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것은 8할이 Complex

  우리 동네 초등학교 뒷쪽에, 굵은 철사줄로 칭칭 동여맨 을씨년스러운 녹슨 대문과 마당에 수북히 쌓인 낙엽 가득한 낡은 집 한채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미당 서정주 시인은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라고 노래했다. 나는 그처럼 홀연히 살지 못했기에 뒤돌아보면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컴플렉스라고 노래 해야겠다. ‘바람’처럼 닿은듯 닿지않게 너울너울 살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며 나를 키워온 것이다.

  근래의 김연아아사다 마오를 보면 승부를 초월한 승자와 처절한 패자를 보게된다. 승자는 이미 여유로운 입장이고 아래에 위치한 옛 라이벌들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경쟁이라고는 생각치 않을 것이고, 오히려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할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는 태연히 “나 자신과의 싸움이 남았다.”라는 인터뷰도 할 수 있다. 뭐 어떠리, 내가 최고인걸. 패자는 아마 눈을 감으면 승자의 얼굴이 보일 것이고 눈을 뜨면 눈물이 흐를 것이다. 물론 그 자리에 자신이 예전에 있었다면 더욱 더 그럴 것이다. 경쟁과 컴플렉스는 온전히 패자의 것이 된다. 영원히 그 거리를 좁히지 못할지,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가서 언젠가는 왕좌를 탈환할지 하는 것은 순전히 패자의 태도에 달려있다.

  경쟁이 상호 발전을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사실이기도 하다. 물론 공정한 경쟁일때 그렇다. 대부분은 승자는 자신의 유리한 위치를 이용해 패자를 더 찍어 누르려고 한다. 패자는 아무것도 가진게 없어보인다. 하지만 여기에 고려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컴플렉스다. 컴플렉스는 패자를 위한 Cheer-up이자 승자에게 대한 Panelty이다. 카 레이싱에서는 앞서 달리는 차의 뒤를 바짝 따라붙어 공기 저항을 줄이는 방법이 있다. 비록 2등이지만, 나는 무언가를 더 지니고 있다. 컴플렉스는 상호 발전이 아니라, 느끼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에너지다. 마음을 쿡쿡 찌르는 듯한 아픔을 어떻게 이용할지, 어떻게 치유할지에 대한 선택은 중요한 일이다.

  컴플렉스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다고 술로 푸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을 잠시 세상의 현실과 괴리시키는 것이다. 좋은 방법은 1등의 발자국을 하나 하나 따라가면서 언젠가 있을 과거의 내가 패배한 경쟁과 다른 변수를 대비하는 것이다. 물론 손쉬운 방법은 아니다. (세상에 손쉬우면서 효과적인 방법은 그렇게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있다 해도, 대부분은 ‘더’ 손쉬운 방법이 있거나,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현재 위치에서는 내가 1등이 될 수 없지만, 경기의 규칙이 바뀌거나, 나는 더 오랫동안 무엇을 할 수 있다거나, 나는 더 심리적으로 강한 사람이거나 하는 장점을 하나 갖추면 언젠가는 그 요소가 당신에게 승리자 라는 타이틀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인정하기 별로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나도 타이틀과 같이 수많은 컴플렉스를 가지고 살아온 사람 중에 하나다. 공부나, 운동이나, 영어나, 외모나, 화술이나. 지금 생각해보면 선천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앞선 출발점에서 스타트를 끊은 것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나는 항상 다른 사람보다 뒤쳐져 있었고, 등을 보고 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컴플렉스를 이용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배웠다고 생각한다. 다른이의 장점에서 자신의 단점을 보고 이를 바꾸기 위해서 뭘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쉬운일이다. 하지만, 이 마음에 컴플렉스라는 연료를 붓는 것은, 그리고 이 불이 꺼지지 않게 유지하는 것은 내 경험상, 그리고 주위를 관찰한 결과 쉬운일은 아니다.

  이 외연기관의 엔진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해서 미장이가 벽돌을 쌓듯 조금씩 조금씩 차곡차곡 나를 쌓아나가는 작업은 내가 기쁨을 느끼는 유일하지는 않지만 가장 큰 하나의 방법이다. 매일같이 달리는 런닝머신 위에서 나는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을 뿐이지만, 더 나은 미래의 무언가를 볼 수 있는 눈을 키웠으니 미래로는 달려가고 있는 꼴이다. 조금이라도 나를 바꾸어 보겠다고 아무것도 아닌 발버둥을 치는 모습은 측은해 보이기도 하지만, 삶과 죽음의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의미있는 일이다.

아이리버 유감

  사실, 예전에 내가 가지고 있는 E100이라는 MP3 플레이어의 펌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 모습을 보고, 기본적인 소프트웨어 관리의 기본을 지키지 않는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때 장문의 아이리버를 성토하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막상 포스팅 하자니, 내가 그 회사 경영진도 아니고, 또 남 지적하는 말 자주 하는 것도 싫어서 그냥 지워버렸다. 또 “E100이 하위의 보급형 기종이라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하지만, 최근에 P35라는 비교적 상위? 어쩌면 가장 비싼 라인에 속할지도 모르는 제품을 사용해보고는 완전 실망이 아니라 절망해서 몇가지 아이리버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IT 계에 발담그고 있는 나로서도 이러한 점들은 좀 되새겨서 명심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어느 정도 레벨일지 판단 할 수 있는 사람은 회사에 꼭 필요하다.

  회사에서 외주 용역 계약을 맺을때도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 협횐지 어딘지에서 정한 기술자의 숙련도를 기준으로 분류해서 인건비를 계산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게 무언가 뚝딱뚝딱 만들어 내라고 할때, 그 사람이 어느 정도 수준의 일을 해 내는지 전문성은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물론 잦은 퇴사와 입사로 고작 당사자의 말과 과거 해왔던 프로젝트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겠지만, 그래 어쩌면 희망사항 일수도 있겠지만 정말 필요하다. P35의 유지 입력을 받아서 발생하는 이벤트 핸들러를 처리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정말 이 것 밖에 최선이 없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순간적으로라도 이 정도로 화면이 자연스럽지 못하게 스크롤이 되거나 어그러지면 간단하게 바꿔서 더 개선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소프트웨어 인력의 기술이 최근의 화려해지고 복잡해지는 하드웨어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혹은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모두 이러한 복잡한 기기를 유지 관리 개발할 능력이 없는 것 같다. 소수의 핵심 고급엔지니어를 더 채용하고 하급 개발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한국의 무조건 개발자는 싸게 더 싸게 채용해야 한다는 경영진의 마인드때문이 아닐까?

  • 소프트웨어 형상관리는 안하는 것 같다.

  이전 버젼의 펌웨어에서 고쳐졌던 버그가 이후 버젼의 펌웨어에서 다시 발생한다던지, 새로운 펌웨어에서 바뀌긴 바뀌었는데 뭐가 바뀌었는지 문서가 없다던지, 혹은 게시판을 통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온 클레임이 몇 달이 지나도 반영이 안된다던지 하는 문제가 계속 발생한다. 안그래도 테스터가 부족해 무수히 많은 버그들을 껴안은채로 출시하는 마당에 이런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도 부족한 모습을 보면 답답하다. E100에서 파일 재생 앞부분에 잡음이 들린다던지, 혹은 Fade out 기능이 해제가 안된다던지 하는 문제는 정말 몇시간이면 수정할 수 있을텐데 몇달씩이나 끌고 펌웨어 업데이트를 안한채 있는다는 것은 클레임을 처리하는 버그 트래커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업데이트 할때 뭐가 바뀌었는지 명확하게 설명도 없다. 결국 본인들도 잘 모른다는 것 아닐까?

  • 완성도가 높지 않으면 출시를 하지 말던지 기능을 빼라

  P35를 보면 이것저것 기능은 많다. Wifi도 되고, DMB, 기본적인 PMP 기능에 간단한 오피스 파일을 볼 수도 있고 다양한데, 어느 하나 제대로 완벽하게 되는게 없다. 부팅하면 엄청나게 많은 메뉴의 갯수에 놀라게 되지만, 다들 뭔가 만들다 만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나같이 다들 느려서 쓸 수 없을 지경이고 설명은 부족하고.. G센서를 넣었다는데, PDF 뷰에서는 지원이 안된다. 있는 하드웨어를 충분히 활용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럴 것이면 뭐 하나라도 제대로 되는 것들만 넣어서 출시를 했으면 좋겠다. 어제는 내장 Web 브라우져로 인터넷을 해보고 “이런 기능을 넣어서 돈받고 팔면 부끄러울 텐데”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iRiver가 다룰 수 있는 기술력의 한계는 딱 MP3 플레이어까지 였나보다.

  • 사용자 경험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iriver

  P35의 플레이 스크린 화면을 보면 왼쪽에 앨범 이미지가 나오고 위에 곡 이름이 크게 있다. 음악을 들으면서 기본적으로 곡 탐색 기능 이외에 자주 쓰는 것들이 음장 설정, 한곡 계속 반복하게 설정 등이 있을텐데, 위 플레이 화면에서 그 기능은 “미디어가 없습니다.” 아랫줄에 Normal이라고 아주 조그만 글씨를 누르면 음장, 그리고 그 옆에 별 5개 옆의 역시 잘 보이지도 않는 화살표를 누르면 Repeat 기능을 설정할 수 있다. 도대체 사용자로부터 입력을 받지도 않고, 또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Frequency 대역별 Visualization은 그 위에 앨범, 곡, 가수보다 더 큰 공간을 차지하면서(심지어 끌수도 없다) 이런 것는 잘 보이지도 않게 디자인 해 놓은 건지 정말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기본적인 기능인 “다음곡을 플레이하기”를 선택해도 플레이 할때까지의 시간이 4초 이상은 족히 걸린다. DB로 곡 탐색해놓고 새로 업로드한 곡은 7초씩 걸린다. 이런걸 도대체 누가 쓰라고 만들었나? 우선 화면에, 메모리 상주된 스크롤 비주얼이라도 보여주고 파일 읽어서 플레이부터 시키고 로딩 완료된 화면 띄워도 늦지 않다. 일단 다음 음악 듣기 버튼을 눌렀으면 눈은 그렇다 쳐도 귀로 듣는 음악은 휙휙 바뀌어야 될 것 아닌가?

  또한 WIFI 무선랜을 설정한때 보안 설정이 된 공유기를 위해서는 Key 값을 입력해야 한다. 이 Key 값이 키보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조그만한 화면에 뜨는 키보드를 터치로 꾹꾹 입력해야하는데 20자리나 되는 이 값을 “***********” 처럼 표시되는 화면을 보고 어떻게 정확하게 입력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어짜피 손에 들고 볼 것인데 옆에서 누가 몰래 훔쳐보지 않게 입력할 수도 있고, 하다 못해 *로 표시되는 기능을 켜고 끄는 옵션이라도 하나 넣어놓으면 안되나. 어제 사용하면서 이런식으로 쌓인 불만이 한두개가 아니다. 사용자가 답답하지 않게 만들어야 된다. 나는 고작 한학기 짜리 강의를 들었을 뿐이지만, iRiver 개발자나 테스터들은 HCI를 고려하려는 노력을 해야 될 것 같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iRiver 제품을 많이 썼다. 그만큼 애정도 있다. 딕플의 제일 처음 나온 버젼부터, E100, P35까지 MP3 같은 핸드핼드 디바이스는 거의 iRiver 제품만을 써왔다. 일본에 거주할 때도 퇴근 길에 iRiver MP3P를 목에 걸고 다니는 일본 사람들은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 자랑스러웠는데, 요즘은 하나씩 나오는 제품들을 사용해 볼때마다 정말 실망만 늘어간다. 사람들이 많이 사주고 인기가 있을때 최고를 유지하려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지, 이렇게 얇팍한 기술과 상술로 돈을 벌 생각을 하면 안된다. 제발 기본부터 다시 시작하고 그 다음에 무엇인가 추가할 생각을 해라. 기본이 안되어 있는 기업이 자꾸 넓게만, 또 멀리만 보려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