나 사회적 규약에 의해 감춰져 있는 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에 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욕구와 타인의 욕구가 얽히고 섥힌 사회에서 얼마나 자신의 욕구를 관철시킬지, 얼마나 양보를 할지에 대한 자신 나름대로의 기준 선이 필요한데 이러한 통찰을 통해 상대의 욕구를 최대한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나의 욕구를 최대한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그래서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는 (물론 근본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또 이를 이룸으로서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상대방이 표출하는 일차원 적인 욕구들을 파악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비록 터부시하는 욕망들을 드러내기를 꺼려하지만 이는 워낙 원초적이고 강렬하여 같은 동종의 인간이라면 매우 작은 단서만으로도 이를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타인의 복잡하고 사회적인 욕구에 대한 발현을 알아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며 이를 위해서 나의 내부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욕구, 이를 하나하나 분석하고 작은 단위의 파편들 까지 분해하여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러한 훈련은 위해서 말한 것 처럼, 순간의 욕구가 일어나는 순간 세상을 멈추고 깊이있는 응시를 통해 가능한 일이다. 순간에 집중하는 일, 그리고 나에게 집중하는 일, 그리고 내가 찰나의 순간 뒤에 어떤 행동을 하기를 원하는지 그 욕구를 파악하는 일은 수학에서 미분의 발견과 같은,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가져다 준다는 것에는 틀림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