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UCC라는 단어에 가진 이유있는 반감

 최근의 UCC는 몇년전 Blog가 그랬던 것처럼 컴퓨터와 그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있는 공돌이 집단이나, 혹은 예비 공돌이 집단이나, 또는 예비역 공돌이 집단, 그 둘레를 깨고 나와 공중파 TV, 심지어는 초등학생 논술 대비를 위한 신문 기사 스크랩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 마치 이 단어를 모르면 시대에 뒤쳐지는 듯이 무려 9시 뉴스에서도 친절한 설명 보도를 내보내고, Daum등의 기업은 이를 사용한 프로모션 행사도 진행 중이다. 마치 돈 냄새가 날때 사람들이 그러는 것 처럼 말이다. 나는 이러한 추세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 중에 하나다. (설마 나혼자? 는 아니겠지

  물론 이유없는 반감은 아닌데, 딱히 그렇다고 “꼽아보쇼.” 하면 술술 나올수 있을 만한 것도 아니라 “그냥.” 이라는 대답으로 얼버무리기는 싫어서 머리 속에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해서 눈사람을 만들만큼 적당한 크기가 된 후에 블로그에 세워 놓는다. 뭐, 집 마당에 세워놓는 눈사람이니까 못생겼다고 무너뜨리지는 말자.

  첫번째는 UCC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데도 그 신선함을 가장 한다는 것이 마음에 안든다. 스트리밍 동영상은 상상도 못할 모뎀으로 인터넷 하던 시절 부터, 인터넷도 보급되지 않고 나우누리도 생기기 전 시절 부터, 1992년에 이우혁씨가 하이텔 공포/SF 란에 퇴마록을 연재하기 위해서 텍스트 파일을 업로드할 때 부터 UCC는 이미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재고품에 종이 포장 새로 씌워서 새로 발매된 신상품인 양(깔끔하게 UCC라고 제품명도 새로 달았다.) 각종 포탈 메인에 전시되어있는 것을 보면, 그런 상업적인 기업들의 행태가 생각나서 싫은 것이다. 유행처럼 시간에 쓸려 사라지는 용어 취급 당하기에는 UCC가 가진 본래의 뜻은 너무 무겁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공 UCC라고 감히 말할수 있다!

 

 

  두번째는 UCC 말 자체에서 풍기는 지극히 기업 중심적인 마인드이다. UCC의 User는 필시 생산 주체와 소비 주체가 같다는 뜻에서 User라는 말을 붙였을 것으로 생각은 되는데, 왠지 기업 입장에서 UCC라는 말을 쓰면 그들이 기존에 생산했던 Contents를 사용했던 User 층 을 가르키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단 말이지. UCC에 기업이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급변하는 세상에 다양화된 사용자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기업이 순수하게 만들어낸 Contents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항복선언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 아닐까? 거대한 유져의 힘에 항복 선언한 기업들은 양심적으로 이익을 가져가야지 낼름 저작권 살살 피해서 날로 먹겠다는 근래의 몇몇 사례들이 생각나서 또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다.

여기서 자유롭게 노세요. 대신 UCC는 우리꺼?

 

 세번째는 진정한 UCC에 대한 걱정이다. 99%의 도움이 되는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화려한 UCC의 딱지를 붙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첫번째 말했듯이 UCC 붐 전에는 없었던 것도 아니고 컴퓨터를 통한 사람간의 인터액션이 존재한 이래 꾸준히 뭔가를 만들어내서 지금에 와서는 브리태니커를 능가하는 위키페디아도 만들고 그랬던 것인데, 이러한 노력의 댓가가 제 3자, 기업의 이득으로 돌아가면 그들이 지속적인 창작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겠느냐 에 대한 나름대로 심각한 상상을 하면서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도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블로그 시즌 2에는 네이버 로고도 지울 수 있게 해주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것만 지우면 감쪽 같다.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나름 이래저래 씁쓸해지는 생각을 좀 해보았지만, 그래도 창작욕구에 불타고 그에 따른 자기만족에서 추진력을 얻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우리는 아침이 되면 또 재미있는 동영상을 보면서 실실 쪼개면서 MSN으로 다른 사람한테 링크도 퍼주고, 합성 사진에 상상력을 발휘해보고, 오프라인에서 써먹을 새로운 유머도 배우고 하는 것이다. 가끔 인터넷을 과소평가해서 뒷북치기도 하지만 말이다.

 즐거운 인터넷 라이프는 계속되겠지?

일본 체류기 – 오사카(간사이) 편 [6]

 드디어 37일간의 일본 체류를 마치고 한국으로 날아가는 날이 되었다. 대학생 시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할 기회가 내 인생에 있을까? 단순히 ‘체류’만이 목적이라면 비행기 탈 돈만 있으면 가능한 이야기가 되었지만(영구적 90일 무비자!) 조금이나마 일본인들의 사회에 끼어들어 생활 패턴을 그들과 같이 할 기회는 두번다시 안올지도 모르는 것이고 말이다. 앞으로도 일본 회사에 취업 한다던지 할 계획도 별로 없으니까. 비유하자면 “일본 사람들로 가득한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갓길로 스쿠터를 타고 달리며 차들 구경한 정도” 될까? 그런 의미에서 일본 체류기가 아니라 일본 체험기가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이 체류기도 끝나갈 무렵이 되고 했으니 정리 차원에서 재정적인 면을 살펴보자. 일본 여행 게시판이나 지식인을 둘러봐도 “일본 여행 다녀오는데 얼마나 들까요?”라는 질문이 수위권을 다툴정도로, 빠듯하게 알바 뛰어서 해외 여행가는 집념의 젊은이들에게는 돈 문제가 중요할 수 밖에 없다. 그럼 정답은? “쓴만큼 든다.” 지출은 스스로 돈을 내는 것이지 일본이 거대한 호텔이라서 하루밤 자는데 5000엔씩 까는 것도 아니고;

  1. 우선 여행의 계획을 세우고 (비행기|배, 호텔|민박, 체류기간)
  2. 정보를 모으고 (비행기 티켓, 민박 숙박비, 하루 사용할 교통비 식비)
  3. 얼마나 유동적인 여행을 가능하게 하느냐에 따라 여유 자금을 준비하는 것.

 나의 경우는 단순 계산으로 하루 식비 1500엔 정도에 교통비로 평일에는 800엔정도 쓰고 주말에는 2일동안 만엔정도 할당했더니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더라. 물론 나중에 예정에 없던 오사카 여행이 있어서 긴급 수혈을 받긴했지만. 여기에 숙박 시설에 따른 요금과 쇼핑을 위한 돈을 준비하면 되겠고, 사실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적응력을 발휘해서 적당하게 살아가는게 또 인간 아니겠나.

 여행 이야기로 돌아가서 마지막 날의 일정은 오사카 시내 관광과 오사카 성 둘러보기. 5시 20분 비행기라서 늦어도 4시 전에는 오사카에서 출발 해야한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 건지, 조금이라도 더 일본을 즐기려는 마음에 피곤도 잊은채 일찍 일어나 집을 챙기고 방을 나왔다. 카운터에 있는 할머니에게 열쇠를 돌려드리니 기계적인 동작으로 500엔을 꺼내 돌려주시면서 잘가라고 말해주셨다. 마치 일본을 떠나는 것에 대한 인사처럼 들렸다.

 빠듯 하기는 해도 오후까지는 시간이 있기에 그 동안의 관광을 위해서는 코인 락커에 집을 맡겨야 했다. 우선 간사이 공항까지 출발하는 열차가 있는 난바역으로 이동했다. 간사이 공항행 열차가 출발하는 개찰구 근처에 있는 적당한 코인 락커를 찾고 한달이 넘는 동안 사용한 흔적이 묻어있는 짐을 가득 채운 캐리어를 빠듯하게 락커 안으로 밀어 넣고 아침에 받은 500엔을 넣고 24시간 동안의 안전을 보장했다. 물론 나는 8시간 이상은 필요하지 않다. “한국에서는 코인 락커를 한번도 써본일이 없구나” 하긴 무리도 아니다. 코인 락커를 사용하기 위한 조건이라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운 것이다. 하지만 동생 뻘인 사우나나 피트니스 클럽에 있는 녀석들이야 늘 써왔으니까 어색함은 없었다.

 아침 식사로 적당한 것을 찾다가, 찾는 시간이 아까운 나머지 눈에 보이는 맥도널드로 가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맥도널드를 선택하는 것은 늘 이렇다.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고민할 시간이 아까운 경우. 맥도널드는 매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너무 미국식이다. 들어가서 이제는 익숙한 발음으로 빅맥을 주문했는데, 아침 시간이라 빅맥은 안되고 아침 메뉴에서 고르란다. 베이글과 콜라를 받아서 금방 해치웠다. 아침 메뉴라 양이 적구나.

오늘의 일정은 이 난바역에서 시작한다

 

  이제 식객과 헤어져 혼자 행동하기로 한다.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지금 헤어지는게 나을 것이다. 나는 일단 오사카 성으로 가서 둘러보고 다시 난바역으로 돌아와 약간의 쇼핑을 한 후 간사이 공항으로 향하기로 정했다. 가이드북에는 오사카 성까지 가는 길이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아서 (도쿄 가이드만 가지고 왔다) 난바역에 있는 관광안내소 앞의 PC를 이용해서 찾아냈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안내원은 보이지 않았다. 자 이제 난바역에서 표를 사고 뭔지 모를 JR철도를 타고 가기 시작했다. 야마노테센과 비슷한 순환선. 야마노테센서울 메트로의 2호선이 같은 순환선이면서 노선도에 녹색으로 표시되는 것은 우연인가 모방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우리나라 1호선의 풍경과 너무 닮았다

 

 아침부터 그야말로 최고의 더위. 돈은 생각치 않고 사람이 쾌적하게 느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에어컨을 펑펑 틀어대고 있지만 태양의 관할 구역안에서는 어쩔수가 없다. 열차안에서 시원함을 느끼다가 개방되어있는 역 플랫폼으로 나오니 정말 빨리 둘러보고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역시 아침이라 사람은 별로 없었다. 월요일 아침에 오사카 성으로 놀러오는 일본인은 상상하기 힘들다. 게다가 이런 날씨라면 공원의 의미도 없을 정도.

역에서 나오니 이런 풍경이

 오사카 성은 거대한 공원의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는데 공연 주위로는 고층 건물들이 많아서 마치 황거에 갔을때 긴자도쿄 역쪽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다른 곳까지 여유있게 둘러볼 시간이 주어진 것은 아니고 그늘을 찾아 태양을 피해 은밀히 오사카 성까지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는 것이 목적. 벌써부터 땀에 젖은 티셔츠가 눌러붙기 시작했다. 이런 차림으로 비행기를 타야하는 것이다. 3일동안은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왠지 배낭 여행객 처럼 보이기가 싫었다. “나는 일하러 왔다구”

해자도 도쿄 황거보다 넓은 느낌이 든다

 몸은 그늘을 쫓고 눈은 가운데 우뚝하게 솓은 오사카 성을 쫓으며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땀이 많이 날 것 같으면 페이스를 낮추고 또 약간 시원해지면 또 바삐 걷고. 일본의 성들은 대부분 파괴된 것을 다시 복원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오사카 성의 경우도 완파 되었던 것을 완전히 새로 지은 것인데 예전의 자취라고는 주춧돌 몇 개나 남아있을까? 완벽하게 예전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성이 히매지성 뿐이라는데 못가본 것이 아쉽다. 일본의 성을 가보려면 오사카 성은 가지 말고 히매지 성을 가는 것이 좋겠다. 왠지 TV에서 엄청나게 홍보하던 영화 “일본침몰”에서 오사카 성 위로 화산 폭발물들이 날아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열심히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공원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 이 오사카 성이지만 정 중앙에 있기 때문에 어느 쪽 입구로 들어와도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목마름에 생수를 사서 손에 들고 또 열심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그늘도 없고 땀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될 무렵. 오사카 성 아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엘레베이터 같은게 있을리 없기 때문에, 올라가 보려면 힘들 것 같아서 밖에 있는 벤치에서 땀을 식히면서 쉬기로 했다. 앉아 있으려니 우리나라 아람단 아이들 100여명이 저~ 아래서 우르르 올라오더니 매표소 앞에서 대기하고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얘들은 지치지도 않나? 이날씨에.” 땀을 식히고 이제 올라가보자. 입장료가 얼마였더라 500엔은 넘었던 것 같은데.

 위에서 말했듯 오사카 성에서 옛 모습의 자취같은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외형만 복원했지 내부는 최신식의 콘크리트 건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위한 전기등이 상영되고 있으며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역사적인 가치가 높은 유물은 다 박물관에 가있고 크게 볼만한 것도 없는 것이 사실. 둘러보고는 조금 실망했다. 올라가는 계단, 내려오는 계단이 따로 있어서 혼란을 막도록 하고 있었고, 일단 걸어서 끝까지 올라간 후에 내려오면서 각 층에 전시되어있는 유물을 관람하도록 되어있었다. 올라가는 계단을 찾아서 올라가는데 우르르 뛰어내려오는 우리나라의 아람단 학생들. “얘들아. 여기는 올라가는 계단이라니까;” 뒤이어서 따라 내려오는 강남 xx 초등학교 학부모님들; 검은색 정장차림의 안내원들도 말이 안통하니까 주의를 줄 생각도 안하고 그냥 지켜만 보고 서있었다.

 다 올라갔다. 아 시원해. 아람단 일행 여행 가이드가 여기있었구나; 높은 곳에 올라오니까 놀랄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불고 있어서 걸어오면서 흘린 땀은 다 날려버릴 수 있었다.

오사카 시내가 멀리까지 보인다

 

 꼭대기의 관람층은 동서남북 4방향으로 둘러보게 되어있어서 어느 방향이든 오사카 전체(까지는 아니고)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사실 이 정도 높이라고 하면 아주 높은 고층 빌딩 수준도 안되지만, 주위가 공원으로 방해 받을 만한 건물이 없는 관계로 꽤나 멀리까지 내다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5분 정도 둘러보니 주위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금방 질려버렸지만 저 아래의 더위를 아직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몸의 열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버릴때까지 일부러 좀 시간을 끌면서 기다렸다… 됐다! 이제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가면서 전시물을 관람하는 것이다.

 오사카 성은 우리에게도 유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서 건축되었는데 그가 강력한 중앙집권의 권력을 구축한 후 하나의 상징처럼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중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생을 홀로그램 영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놓은 전시물도 있어서 쭉 둘러보니 시간을 잘 가더라. 음성은 일본어지만 옆에 한글로 설명이 되어있어서 참고할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임진왜란 부분에 있어서는 옆의 한글 설명과 일본어 음성 설명의 어휘 선택이 미묘하게 달라서 좀 신경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뭐, 비난이야 할 수 있겠지만 강제성은 없는거니까. 위인으로 숭상하는 것 까지는 않고 존경할 만한 부분이 있는 사람 정도의 느낌. 천황이라는 존재가 예나 지금이나 이어져서 내려오는 만큼 모든 존경과 영광은 그에게 최우선적으로 돌려져야 하는 것이 일본 역사의 딜레마가 아닐까. 아무리 훌륭한 위인도 천황의 아래 있는 것이니까. 또 엄연히 지금도 천황이 존재하고 말이다.

자, 이제 저 길을 지나 다시 돌아가야 한다

 한층한층 꽤나 시간을 들여서 구경하고 난 후. 1층으로 내려와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좀 쉬다가. 다시 12시의 뜨거운 더위로 나갔다. 햇빛도 맹렬하게 우주공간을 뚫고 나에게 돌진하지만, 나도 그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역을 향해 돌진했다. “이제 땀따위는 어찌되든 상관없어.” 올때의 역이랑은 다른 역을 거쳐 돌아가기로 했다. 그래봐야 하나 전의 역이긴 했지만. 일본 사람들은 여름이 되면 수건을 하나씩 가지고 다니면서 땀을 닦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남녀노소 상관없이 일반적인 손수건이 아니라 푹신한 흡수가 잘 될 것 같은 그런 것을 들고 다닌다. 그러면서 수시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거나 하는데, 만약 목에 걸고 다니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타쿠로 알겠지?

파란색 바탕에 빨간색 줄이 왔다갔다 한다

 다시 난바로 돌아왔다. 이제 부탁 받은 책과 내가 살 책, 그리고 몇 가지 문구용품, 돈이 남으면 음반 몇 개를 구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막막하게도 뭐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난바 정도라면 번화가이므로 왠만큼 돌아다니면 다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착각. 문구점에는 내가 원하는 상품이 없었고(설마 도쿄 한정!?) 서점에도 내가 원하는 책이 없었다. 사실 가장 큰 에러는 빅카메라에 들러서 잠깐 둘러보자고 했던 것이 헤드폰 코너를 발견 했는데 수십만원짜리 헤드폰을 샘플로 다 들어볼 수 있는게 아닌가! 하나하나 다 들어보느라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게다가 최신식의 Synthesizer까지 발견해서; 소리를 들어보느라 쇼핑할 시간을 거의 내지 못했다.

 어느 사이에 시계를 보니 3시가 가까운 시간. “무슨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공항에 일찍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일단 간사이 공항으로 출발. 1000엔이나 하는 티켓을 사고 플랫폼으로 내려가니 왠지 타고 싶게 생긴 열차가 대기 중이었다. 특급열차 하루카. 간사이 공항까지 논스톱으로 달리는 대신에 더 비싸다; 괜히 싼 티켓 샀다가 저거 타서 돈 더내지 말고 그냥 완행을 기다리자;

하루카!

 이윽고 도착한 열차에 몸을 싣고, “자! 이제 정말 일본을 떠나는구나” 왠지 아쉬워서 쓸데없는 주위의 풍경을 잔뜩 찍었다. 심지어 열차 안내방송까지 녹음해왔다; 디지털 카메라의 메모리가 비어있는 만큼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다. 간사이 국제공항은 바다위를 매립해서 만든 공항인데, 쓸데없이 크다고 한다; 지금도 계속 확장 공사 중인데 인천 국제 공항등등 동북아시아의 허브 공항 위치를 놓고 경쟁하고 있어서 실제 수용하는 규모보다 훨씬 크게 공항을 짓는데나. 그래서 돈 낭비라는 말도 있고 그렇다고 한다. 우리나라 인천공항도 실제 이용률이 규모에 비해서 턱없이 낮다는 말이 있던데 얘네도 마찬가지구나.

바다 위를 달려서 공항에 도착한다

 오히려 규모에 비해서 엄청나게 붐비는 LAX(LA 국제공항)같은 곳이 있는 반면에 돈을 쏟아부어서 으리으리하게 만들어도 이용해주지 않는 곳도 있고. 중요한 것은 공항이 아니라, 나라 자체가 주는 매력이다. 아무튼 공항에 도착.

지은지 얼마 안된 오오라가 풍긴다

 이제 티켓을 발권해야 한다. 한국에서 올때 오는 날짜 확정을 안했기 때문에 일본 체류기간 동안 오는 날짜를 예약할 필요가 있었다. 회사에서 시간이 남는 동안 대한항공 홈페이지에서 간사이-인천행 비행기를 확인하고 예약을 했었다. 우선 시간표를 확인하고 보니 5시 20분 비행기가 그나마 적당해 보여서 일본 대한항공에 전화를 걸었다. 쌩뚱맞게 자동응답기 대답이 처음부터 한글로 튀어나와 놀랐다. 아무튼 비행기 예약 번호를 누르고 상담원 연결을 기다렸다.

“안녕하십니까? 대한항공의  …입니다.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

 일본인이 한국어로 전화를 받았다. 약간 어색한 발음이었지만, 이러면 이야기가 편하다. 상황 설명을 하고 비행기 예약을 했으면 한다. 예약번호를 불러주었다.

“알겠습니다. 처리되셨습니다.”

 일본어로 설명해야 되는 경우가 있을 것 같아서 복잡한 한자어 몇개를 미리 알고 전화했는데 한국어로 다 되니 편하지만.. 그렇다면 사실 일본인은 국내에서 거의 대한항공을 이용 안한다는 거구나. -ㅅ- 이제 그렇게 예약한 티켓을 발권해야 한다. 대한항공 카운터를 찾아갔다.

“안녕하십니까???”

 윽, 이분은 안되겠다. 알아듣기 힘든 한국어로 하느니 그냥 일본어가 낫다. 예약한 티켓을 발권하러 왔다고 일본어로 하니까 그 분도 얼른 일본어로 바꾼다. “원래 도쿄에서 돌아가는 것으로 비용을 지불했는데, 간사이 공항이라 티켓 값이 더 싸다. 차액을 돌려주겠는데 어떻게 받겠느냐?” 묻길래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느냐?” 했더니 현금은 안되고 “차후 대한항공을 이용할 경우 사용할 수 있는 해당 금액의 쿠폰을 주겠다.” 고 하길래 OK. 해당 금액의 쿠폰을 받고 발권을 하고 탑승 게이트로 향했다. 1시간 정도 시간이 남았지만 몇가지 할 일이 있었다. 일본에서 쓰다 남은 엔화를 USD로 환전할 것. 그리고 면세점에서 남은 동전까지 긁어 모아서 몽땅 쓸 것.

 환전소는 꽤나 여러군데의 은행에서 나와있었지만 대충 비슷할 것 같고 고액도 아니어서 그냥 아무데나 갔다. 환전소 앞에서는 미스 유니버스 출전자들이 매는 나라 이름이 세겨진 어깨 띠 같은 것을 한 아저씨가 안내 가이드로 활약하고 있었다. 탑승 항공편을 적고 무슨 돈에서 무슨 돈으로 환전할 지 적고 액수를 적는다. 남은 돈이 1만엔 정도 되는구나. 미스 유니버스 아저씨가 옆에서 과잉 친절로 이것 저것 참견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사양하겠어요. 실제 카운터에 가서 신청서와 엔화를 들이 미니까. 접수 직원이 의아하다는 말로 뭐라고 되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못들어서 “에?” 이러고 있으니 “Can you speak English?” “아뇨 일본어로 괜찮아요.” 했더니,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인데 왜 USD로 환전하느냐는 것이었다. “한국으로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가요.” 라고 설명하니까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이 환전해준다.

 면세점에 들렀다. 남은 엔화는 500엔. 도대체 이걸로 면세점에서 무엇을 살수 있을까? 의아해하면서 또 별로 기대는 안하면서 둘러보고 있으니까 딱 눈에 띄었다. 와라비?라고 적힌 교토의 전통 먹거리라나. 결국 물건이 목적이 아니라 돈을 쓰기 위해 산 것이라 한국에 돌아와 냉장고에 오래동안 묵혔다가 버리고 말았다. 약간 먹어봤는데 양갱 비슷한 맛이 나는 것이 맛도 이상하고;

 이제 탑승시간이 슬슬 다가와서 게이트로 향했다. 모노레일 열차 비슷한 것을 타고 게이트까지 이동해서 티켓에 적힌 곳으로 이동. 비행기가 준비중이다.

갈때는 보잉747. 올때는 뭐였지?

 

 대한항공은 일본 공항에서 JAL이 정비해주고, 아시아나ANA가 정비해준다고 들었다. 일본 국적기가 우리나라에 왔을때는 그 반대고 말이다. 따라서 JAL직원들이 대한항공 비행기를 정비해주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회사 생활, 여행지를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이래저래 사진을 찍고 있으니 이윽고 탑승 시간이 되었고 나는 이번에도 가장 마지막으로 입장했다. “안녕 일본”

태양은 태양이지 한국의 태양, 일본의 태양은 아닐 것이다