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st] Game over (게임 오버)

대한민국의 검열

게임오버

April 16th 2011 | Seoul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에서의 이상한 규칙과 규제

7백만명이 넘는 대한민국의 어린이들은 애플의 아이폰이나 이의 라이벌 삼성전자의 갤럭시S 같은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그들 중 상당수는 스마트폰을 통한 모바일 온라인 게임에 너무도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50여개의 학부모 단체는 16세 이하의 학생들이 야간에 온라인 컴퓨터게임을 할 수 없는 현재의 규제가 모바일 폰으로 확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왔다.

컴퓨터 게임에 대한 우려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PC방”이라 불리는 인터넷 까페에서의 장기간 게임 플레이가 사망을 포함한 폭력을 유발시킨다는 주장은 많은 자기 성찰을 불러왔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여도, 정부는 강력한 규제를 사용하는 것을 너무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어떠한 게임이라도 퇴출 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게임물 등급 심의 위원회(GRB)는 한국의 가장 활기찬 산업 중 하나인 게임 산업 전체의 발전 자체를 방해할 위험을 떠안고 있다.

Grand Theft Auto 3 같은 그래픽 게임은 이미 한국의 게이머들은 접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GRB가 아이폰이나 삼성이 이용하고 있는 이의 라이벌 플랫폼 안드로이드로 출시되는 엄청난 수의 새로운 모바일 게임을 일일히 심의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GRB는 대부분의 무해한 게임에게도 긴 심의 과정을 고집해왔다. 애플과, 안드로이드를 개발한 구글은 한국의 고객들에게는 어떤 게임도 판매하지 않음으로써 문제가 생기는 것을 회피해왔다.

아직 한국의 많은 “인디” 게임 개발사들은 고객에게 게임을 직접 판매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이는 재능있는 프로그래머들과 스마트폰 게임에 중독된 사람들로 형성된 시장을 통해 자연히 생성된 산업이다. 정부는 용기있는 창업을 하려는 젊은이들에게 말로는 이를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GRB는 한국 게임 커뮤니티 최대의 적이라고 게임 개발사 Pig-Min의 김지성씨는 말한다.

이는 기술관련 검열이라는 더 큰 문제의 일부분이다. 2009년 자신을 미네르바라고 불렀던 온라인에서의 “겅제 예언가”는 대한민국의 경제에 대한 암울한 예언을 하고,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다. 이 30세의 젊은이는 이후 무죄로 판결되었다. 법정에서 받아들여진 유일한 기소사유는 정부의 압제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드물게 웹 사이트에 로그인할때 반드시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야 하는 “실명제”가 인기있는 온라인 포럼에 글을 올릴때 적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 미래의 미네르바들은 쉽게 신원확인이 될 수 있다. 잘못된 정보의 전파는 최대 5년의 징역과 막대한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게다가, 2008년부터 독립적으로 여겨지는 한국 방송 통신 위원회는 “건전하고 친화적인 통신 환경”을 부흥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비판자들은 이 위원회가 사실상 정부의 인터넷 검열 기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단지 거짓된 정보나, 음란물 혹은 국가 보안법을 위반할 수 있는 북한 체제에 대한 찬양을 삭제할 것을 포털에 “권고”할 수 있다. 사실 이들은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행정 명령을 내릴 수 있어서, 이들 컨텐츠의 삭제를 강제할 수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권고”는 대부분 수용된다.

캠브리지 대학의 장하준교수가 집필한 자유무역을 비판하는 “나쁜 사마리아인”은 국방부가 지정한 장병들이 읽어서는 안되는 도서 리스트에 올라 있으며 이 저서에서 그는 이러한 노력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은 단순히 전화선 몇 개만 절단하면 되었던, 1980년대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한 장소에서의 자유 발언을 규제하는 것은 단순히 다른 곳 어딘가에서의 “산불이 시작되게 하는 것”이다.

정보와 사상의 흐름을 규제하고자 하는 희망의 많은 부분은 아직도 불법으로 남아있는 북한 체제의 선전이 확산되는 것에 대한 오랜 기간의 공포 때문으로 생각되어 질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여기에 더해 IT의 강력한 힘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데, 이는 2008년 서울을 마비 상태로까지 끌고갔던 거대하고, 인터넷에 의해 촉발되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 때문이었다. 아직도 한국의 정보 통제에 대한 가벼운 편집증은 그들의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명성을 손상시키고 창의력있는 집단으로서의 잠재력을 방해하고 있다.

 

이별 공식

지하철을 타고 그녀를 만나러 가는길

나도 뻔히 이것이 마지막일 걸 알아

 

그녀는 웃지도 않았지만, 나를 만나는 동안 최고로 예쁘게 하고 나왔어

하지만 왼손에는 내가 준 반지가 없었고 그래서 손을 잡을 수 없어

 

어색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오랜시간을 걸어

높은 힐이 걱정스러워 한마디 하고 싶지만 이제는 내가 상관할 바 아닌 것 같아

 

아무렇지 않은 듯 농담을 하지만 항상 나만이 웃어

싸늘한 반응에 나도 지쳐 더 이상 계속할 힘을 잃었어

 

머리는 돌지 않고 발걸음을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겠어

늘 가던 까페에서 차를 마시고 늘 가던 거리를 산책해

 

추억의 무게에 눌려 오늘 보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짧은 후회를 해

하지만 곧 언젠가는 매듭지어야 했다고 후회의 후회를 해

 

한참을 돌고  다시 멈춘 곳은 처음 만났던 자리야

이 순간이 결국 마지막 임을 알았어 그녀가 그러길 바라고 있다는 것도 알아

 

마지막으로 꼭 끌어 안아줬어 잘 보이진 않지만 그녀는 울고 있는 것 같아

오늘 그녀는 각오한듯 이를 악물고 무표정과 울음의 두가지만 보여줘

 

좋아했던 체취와 어깨의 부드러움에 약간 흔들렸지만 괜찮아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었고

그녀는 밀쳐낸 나를 두고 서둘러 뒷걸음질 치며 인파 속으로 파묻혔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모습을 지워가

문득 마음 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지우는 방법을 깨달았어

 

별일 아닐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녀의 빈자리를 매꾸어가

오랜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껴

 

다른 누군가를 만나 그녀와 갔던 곳에 가고

다른 누군가와 함께 그녀와 먹던 메뉴를 시켜

 

그러면 누구와 어디를 갔는지 알 수 없게 되고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게 되겠지

 

기억은 새로운 기억에 덮이고

반복되는 감각은 무뎌저만 가

 

언젠가는 밀물에 감춰진 파식의 흔적처럼

나의  젊은 날의 잔해들도 감춰지고 쓸려가겠지

 

이별에는 이러한 공식이 있지만

만남에는 새로운 우연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