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꼬마였던 시절부터 어머니는 늘 아버지의 돈 씀씀이에 대해서 칭찬하셨다. “너희 아버지 젊었을 때 용돈으로 쓰라고 돈 3만원을 지갑에 넣어 주고, 몇 주가 지나서 다 썼겠거니 하고 다시 채워 넣어 주려고 지갑을 열어 보면 그 돈이 그대로 있어. 어떻게 저렇게 돈을 안 쓰고 살까?”
내가 정말로 어렸을 시절 부터, 아버지는 주말이면 가기 싫어하는 아들들을 데리고 운동이 필요하다면서 관악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셨다. 그리고 가는 길, 버스를 탈 때마다 조그만 가죽으로 된 동전 지갑에서 토큰이나 동전을 꺼내어 나누어 주셨다. 관악산을 올라가는 초입에는 각종 솜사탕이나 번데기 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많았고, 나는 친구들과 동네에서 노는 것을 더 좋아했는데, 억지로 주말을 뺏긴 것에 대한 보상 심리로 군침 도는 그런 먹거리들을 내심 아버지가 사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단 한번도 아버지는 그 지갑을 꺼내어 먹을 것을 사주는 일이 없었다. 그 까만 색 동전 지갑은 오직 버스를 탈 때만 볼 수 있는, 아쉬움의 대상인 물건이었다.
얼마 전, 아버지와 마지막 이별을 하는 날, 고인의 모든 물건을 태우는 것이라고 하여 아버지의 모든 물건들은 담아 가져온 가방을 불 길에 뒤집어 털자, 옷가지와 함께 그 까만 색 동전 지갑이 색이 바랜 낡디 낡은 모습으로 푹 불 속으로 떨어지며 순식간에 오그라들었다. 동시에 내 찰랑이던 마음에도 20년 전, 그 동전 지갑과 함께 시작해 쌓여 왔던 아버지와의 추억이 거대한 무게로 떨어졌다. 추억과 회한, 상심 등이 범벅이 된 그 것 때문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이 났다. 어린 마음에 그렇게 아버지가 꺼내 주길 바라던 그 지갑을 이런 식으로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아버지는 왜 20년 동안이나 그 꼬질꼬질하게 낡은 지갑을 안 버리고 계속 쓰신 거야!” 하면서.
추억은 세월의 길이 만큼 높게 곱게 퇴적되어 현실을 지탱해 주는 받침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축들이 꾸준히 퇴적되는 가운데 그 한 축이 더 이상 쌓아 올려 지지 않으니 조금만 주의하지 않으면 덜컹 거리는 마음이 그 무엇인가의 부재를 뼈저리게 아프고 후회하게 만든다. 주위 사람들은 그 하나의 쓸모 없는 받침대를 버리고 나머지 것들로만 새롭게 인생을 꾸려 나가라고 충고하지만, 쓸모 없다고 여겨 지는 그 것이 나와 아버지가 세상에서 만든, 또 남은 유일한 공동의 작품이기 때문에 쉽사리 그러하지는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