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펜을 잃어버리는 사람과 펜을 줍는 사람.

  굳이 말하자면, 나는 펜을 줍는 사람. 그 증거로 내 책상 옆 선물로 받은 초콜렛 상자에 차곡 차곡 쌓여있는, 내가 구입하지 않은 다 쓴 펜들을 들 수 있다. Uni-ball, Zebra, Jet-stream, SARASA, Hitech-C 등등. 알고보니, 나름 까탈스럽게 좋은 펜만 쓰네. 아무 펜이나 줍진 않았다.

  펜은 버스 좌석, 도서관 열람실, 내 회사 책상, 지하철 개찰구 등, 딱히 선호되는 곳 없이 전세계 어디에나 발견된다. 사람들은 펜에 이름 쓰는 일을 일반적으로는 귀찮아 하기 때문에, 찾아줄 수도 없고, 따라서 딱히 죄책감 같은 것도 없다. 아니, 오히려 세상에 수명을 다해 흘려질 처지에 놓인 자원들을 찾아 남김없이 소비해주는, Global Warming 문제에 조금은 기여한다고 할 수 있겠다. 아마, 잉크는 물을 꽤나 오염시킬 것 같이 생겼다.

  펜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굴까?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펜을 본적은 있어도, 누군가가 흘리는 것을 본 기억은 없다. 딱히 보지 않아도 흘려진 펜을 보면 전 주인이 누굴까 예측을 조금은 할 수 있다. 광택이 선명하게 살아있는 조금 도 안 쓴 펜을 볼 때도 있고, 또 어떤 것은 버린 건지 흘린 건지 알 수 없는 펜도 있다. 어떤 것은 꽤나 아껴 쓴 것 같고, 또 어떤 것은 차이고 밟히고 돌리고 떨어뜨리고 심지어 이빨로 씹은 것도 있다. 하지만 이도 일반적으로 펜이 받는 사랑이라는 것은 별볼일 없다.

  똑같은 제품이 문구점에는 널려있고, 더 좋은 제품이 시즌마다 쏟아져 나오니까. 유기견 문제만큼 펜의 유기 문제가 부각이 안 되는 것은 아마 펜이 강아지 만큼 귀엽거나, 불쌍한 표정을 지을 수는 없으니까.

  모든 것은 그 가치를 소홀이 여기는 사람의 손을 떠나,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 손에 쥐어지기 마련이다. 마치 펜처럼. 발이 달리거나, 펜의 주인에 대한 취향 같은 것은 상상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어딘가를 그렇게 흘러 흘러 다니면서 역할을 다하고, 그 수명을 다하는 모습을 유심히 본다. 그래 굳이 고백하자면 나는 꽤나 펜을 사랑한다.

같다는 말이 얼마나 추상적인지..

  트위터나,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면 별 소득 없는 싸움을 목격하게 되는 경우가 참 많다. 누가 옳다느니, 누가 더 전문가라느니, 누구의 정보가 더 최신의 것이라는 등의 딱히 실제 세계와 다를 바 없는 이유들로 ‘별’ 걸 가지고 다 싸운다.

  흔히들 생각하기를 같은 것을 보고도 제각각 다르게 생각하는 생각의 다양성 때문에 싸움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본래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생각할 때, 보는 대상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생각이 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흔히 일어나는 싸움 중의 하나를 생각해보면, 짬뽕으로 유명한 중국집이 있고, 이곳의 맛을 극찬한 어느 식도락 블로거가 있다고 해보자. 이 극찬한 글을 읽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중국집을 방문한 누군가가 짬뽕의 맛이 형편없다고 느껴 블로거가 올린 글에 비아냥 거리는 “님 입맛 참 싸구려네요.” 라는 댓 글을 달아 싸움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다른 입맛을 가졌기 때문에 의견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고, 또 싸움도 자연스럽다는 반응 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보다 더 근본적으로 보면 두 사람이 먹은 음식이 애당초 다르다는 사실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그날 따라 마른 오징어를 썼다던가, 요리사가 손을 다쳐 견습 요리사가 조리했다던가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싸울 이유가 없다. 각자는 각자의 음식을 맛봤고, 이는 서로 다른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을 엄밀히 맞추어 적어도 ‘비슷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애당초 물리적으로 Equivalent 한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면 의미 없는 싸움의 단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러한 성급한 동일시의 오류의 예를 정말 많이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실수를 애초에 막기 위해서 우리는 “같다”라는 말, 혹은 개념을 정말 신중히 사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 말을 정확하게 사용할 Tangible한 예라는 것을 찾기가 힘이 들 정도로 이는 추상적인 용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근사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이 말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같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어느 경우에 이 말이 적합하지 않은지, 어느 경우에 성급하게 동일시 하고 있지 않는지 파악해 각기 다른 세분화된 개념을 머리 속에 납득하고 체득하고 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시각이 내 기준에서 틀린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출발 선 상에서 출발하여 다르게 발전시켜 나간 것임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러면 이를 포용할 수 있는 여유도 발휘할 수 있고 말이다.

  디지털 세상처럼 모두가 같은 것에서 출발하면 같은 생각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같은 것을 봐도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불확실성의 세상도 아니고, 세상 모두가 다른 것을 보고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인간 세상이다. 여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