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 홍콩 여행 2010

일년 동안 휴가를 2일밖에 쓰지 못했다. 주말을 비우고, 평일을 비우고 휴식을 취했지만 두 밤, 세 밤이 지나도록 회사 일을 잊어 본 적이 없는 지난 일년을 뒤로 하고 일주일 간의 휴가를 즐기기로 했다.

지난 일년 내내 있었던 서울을 떠나 어딘가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또 욕심 가득히 다양한 도시를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부산홍콩을 선택했다. 더위와 태풍, 끈적한 습도가 함께한 여행이었지만 잠시나마 머리를 끈적한 회사의 마수에서 떨어뜨려 놓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참을 수 있었다. 더위 따위, 태풍 따위. 아무것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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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도쿄에 한참을 머물다, 야간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오사카에 내린 그 시점을 떠오르게 했다. 서울에서 한참을 기차를 타고 달려 내린 곳은 바다 냄새가 물씬 나고, 더운, 그리고 세련된 도쿄에 비해서 한적해 보이는 풍경이 가득한 오사카와 같은 부 산이었다.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골목들을 누비고 다니고, 위생 상태 불량해 보이는 음식들을 먹었지만 그것이 부산이라면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다름을 경험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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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날씨는 여행 온 신출내기에게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태풍은 그로 인한 바람에 우산이 뒤집히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스타벅스에 뛰어들어 샌드위치를 두 개나 주문하게 만들고는 오후 늦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동해로 사라졌다. 다행히 마지막 자비로 햇빛이 나지는 않게 만들어 나처럼 발발 거리고 돌아다니는 여행자에게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기는 했다. 쭉 늘어선 해운대의 파라솔은 나로써는 처음 실제 보는 것이라 즐거웠다. 날씨가 쨍쨍하고, 사람들도 쨍쨍했다. 돼지 국밥은 만족스러웠지만, 밀면은 불만족스러웠다. 뭐든, 대체제로 만들어진 물건은 별로다. 항상 The Original.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와서 피곤에 지친 몸을 하루 쉬게 하고는 바로 다음날 새벽부터 홍콩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홍콩은 영화에서 (사실 그렇게 많이 보지도 않았다) 본 모습 뿐, 어떤 먹거리가 있고, 어떤 가볼 곳이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떠나게 됐다. 사실 부산도 그렇고 홍콩도 그렇고 이번 여름의 여행지들은 준비 없이 떠났다. 나름 매력이 있다. 소개팅도 다 알고 나가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있다.

홍콩은 무더위와 습기가 지배하는 나라 같았다. 적어도 여름의 홍콩은 그런 것 같았다. 인간이 무엇을 어마어마 하게 소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여기에 와서 구경하면 될 것 같다. 에너지를 소비하고, 욕망을 소비하고, 시간을 소비한다. 그러한 끝없는 인간의 배출을 영양분으로 하여 이 거대한 도시는 살아간다. 그래서 육식동물의 냄새가 나고,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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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머리 속에 복잡한 생각들을 넣고 걸어 다니다 보면 마치 오마쥬처럼 그러한 생각들이 실 세계의 상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손에 들고 있는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신중하게 누르게 된다. 영상을 눈과 머리 속, 양쪽에서 잡아 낸다. 사진을 찍는 것은 주로 세상이 나에게 하는 말을 받아 들이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발견하기도 한다. 일 예로, 위의 사진은 세상이 나에게 하는 말 같았고, 아래 사진은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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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도 잠깐 시간을 내어 들러보았다. 배를 타고 가는 것은 신났지만, 또 다른 입국 심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 일은 귀찮았다. 입국 심사관은 불친절했지만, 호텔 카지노까지 태워다 주는 직원은 친절했다. 사람은 비록 표면적이기는 하겠지만, 돈이 보이면 친절해진다. 작은 유럽이라는 가이드 책의 소개가 조금 잘못되었다. 엄청, 작은 유럽이다. 미니어처 수준도 안 되는 것 같다. 유럽의 냄새가 살짝 난다고 표현 하는 게 좋겠다. 그래 봐야 길거리의 음식 냄새가 더 진동한다. 사람 냄새도 많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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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백만 불짜리 야경이라고 한다. 물론 홍콩의 백만 불짜리 야경을 만들기 위해서 수억 불을 썼겠지. 기라성 같은 타워들이 바벨탑을 올리듯 서있고, 밤 8시만 되면 휘황찬란하게 빛난다. 그 속에서 충분히 즐기지 못하면 왠지 나약함을 느끼고 만다. 바다 바람은 시원하지만 거대한 빛의 발산 속에서 오롯이 혼자 설 수 없는 허세가 심한 인간 군상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야경은 일주일 간의 여행을 매듭짓는 클라이맥스로는 최적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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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이 노래는 십오 년 전쯤, 어느 봄날의 교무실에서, 좋다고 느낄 사이도 없이 짧은 순간 스치며 지나가듯 만났다. 여느 중학생이 그러하듯 혼자만 무엇이 다른 듯, 남들에 비해 성숙했다고 여겨지는 느낌을 좋아했는데, 알 수 없이 난해했지만 친근한 단어로 쓰인 가사가 마음에 들었었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들어와 혼자 잠에 드는” 이야기는 마치 내 이야기를 적은 것 같았다.

  하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나는 비록 느리고 작은 달팽이라 한번도 바다를 본적이 없지만, 매일 동트기 전 새벽에 깨어나 무엇인가를 알 수 없이 가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서는 도저히 잠을 들 수 없었던 소년의 생각에 “이 정도라면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조금이나마 생겨났었다.

  어느 사이엔가 세월은 훌쩍 흘러 나는 홀로 서야 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그때에 비하여 그리 대단한 성숙함을 가지지 못하였다. 담대함으로 껍질을 깨뜨리는 용기도 갖추지 못한 채 그저 아침에 일어나 또 다시 무엇인지 모를 것을 향한 채비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어진 역할에 맞추어 그저 다른 수백만의 달팽이들처럼.

  아주 오래 전에는 선명하고 청량하게 들렸던 파도 소리는 이제 익숙함 때문인지, 세상의 번잡함 때문인지 점점 희미해지고 들려오는 방향조차 알기 어려워졌다. 호기롭게 ‘영원함’을 외치던 스스로는 이제 그 약속을 머쓱하게 물린 채 조건을 하나 둘 달기 시작했다. 그런 시간이 한 달, 두 달이 지나 이제 일년이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머리를 저으며 차가운 방바닥에 앉아 목표 없는 시선을 던져서는 안되겠다. 멀리 떠나 해답을 찾으려 한다던가, 의미 없는 대화의 반복 속에서 실마리를 잡으려 해도 안되겠다. 나를 당당하지 못하게 만드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내가 정한 저 알 수 없는 내면의 외침 중 하나를 중요하게 생각해야겠다.

  실패는 나에게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기회를 선사했고, 쓰러짐은 내 두 다리를 더 굳건하게 만들 의욕을 선사했다. 내가 20대에 흘린 수천 시간의 땀방울이 꼿꼿한 걸음걸이를 준 것처럼 미래에 생길 수천 시간의 쓰라림과 부끄러움은 나의 자신감 있는 목소리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나는 시간을 먹고 사는 달팽이가 되어서 전속력으로 어딘가를 향해 질주해야겠다. 나를 테스트할 시점은 끝나고 본 게임이 시작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