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다

그냥 나이 30 되고도 다른 사람 인생을 사는 것 같아서 지겹다.

성실하고, 착하고, 섬세하고, 머리 좋고, 자기 관리 철저하고 착한 아들에 좋은 남자 친구에, 뭐 그런 거 연기하려니까 지겹다. 매몰차고, 방탕하고, 욕하고, 꼴통에 멋대로고 그런 면을 30년 동안 하나도 안 드러내고 억눌러왔더니 it makes me crazy.

뭐 그렇다고 인생 대책 없는 날라리가 되겠다는 건 아니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좋아하는 성격대로 뽑아서 아담을 새로 만들듯이 나를 새로 만들어 보고 싶다. 내가 가진 거는 버리지 말고, 성과가 안 나는 부분 있잖아. 왜 회사에서도 별볼일 없는 부분 없애버리는 것처럼.

착한 것 좀 없애고, 남의 말 거절 못하는 거 좀 없애고, 방탕 한 거 좀 넣고, 비속어 좀 넣고, 머리 나쁜 거 좀 넣고. 적당히 섞어서 흔들어서 “류휘정” 재탄생. 좀 근사하게. 이왕이면 좀 남자나 아줌마 말고, 아가씨들한테도 좀 인기 있게, 연애 좀 하자.

아무튼 그래서 시도해보고 있는데, 이게 부작용이 좀 있다. 친구들한테 예전에는 안 이야기 했던 부분까지 이야기 하고 솔직해지고 하니까. 걔네 들은 별로 안 좋아한다. 물론 그럴 꺼다. 마냥 천사 같은 휘정이가 좋았고 익숙했던 애들이니까. 또 형 누나들한테 자꾸 반말 튀어나온다. 어제도 ‘너’라고 그랬네. 누나 미안. 공손한 휘정이 모드를 줄였더니, 자꾸 실수하네.

물론 기분 나빠져서 나를 떠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기존 인간 관계를 이렇게 통째로 비틀어 버리는 게 사실은 필요하다. 적이 없는 사람은 결국 모두가 적이다. 나처럼 모두가 나를 좋아하길 바라면 결국 누구와도 진짜 친구가 못될 것 같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만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아마 이런 비슷한 말을 한 위인이 있을 것이고 꽤나 인용될 거다.

그래서 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본다면, 음, 글쎄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하루라도 빨리 찾고 싶다. What i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my whole life.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이나, 가짜 내가 원하는 것 말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것. 내 목숨과도 교환이 가능한 것. 좋은 남자친구는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 여자친구가 원하는 거다. 성실한 직장인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 회사가 원하는 거다. 그럼 나는 뭘 할래. 나이 30살이나 처먹고 아직도 답이 없으면 이건 30년 동안 키워주신 부모님께 사죄해야 된다.

그래서 잠이 안 온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니 개뿔 거창하게 인생은 무슨. 당장 내일 아침에 눈뜨면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는데. 잠이 오나, 잘 수가 있나. 인생이 만만하지 않다고 말은 들어왔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는데. 지긋지긋하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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