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중요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삶의 굄 돌 역할을 하는 묵직한 기억의 조각들은 그 조각을 어디에서 발견했는지, 어떤 모양을 하고 무슨 색을 띄고 있는지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다. 그 대상에 대해 생각하면 홀연히 사라져, 그런 것이 있었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물 속의 기포처럼 본질은 볼 수 없지만, 그것의 영향력이 주위를 변화시키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만 어렴풋하게 알아챌 수 있을 뿐이다.
감정이 응결돼서 나타나는 이러한 기억의 조각들은 진주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진주처럼 항상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다. 어떤 기억은 눈이 부셔 쳐다볼 수 없지만, 또 다른 어떤 기억은 똑바로 응시하는 것으로 자아를 붕괴시킬 만큼 강력한 것도 있다. 아마 이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방어 기제가 작용해 마음 속 어딘가에 꽁꽁 숨겨져 있음이 틀림 없다. 사람의 겉 모습이 육지라면 마음은 깊은 심해 같다. 엄청 난 것이 있음에 틀림없지만, 무슨 꿍꿍이가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지,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우리는 파도를 보고 어렴풋한 짐작 밖에 할 수가 없다.
피상적인 감정들을 하나씩 벗겨내어 그러한 본질 적인 것을 알아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세상의 무엇에 대해서 생각하기 보다는 나의 무엇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인생의 여정에서 나는 어디까지 나를 알 수 있을까. 최후의 순간에 알아낸 자신과 얼마나 나를 동일시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