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도록 적당히 술을 마시고는 다리가 아프기 전에, 하지만 차가운 바람은 충분히 느낄 만큼 충분히 걸었다. 그 동안을 곰곰히 생각했지. 나는 어떤 방향으로 뛰기 위해 이렇게 몸을 사리는 걸까.
잘 하는 것 하나 없는 나는 그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잘 하는 것을 더 잘하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못하는 것을 잘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사실 이렇게 더 큰 세상에 나오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나니 내가 잘 하는게 무엇인가 하는 고민부터 다시 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항상 많아서 엄격한 나는 내 자신을 세상에 자신있게 내보일 용기조차 사실 얻기 힘들다.
경쟁력이 없어서 출시일을 하루 이틀 미루는 전자 제품 처럼 그냥 뭔가에 도전할 시일을 이틀 삼일 까먹는 모습을 나에게서 본다. 머리가 아프지만 잘 모르겠다. 드래그 레이싱이나 철로처럼 핸들을 틀 이유가 없는 인생이면 좋겠지만 사실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다고 최단거리는 아닌 신기한 세상살이라는 것이다.
쓸데 없는 것에 시간을 쓴다는 생각이 쓸데 없는 것을 할때에는 항상 든다. 뭔가 의미 있는 것을 하는 시간에는 이게 의미 있는 것인지 항상 의심스럽다. 그래서 의미 있는 것들을 이것 저것 조금씩 해버리고는 자위하지만 사실 이렇게 Fragment 된 시간들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깨기 직전의 꿈처럼 내 생활에는 별 영향이, 영양가가 없는 단편들이다.
무엇인가에 일상을 고정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인생이 다채롭고 다양하고 변수가 많아 졌지만 그 만큼 응축된 에너지는 어딘가에서도 찾기 힘들어졌다. 사실 이렇게 사는 것이 반년전까지만 해도 내가 추구했던 삶에 닮아 있다고 생각하지만 조금씩은 후회가 들기도 한다. 이게 뭐람.
그 축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올해 초부터 고민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를 고정 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람일까 관념일까 미래일까 물질일까. 술은 들이킬 수록 쓰고 정답을 알려줄 룰렛은 점점 더 빨리 돌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