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한 학년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했던 일 중 하나는 새로운 일기장을 구입했던 것이었다. 하드커버에 조그만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은 비록 학년이 끝날 때까지 한번도 마지막 장까지 다 채워 넣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일기장을 만나는 기쁨과, 일기를 한 장 씩 쓰고 난 후 새로운 페이지를 넘겼을 때의 싱그러운 종이 냄새가 좋아서 매년이 시작될 때마다 새롭게 하나씩 구입하게 되는 것이었다. 다음 페이지로 넘겼을 때 전 장에서 꾹꾹 눌러썼던 글자의 흔적이 남는 것이 싫어서 책받침을 대고 살살 볼펜으로 적었던 기억이 나기도 한다. 결국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고 어제의 흔적을 잊기 위해서 그렇게 꾸준히 종이를 한장한장 넘겼었나 보다.
이 블로그의 출발은 바로 그 시절의 일기장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새로운 한 권을 이제 막 구입해서 이 글로서 그 첫 장을 매 꾸는 의미인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와 다른 점은 그 시절의 새로움이라는 것은 새로운 일기장을 구입함으로써 맛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일기장의 외형과는 상관없이 내가 판단하고 스스로를 움직여서 나의 삶과 밀접한 변화가 일어 났을 때에 스스로 새로운 일기를 써내려 갈 수 있는 것이다.
확실히 인생에서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 근래에 많이 일어났고, 그런 사건의 터널을 이제야 겨우 뚫고 나와서 다시 앞을 향해서 달릴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 그 동안 잠자고 있었던 블로그를 깨운 계기가 되었다. 왜, 역사학자들이 좋아하는 것처럼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을 몇기몇기 나누는 버릇을 내 인생에 적용하면, 아마 지금은 그 흐름 사이를 ‘기’로 나눌 수 있는 최고의 지점이 아닌가 싶다.
우선 시간적으로 26세의 생일을 넘어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꿈을 쫓는 20대의 전반이 아니라 현실적인 20대 후반으로 탈바꿈하기를 강요당하는 시기가 된 것 이다. 그리고 대학의 졸업, 그리고 대학원의 입학. 대학 4년간의 모든 시험을 끝내는 날 대학원의 합격을 통보 받았다. 이러한 한치의 틈도 없는 소속감의 연속은 나름 웃으면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아픈 기억.
많은 익숙한 것에서 떠나서 새롭게 적응해야 할 것들이 펼쳐진 시점에서 이제부터 나는 또 어떠한 나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무한한 가능성과 걱정이 있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역시나 또 한번,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고 마주보며 웃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