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 졸업

    올해 계속된 GRE와의 싸움이 드디어 끝났다. 넘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은 점수를 받았기에, 더이상은 덤비거나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다. 뭔가에 최선을 다해본 적이 별로 없는 나에게 이번 기회는 얼마나 내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할 수 있는지 테스트 할 수 있는 기회이자, 또한 멀리있는 목표를 위한 하나의 관문을 통과했다는 느낌이다.

    이래저래 불만도 많고 또 GRE라는 시험이 영어의 native가 아닌 사람의 능력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고 확신하지만, 북미권 대학들이 요구하는 기준이 그러하니 만큼 내가 숙이고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그래도 향후에는 시험자체와 또 시험점수를 동양에서 오는 학생들에게까지 요구하는 것에 대한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학생들을 위해서나 또 학교를 위해서나 더 도움이 될텐데.

    2년 8개월만에 다시 가본 일본의 느낌은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들은 원채 잘 변하지 않고, 또 내가 이번에는 빠르게 적응해서 그럴꺼다. 시험을 홀가분하게 끝내고 하루정도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는게 아쉬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로 위로를 해야겠다. 왕복에 김포-하네다 노선을 이용한다면 반나절이면 충분하니까, 거리상으로, 시간상으로 또 정서적으로 매우 가까운 느낌의 나라이다. 아마, 내 인생에서 미국과 더불어 조금 특별한 나라가 될 듯하다.

    이제, 또 다음 목표와 계획을 향해서 출발해야겠다. 하나의 시험을 위해, 이렇게 오랜기간을 쏟아붓는 목표가 다음에도 과연 또 있을까? 아마, 수도 없이 많을 것 같지만.

MP3 플레이어

고가의 물건을 살때면 늘 생각해 보는 것이 “이 물건이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인가?” 라는 것이다. 이런 물음을 머리속에 한 2주정도 넣고 다니다 보면 순간적인 충동으로 원했던 물건들은 어느 사이에 별로 필요없는 물건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쓸데없는 돈을 쓰지않아도 되는 상황이 된다. (물론 일생동안 이런 테스트를 거치지 않고 구입한 고가의 물건도 물론 있긴 한데, 대표적으로 플레이스테이션) 컴퓨터를 멀리하는 금욕 생활중이기에 영어공부를 위한 MP3 파일을 무엇으로 플레이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MP3 플레이어를 사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늘상 하는 것처럼 “지금 MP3 플레이어가 내게 꼭 필요한 것인가?” 라는 물음과 함께 일주일 정도를 지낸 것이다.

비교적 저가의 물건이기도 하고, 또 많이 가격이 내렸기도 하고, 또 당장 몇 주 안에 필요해질 것 같기도 해서. 서둘러, “아 이건 꼭 필요하겠다.”라는 결론에 도달한 후 조금은 색다른 생각이 들었다. 내 주위에는 도대체 얼마나 MP3를 플레이 가능한 디바이스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한번 떠올려 보았다.

1. 학부시절 구입한 PANASONIC CDP

2. 늘 가지고 다니는 오래된 EVER 핸드폰

3. 역시 몇 년 전에 구입한 SONY VAIO 노트북

4. 얼마전에 생긴 TOSHIBA 노트북

5. 요즘 유용하게 사용중인 딕플 전자사전

6. XBOX 360도 아닌 오리지널

7. 학부 입학하면서 구입한 옛날 AMD 데스크탑 컴퓨터

8. 아반떼 HD 카오디오

9. 노래방 기기 겸 MP3CD 플레이어

10. SKY에서 출시한 KTF용 휴대폰 공기계

11. 학교에서 사용 중인 비교적 최신형 데스크탑

아마 틀림없이 빠뜨린 몇 개를 제외하고도 무려 11개나 되는 MP3 플레이 가능 기기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용하는 기기들로 한정시켰기에 마련이지 범위를 “우리집”이나 “내 생활반경”으로 확장시키면 그 수는 아마 기하급수적으로 퐁퐁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이 기계들에는 전용 목적으로 만들어 졌든, 혹은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 삽입되었던 간에 MP3를 플레이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개발자의 노력에 의해서 탑제 되어있는 것이다. 물론 그 모든 노력과 자원이 나에 의해서 철저히 무시되고 있고 나는 또 하나 구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거다.

이렇게 많은 잠자는 기능들이 주위에 있다면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나는 언제나 MP3 플레이 가능한 환경에 놓이게 될 수 있다. 학교에 있으면 학교 데스크탑을 사용하면 되고, 걸어다닐때는 휴대폰을, 운전 중일때는 카오디오를 사용하면 된다. 집에서 컴퓨터를 사용할때는 각각의 노트북에서 Winamp라도 켜면 되고, 도서관에서 공부할때는 마침 사용중인 전자사전에서 플레이하면 된다. 언제나 플레이 가능한 환경에 이미 놓여있으므로 내가 구입하는 MP3 플레이어가 순전히 “MP3를 플레이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이라면 구입하지 않는 것이 옳은 판단이다. 결국 그러면 내가 구입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조금 더 생각해본 결과, 간단하게 누구나 알 수 있는 말로는 Mobility를 구입하는 것이고, 조금 더 이쪽 영역의 말을 쓴다면 Seamlessness가 아닐까? 다른 환경에서 다른 음악들을 플레이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내가 듣던 그 음악과 내가 보던 그 인터페이스를 즐기고 싶은 것이다. Resume 기능도 지원된다면 금상첨화다. 언제나 내 귀에 음악을 매달고 다니고 내가 원하는 바로 그 때 정지 시키고 다시 내가 원하는 그 때 다시 플레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개인이 존재하는 3차원 상의 X,Y,Z 좌표가 점점 더 무의미한 변수가 되고 있는 것이 이러한 예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10년~20년 전에 등장한 MP3 플레이라는 기능이 이제 이렇게 Seamlessly 지원되는 것을 보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근미래의 Internet 접속 이후에는 어떤 기능들이 뒤를 이을지 궁금해진다. 내가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점점점 더 늘어만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