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어떤 단어가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머리 속 어딘가에 달라붙어서 다른 생각이 없이 가만히 음악을 듣거나, 누워서 잠들기 직전이면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근 몇 년 간은 쭉, 변화나, 혁신이나, 전진이나 이런 자기 발전적인 키워드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최근 몇 달간은 소통이라는 키워드가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나는 다른 사람과 얼마나 동일시 되어서 생각할 수 있느냐?”라는 문제 입니다. 수많은 속담이나, 어른들로 부터, 혹은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들은 말, 어릴 때 부터 읽은 위인전, 소년 만화까지 다양하게 이러한 주제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역지사지”라던가 “다른 사람입장에서 생각하라” 라던가, 보통 “이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물리적이든 혹은 우리가 모르는 정신 세계가 4차원으로 펼쳐져 있던,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과 만나서 하는 일은 그 사람의 이미지를 내 정신 속에 구축하는 것이 첫 번째 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해서 그 이미지에 살을 덧대고, 또 잘못된 부분은 깎아 내고 해서 그 사람과 가장 비슷하게 보이는 상을 조각해 놓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이미지에 그 동안의 경험을 축적해서 생명을 불어 넣습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이 실제의 그/그녀를 본 딴 이 인형에 시뮬레이션을 시켜보고, OK 사인이 떨어지면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지요. 물론 이 과정은 아주 빠르게 일어나서 의식할 수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만요.

 중요한 것은 이 인형 같은 기계를 얼마나 상대방의 실제 모습과 똑같이 동작하도록 마음속에 만들어 놓느냐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오류가 없는 소통의 방법, 혹은 기술을 익히는 것이 커다란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통”이라는 단어가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 입니다.

 이러한 고민도 몇 가지 한계에 부딪히는데 그 중 하나는 이런 의사소통이 결코 완벽할 수 없다, 100%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이는 자명한 일이지만, 머리 속에서 “소통”이라는 문제를 생각할 때는 어떻게 하면 100%에 근접할 수 있는지를 주로 생각합니다. 아마 끝나지 않는 고민이겠지요.

 두 번째로는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젊은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일반적으로 세상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항상 우리가 변하거나, 우리가 옮겨가는 것이 해결책입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변화를 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문제점에 부딪힐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카테고리 이름을 소개에서 소개/화두로 변경했습니다. 요즘 주로 하고 있는 고민거리들을 2음절의 단어로 소개하는 카테고리이며, 물론 명쾌한 해결책 같은 것은 적을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 고민거리 들이니까요. 이 사람은 요즘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는 ‘소개’에 한정될 뿐입니다.)

술자리에도 기승전결이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서는 필수적으로 어떤 접촉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문자나 전화로 안부를 주고 받는다던가, 싸이월드나 블로그를 방문한다거나, 식사나 차를 같이 한다던가, 노골적인 이름의 Membership Training을 떠난다던가 하는 등의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아마 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또 효과적인 방법 하나가 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인 듯 하다. 역시나 취기가 올라오면 평소에는 하지 못할 말을 해버리는 대담성도 발휘할 수 있고, 적절한 스킨쉽(?)도 동반할 수 있고 말이다. 물론 너무 많이 마셔서 기억이 사라져버린다거나 상대방에게 나쁜 기억만을 남겨주는 부작용을 제외한다면.

 매번 습관처럼 술을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어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몇 가지 지켜야 할 순서와 원칙을 가지고 술을 마시는 편인데, 그 덕분인지 술 때문에 곤란한 처지가 된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물론 작정하고 많이 마시려고 만났던 모임이나, 혹은 불가항력으로 누군가에 의해서 많이 마시게 되거나 하는 일은 제외한다면 말이다. 사실, 내가 작정하고 많이 마시려고 친구를 불러내도 결국 나는 멀쩡한데 친구가 인사불성이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각설하고, 몇 가지 내가 술을 마셔야 할 때마다 생각하는 것들을 소개해본다.

 일단, 아주 다수의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것은 친구를 만드는 데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은 것 같다. 술을 마실 때야 떠들 석한 분위기와 사람들 때문에 굉장히 소속감을 강하게 느끼고 그래서 더 행복하고 기분 좋게 술을 마실 수 있지만, 뭐 결론적으로 딱히 남는 것은 없다. 흔히 접하게 되는 개강총회나, 동창회나, MT등의 대규모 술판(?)에서는 일단 이리 저리 튀는 화제 때문에 한 사람에 대해서 깊은 대화를 하기 힘이 들고, 또 술을 마시는 속도도 내 스스로 컨트롤 하기 힘들다. 따라서 나는 이런 술자리는 방어적인 자세로 흐름에 따라가면서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친한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 또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는 절대 술자리를 키워서 구성하지 않는다. 소위 이 술자리를 구성하는 단계를 ‘기’라고 칭한다. 내 스스로 주최자가 되는 경우에는 많아야 4명, 주로 2~3명 정도만 모여서 단촐 하게 이야기를 하기를 즐기는데, 이 경우 주로 만나는 목적이 있게 마련이다. 누가 인생의 쓴맛을 봤다던가, 축하해야 할 일이 있다던가 하는 소위 안주거리 화제를 들고 만나고, 이럴 때는 그 주제에 관해서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이야기 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깊게까지 들을 수 있어서 좋다. 매일 수박 겉만 핥고 있어서 무엇을 할 건가. 쪼개서 안을 먹는 데 의미가 있는 거지. 물론 대규모의 술자리가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니다. 일단 인간관계의 시작은 이렇게 하되 그 중에서 소위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찾는 단계라는 것이다.

 또한 이야기를 꺼낼 때, 나와 상대방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자 한다. 사실 이 부분이 잘 안 되는 경향이 있긴 한데, 만나서 TV 드라마/영화이야기 혹은 최근의 경험 이야기는 발단으로 삼고 여기서부터 개인적인 이야기로 점차 깊게 들어가도록 유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 아무리 오래, 소주를 박스로 쌓아놓고 마신다 하더라도, 매일매일 하는 이야기가 연예인 이야기, 드라마 이야기 뿐이라면 정말 의미 없음이다. 이런 용도로 신변잡기 대화로 쓸 수 있는 편리한 게 있지 않은가? 왜 네이트온/MSN이라고. “무슨 일이든 그 자리에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라”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술자리에서의 최선은 마음을 깊숙이 열고 하는 이야기이지, 얄팍한 감상은 아닌 것 같다. 차를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와 술을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가 다른 것은 이런 연유다. 아무튼 이런 Human-oriented 된 방식의 접근 방법이 ‘승’이 되겠다.

다음으로는 적절한 분위기 전환 타이밍을 잡는 것이 ‘전’이 되겠다. 아주 친한 친구들 사이에 만날 때는 이 단계가 무시되기도 하는데, 어느 정도는 상대방과 나를 파악하고 서로를 조율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일단 처음의 술자리에서 상대가 불편해 하는 것은 무엇인지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에 따라서 2차, 3차를 구성하거나 분위기 전환시키는 것이다. 말없이 많이 마셔주는 것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오늘은 잔뜩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혹은 이 집의 어디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인지, 술안주가 맛이 없다던 지, 혹은 돈이 없어서 저렴한 술집으로 옮기고 싶어 하는 건지 등등. 간단히 술만 먹는 술자리라도 신경 써야 할 것이 꽤나 있음은 내가 정신을 차려야 되는 이유 중에 하나다.

 잘못된 방법으로, 상대가 불편해 하는 것을 눈치 못 차린 상태로 끼리끼리 즐기는 상태가 된다거나 하면 그 상대와는 다음에 만날 기회를 잡는 것이 꽤나 어렵게 되는 것은 아마 경험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눈치가 보이거나/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그러한 기억, 인간 관계의 기억은 특별히? 오래간다.

 마지막으로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오는 길이나, 혹은 집에 들어와서도 꼭 상대방에게 문자나, 혹은 전화로 오늘의 간략한 감상을 말해주는 센스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술을 같이 마셨으니 상대방의 안전한 귀가까지는 확인하는 것이 책임이라고 할 수 있겠고, 또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를 접어야 하는 아쉬움을 표현하면서 다음 만날 약속을 쉽게 또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뒤집어서 나의 안전한 귀가를 다른 이에게 확인시켜주는 목적도 있을 수 있겠다. 나름대로 이것을 술자리의 ‘결’이라고 칭한다.

 술은 혼자 마시려고 생겨난 것은 아닐 것이고, 또 술을 혼자서 마시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술을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은, 평소에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한꺼풀 벗겨낸 후에 마주할 수 있기 때문에, 또 그 즐거움을 알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배려나 조정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생각한 원칙을 지키면서 마시는 자세를 가다듬어가는 과정에 있는 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