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st] 문 앞의 곰 무리 (Bears at the door)

Bears at the door

Jan 7th 2010 | ESPOO
From The Economist print edition

Can the world’s largest handset-maker regain the initiative?
세계 최대의 핸드셋 제조사가 다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까?

Illustration by Claudio Munoz

ASK Finns about their national character and chances are the word sisu will come up. It is an amalgam of steadfastness and diligence, but also courage, recklessness and fierce tenacity. “It takes sisu to stand at the door when the bear is on the other side,” a folk saying goes.

핀란드 사람들에게 그들의 국민성에 대해 물어보면 아마 십중 팔구는 “sisu”라는 단어를 언급할 것이다. 그것은 확고함과 근면함이자 또한 용기, 무모함, 저돌적인 집요함 등을 나타낸다. 한 민요에는 “문 마주편에 곰이 서있을때는 sisu를 가져라” 라는 구절이 있다.

There are plenty of bears these days at the doors of Nokia, the Finnish firm that is the world’s biggest maker of mobile handsets. Although it is still the global leader in the fast-growing market for smart-phones, its devices are losing ground to Apple’s iPhone and to the BlackBerry, made by Research in Motion (RIM). On January 5th Google took a further step into the market with the launch of the Nexus One, a handset made by HTC of Taiwan that the internet giant will sell directly to consumers, and which runs Android, Google’s operating system for smart-phones.

세계 최대의 핀란드 국적 모바일 핸드셋 제조사 노키아의 문 앞에는 최근 엄청난 수의 곰 무리들이 버티고 서있다. 아직 빠르게 성장하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세계 1등 기업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애플의 iPhone이나, RIM 사의 Blackberry 때문에 노키아의 단말기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1월 5일, 구글은 그들의 스마트폰을 위한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를 탑재하고 대만의 HTC사에 의해 제조되는 소비자 직접 판매 방식의 Nexus One 단말을 런칭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

Especially in America, where Apple and RIM reign supreme in the smart-phone market, many already see Nokia as a has-been. Developers are rushing to write programs for the iPhone and for Android, but shun Symbian, Nokia’s rival software platform. And Nokia’s efforts in mobile services, mostly under its Ovi brand, have yet to make much headway.

애플과 RIM이 스마트폰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는 미국에서 노키아는 이미 한물 간 것으로  취급된다. 개발자들은 노키아의 소프트웨어 플랫폼 심비안을 버리고 iPhone과 안드로이드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대부분 Ovi 브랜드를 통한 그들의 모바일 서비스를 위한 노력은 아직도 갈길이 멀다.

When the company makes headlines these days, it is thanks to the patent lawsuits it has filed against Apple, which many have interpreted—perhaps unfairly—as an admission of commercial defeat. The latest suit, filed in late December, asks America’s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to ban various Apple products, including the iPhone, from entering the country.

노키아가 애플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 소송 때문에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는데, 이는 공정치 않지만 상업적 패배의 시인이라고 해석된다. 가장 최근인 작년 12월의 소송은 미 국제 무역 위원회에 iPhone을 포함한 애플의 상품들을 미국으로 들여오는 것을 금지 시키라고 요청했다.

Nokia beats Apple in annual sales ($57 billion versus $37 billion) and market share in smart-phones (39% versus 17%), but it is much less profitable. In fact, Nokia’s share of industry profits fell from 64% in 2007 to 32% in 2009—not much more than Apple’s and less than RIM’s, according to Brian Modoff, an analyst with Deutsche Bank. Small wonder that Nokia’s market capitalisation is barely a quarter of Apple’s.

노키아는 연 판매량(570억불 vs 370억불)과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38% 대 17%)에서 애플을 앞질렀지만, 수익률 면에서는 훨씬 좋지 않다. Deutsche Bank의 애널리스트 Brian Modoff에 따르면 사실 노키아의 산업 수익 점유율은 2007년의 64%에서 2009년의 32%로 떨어졌고 이는 애플보다 압도적이지 않고 RIM보다 적다. 노키아의 시장 투자 시가총액이 겨우 애플의 1/4이라는 것은 놀라운 것도 아니다. 

Yet in Nokia’s headquarters in Espoo, near Helsinki, morale is far better than one might expect. Hardly anyone would deny that there are problems. But executives insist that they can be overcome. When board members met financial analysts in December, they made some bold predictions. Within a year, promised Olli-Pekka Kallasvuo, the firm’s boss, the ageing Symbian software will have been vastly improved, to enable Nokia to offer “magic devices”. As for services, the goal is to have signed up 300m users by the end of 2011. “I’ve rarely heard such explicit statements,” says Ben Wood of CCS Insight, a long-time Nokia watcher.

아직 헬싱키 근처, 노키아의 본사가 위치한 ESPOO에서의 사기는 예상 된 것보다 훨씬 낫다. 누구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임원진들은 그들이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2월, 이사회 멤버들이 재무 애널리스트들을 만났을 때, 몇가지 호기로운 예상을 했다. 노키아의 사장 Olli-Pekka Kallasvuo는 1년 이내에 오래된 심비안 소프트웨어를 대대적으로 발전시켜 노키아에서 “Magic Device”를 출시 하겠다고 약속했다. 서비스를 위해서는 2011년 말까지 3억 가입자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오랜기간 노키아를 관찰해온 CCC Insight의 Ben Wood 는 “그렇게 확고한 단언을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로 말했다.

Nokia has overcome many crises in the past. In 1995 poor logistics caused it to stumble. It responded by developing one of the world’s most efficient supply chains, capable of churning out some 1.2m handsets a day. A decade later it failed to anticipate the demand for “clamshell”-type handsets, but bounced back quickly to restore its market share in handsets to 40% and thus its industry dominance.

노키아는 많은 위기를 극복해 왔다. 1995년에는 물류의 문제가 회사를 휘청이게 만들었다. 이의 결과로 하루에 120만개의 핸드셋을 생산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공급망을 구축하게 되었다. 10년 후에는 폴더 타입의 핸드셋에 대한 수요를 예측하는데 실패했지만 곧 반등하여 40%의 시장 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었고, 산업을 여전히 지배할 수 있었다.

But this time the problems go deeper. In more than one way, Nokia has to become a different company, says Jay Galbraith, a management expert. Until now, it has excelled in making and distributing hardware. This has trained the organisation to focus on planning and logistics. Deadlines are often set 18 months in advance. Teams developing a new device also work in relative isolation and even competitively, to make each product more original. And although Nokia has always done a lot of market research and built phones for every conceivable type of customer, it sells most of its wares to telecoms operators and designs its products to meet their demands.

하지만 이번 문제는 더 심각해 보인다. 매니지먼트 전문가 Jay Galbraith 는 노키아가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노키아는 하드웨어의 제작과 유통에 뛰어남을 보여왔다. 이것은 조직을 계획과 물류에 초점을 맞추도록 훈련시켜 왔다. 데드라인은 보통 18개월 정도의 미래에 설정되었다. 고유성을 위해서 팀들은 상대적으로 독립적이고 또 경쟁적으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었다. 비록 노키아는 많은 시장 조사를 하고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타입의 핸드폰을 만들었지만, 그들 제품 대부분은 통신사에 판매 되었으며 그들의 요구에 맞게 디자인 되었다.

With the rise of the smart-phone, however, software and services are becoming much more important. They require different skills. Development cycles are not counted in quarters and years, but in months or even weeks. New services do not have to be perfect, since they can be improved after their launch if consumers like them. Teams have to collaborate more closely, so that the same services and software can run on different handsets. Nokia also has to establish a direct relationship with its users like Apple’s or Google’s.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에 따라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기술이 필요하다. 개발 주기는 연, 분기 단위로 셈되지 않고, 월, 심지어 주단위를 필요로 한다. 서비스는 완벽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소비자들이 좋아하기만 한다면 런칭 이후에도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서비스나 소프트웨어가 다른 핸드셋에서도 구동되게 하기 위해서 팀들은 더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또한 노키아는 구글이나 애플처럼 그들의 고객과 더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To Nokia’s credit, it anticipated the shift to software and services much earlier than other handset-makers. It launched Ovi in 2007, almost a year before Apple opened its highly successful App Store. A few months later, Nokia bought Navteq, a maker of digital maps, for a whopping €5.7 billion (then $8.1 billion), to be able to offer better location-based services. Shortly thereafter, Nokia launched Comes With Music, an innovative pairing of a handset with a digital-music subscription.

노키아의 명성대로, 그들은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로의 이동을 다른 핸드셋 제조사보다 훨씬 빨리 예상했다. 애플이 대단히 성공적인 앱스토어를 오픈하기 거의 1년전인 2007년에 그들은 Ovi를 선보였다. 몇 달 후 노키아는 더 나은 위치기반 서비스 제공을 위해 디지털 지도 제작사인 Navteg을 57억 유로(81억 달러)라는 터무니 없는 가격에 인수했다. 그 직후 노키아는 핸드폰과 디지털 음악 서비스 가입을 묶은 혁신적인 “Comes with Music”을 선보였다.

These efforts have not been great successes, although Nokia says that 86m people now use its various services. The firm is still working at bundling a selection of them into a neat package that is easily accessible from its handsets. Moreover, most of its offerings have to compete against popular incumbents, such as Facebook, Apple’s iTunes store and Google Maps. To further complicate matters, telecoms operators are reluctant to let Nokia offer services directly to their customers, since they want to do the same.

비록 노키아가 밝힌대로 8천 6백만의 사람들이 그들의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지만, 이러한 노력들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노키아는 아직도 이들을 선별해서 그들의 핸드셋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돈된 패키지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 대부분은 페이스북이나 애플의 iTunes, 구글 맵 같은 인기있는 서비스들과 경쟁해야 한다. 한층 더 복잡한 것은, 통신사들이 노키아가 그들의 서비스를 고객에게 직접 제공하는 것을 꺼려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똑같은 것을 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Worse, while dealing with these problems, Nokia has seemed to neglect its main business. The first version of its flagship smart-phone, called the N97, was a let-down. It has as many bells and whistles as a Swiss army knife, says Carolina Milanesi of Gartner, a market-research firm, but its software, based on Symbian, makes them almost impossible to use. “It is like having a Ferrari body with a Fiat Cinquecento engine inside,” she says.

더욱 안좋은 것은 이러한 문제들을 처리하느라 노키아가 그들 본연의 일을 망각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N97라 불리는 그들의 플래그쉽 스마트폰의 첫번째 버전은 실망스럽다. 그것이 스위스 아미 칼처럼 많은 벨과 휘슬을 가지고 있지만,  심비안에 기반한 탑재 소프트웨어는 그들을 사용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시장 조사 기관 Gartner의 Carolina Milanesi는 말했다. 그녀는 “마치 패라리의 차체에 Fiat Cinquecento의 엔진을 장착한 것과 같습니다.” 라고 말했다. (역주: Fiat Cinquecento는 최대 1100cc의 배기량을 가진 소형차)

Last February Nokia’s management kicked off what is internally known as a “transformation project” to address all these concerns. “We needed to move faster. We needed to improve our execution. And we needed a tighter coupling of devices and services,” explains Mary McDowell, Nokia’s chief strategist. The firm has since introduced a simpler internal structure, cut its smart-phone portfolio by half, ditched weaker services and begun to increase Ovi’s appeal to developers by allowing them to integrate Nokia’s services into their own applications. While giving Symbian a makeover it is also pushing a new operating system, called Maemo, for the grandest, computer-like smart-phones.

지난 2월 노키아의 경영진은 이러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변화 프로젝트”라 불리는 것을 시작했다.  “우리는 더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업무 수행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기와 서비스를 더 긴밀히 연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노키아의 최고 전략 담당 Mary McDowell 이 설명했다. 내부 조직이 간결하게 정비된 탓에, 그들의 스마트폰 단말 종류를 절반으로 줄이고, 취약한 서비스는 중단하고 개발자들에게 Ovi를 통해 노키아의 다른 서비스를 쉽게 이용해서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할 수 있게 해서 이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했다. 컴퓨터와 같은 멋진 스마트폰을 위해심비안을 새 단장하고 이를 Maemo라 불리는 새로운 운영체제로 계량하고 있다.

All this will no doubt help Nokia come up with better, if not magic, products. The firm may even reach its goal of 300m users by the end of 2011 because its efforts are not aimed just at rich countries, but at fast-growing emerging economies where Nokia is still king of the hill, such as India. There, services such as Nokia Money, a mobile-payment system, and Life Tools, which supplies farmers with prices and other information, fulfil real needs, says John Delaney of IDC, another market-research firm.

이러한 모든 것들이 노키아가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게 하리라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선진국 뿐 아니라 인도 같은 빠르게 성장하는 개발 도상국에서의 제왕적인 위치 덕택에 노키아는 2011년 말까지 3억 이용자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시장 조사 기관 IDC의 John Delaney는 인도에서의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Nokia Money 나, 농부들에게 가격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Life Tool 같은 서비스들은 실제 사용자 요구를 만족 시킨다고 말했다.

Yet it is an entirely different question whether Nokia will manage to dominate the mobile industry once more—not just by handset volumes, but by innovation and profits. The example of the computer industry, in which the centre of gravity began shifting from hardware firms to providers of software and services over two decades ago, is not terribly encouraging: of the industry’s former giants, only IBM really made the shift successfully. Then again, Nokia has reinvented itself many times since its origin in 1865 as a paper mill. That, points out Dan Steinbock, the author of two books on the firm, is thanks not only to sisu, but also to a remarkable willingness to embrace change and diversity. Nokia will need those traits in the years ahead.

하지만 노키아가 핸드셋 판매량이 아닌 혁신이나, 수익률 측면에서 다시한번 모바일 산업을 지배하게 될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산업의 중심이 하드웨어 기업에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이동했던 20여년 전의 컴퓨터 산업에서의 예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예전의 거대 기업이었던, IBM 만이 이러한 이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리고 또한, 노키아는 종이 공장이었던 1865년의 설립이래 많은 자기 혁신을 이뤄 왔다. 이러한 것은 “sisu” 뿐이 아닌 변화와 다양성을 포용하는 놀랄만큼의 열성 덕택이라고 노키아에 대한 2권의 책의 저자 Dan Steinbock은 지적했다. 노키아는 미래에는 이러한 특성들이 필요하다.

동유럽 배낭여행 2009 [5]

07.18

짤쯔부르크에서 혹한을 만나다.

설마 여름에 이정도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배낭 속에 든 옷 중 가장 두꺼운 것이라고는 얇은 홑겹의 아디다스 윈드브레이커뿐. 그나마 이마저도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추위에 충분히 대비한다고 터질듯한 배낭안에 우겨넣고는 나의 철저한 준비성에 혼자 감탄했었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하게 이 마저도 부족한 날씨였던 것이다. 전날 할슈타트에서 짤쯔부르크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짤쯔부르크를 향해서 몰려오는 거대한 먹구름을 봤어도 이는 여름에 지나가는 소나기 정도 일 것이라 생각했다. 한국과는 다르니까 조금 더 심해봐야 강풍을 동반한다는 것 정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쌀쌀한 한기에 몸이 뻣뻣해졌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한참하고서도 멍한 정신을 수습할 수 없었는데, 당장 하루 숙박 예정으로 체크인했기 때문에 부랴부랴 아침식사를 하고 또 짐을 싸서 나가야했다. 하지만 문 밖은 밤사이에 급속도로 온도가 떨어져 최소한 5도에서 10도 정도의 날씨인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비까지 부슬부슬 오는 상황이어서 선듯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기가 힘이 들었다. 일단 식비를 아끼기 위해서 최대한 배불리 먹은 후 체크 아웃 시간에 간당간당해서 숙소를 나섰다. 오늘 밤 2시에나 도착하는 야간 열차를 타기까지는 아직도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고, 또 너무 추웠다.

짤쯔부르크?

짤쯔부르크 최고의 관광상품은 무엇일까? 아마 여러가지 들수 있겠지만, 최고는 “모짜르트”라는데 많이 공감할 것이다. 모짜르트는 짤쯔부르크에서 태어났다. 향후에 활동 무대를 빈으로 옮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기서는 아직도 그의 생가 등 많은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하루동안 돌아보고 나서야 알게된 이야기 이고, 아침 나절에는 짤쯔부르크에 뭐가 있는지 뭐가 유명한지도 모른채 무작정 실내에서 둘러볼 수 있는 게 없을까 찾아 헤매면서 걸었다. 아니, 24시간 버스 이용권을 전날 구입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그래, 성당안은 따뜻하겠지.

뭔지도 모를 건축물이, 그것도 오래되어 보이는 건축물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광장에서 내려 아무곳이나 돈을 안내도 되는 성당을 찾아 들어갔다. 흐린 날씨에도 사람들은 어디서 이렇게 쏟아져 나왔는지 바글바글 했는데, 물론 난방같은 것은 있을 턱이 없고 바람만 막아 주는 것 만으로도 주님에게 감사하면서 웅웅대는 소리를 들으며 의자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사람이 몸이 녹인다, 추위에 몸이 언다. 2가지 상태만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제 3의 상태, 몸의 에너지를 필사적으로 쓰면서 더 추워지지도 더 더워지지도 않은채로 유지만 하는 상태가 있다는 것을 여기서 알았다. 이 성당의 차가운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 바로 그 상태였다. 이왕 얼어죽을거 용기를 내보기로 하고 성당을 나섰다. 기부금을 받고 있는 할머니의 시선이 꽃혔지만, 무시하고 그냥 걸어나왔다.

이 건축물 군집소 뒤쪽으로는 높다란 언덕 위에 성이 한채 서 있었다. 어제 숙소에서도 사진을 찍으러 나갔지만 실패하고 돌아온 이 성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야 하는데 돈!을 내야했다. 아직 젊은 우리들은 걸어 올라가서 걸어 내려올수 있는 방법이 없나 찾아봤지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옛날 일본에서 에노시마를 방문했을때, 걸어올라가는 길 옆에 유료 에스컬레이터를 운영하는 걸 본 적이 있었지만,  그 때는 양쪽 옵션이 다 가능했었다. 이런 악랄한 오스트리안들!

일단 언덕배기가 너무 추웠기에 얼른 내려왔다. 이 이후의 일정은 사실 기억이 잘 안나는데, 너무 추워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뭔가 내려오는 길에 엽서를 하나 샀던 것 같고, No Kangaroo in Austria 라고 써진 티셔츠가 가지고 싶었다. 이왕 24시간 무료인거 버스를 타고 아무곳이나 갈데까지 가보자해서 종점을 돌아오기도 했다. 그래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이 많이 남았다.

동행은 아까 그 성에 미련이 남았나보다. 나는 그냥 안올라가보기를 원했고, 동행은 걸어서라도 올라갈 수 있는데까지 올라가보기를 원했기에 여기서 찢어지기로 했다. 이따 다시 역, 짐을 맡겨놓은 코인라커 앞에서 보기로 했다. 사실 너무 추워서 산을 올라가는 것은 무리라고 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허리도 심상치 않게 아팠다.

방금 우리가 피신했던 성당이 보인다

최악의 자연사 박물관

나는 너무 추워서 일단 가이드 북에 추천되어있는 자연사 박물관을 들어가기로 했다. 자연사 박물관이 뭐 별거 있겠어 라면서 가이드 북을 의심했지만, 꼭 보라는 추천이 있어서 비싼 돈을 주고, 게다가 줄까지 서가면서 입장을 했다. 줄 서 있는 외국인이 하나도 없을 때부터 뭔가 의심을 하고 나왔어야 했다. 온통 꼬마와 꼬마를 데리고 온 부모들 뿐이고 나처럼 배낭여행객이 이런 곳에 오는 것은 정말정말 드물었다. 전시되어 있는 내용도 전 세계에서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괜찮았을텐데, 그래보이는 것도 영. 어설프게 고개를 좌우로 휘젓는 선사시대 맷돼지 같은 것은 Made in China 일 것 같았다. 사실 여기서 한 2~3시간은 때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시간도 안되서 마지막 전시실까지 돌았음을 알고는 도대체 이제 더 무얼 봐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광장

낮이 되어 그나마 온도가 좀 올라가는 것 같았으므로 자연사 박물관 주위에 있는 무엇인가를 좀 둘러보기로 하고 관광지도를 펼쳐들었다. 일단 가장 가까이 있는 가보고 싶은 것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광장이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오케스트라 지휘자, 마에스트로의 이름을 딴 광장으로 “뭐 사실 별거 볼거 있겠어?” 했지만 그래도 가봤다, 안가봤다 차이는 있으니까. 게다가 남는게 시간이므로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 이름에 지명이 나와있다

예상대로 분수대가 하나 위치한 조그만 광장이었지만, 음악의 도시 짤쯔부르크에서 20세기의 위대한 지휘자의 이름을 딴 광장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이 도시 사람들이 음악을 좋아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하긴, 그 정도면 세계에 자랑해도 된다. 내 똑딱이 카메라로 찍어서 시야가 좁게 나왔지만 저 뒤쪽의 단층 지형이 뭔가 케잌을 정교하게 썰어놓은 것 처럼 신기하게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를 깎아서 터널을 만들어 놓기도 했는데,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자동차가 다니기에는 너무 좁게 깎았다 싶은데다가 입구의 고풍스러운 조각 양식이 오래되어 보이기는 한다.

이런건 도대체 어떻게 깎아 만들었을까?

광장에서 다시 버스를 잡아 타고 넘실넘실 범람할 것 같은 강을 지나 미라벨 정원에 내렸다. 예전 초등학생때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본적은 있지만, 그때 배경이 되었던 곳들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을리는 없고, 그냥 이 곳이 사운드 오브 뮤직을 촬영했던 곳이구나. 하는 명성만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햇살이 화창하고 꽃들도 만개하고 이슬이 초롱초롱하고, 뭔가 새들도 지저귀고 동상의 대리석이 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한다면 영화의 모습이 떠오를 수도 있겠으나. 내가 도착했을 때 광장의 모습은 질척질척대는 바닥에 들어가기도 꺼려지는 나름 처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진도 뭔가 구도가 나와야 찍을 만 할텐데, 마치 모짜르트 장례식이 그려지는 아마데우스의 한 장면 같은 날씨여서.

  몇 십 년 전에는 줄리 앤드류스가 뛰어 다녔다

원래 활짝 개인날 정원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 찾아보았는데, 역시 이렇게 우중충하지 않다. 사진에 실망해서 방문을 안하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운이 없었던 거지. 하지만 17일간의 여행 내내 이렇게 날씨 때문에 애먹었던 것은 이때가 유일했다. 대부분 날씨는 화창하고 좋았으며 돌아다니기 괜찮은 화창한, 조금은 더운 날씨였다. 짐도 가볍게 꾸릴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여름이 여행다니기는 좋은 것 같다. 물론 선 블락을 엄청나게 사용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말이다.

음악의 성지

미라벨 공원에서 기차역쪽으로 조금 걸어가다보면, 모짜르트 생가가 있다. 21세기가 되었지만 그가 인류 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작곡가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위대한이나, 혹은 아름다운 곡을 작곡한이나, 존경할만한 작곡가라면 다른 사람의 이름이 거론 될 수 있겠지만, 천재적인 작곡가라는 것에 보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인물은 아직 이 사람이 유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가는 잘 보존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왜냐하면 나는 안들어가봤다) 세계 각국에서 모짜르트의 팬들이 기부금을 보내 이 생가를 유지 발전시키고 각종 사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입구에는 기부금을 보내준 사람들의 명단이 쭉 적혀있는데, 일본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역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일본 다웠다.

모짜르트가 태어났다. 2층에서.

모짜르트 생가를 휙 둘러보고는 다시 그 추위를 견디지 못해 버스를 타고 역으로 향했다. 역이라면 바람은 피할 수 있겠지. 아직 1시간이 남은 약속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역에서 가만히 의자에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보고 역무원들을 보고 기차 시간표를 보고 코인라커에 짐을 맡기는 사람들을 보고 동양인이라면 더 유심히 보고 우리가 탈 열차는 언제쯤 도착할지 보고 나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일행이 합류하고 근처에 있는 대형 마트에 가서 저녁 요기 거리를 할 먹을 것 그리고 열차에서 간단히 먹을 것등을 샀다. 역시 유럽은 유제품, 맥주, 육류가 너무 저렴했다. 고기를 좋아하는, 우리는 이 나라만큼 육류가 싸다면 한국에 돌아가서 얼마나 행복할지에 대해서 상상했다. 우리나라는 먹을 거에 있어서는 정말 비싼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기초 생활 용품은 저렴하고, 고급 소비재는 비싼 형태가 되어야 복지 국가에 걸맞을 텐데.

노숙자 체험

이제 오늘의 하이라이트 역에서의 6시간 노숙이 남았다. 바람을 간신히 피할 수 있는 벤치에 앉아서 2시에 들어오는 기차를 무작정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딱히 둘러 볼 수 있는 공간도 없었고 아는 곳도 없었기 때문에, 사실은 벤치에 앉아서, 혹은 운이 좋다면 누워서 6시간 정도야 금방 갈 줄 알았다. 하지만, 몸이 덜덜 떨리는 추위와 불편한 의자, 그리고 짐을 분실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한잠도 이룰수가 없었다. 더욱이 주위의 노숙자들은 어슬렁 어슬렁 다가와 담배를 달라고 청하고 따뜻한 대합실의 칸막이 공간은 그들이 점거해서 그 냄새 덕분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한번 담배를 주니 보이기만 하면 담배를 달라고 졸라대는 통에 멀찍이 도망가 있어야했다.

오스트리아면 깔끔하고 청결할 줄 알았는데, 역의 노숙자들이 많은 것은 어기다 거기나 같았다. 기차가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현명했다면 주중에 어디 머물 공간을 마련해놓았을텐데, 후회는 소용없었다. 아마 이번 여행동안 가장 힘들고 고생했던 시간이 이 짧은 6시간이 아니었나 싶었다. 군에서 비박할때보다 2배는 더 힘들었다. 그만큼 도착한 열차의 6인용 쿠셋이 그렇게 달콤하고 따뜻한 공간이었다. 몸을 누이자 마자 잠에 빠져들어 헝가리로 향하는 덜컹거리는 열차 안에서 죽은듯이 잠들었다. 그렇게 노곤한 몸을 실은 열차는 국경을 넘어 여행의 2번째 나라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