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

 얼마전에 메신져에서 대화를 하다가, 내가 한 말인데도 꽤나 마음에 드는 말을 내뱉었다 -_-; “항상 출발지에서만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서만 버스에서 내리면 그게 무슨 재미에요?”

 중학교때의 남자아이들은 다이어리를 사서 예쁘게 꾸미는 여자아이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카렌다에 반짝이는 스티커를 붙이고, 형형색색의 팬으로 힘겹게 익힌 저마다의 마음에 드는 글씨체로 무엇인가를 적어 놓는 모습은, 우리들에게는 그저 나가 뛰어놀지 않으니 책상에 앉아있기 위해 시간을 죽이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지내면서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에 대해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웃곤 했는데, 겨우 이제서야 그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하는 후회를 조금은 느끼면서. 그 아이들은 다이어리를 꾸미는게 아니라 그들의 삶을 꾸미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여자아이들이 조금 더 잘 꾸민다는 것은 꼭 외모에만 통용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와 내가 아닌 것으로 세상을 이분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3차원의 세계이고 또 하나는 더 고차원의 세계다. 3차원의 세계는 간단하다. 내 피부를 경계로 안쪽의 따뜻한 부분은 나의 것이고 그 위를 스치는 바람은 나의 것이 아닌 ‘타’이다. 이 경계는 숙명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며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따라서 무엇인가 노력을 해서 확장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두번째 고차원의 세계는 더 어렵다. 이 경계는 직접적으로 볼 수도 없고, 직접적으로 들을 수도 없다. 하지만 항상 간접적으로 볼 수 있고, 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다. 이 범위는 살면서 전 세계를 덮을 수도 있고 아니면 고작해야 방 한칸의 넓이도 다 채우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이 범위를 “권력”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는 이 범위의 극히 천박한 일부분이고 실제로는 훨씬 더 큰 범위의 복잡한 개념이 섞여 있는 것 이겠다. 영향력이라는 분석적인 말도 있고,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살아있는 나”라는 낭만주의자들이 좋아하게 생긴 것 같은 표현도 있다.

 인생이 지루하다는 말에 대칭적인 의미의 인생을 재미있게 산다는 말이 꼭 다양한 이벤트가 있고, 영화와 같은 일이 벌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재미있게 산다는 말은 사람에 따라 너무나도 다른 표현이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쉽게 표현하면 어제와 비슷한 오늘을 사는 사람들과 어제와 많이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로 나눌 수 있겠다. 

 심한 비약일 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어제와 비슷한 삶을 사는 사람은 내면을 갈고 닦는 성향이 있다. 공부를 할때 가장 좋은 방법은 이를 습관화 시키는 것이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정한 량의 공부를 하면 가장 좋은 효율을 내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사실 어제와 오늘이 같은데 달라질 수 있는 것은 내 내면의 무엇인가 밖에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같다’는 것의 의미는 더 자세히 설명될 필요가 있다) 무엇인가 열심히 해서 자기 발전을 이룬 사람들은 다들 이러한 자기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으며, 내 주위의 사람들도 그러한 경향의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 20대 후반에 접어들 때까지 주위의 사람들이 계속 혼자 무엇인가를 하려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초,중,고등학교 12년동안, 또 대학시절 공부를 해서 이 정도까지 왔으면 지금까지 혼자서 하는 것은 지겹게 했잖아요. 이제 다 같이 하는 것을 해봐요.” 

 반면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사는 사람은 항상 외향적이고, SKT의 CF처럼 사람을 향한다. 역시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목소리가 크고, 몸짓이 크다. 항상 무엇인가 약속을 잡고, 핸드폰은 수시로 울려댄다. 내부의 확장보다는, 외부 사회라는 영역의 잠식이다. 물론 꼭 사람과의 만남이 그들을 바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늘 새로운 것을 해보고, 늘 새로운 곳에 가보고, 또 ‘일회성’일지라도 철저히 계산된 것이지 그들에게 ‘즉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초등학교때의 다이어리는 조금 더 복잡한 문명의 이기들로 발전하기도 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삶을 동경하는데, 그들이 실제적으로 누리는 것보다 큰 영향을 세상에 미치고, 또 큰 영향을 받고 살고자 함은 영원히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의 한 부분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명확히 그 정도는 차이는 존재 한다.

 빙빙 돌아왔지만, 전자는 고차원 경계를 안쪽으로 확장시키는 사람이고 후자는 고차원 경계를 외부로 확장시키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에게, 또한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두번째, 세상을 향해 본인을 던지려는 시도와 노력이다. 사회적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인생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이다. 수 십년전에 그렇게 다이어리에 반짝거리는 별표 스티커를 붙였듯이 바로 이번주 주말이라는 당신의 인생, 크리스마스 트리를 반짝거리는 무엇인가를 장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트리를 반짝거리게 해줄 별은 당신 주위의 사람들이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가는건데 살짝 더 깊은 이야기는 나중에 써야지- _- 처음에 쓰고 싶었던 이야기와는 너무 달라졌다; 결론은 주말에 땅바닥 긁지말고 나가 놀아라인가…;; )

추석의 근황

1. 운전연습

 누이인 스쿠터양의 뒤를 이어서 오빠인 4도어 세단을 영입했다. 이 놈을 길들이기 위해서, 사실 본인이 길들이는 건지 길들임을 당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주말 동안 빨빨거리고 돌아다녔다. 스쿠터로 단련된 탓에 서툴지만, 긴장됨은 별로 없는 연습이었다. 다만, 동승자들은 식은땀이 흘렀다고.. 덧붙이면, 우리집 차고로 주차를 시킬 수 있는 스킬을 가진 가족이 아무도 없어서 (입구가 매우 협소하다) 오빠는 차고 밖 골목 어딘가에 집나간채로 서있다. 차고는 여동생인 스쿠터양이 마치 40평 아파트에 혼자 사는 것 같은 모습으로 파킹 중이라고.

2. 조조영화

 아침 혼자 즐기는 조조영화 관람을 이어갔다. “본 얼티메이텀”이 재미있다길래 볼까했는데,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사랑”을 보게 되었다. 본인은 남자지만 곽경택 감독 영화를 보기는 너무 땀 냄새가 나서 좀 거북해하는 타입이라 껄끄러운 면도 있고, 지금까지 만든 영화에서 흥행 요소 몇개 빼서 섞어 놓은 듯한 시나리오도 있고, 국어책 좀 읽어주시는 박시연도 좀 그렇고 해서 썩 재미는 없었지만, 3000원에 아메리카노 한잔 씩 공짜로 주는데, 나쁘지 않았다. 주진모는 멋지다. 지하주차장 경비아저씨는 휴가 가셨는지 안보이더라.

3. 연구실

 프로젝트 보고서 완료 기간이 얼마 안남아서 추석 전날인데도 연구실와서 문서작업 중이다. 문서를 먼저 써야하는지, 코딩을 먼저해야 하는지, 일단 책부터 봐야하는 건지 나조차 헷갈려서 그냥 하나 하다가 지겨워지면 딴거하는 무계획 싸이클을 돌 예정이다. 연구실에 아무도 없다. 아니, 이 건물에 과연 몇명이나 있을까. 참고로 이 건물 들어와서 4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한 사람도 못봤다. 레지던트 이블의 첫 장면 처럼 모두 좀비가 된 도시에 혼자 들어와 있는 듯한 오싹한 기분이 든다. 3탄이 미국에서 개봉했다던데..

4. 멘토링

 느닷없게 외사촌 여동생의 멘토역할을 맡게 되버린 것 같다. 이제 고2인데 8살 많은 아저씨로는 도대체 생각하는 것을 따라 갈 수가 없다. 내신이든 수능이든 열심히 하라는 말과 공부하는 요령밖에 가르쳐 줄 수가 없는데, 외삼촌이나 어머니는 카운셀러가 되길 원하시는 것 같다. 아~ 요즘 여고생은 알수가 없어요~ 조금만 더 크면 다 이해하게 될지니 굳이 지금 토달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