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Qualcomm IT TOUR 2006 참가기 [1]

  평생동안 금전상의 이득으로 환산될 수 있는 가장 큰 행운이라면 고작해야, 500원짜리 복권 당첨에 지나지 않던 내가 2006년 여름에는 토탈 500만원이 넘는 불로소득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행운에 겨운 인생으로 탈바꿈 했었다. 하나는 일본 무료 탐방이고 또 하나는 미국 무료 탐방이었는데, 이제는 잊혀져가는 이 사건들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서 일년가랑 블로깅의 절반가량을 문서화 작업(?)으로 투자하기로 마음먹고 시작해서 이제 일본에 대한 정리 작업은 대충 마무리 지은 것 같다. 이제는 Qualcomm IT TOUR 2007의 참가자들도 모집하는 중이고 해서 서둘러 머리 속을 정리해야 할 것 같아서 또 새로운 다음 기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조금 적어볼까 해서 시리즈를 스타트 해본다. (근래에 IT TOUR로 검색해서 이 블로그를 찾아오는 사람이 꽤나 많이 눈에 띈다)

  퀄컴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인지하던 안하던 아주 밀접하게 관련된 회사이다. 당장 핸드폰을 쪼개보면 퀄컴에서 생산된 칩이 반드시 들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높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회사인데 이는 대부분이 언론에서 접한 “우리나라에서 로열티를 수천억원씩 벌어가는 회사”라는 기사를 읽고 가진 생각이다. 돈을 많이 벌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또 그 기술을 이용해서 우리가 세계에서 벌어들이는 돈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대중에게 민감한 돈 문제는 접어두고, 이렇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고 우리나라 이공계생들이게 퀄컴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고 약간이나마 이익을 환원하고자 생긴 행사가 매년 개최되는 이 Qualcomm IT TOUR이다.

  운이 좋게도 산업기능요원시절 퀄컴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일을 할 수 있었고, 후에 복학을 해서 학교 게시판의 이 프로그램에 대한 모집공고가 떳을때, 비록 학점, 영어 공모전 용 스펙으로는 영 아닌 상태였지만, 이 경력하나로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쁜 학기중에도 불구하고 한번 도전해보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본인 인생 최초로 공모전에 말이다. 뭐, 결과는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운이 좋게 합격.

  합격과정이니, 선발은 어떻게하며, 절차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혹은 미국을 가기 위한 준비과정 같은 것은 이 글을 쓰는 취지에 맞지 않으므로 혹시 궁금하다면 개인적으로 문의하시고, (글 중간중간에도 조금씩 언급되겠다) 출발 당일로 시간을 옮겨보도록 한다.

  간단한 프로그램의 소개라면, 약 일주일정도의 기간으로 Qualcomm의 본사가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디에고를 중심으로 로스엔젤레스까지 돌아보는 코스가 되겠다. 견학과 관광이 적당히 섞여있는 프로그램으로 지금까지는 매년 틀은 비슷했지만, 약간씩은 변동이 있었다.

  일본에서 귀국한지 6일째의 일요일에 다시 미국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사당역에서 출발하는 인천공항행 리무진 버스를 타고, 의외로 긴장감 없는 출발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한달의 타지생활에 비해서 일주일은 너무 짧기 때문인 것인지.

서해바다를 건너 인천국제공항으로 고고싱

  참가비용은 전액 퀄컴측에서 부담한다. 따라서 참가자들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용도로 쓸 돈만을 준비하면 되는데, 나의 경우는 일본에서 사용하고 남은 생활비를 달러로 환전해서 가지고 왔었다. 그래봐야 200달러가 안되는 비용. 나중에 의류를 쇼핑하면서 정말, 더 환전해서 가지고 올껄하고 후회를 했었다. 아무튼, 결론은 돈은 안들수도 있고 무한대로 들수도 있으나, 다 본인 소유의 물건을 사는데 드는 것 이라는 말.

  한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범한 여행사측에서 투어전반에 걸친 관리 통솔을 맡아주시는데 예정된 장소에서 예약서류를 받고 보딩패스를 발급받고 짐을 부치고 쇼핑을 한 후 탑승 게이트로 모이라는 말이 있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안면을 익힌 다른 참가자들, 그리고 그 전에도 알고 있던 참가자들과 함께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쇼핑을 하고 (아직 비행기도 안탓는데 쇼핑;) 그리고 게이트로 가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물론 이 프로그램 자체가 미국에 가서 둘러보고 견문을 넓힌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사실 내가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다양한 타대학을 아우르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는 것에 더 기대를 하고 있었다. 다녀와서 하는 이야기이지만 투어도중 뿐 아니라 그 전, 그 후까지 그러한 기회가 있으면 철저하게 참가하고 서로 친해지는 것이 더 즐겁게 미국에서의 이벤트를 즐기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가능하면 비행기타기 전에 많이 친해져라!

  비행기에서 푹 자라는 주최측의 배려인지, 비행기는 밤11시쯤 출발이 예정되어있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이때 발생한 영국 공항에서의 액체 폭탄 적발 사건때문에 미국행 항공기의 검색, 보안이 철저해져서 입국이 지연되는 상황이 발생, 결국 비행기에 탑승한 것은 12시가 다 된 시간으로 기억된다.  

탑승할 비행기

  대한항공의 보잉777기다. 앞쪽이 매끈하게 빠진것이 747기와 비교된다. 아마, 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고 이용하는 항공사는 항상 국적기가 될 것이다. 마일리지로 제주도 정도는 갈 수 있어 보인다. 장시간의 비행은 처음이라 다소 걱정. 버스타고 서울서 부산만가는 4시간의 여정에도 지겨워서 다리가 후들거리는 나인데, 11시간이 넘는 덜덜덜 거리는 비행기안에서는 얼마나 지겨울까? 등등 푹 잘 수 있으면 좋은데, 그도 힘들 것 같다. 만원인 비행기. 일본과 미주노선은 항상 만원이라는 말이 사실인지. 뭐, 아무튼 걱정 속에서도 탑승하게 되고, 날라가게 된다.

  타자마자, 밥도 주고, 영화도 보여주고, 소란스럽고 해서 숙면을 취하려던 계획은 무산되고, 사실 이 시간은 집에서도 잘 시간이 아니다. 지겨움에 화장실도 몇번 갔다 와주고 어떻게 하면 푹 잘 수 있을까 고민도 해보고, 창밖을 보면 태평양과 보름달이 보이지 않을까 기대만 해보기도 하고 하다가 문득 집어 쓴 헤드폰에서 들려오는 Holst의 행성 조곡 중에 주피터. 음악에 파묻혀서 비행기를 타고 우주로 날아가는 꿈을 꾸면서 잠들 수 있었다.

지도에 북아메리카 대륙 등장

   

  잠에서 일어나 지도를 보니 북미대륙이 등장해 있었다. 문명의 발달은 수십만년전에 몇세대에 걸쳐 얼어붙은 베링해협을 지나 북아메리카로 이주해 갔던 인디언 선조들이 걸었던 길을 고작 수시간만에 되집어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현지 시간으로 한 낮이라 창밖은 햇살이 가득했고, 역시 창문을 다들 가린채 식사 시간이 몇번이고 지나갔다. 이착륙시에는 창문 가리개를 항상 열어놓으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비상시에 창문으로 내다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지.

  LAX, 로스엔젤레스 국제공항에 도달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면서 착륙준비에 돌입한다. 랜딩기어를 내리고, 5, 4, 3, 2, 1. 바퀴가 땅에 닿는 것을 느끼면서 생각한다. “안녕 미국”

그러자 미국도 “안녕”해준다

  입국심사관이 머라고 물어볼까 걱정스래 고민했는데, 덩치 큰 흑인 아저씨가 아주 알기 쉬운 발음으로 “미국에는 무얼 하러 왔습니까?” 하길래 “서부지역 여행하러 왔습니다.” 간단히 대답하니 아무 말 안하고 통과시켜준다. 굳이 “퀄컴사에서 초청해서 일주일간 샌디에고에 있는 본사와 각종 여행지를 둘러볼 예정입니다.” 라고 대답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20대 여성인 경우에는 까다롭게 심사하는 듯 보이는데, 원정 성매매 문제 때문에 그렇다고 알고 있었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군중을 향해서 손도 흔들고, 왠지 모를 도너츠 냄새를 맡으면서 공항을 빠져나가니 이미 밖은 오후가 늦은 시각. 서둘러 샌디에고에 있는 숙소로 향해야 했다. 아! 그 전에 식사를 해야지. 이번 투어기간 동안 우리의 발이 되어줄 버스가 주차되어 있었다. 범한여행 미국지사 소속인가? 이름하여 해바라기 버스. 투어기간 내내 해바라긴지 모르고 있다가,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알았다.

안전벨트가 없는 대신 화장실이 있는 버스

  공항을 빠져나가는 버스에서 거리의 차를 보고서야 “아, 미국이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차는 별로 없고 거리의 대부분은 일본차들이 점령. 일본에가서 외제차가 많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얘네는 자국차 많이 안타나” 생각했는데 미국에서 이렇게 도요타, 혼다차를 사주니 일본에서는 다 외제차만 타도 자동차 산업이 유지 될 것 같았다. 고속도로에 들어섰을때의 넓직넓직하니 별로 땅값에 신경 안쓰고 지은 도로들, 커브는 시공하기 귀찮아서 안만들었다는 듯한 고속도로는 인상적이었다.

환영

  날짜 변경선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넘어왔으므로 하루를 뺀 날로 계산에 한국에서의 어제 저녁인 것이다. 왠지 인생이 하루 늘어난 기분이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때 하루를 더하게 되므로 손익계산은 0. 일단 변변치 않은 기내식에 다들 허기져 있음을 알아채고 통솔자이신 이사님께서 우리를 한국 식당으로 안내하셨다. 첫날 첫 식사부터 고기부페. LA는 정말 한국 사람들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한국 식당에 한국 종업원에 한국 메뉴를 가지고 서비스를 하는 곳이 영업중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입구를 통과하면 한국으로 텔레포트되서 한국에서 먹고, 출구를 나오면 다시 미국으로 텔레포트 되는 기분이랄까.

  아무튼, 허기를 고기로 달랜 일행은 앞으로 제공될 식사에 대해서도 기대하면서 버스에 올랐다. 이미 밖은 어두워져있고, 지정된 숙소에가서 숙박하는 것 이외에는 예정된 스케쥴이 없는 오늘. 하지만, 비행기에서 충분히 잤는데, 어찌 또 잘수가 있을까. 숙소는 퀄컴 해드쿼터에서 가까운 호텔로 정해져 있었다. 로비에 들어서서 룸메이트가 지정되고, 각자 카드키를 발급받고 일단 방에 짐을 두고 다시 1층의 바로 모이는 것으로 했다. 첫날부터 주류 파티!

첫날부터 병맥주는 무제한 제공

 

  병맥주를 무지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분위기 정말 좋았다 -ㅅ-)=b 사실 버드와이져나, 밀러나, 쿠어스 등의 흔히 우리가 미국 맥주라고 알고 있는 맥주도 그 본래 상표에 대한 권리는 네덜란드였던가. 유럽 나라중의 하나가 다 가지고 있다고 한다. 확인할 수 있는 사실로 화장실에 가보니 “유일한 진짜 미국 맥주는 … 하나 뿐입니다!” 라는 자국 맥주 권장 광고가 붙어있었다. 다양한 맥주를 4병정도 마시고 술이 다 떨어졌을 무렵. 오늘의 일정을 정리하고 다들 잠자리로 들었다… 지만 실제로 몇명이나 푹 잤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5기 및 이후 참가자 분들에게 권하기는 버스에서 자고 호텔에서는 밤을 새워서 놀라고 권장하고 싶다. 마지막날에 밤을 새우면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방으로 돌아왔지만, 잠은 오지 않고

  노트북을 켜보니 잡히는 무선랜. 오호라, 인터넷 Free. 잠시 웹서핑을 하고, 메신져를 들어가보니 역시 아무도 없고. 이래저래 시간을 죽여보고 피곤을 유도해봐도 잠은 오지 않았지만, 이 때는 순진하게.. 자버렸다! 침대는 체구가 큰 서양인들을 반영하듯이 엄청 크고, 욕조는 넓은대신에 얕았다. 세면도구야 치약빼고 모두 제공. 룸서비스가 왔다가면 바닥에 내려놓은 것은 모두 갈아준다고 한다. 벽에 걸려있는 것은 다시 사용할 것으로 보고 안치워준다는 말씀. 내일부터는 이제 본격적인 관광 & 견학 일정의 시작이다.

  그리고 사진은 내가 찍은 사진중에서 참가자들의 얼굴이 자세히 나오지 않은 사진만 골라서 올린다. 혹시, 본인 얼굴이 나오는걸 싫어할 분들도 있을것이고, 모자이크등은, 어찌하는지 모른다;;

[2]편에 계속

일본 체류기 – 에노시마 & 가마쿠라 편 [3]

  사실 가마쿠라를 둘러보는 것은 일본 역사나 불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매우 지루한 일이 될 수 있는데, 비슷비슷한 사찰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또 얼마나 위치상의 균일성이 없는지, 다 한번씩 돌아보는 루트를 계획하기도 힘들뿐더러, 그 거리도 자기 다리만을 믿고 돌아다니다가는 중간에 지쳐서 포기하게 되는 그런 곳이다. 따라서 여행자에게는 두가지 여행 방법이 절대적으로 권장되는데, 첫번째는 철저하게 사전에 지도를 보고 이동 경로와 둘러볼 것을 정하고 이동 수단에 대한 계획을 철저하게 세운 다음에 그대로 움직이는 것이고. 둘째는, 내가 했던 것처럼, 아무 생각없이 역에서 내린 다음에 앞으로 걸어간 후 갈림길이 나오면 사람들이 많이 가는 쪽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다수의 사람들이 보는 것은 구경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아마 가마쿠라 역에서 나와 위에서의 2번 원칙에 충실했다면, [2]편의 마지막에 나왔던 빨간색 도리이를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면서 길 양옆으로 펼쳐지는 것은 유명한 관광지와 역 사이를 이어주는 수많은 기념품 가게들이다. 전통의 차라던가, 관광객들이 꽤나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물건을 많이 파니까 재정상태 넉넉한 부르주아 관광객이라면 구입을 고려할만 하다. 물론 나의 경우는 눈으로 흝고 사진으로 찍고 지나치다보니 어느 사이엔가 통과해버렸지만 말이다.

한참을 걸어오다가 뒤돌아서 찍은 사진이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는데 대부분은 멀리서 온 관광객은 아니고 주변에서 산책 겸 나온 사람들이 많아보였다. 그렇다고 외지인이 적은 것은 아니고, 단지 비율만 적을 뿐이었다. 일본인은 꽤나 산책을 좋아하는 듯 보이는데, 이런저런 경험에서; 이렇게 잘 정비된 길과 공원들이 많아서 도움이 될 듯 하다. 회사에서도 일하는 도중에 시도때도 없이 산보를 다녀온다?!

  돌아다니면서 보는 외국인의 비율은 확실히 일본이 많다. 도쿄 지하철만 타도 쉽게 느낄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세계를 돌아다니며 배낭여행을 즐기는 서양인들의 커다란 배낭을 맨 모습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아마, “아시아에 가보자.” 마음 먹으면 자연스럽게 일본으로 향하게 되나보다. 닛코에 갔을 때는 어떤 남미 계통의 부부로 보이는 배낭여행객이 나를 일본인인줄 알고 영어로 말을 걸어온 적이 있었다. 그쪽도 영어가 능숙하지는 못한것 같았는데, “이쪽으로 가는 버스는 여기서 타는데, 반대편으로 가는 버스는 어디서 타나요?” 라는 말을 물어보길래, 길을 쭉 훑어보니까 저 건너편에 버스정류장이 보이길래 손가락으로 “저기요” 하고 가르쳐주니까 (나도 당연히 확신은 없었다. 한국인인걸;)  “아리가또” 하고 가더라.

얼굴만 교묘하게 가려졌다

  위에서 보듯, 이러한 신사나 사찰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기념품 판매점, 주로 오미쿠지라는 운세를 뽑아보는 것이나, 소원을 나무판에 적어 걸어놓을 때의 그 나무 자체를 판매하고 있다. 사실, 저런 무녀 옷을 입은 여성은 다 알바생이란다.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어떤 종교를 계승하는 집안의 몇대 째 손녀딸, 뭐 이런게 아닌 것이다.

  닛코하니까 생각났는데, 닛코에서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방금 그곳에 도착한 듯한 어떤 30대 여성분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버스정류장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손에는 일본 100배 즐기기였나 하는 일본 여행오면 다들 참고한다는 가이드북이 들려있어서, 아하, 한국분이구나 하고 쉽게 눈치챌수 있었는데. 아마 어느 버스를 타야 목적지에 가는지 엄청 헷갈려 하시는 것 같았다. 버스를 타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은 다들 좀 나이가 있으셨고, 그나마 내가 가장 젊었기에 나를 선택한건지 “Excuse me can you speak English?” 라고 물어보시길래, “아뇨, 저 일본사람아니고 한국사람이에요” 라고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동안 거의 3주를 일본어만 쓰면서 보냈더니, 한국어로 스위칭이 안되고 일본어 그대로 나와버리는 거다. 그러니 잠깐 당황하신듯, 더 명확한 발음으로 영어 할 줄 아냐고 물어보시길래, 그때서야 한국말로 대답하고 목적지까지 동행한 적이 있다. 서로간에 꽤나 반가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러한게 있지만, 뭔지는 모르겠다

 

  뭔가 가장 거대한 사찰의 하나로 보였지만, 역시 공사중으로 가려놓은 건물이 많았고, 비슷비슷한 건축물 일색이었기에 그냥 빠져나왔다. 눈으로 보는 것의 의미를 알지못하면 무의미 한 것이다. 말그대로. 아사쿠사에 갔을때도 입구의 커다란 문이 공사중이어서 전체를 가려놔서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는데, 일본이 문화제 보수가 잦은것인지, 운이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위에서의 언어간의 스위칭 이야기를 계속해보면, 일본어는 우리나라와 어순이 똑같아서 어느정도 어휘가 많이 익숙해지면 참 우리나라 말과 헷갈리는 언어다. 우리나라 말을 써야할때 자연스럽게 일어가 나오고 일어가 나와야 할때 자연스럽게 한국어가 나와서 곤란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주로 일본어를 중간쯤 배운사람들이 잘 이러는 것 같은데; 경험상.  회사에서도 일본어로 말해야 함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어가 불현듯 튀어나와서 주위사람을 벙찌게 만든적이 몇번 있었지 아마; 하지만 영어와 일본어, 한국어군은 잘 스위칭이 안된다. 일본에서 5주를 보내고 일주일도 안지나서 미국에 갔을때, 식당에서 주문을 확인 할때, 자꾸 Yes 해야할 상황에서 はい가 나오는 바람에 꽤나 애 먹었던 일이 있다. 아마 일본인 인줄 알았을 듯;

다음으로 간 역시 뭔지 모르는 곳

  첫번째 신사를 본 후, 나와서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길이 상당히 헷갈리는 데다가 역시 긴 거리를 걸어야 해서 간신히 도착한 이 시점에서 이미 체력은 바닥났고, 우리는 여기만 보고 어서 집으로 철수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사실 이곳이 오늘 만난 최고의 강적이었다. = ㅂ= 하지만 볼거리는 꽤나 많았는데, 한번 들어가보도록 하자. 아, 입장권을 구입해야 들여보내주더라. 성인 500엔이었던가.

거대한 목조 건물 등장

  후에 나라에서 보게될 동대사에는 못미치지만, 이 당시에는 한국에서는 이만한 크기의 건물을 좀처럼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꽤나 깊은 인상을 받았다. 따라서 사진도 한장 찰칵. 주위의 나무 한그루 한그루도 철저하게 관리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일본인은 세상에서 작은거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사람들인 것이다. 소심한건지 꼼꼼한건지. 아니면 우리가 지나치게 대범하던지? 이어령씨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도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게 당연한 건가보다.

다소 으시시한 불상?

  오랜만에 공개한다는 불상앞에서 몰래 사진을 찍었다. 원래는 촬영금지라고 엄격하게 써붙여 있었지만; 덕분에 흔들렸다. 다소 괴기스러운 불상. 흉칙하게 마른 석가모니? 의 모습에 뒤에는 수십개의 손이 나와있었다. 박물관에 가보니 이러한 불상도 학문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자세한 방법이 있는 듯 보였지만, 사실 잘 모르니 뭐가로 코멘트 할 것은 없다. 일본은 토속적으로 가지고 있던 신앙과 불교가 혼합되어 주종교로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흔히 볼수 있는 신사에서 손뼉 딱딱 치고 묵념하는 것이랑, 집에서 사람이 죽으면 종한번 땡, 치고 묵념하는 것이랑 다들 우리나라에는 없는 그들만의 민속신앙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불교의 경우는 다들 아는 것과 같이 우리나라에서 전파되어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우리나라가 고려시대 이후에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장려하여 유교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사상이 된 반면, 일본은 유교의 영향을 받지 않고 불교의 영향으로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

  이론적인 근거가 없는 이야기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일본의 더 개방적인 성문화가 이것에 기초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반라의 불상에서 볼수 있듯이 육체를 드러내는데 꺼리낌이 없는 불교 문화와, 온몸을 꽁꽁 싸매고 머리도 싸매고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유교의 차이에서 오늘날의 성이나 육체를 접하는 우리들의 태도가 일본과 다르게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조금의 영향은 있을 것이다. 아마.

뒷산 등반 도중 찍은 손오공?

 

  이 곳은 비싼 입장료내고 건물들만 살펴보는 곳이 아니다. 뒤쪽으로 들어가보면 산을 올라갈 수 있도록 꾸며 놨는데, 길도 좋고, 마치 모노노케히메에 나오는 이끼 가득한 바위와 햇살 비치는 숲길이 이어져서 지친 몸에도 불구하고 올라가 보기로 했다.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는 숲길은 하지만 곧 끝나버리고 지겹게도 이어지는 계단 길의 연속이었는데, 올라가다 보니 왠 손오공을 형상화해놓은 조각들이 중간중간에 있어서 손을 흔들고 있다. 마치 힘들게 올라가는 모습을 약올리는 것 같아서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는데, 저 녀석들의 유래가 궁금했다.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올라가다보면 팻말에 천국의 하이킹 코스니, 무슨 꿈의 전망대? 니 하면서 지친몸에 그나마 자극을 주는 문구들을 써놓았다. 그리고 그나마 중간에 시원한 식수를 먹을 수 있는 식수대?가 있어서 탈수는 면하고 올라가기를 계속 할 수 있었다. 전에도 이야기 했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신사 앞에 있는 꼭 우리나라의 약수터 같이 생긴 곳은 손을 씻는 곳이지 물마시는 곳이 아니다. 또 꼭 우리나라의 손씻는 것처럼 생긴 아래서 위로 솟구치면서 물이 나오는 철제 수도꼭지 비슷한 것은 손씻는 것이 아니라 식수로 입을 대고 물 마시는 곳이다. 남이 쓴 바가지로 어떻게 물을 마실수 있냐? 고 말하는 것 처럼 일본 사람들은 공중을 날아가는 물줄기를 입으로 캐치한다.  

전망대에서 한눈에 내려다본 가마쿠라

  다 올라와서 내려다본 풍경에 한눈에 펼쳐지는 가마쿠라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여기만 올라와보면 가마쿠라를 다 봤다고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1000엔쯤 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초만에 올라가서 열리는 문 사이로 펼쳐지는 아래 풍경을 기대하며 창가로 다가가는 것도 물론, 나름의 된장녀틱한 매력이 있지만, 이렇게 땀 뻘뻘 흘리면서 수십분간 등산을 하다시피해서 보게되는 쉽게 얻기 힘든 가마쿠라와 바다의 풍경도 역시 나름대로 아니 오히려 더 매력이 있는 것이다. 아마, 좋은 카메라의 소유자라면 오면서 멋진 사진들도 잔뜩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나무 숲이라던가.. 아무튼 우리는 시간이 없기에, 실은 집에 얼른 가서 씻고 밥을 먹고 쉬고 싶은 욕심에 땀만 좀 식히고 다시 내려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일본식 정원

  일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스시라던가 사무라이같은 것도 물론 꼽을 수 있겠지만, 아름다움의 측면에서는 아마 정원이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한다. 오밀조밀하게 배치된 사물로 우주를 표현한다는 그들의 정원 철학을 이번 체류에서는 자세히 볼 기회는 없었지만, 내려오면서 보게된 이 건물의 정원으로 절반 이상은 느껴보지 않았나 싶다. 세계적인 유명세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수의 외국인들이 와서 비디오를 찍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렇게 관리하려면 정말 쉽지 않을텐데, 아마 건물을 대여해주고 받는 돈으로 관리비를 충당하는 것 같다. 건물에 들어가면서 본 통제 구역쪽에는 일부 유명가문들이 가족 모임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이 건물을 빌려서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사진 쪽이 강세라면 서양사람들은 왠지 비디오를 더 선호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데, 심지어는 오다이바에 들어가는 유리카모메 전철의 젤 앞자리에 타고 있으려니(가장 앞자리는 2좌석이다) 앞에 탄 외국인 아저씨가 전철 바닥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비디오 카메라를 장치해서 오다이바에 들어가는 수십분간 계속 녹화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또 볼까 과연?

서둘러 역으로 향했다

  여름이라 해가 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있었지만, 그래도 피로한 몸때문에 귀가를 서둘렀다. 이왕 꽤나 온 길을 돌아가기는 싫고해서 근처에 있는 북가마쿠라? 역에서 전철을 타고 귀가하기로 정한 후 걸어가기 시작했다. 역시 만만치 않은 거리. 이 철로를 통과하는 열차를 타고 집이 있는 도쿄로 향하게 된다. 이 열차에서 흥미로운 것은 앞쪽과 뒷쪽은 일반 차량이라 흔히 우리가 보는 지하철이랑 다르지 않은데, 중간은 특석으로 2층구조를 가진 지정좌석의 새마을호 비슷한 수준의 깔끔한 서비스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멋도 모르고 탓다가 추가 요금을 내야하는 것 같아서 일반 칸으로 옮겨가려 했지만, 그마저도 굳게 닫힌 문으로 여의치가 않았다. 결국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후 후다닥 뛰어서 일반 차량으로 다시 탑승. 모르면 고생이다. 오사카의 여성 전용칸 탑승으로 또 이러한 경험이 한번 있었구나..

자 이제 열차를 기다리자

 

  북가마쿠라 역에 도착에서 표를 구입한 후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면서의 사진이다. 오늘의 힘든 여정을 마무리 하는 사진. 이때부터 집에 도착할때까지는, 그야말로 의자에서 죽은듯이 잠들어서 아무런 기억도 없는 상태. 한해 두해 나이가 먹고 중년의 나이가 되면 절대 해볼 수 없는 이러한 여행이기도 한데, 아쉬움 없이 돌아다녀 보는 추억을 남겨서 2006년의 여름은 꽤나 오래 특별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젊어서는 돈을 빌려서라도 여행을 가자.” 라고 느낀것은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