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적할때 듣는 클래식 음악 선

  다른 것으로 명망을 얻은 유명한 사람들은 자기가 선정한 클래식 음악들을 묶어서 음반을 만들어서 팔기도 하던데, 그걸 보고서는 혹시나 숨겨져 있는 보석같은 곡을 만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두근두근 트랙을 살펴보는 일이 있다. 하지만 이건 뭐. 중/고등학교 음악시간 교과서 음악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상업성을 위해서 대중적인 음악을 넣어야 한다지만, 네이버“듣기 좋은 클래식” 만 검색해도 훨씬 더 전문적인 리스트가 나오는 마당에 이런 걸로 돈벌어야 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냥 내가 듣는 음악들 중에 골라서 끄적끄적 적어본다. 또 음악의 바다를 헤엄치다 부표를 하나 띄워놓는 그런 의미도 있다.

Ravel :  Piano concerto in G major, 2nd. Adagio ass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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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갈한 곡이 있을까? 현란하지 않은, 철저히 뒤에 숨겨져 있는 오케스트라와 단조로운 반복의 피아노 선율은 아주 단순한 모노톤의 구조지만 대단한 중독성으로 다가온다. 마치 어두운 무대 뒤에 감춰진 오케스트라와 홀로 춤추는 발레리나 같은 느낌의 곡. 최근에 읽은 ‘롤리타’라는 소설이 자꾸 떠오른다.

Ravel : Pavane pour une infante defunte, O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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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 음악중에 자주 듣는 것 하나. 참 이 아저씨 음악은 단순명료해서 좋다. 화려하지도 않고 수식이 많이 붙지도 않은 정갈하고 순수함이 흘러나온다. 어떻게 이름도 이렇게 잘 짓는지. 진짜 로멘티스트 였을 듯.

Saint-Saens : Symphony No.3 In C.Minor “Or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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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다보니, 요즘은 프랑스 음악에 빠져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네. 드뷔시 “거울”도 요즘 한참 좋게 듣고 있는데 말이다. 아무튼 생상은 간단한 소품 몇개만 듣고 나에게는 잊혀진 작곡가였는데, 교향곡을 들어보니 만만치 않은 내공의 소유자.

Richard wagner : Tristan und Isolde “Isoldes Liebest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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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잔인하게도 탐미적인 사랑의 음악이 또 있을지 싶다. 밤에 가만히 귀기울여 듣다보면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카라얀 지휘의 베를린필 연주로 골드 시리즈 음반에서 뽑아냈는데 음질도 좋고 도대체 흠 잡을데가 한군데도 없다. 경탄!

창조를 원해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무엇인가 나에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재능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완전하게 문제를 파악한 후에도 몇 시간씩 끙끙대면서 고민해도 해답이 나오지 않는 공부나, 매일매일 똑같은 악보를 허공에 복사하고 있을 뿐 전혀 나의 소리가 나오지 않는 피아노 연습이나, 포토샵 등이 두려워서 무엇인가 그릴 생각도 못하고 놀고 있는 타블렛이나. 한숨 소리가 나올만큼 수동적인 모습의 꺼풀을 벗겨보고 싶은 생각이 들고 있다.

답답해서 중앙도서관에서 "학문의 즐거움" 이라는 책을 설 연휴에 빌려보았다. 여러 좋으신 말씀들이 많이 쓰여져 있지만, 저자가 수학이라는 학문에서 새로운 창조적인! 발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 그럴만한 기반이 성장 과정에서 갖추어 있어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결국 글쓴이가 한 것이라고는 진득하게 붙어서 풀릴때까지 기다린 것 뿐이라는 그 자신의 겸손한 설명에, "이 방법도 아니야ㅠ _ㅠ" 하면서 책을 2/3쯤 읽을때쯤 덮어버리고 말았다. 중고등학교때 수도 없이 들었던 "기초를 튼튼히 하세요"라는 말과 다름 없음이었다.

곰곰히 내가 정말로 원하는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그러다가 알아낸 사실은 이 창조라는 말을 붙인 근사한 것이 결국 나를 세상에 표현하고 싶어하는 욕구라는 것이다. 수백년 전의 방식으로 그 해 재배된 포도 중 최상급만을 골라 와인을 한정 생산하여 자랑스럽게 자신의 성을 딴 라벨을 붙이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물론 매우 고가의!) 무엇인가 근사한 것을 내 이름을 걸고 만들어보고 싶은 욕구인 것이다. 나의 색을 세상 어딘가에 색칠하고 싶다.

섣부른 열망은 늘 실수를 낳고 무엇인가 망쳐버리기 쉽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고작해야 교복을 벗고, 메신져 대화명을 바꾸고, 안경을 바꾸는 수준의 자기 표현이라기 보다는 더 근사한 창조적인 자기 표현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기적이게도 더 적은 노력으로, 그리고 더 빠르게 말이다. 모짜르트는 살리에리뿐 아니라 200년도 더 지난후의 나에게도 질투심을 느끼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