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b 단조 미사 –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성 토마스 합장단

Classical Music을 즐겨듣지만! 누군가 나에게 “그 중에서도 어떤 음악을 들으세요?” 물어보면 “모짜르트 이후부터 라흐마니노프 이전까지요.” 라고 말을 한다. 사실 뭐 대부분이 커버되는 범위지만, 중고등학교때 배운 서양 고전음악의 시대 중 빠져야 할 부분이 하나 있는데 바로 바로크 음악이다. 바흐, 하이든, 헨델로 대표되는 이들 시대의 음악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울타리로 둘러싸인 느낌이었다. 집에 있는 음반에도 거의 손이 안간채 방치되기를 몇년. 그런데 오늘 아무래도 그 편견을 깨버려야겠다.

자주가는 예술의 전당에서의 클래식 콘서트이지만, 이번 만큼의 중량감을 느끼는 콘서트는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가는 콘서트들이 다 무료로 티켓을 구한 공연들이기에 -_-; 이러한 소위 티켓 파워가 있는 공연들은 초대권을 구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아무튼 어차저차 어렵게 구한 티켓이니만큼, 충분히 즐기고 오기위해서 사전 예습이 필수! 가디너가 지휘한 음반으로 열심히 공부도 하고 귀에 충분히 숙달되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공연자체에 대해서는 기립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래도 나름 후기를 써야겠다고 작심한 만큼 좋은 점과 나쁜점 몇 가지를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 따뜻한 악기소리 – 어찌 이렇게 고급스럽고 경건한 악기소리가 날 수 있을까? 고가의 악기를 쓰는 것도 그렇고 세계 일류 수준의 연주자들이라 미세한 실수도 찾기 힘들었다.

2. 관람태도 – 주최측에서도 악장간 박수를 엄금하고, 또 음악이 끝난후 바로 터지는 박수에 대해서 주의를 충분히 주었는지, 나쁜 타이밍에 터지는 박수가 하나도 없었을 뿐더러 관람태도도 매우 좋았다. 초대권을 많이 뿌리지는 않은 모양이고, 관람 연령층이 꽤나 높아서 정숙한 공연 분위기가 좋았다.

1. 끝으로 갈수록 지치는 합창단 – 소년 합창단이니만큼 2시간이 넘는 공연시간 내내 끝까지 집중력을 유기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무래도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목소리의 힘이 떨어지고 앙상블이 흐트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지휘자도 끝에는 거의 합창단만 지휘하는 모습.

2. 조금 더 친절한 자막 – 물론 음악이 주가 되는 공연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조금 더 자세한 자막을 위에 틀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두운 공연장 안에서 프로그램 북을 보면서 가사를 찾기도 힘들었다. (이내 포기했다)

어러가지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정말 인상적인 공연인 것은 틀림없었다. 바로크 음악을 듣게 된 계기가 될 것도 의미있지만, 합창단이 이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도 새삼스래 재발견하게 되었고 말이다. 합창이라고는 매번 베토벤 9번만 듣다가, 이러한 목소리가 차곡차곡 겹쳐서 쌓이는 아름다움은 거의 처음 느껴본 것이 아닌가 한다! 아무튼 이러한 문화생활은 언제나 재충전의 계기가 된다. 또 열심히 다음 공연 사냥을 위해 떠나야지 – _-;

불면증

눈을 감아도 온통 푸른 빛으로 가득찬다. 이쯤 되면 사실 눈을 뜨나 감으나 별로 차이가 없다. 이른 아침을 위한 이른 수면이 이렇게 방해받고 나면 당분간은 다시 잠에 빠져들 생각이 들지 않는다. 푸른 빛을 거슬러 올라가, 푸르름이 뿌옇게 서리 맺히는 창문을 지나 밤하늘을 포물선으로 날아가다보면 도착하는 곳은 몇 달전인가 오래된 아파트를 헐고 지은 최신식의 하얀색 건물이다. 대지를 꼼꼼하게 매꾼 설계와 번쩍이는 외벽을 자랑하는 이 건물은 낡은 주위 건물 사이에 유독 우뚝 서있다. 그리고 그 상반신 전체에 갑옷처럼 두른 번쩍이는 간판은 밤이 되면 그 존재가 더욱 더 부각된다. 시야를 자극하는 보색의 대비와 전혀 아까워하지 않고 내뿜는 전방위적인 빛의 분출은 아마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고 있을 것이다. 하찮은 일개 학생이 품은 소박한 내일의 계획마져 방해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 되었으니 말이다.

딱 한번 이 건물을 방문한 적이 있다. 5층 건물의 5층에 위치한 치과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서 였는데, 번쩍이는 대리석 바닥을 지나 아직 채 안내판이 붙지도 않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지하의 잡동사니를 파는 대규모의 마트, 일층의 약국, 이층의 피부관리실, 비어있는 삼, 사층을 지나 문이 열리는 오층에서 본 것은 거대한 서울대 마크, 진리는 나의 빛. 이 그려져 있는 커다란 유리문. 아직 채 개업한지 두달이 되지않아 어느 곳의 먼지도 용납되지 않은 모습의 병원은 건물의 외벽만큼 깨끗했고 탁상시계 속에까지 들러붙은 서울대 정문은 밤에 빛나는 찬란한 네온사인만큼이나 뭔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어하고 있었다.

가끔씩 찾아오는 불면증의 초기증세는 보통 새벽 2시까지 달라붙어있다. 불쾌하게 하는 것은 이 녀석이 근성은 없지만 부지런하다는 것인데, 즉 2시라는 비교적(?) 이른시간에 사라지지만, 일주일간은 꼬박 같이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머리 속이 제대로 정리가 안되어있어서 그런 것이다. “꿈이라는 녀석은 현실의 위에 위치해야 부스러지지 않는다.” “현실과 노력은 같은 크기로 같은 무게로 또 같은 밀도로 꿈의 두 받침대가 되어야 안정감이 있다.” “운이라는 녀석은 별도의 상자에 넣어서 정리해야지 뒤섞어 놓으면 다른 것들이 썩어버리고 만다.” “고정관념이라는 것은 참 크고 정리하기에 좋은 박스이지만 내구성이 별로 없어서 영원한 것을 넣기에는 마땅치 않다.” 하루 동안에 보고 들은 겪은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이지만, 이것들을 너저분하게 어질러 두고는 도저히 잠이 오질 않는다. 그 중에는 버릴 것이 태반이다.

12시가 되면 네온사인의 외침도 뚝 그친다. 감은 눈 속에서 더 이상 푸른 빛이 느껴지지 않으면 나는 지금이 정확히 열두시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전까지 힘겹게 밖으로 또 안으로 싸우면서 지켜내려했던 나의 수면시간에 조금은 평화가 찾아왔구나 안도한다. 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정신을 차리고 마음의 정리를 다시 시작하면, 푸른 빛을 타고 온 무엇인가가 마음 속에 잔뜩 잡동사니들을 남기고 갔음을 깨닫고 부지런히 정리를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그것들은 모두 버려져야 할 것이다. 이것들을 모두 분리수거 한 이후에 나는 잠들 수 있다. 새벽 2시 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