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그녀를 만나러 가는길
나도 뻔히 이것이 마지막일 걸 알아
그녀는 웃지도 않았지만, 나를 만나는 동안 최고로 예쁘게 하고 나왔어
하지만 왼손에는 내가 준 반지가 없었고 그래서 손을 잡을 수 없어
어색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오랜시간을 걸어
높은 힐이 걱정스러워 한마디 하고 싶지만 이제는 내가 상관할 바 아닌 것 같아
아무렇지 않은 듯 농담을 하지만 항상 나만이 웃어
싸늘한 반응에 나도 지쳐 더 이상 계속할 힘을 잃었어
머리는 돌지 않고 발걸음을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겠어
늘 가던 까페에서 차를 마시고 늘 가던 거리를 산책해
추억의 무게에 눌려 오늘 보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짧은 후회를 해
하지만 곧 언젠가는 매듭지어야 했다고 후회의 후회를 해
한참을 돌고 다시 멈춘 곳은 처음 만났던 자리야
이 순간이 결국 마지막 임을 알았어 그녀가 그러길 바라고 있다는 것도 알아
마지막으로 꼭 끌어 안아줬어 잘 보이진 않지만 그녀는 울고 있는 것 같아
오늘 그녀는 각오한듯 이를 악물고 무표정과 울음의 두가지만 보여줘
좋아했던 체취와 어깨의 부드러움에 약간 흔들렸지만 괜찮아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었고
그녀는 밀쳐낸 나를 두고 서둘러 뒷걸음질 치며 인파 속으로 파묻혔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모습을 지워가
문득 마음 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지우는 방법을 깨달았어
별일 아닐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녀의 빈자리를 매꾸어가
오랜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껴
다른 누군가를 만나 그녀와 갔던 곳에 가고
다른 누군가와 함께 그녀와 먹던 메뉴를 시켜
그러면 누구와 어디를 갔는지 알 수 없게 되고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게 되겠지
기억은 새로운 기억에 덮이고
반복되는 감각은 무뎌저만 가
언젠가는 밀물에 감춰진 파식의 흔적처럼
나의 젊은 날의 잔해들도 감춰지고 쓸려가겠지
이별에는 이러한 공식이 있지만
만남에는 새로운 우연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